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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에게 메일을 보낸 지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몇 번인가 확인 차 메일 박스에 들어가 보았는데, 계속 붉은 글씨로 ‘확인안함’만 뜬다. 그러다 보니 답답하다.
일단 보낸 것이니 열어보긴 해야 할 것 아닌가. 가능하면 빨리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데, 그래서 쌍방이 마음 정리도 하며 그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데,
그런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안정이 안 된다.
일단 내 쪽에서 메일을 보냈으니, 이제 내 영역에서는 벗어난 것이고 그 쪽에서 언제라도 열어보면 될 일인데, 왜 이리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
그랬다.
나는 아예 이런 갈등마저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답을 하지 않고 내버려두려고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무 일 아닌 듯 넘기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요한 것 같았고 또 그녀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배려와 최소한의 예의랍시고 내 뜻을 보냈던 건데......
어쨌거나 빨리 마음을 털어내고 싶다.
4. 27
비가 온다더니 온 종일 날씨만 흐릴 뿐,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어제 밤부터 날씨가 흐려지기에 혹시나 밤사이거나 아니면 일기예보대로 오늘 중에는 다소간의 비라도 내려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모르고 있던 일이지만, 아침 뉴스를 보니 어젯밤 제주도에는 160mm 이상의 비로 ‘호우주의보’도 내려졌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반도 남쪽엔 비가 쏟아졌다는 말인데,
그런 비가 여기저기에 조금씩 나뉘어 왔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말이다.
나머지 지방의 농부들은 정말 애가 터졌겠다.
어쨌거나 가뭄이 지속되어 이 세상은 너무 건조한 상태다.
그래설까? 내 마음도 메마른 상태로 요즘엔 아무런 감흥도 없어, 그림 작업도 못한 지 오래다.
더구나 엊그제 ‘산티아고 가는 길’ 걷기 연습을 한다는 게 무리였던지, 아직도 온 몸이 쑤시고 아파서 몸을 제대로 놀릴 수가 없다. 틈만 나면 졸거나 정신마저 멍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기 귀찮은 무생물 같이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이런 몸으로 무슨, 두어 달을 걷겠다는 건지......
4. 29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도 나쁜 점이 있다. 그러니까 웬만큼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태생인지 아니면 살아가면서 굳어진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에게도 그런 좋지 않은 요소들이 제법 있는데,
오늘 그 중의 하나를 여기에 밝히려고 한다.
나에겐 거만하거나 도도해 보이는 '단점'이 있는 것 같다.
내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내 언행이 어떤 사람에겐 자기를 무시하는 걸로 비춰진다고도 한다.
그건 내가 무뚝뚝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별로 관심 없어 하는 태도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는가 보다.
어쨌거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내 기본적인 태도는 나쁘다고 볼 수는 없을 텐데, 문제는 내가 남들보다 그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더구나 내 하는 일이 그렇기도 하듯 지극히 개인적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한테 무관심하기 일쑨데, 그건 내가 상당히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개인주의에 젖어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냉정하거나 지나친 이기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의 언행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받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차!”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것들마저 타인이 나를 싫어하는 요소로 작용해, 더욱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혼자고, 혼자 살고, 점점 혼자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더 나는 이 ‘혼자 사는 병’에 묻혀 살 것인가.
4. 29
최근에 잠자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원래 내가 아침 늦은 시각까지 자거나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다섯 시 넘어서는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아무튼 밤이 많이 짧아진 요즘, 내가 눈을 뜨는 시간은 먼동이 틀 무렵으로 TV를 켜보면 아직 방송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거나 심야 해외 스포츠 중계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직장인이 아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다. 그러다 보니, 침대에 누운 채 TV 뉴스를 보곤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밝아져서야 느긋하게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 나팔꽃을 살펴본다.
밤사이 얼마나 더 커 있는지, 넝쿨은 제대로 뻗어 가는지.
