말 씀 역대하 32장 24-33절
제 목 믿음을 지키지 못한 히스기야[2]
아비야를 어머니로 모신 히스기야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올바른 왕이 되도록 늘 곁에서 인도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처럼 하나님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아주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도 성도와 함께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돕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히스기야처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어머니 아비야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온 백성이 여호와의 법대로 살도록 도왔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왕인 히스기야가 왕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린 것처럼 성도는 세상에서 아무리 소유가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왕으로 내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통치하시도록 낮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고 생명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31장 10절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대답하여 가로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지금까지 악한 아하스왕 때문에 성전에서 일하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은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면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와 봉사를 드리는 그들의 감격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백성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고, 진심이 담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많은 재물의 복을 주셨습니다.
신앙이 회복되면 세상의 삶도 회복됩니다.
고난을 만난다 할지라도 신앙을 회복한 성도는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않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보기 때문에 늘 감사한 것이고,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것이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성전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백성들이 믿음으로 영적인 삶을 살도록 돕자 나라가 평안해졌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처음 소산을 드리며 기쁘게 헌신하자 그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축복하시고 백성들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정상적인 신앙이 회복된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사랴는 왕에게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이 얼마나 많은지 제사장들이 먹고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다고 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나라와 교회와 가정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올바로 선 성도들과 일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영육간의 큰 축복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선과 정의를 가지고 개혁을 단행하며 예배의 질서를 회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셨기 때문에 그는 형통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세상의 길로 가던 것을 돌이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금 그릇이라도 그릇이 더러우면 그곳에 양식을 담아줄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이 비록 나무그릇이라 할지라도 깨끗하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담아 주실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나라를 바로 세우고 온 백성이 평안 할 때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신앙을 회복하면 더 평안하고 형통한 삶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스라엘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공격을 막아주시지 않고 허락하신 것은 히스기야와 유다의 믿음이 정말 바로 섰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산헤립은 자기 신복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히스기야와 백성에게 너희가 의뢰하는 하나님은 힘이 없다고 조롱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꾀어 앗수르왕의 손에서 건져내겠다고 하지만 결국 너희들은 망할 수밖에 없으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여호와의 단을 제하여 버리고 그 위에 분향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개혁을 단행하면서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있던 우상들과 단들을 척결한 것 중에는 모세가 만든 놋뱀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뱀에 물렸을 때 놋뱀을 보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놋뱀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어떤 예배형식이나 자기가 만든 신앙습관을 우상처럼 섬기면서 그것을 어기면 벌을 받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만든 예배형식에 따르고 순종해야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빠졌다면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놋 뱀을 섬겼던 백성들은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보다는 놋뱀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더 강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그럼 놋뱀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왜 우상이 되느
냐고 물을 것입니다. 물론 놋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럼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왜 잘못
된 것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물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놋뱀은 불뱀 때문에 주신 것이고, 예배는 죄를 이기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아주 특별한 예식이기 때문에 불뱀에 물린
자들과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이 드려야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9장 35절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을 조롱하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히스기야와 백성을 조롱했던 산헤립의 군사들은 천사로 인해 하루아침에 전멸 당했습니다.
주석에는 앗수르 군사가 모두 역병에 의해 전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 군사를 막을 힘이 없었던 히스기야왕과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을 뿐인데 십팔만 오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적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히스기야는 신앙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앙이 회복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나라를 부강시키고 군사력을 갖출 수 없
기 때문에 앗수르의 공격을 막을 힘이 그에게는 없었지만 하나님은 믿음으
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왕의 연약한 부분을 막아주셨습니다.
게으르거나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족한 가운데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32장 21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앗수르왕은 군사들이 모두 죽자 자기나라로 돌아갔는데 힘이 없어진 그를
죽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아들들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백성을 괴롭힌 사람들의 최후는 평안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볼 때 성도는 가장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들 뒤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성도를 괴롭히는 악인은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앗수르를 물리치자 그 기적을 본 열국의 왕들이 예물을 가지고 히스기야와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서 몰려들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고 있으면 세상이 성도를 찾아와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국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게 되어 나라는 더욱 부강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비야로 부터 물려받은 믿음이 그를 세상에서 위대한 왕으로 우뚝 세웠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안을 주는 축복의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조심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여기부터 입니다.
죄로 인해 사망 가운데 빠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이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죄인에게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감당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대신 감당해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이지만 그 말씀을 붙들고 인생을 올바로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아비야가 눈물로 히스기야를 키웠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바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은 아비야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왕이 되어 세상적으로 성공한 지금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히스기야의 몫입니다.
성도들이 가장 위험할 때는 고난을 당해 힘겨워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평안한 시간입니다.
재물이 늘고, 시간이 많아지고, 문제가 사라지고,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게 되면 긴장이 풀린 성도를 향해 사단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능력이나 재물이나 권세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영적인 긴장을 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많은 서원을 하고, 시간을 들여 하나님께 매달리다가 그 문제들이 사라지고 나면 간절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간절한 소원이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과 성도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약간 벌어지는데 그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필요에 의해서 의지하는 인간의 본성은 필요가 사라지면 인내와 노력으로 하나님과 벌어진 그 사이를 믿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넣어 메우기 때문에 사단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이 편안해질수록 스스로 채찍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부어주고, 시간과 권세를 주실수록 스스로 작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앞에서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자존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32장 24-25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지금까지 많은 기적과 역사를 직접 경험하고도 그는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부하면 교만해서 변질되고, 가난하면 그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지 못해서 변질되고 맙니다.
어머니의 26년간의 기도의 능력과 천사가 직접 내려와 앗수르를 물리치는 것을 경험하고도 히스기야는 세상의 재물과 권세를 다스리지 못하고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가 가진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시는 분도, 취하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바로 섰을 때 주셨던 그 많은 축복을 한 순간에 거두어 가셨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재물과 능력과 지혜와 생명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닫는 것처럼 미련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은 모두 거두어 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지금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쓰레기로 만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왜 믿지 않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히스기야는 열국의 왕들이 머리를 숙이자 자기의 힘에 굴복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이 바치는 뇌물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때 그것을 내 것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영혼구원을 위해서 더 충성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셔도 악한 자나 악한 영에게 빼앗기지 않는 온전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비야의 기도로 세워진 히스기야의 멸망을 보았습니다.
아비야는 육적으로는 악한 남편을 만나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기도의 제목을 하나님께 응답 받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받은 축복을 지키지 못하고, 모두 땅에 쏟아버리는 심판을 받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믿음의 딸인 아비야는 축복의 열매 히스기야를 남겼지만, 믿음으로 끝까지
살지 못한 히스기야는 므낫세라는 악한 열매를 남겼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속에서 살아야 하는 성도들이 선택을 잘해야 하는 이유이며, 올바른 신앙으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히스기야를 거울로 삼은 여러분은 언제나 말씀만 붙들고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