그 일도 이제 일상으로 자리 잡혀 가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잠시간이 부족한지, 낮에는 버릇처럼 한두 차례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예 작정하고 잠깐 낮잠을 청하기도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는 또 저녁을 먹고 난 초저녁에 졸음이 쏟아져 스스로도 당황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뜩이나 밤이 짧아져 가는 요즘 나는 졸음과의 싸움에서 져 작업 의욕마저 잃어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도 나이 들어감 때문은 아닌지.
4. 30
가만히 유행가를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그 노래에 푹 빠져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다.
‘사랑’에 대한 쓰라린 아픔을 토하는 노래가 어디 한 두 곡이랴만, 어떤 때는 늘 들어오던 노래였는데도 어느 한 순간 가슴을 후벼 파는 그 노래 가사에 가슴 뭉클해져서 혼자서도 당황해 하는가 하면,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들려오는 한 가락의 멜로디에도 콧등이 시큰해져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는 등.
‘설마, 그러기까지 할까?’ 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 두세 번 있었던 얘기이고, 사실은 오늘도 그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슬픔 쪽에 더 가까운 걸 보면,
나 역시 사랑의 아픔을 겪으면서 인생을 배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하는 말도 노래 가사 같다.)
어쨌든, 이런 얘기하기가 좀 멋쩍긴 하지만 나 역시, ‘이루지 못한 서글픈 사랑’을 해본다는 것마저도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다.
단 한 번의 행복한 사랑을 하다 죽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못한) 사랑을 했던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또 모든 사랑이 다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기에, 가슴 아픈 사랑을 했던 사람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다.
이 말 역시 유행가 가사와 다를 바 없다.
오늘, 외출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흘러나오던 한 지나간 유행가에 빨려 들어가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눈에 눈물이 고이는 바람에(정신이 번쩍 들어), 다른 사람들 눈치를 살펴가며 흐르려던 눈물을 훔쳐내느라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로 걸어오면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보다는 내 마음이 훨씬 맑아져 있는 기분이어서,
아!
젊은 날, 내 이루지 못했던 사랑이 그리워서 해보는 소리다.
4. 30
어제도 ‘양수리’ 주변을 걸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걷는 연습이다. 돈이야 어찌되든 알 바 아니라는 듯, 나는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양수리에 도착하자마자 북한강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록 길이 좁고 차들이 먼지를 날려대긴 했지만 한 쪽으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수려한 경관이기도 했다. ‘문호리’를 거쳐 ‘중미산’이란 고개를 넘어 ‘양평’ 방향의 ‘옥천’까지 하루 종일 걸었는데, 상당히 먼 거리를 걸었음에도 그 총거리가 얼마였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족히 30km는 넘었을 것 같다.
아무튼, 발바닥이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싸돌아다녔으니까.
그런데, 지난겨울 동해 남부 해안을, 설 즈음엔 또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고향 군산 주변 옥구 평야를(금성리-김제촌-회현 둑방길), 그리고 요 근래 양평 주변을 걸으면서 매번 느낀 것이지만, 걷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는 건 물론 사람이 참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걸으면서는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도, 실재로는,
‘이 길은 어디쯤에서 그 어디로 가는 길과 갈라질까? 다음 산모퉁이를 돌면 어떤 길이 나올까? 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하는, 그런 아주 단순한 생각만이 함께 할뿐이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고 맑은 공기에 상쾌해하기도 하면서, 깨끗한 계곡에서 고성방가 하는 사람들이 자연을 훼손하는 것에 울화통이 치밀기도 하지만, 나를 괴롭히던 일상의 다른 복잡한 생각들은 온데간데없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걷기 연습을 하면서 나는 또 하나, 섬뜩한 내 모습도 확인하게 되는데.
‘내가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나 역시 ‘김삿갓’같은 방랑자가 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나는 왜 겁도 없이 늘 어딘가 떠돌고 싶어 하는 취향의 사람인가?’ 하는 쪽으로 방향선회를 하면서, 그런 내가 스스로도 결코 좋다거나 만족스러운 감정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5. 1
요즘 나는 스스로 의문이 들도록, 멍청해져 있으면서도 바쁘기 그지없다.
아니, 미쳐있다.
화가라면 작업을 한다거나 전시를 하는 일정으로 바빠야 할 텐데, 그런 일과는 무관한 ‘산티아고 가는 길’ 쪽에 빠져있다는 말이다.
걷기를 하는 것도 그 일의 예비연습이고, 비행기 표 구입과 여행경비 마련하는 문제, 그리고 이미 신발은 맞춰서 길까지 내는 등의 걷기 위한 전반적인 준비물 점검에 들어가,
‘모자는 어떤 걸로 사나?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걸 어떻게 가져가나?’ 하는, 머릿속이 온통 그 여행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그러다 보니 또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하는 불안한 의문 속에 갇혀있기도 하다.
어제도 양수리 주변을 걸었는데, 우연히 조각하는 한 후배를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그런 시골에 자리하고 있던 ‘00 갤러리’ 라는 곳까지 끌려 들어가, 최근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는 양평 주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결성된 한 예술가 그룹의 전시 오프닝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한 화가의 정상적인 행보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그 화랑의 관장을 소개받고 내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한다거나 그 화랑과 연관된 전시 같은 사업적인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음에도, 그런 쪽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던 나를 스스로도 의아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디 그뿐이랴? 결국엔 술 두어 잔을 얻어 마신 뒤 무슨 ‘김삿갓’ 인양 길을 재촉하며 화랑을 떠나면서는,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리나 했던 것이다. 그러니, 허탈해 하면서도 혼자 웃을 수밖에.
그렇다.
나는 화가인데도 화가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불편하기만 하다. 어제도 그 후배를 우연히 만나 또 억지로 끌려갔던 것이지, 애당초 그런 곳에 들어가 볼 생각조차 없었던 나다. 북한강 길을 걷다 보니 웬 번듯한 화랑이 하나 나타나기에,
‘이런 시골에도 화랑이 있나?’ 했을 뿐, 그냥 지나쳐 한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지만, ‘이런 시골에서 그럴 리가 없다.’며 또 한참을 갔는데도 또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그 후배였다. 전시에 필요했던 물건을 사러 잠깐 차를 몰고 나왔다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나를 발견했다며,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차를 돌려 쫓아오기까지 했다기에, 하는 수 없이 그 오프닝에 끌려갔던 거니까.
그런데,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 어색한 분위기.
더구나 참가자 중에는 내가 알만 한 화가가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인사도 건넸는데,
웬걸?
그는 대놓고 날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재작년 서울 복판의 한 화랑에서 기획한 전시회에 같이 참여했었고, 그 전시 오프닝 회식 때도 그와 나는 정면으로 마주보고 앉아서 제법 많은 얘기를 나누었었는데.
그는 그 정도의 기억력도 없는 저능아였단 말인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나는 다음이라도 혹시 그를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아는 체마저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 화단에서도 상당히 알아주는 그에게 나는 그저 한 ‘알고 싶지 않은 화가’일 테니까.
오프닝은 어차피 그런 분위기였고, 하나 같이 잘난 화가들의 기세 싸움에 눌려 나는 그곳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래서 겨우 오프닝만을 보고, 점심을 같이하자는 후배의 요청에도 고개를 저으며 그곳을 부리나케 빠져나와 내 갈 길을 계속했던 것이다.
나는 화가가 아닌가? 왜 그들 속에서 벗어나오면서 그토록 상쾌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일까? 화가가 전시장을 나오면서, 왜 그리 서글픈 기쁨을 느꼈을까?
5. 2
외출을 하는 거의 대부분의 날, 화랑대 사거리 횡단보도를 지나며 나는 속으로 욕을 해댄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나가노라면 한 쪽은 태릉, 다른 쪽은 시내, 그리고 내가 내려가는 방향은 구리, 그 반대쪽은 원자력 병원인 커다란 이 4거리는 길의 폭이 넓은 만큼 교통량도 많다. 게다가 경춘선 철길이 지나다 보니 건널목도 있어 여간 복잡하지가 않은데, 그 횡단보도를 지나면서 늘 욕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파란불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차량들이 횡단보도를 점령하기 일쑤여서 보행자들이 차를 빙 돌아 걸어야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못해, 또 어떤 차량들은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는데도 그 틈을 비집고 후다닥 지나가곤 해서,
“이 나쁜 놈들!” 하는 욕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허기야 어디 남자들뿐이던가? 가만히 보면, 여자들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게 요즘 세상이니까.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그런 행동이 잘못이라는 자각마저 없는 듯, 어쩌다가 보행인이 불평을 해대도 못 본 척 뻔뻔하고 꿋꿋하게 앉아 있으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그렇지만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이라, 그들 중에는 어쩌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미안하다는 손짓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럴 때면 오히려 보행자 쪽에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드니 이 게 어디 제대로 된 세상인가 말이다.
뭐 그깟 일로 이렇게 흥분하느냐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현상이 여기 화랑대 4거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닌, 다른 곳에서도 또 그 언제라도 일어날 것이기에,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교통도덕에 대해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국민이라고? 무슨 ‘문화’? ‘교통도덕 파괴 문화’?
허긴 이제는 나도 지쳐서, 그저 한숨 쉬는 걸로 대신하고 지나가곤 하는데.
오늘도 나는 그런 기분으로 아파트에 돌아오면서는,
‘나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가? 앞으론, 아예 모른 척할까?’ 하기도 해 보지만, 우리나라 교통도덕이 심히 우려가 돼서 하는 말이다.
5 . 3
내 스페인 행에 파란불이 켜졌다.
비행기 표 살 정도의 돈이 생긴 것이다.
며칠 전, 한 친구가 까페를 열겠다고 상호와 로고 디자인을 해 줄 수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와서, 한 이틀 고심 끝에 해 주었다. 그러자 나에게 오늘, 수고비조로 백만 원을 입금시켜왔던 것이다.
사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갈 사업이라, 그 친구의 새로운 도전을 도와주는 의미로 보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그런데 그 쪽에서 최소한의 성의라며 극구 사례를 해왔기 때문에 안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돈을 받고 보니,
‘비행기 표!’ 하는 생각이 스쳐,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그 정도면 저가 왕복 항공권 정도는 충분히 구입할 수 있을 액수라,
‘일단 비행기 표를 구입해 놓으면 어떻게든 가게 될 테니까......’ 하는 배짱이 생기면서 기분까지도 상승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냥 스페인에 가는 일이라면 바르셀로나에 몇 군데 붙어 지낼 곳이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여정은 석 달 간을 계속 걸어 다니면서 먹고 자야 하는 일이라 이전의 다른 스페인 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숙박료가 싸다고는 해도 여름엔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니고, 더구나 식비는 고스란히 현지 체류 날짜를 계산한 비용에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그 사이에 뜻밖의 그림이라도 한 점 팔린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썬 여행경비를 마련할 어떤 특별한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것 같지는 않으니, 그 일을 실행하기까지의 고충이 눈에 보듯 빤하기만 하다.
결국은 누군가에게 돈을 꿔야한다는 얘긴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능력도 없는 놈이 남에게 돈을 꿔서 놀러간다는 식으로 비춰질 터라(그 말이 맞다.), 그것마저도 상당한 가슴앓이가 될 듯하다.
허긴 겨우 목구멍에 풀칠이나 할 정도의 시간강사료 수입으로, 그것도 한 학기에 국한된 넉 달 뿐인데 내가 어느 틈에 여행경비를 저축해놓을 틈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여름에 스페인에 갈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비행기 표부터 사놓겠다고 밀어붙이고 있는 내가 스스로도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몽상가’로 여기는 것이다. 이 세상일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지 세상에서 꿈만 꾸며 살아가는 사람......
아무튼, 스페인 행을 이번 여름으로 못 박아놓고 매달려왔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여행비용 마련에 자신이 없다 보니, 아직도 여전히 불확실하기만 한데.
이제 어느덧 5월이 되어 점점 시간은 다가오고, 나에게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여.
일단 비행기 표는 사놓는다지만,
‘그 사이에 몇 백 만원의 경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올 여름에 나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더 깊어지고 있다.
5. 4
어제는 종일 석고 뜨기를 했다.
석고만으로 조심스럽게 모형을 만든 다음 건조시켜 물감을 입히면, 햇빛과 빗물에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거라는 계산으로.
얼마 전 우두커니 베란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재료로 만드느냐였는데.
그러던 중 강의에 나갔다가 바로 내 수업시간에 몇몇 학생들이 ‘지점토’로 입체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지점토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면서(나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지점토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시험 삼아 모형을 만들어 봤더니 그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지점토 작품의 약점은 아무리 잘 말려 유성물감을 입힌다 해도, 야외에서는 어떻게든 물이 스며들어 망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작품을 만들어 놓아도 외부인 아파트 난간에 설치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또 한 동안 궁리를 하다가, 요 며칠 사이에는 조바심이 나서, 아예 석고로 직접 그 모형을 뜨기로 했던 것이다.
작업과정은 이랬다.
지점토 작업처럼 우선 철사로 그 형상의 뼈대를 만든 다음, 조심스럽게 석고를 개어 조금씩 붙여 나가는 식으로.
그런데 빨리 굳는 석고의 특성 상 일단 굳어지면 수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석고 개는 양(적을 수밖에 없다.)과 시간 조절에 애를 먹어야만 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듯 한 번 일에 빠지다 보니, 밥 챙겨 먹는 시간도 귀찮을 정도로 정말 하루 종일 붙어 앉아서 일에 몰두한 끝에, 약 35cm 높이의 조그만 앉아있는 사람의 형상을 내 스타일로 얇게 만드는 데 성공하기는 했다. 물론 일이 다 끝난 뒤의 나는 진이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작품을 어서 빨리 난간에 설치해놓고 싶은 충동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나는 몸이 꼬부라지는 느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베란다 창 뒤의 난간에 묶어 놓는 극성까지 부려보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비록 작은 형상이었지만(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욱 더) 아파트 11층 높이의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슬아슬하고 불안했다. 그러니까 재미도 있었지만 극적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거였다. 원래 작품의 컨셉이 그랬기 때문에, 나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전상에 문제가 있었다. 철사 틀에 플라스틱 기타 줄을 묶은 상태로 석고를 입혔기 때문에 그 줄로 난간에 묶어 고정시킬 수는 있었지만, 난간의 폭이 생각보다 좁아서 모형의 손 부분이 공간에 붕 떠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전체 무게 중심이 엉덩이와 허리부분에 있어서 당장 떨어질 문제는 없었지만, 어쨌든 보기에는 상당히 불안했다. 게다가 무심코 창을 열었다가는 베란다 창틀과 작품 사이의 간격이 없다보니 부딪히자마자 깨질 거고, 그렇게 되면 파편들이 저 아래로 떨어질 거라......
실망이 컸다. 만들 땐 신바람을 냈었는데.
그래도 그 분위기 자체는 너무 맘에 들어, 더욱이 밤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서 일단 어두워지도록 내버려 둬 보기로 했다.
그렇게 밤이 될 때까지도 거기에 신경이 쏠려 있었는데, 그 모습도 썩 괜찮았다. 더구나 안에서 불을 끈 상태로 아파트 단지의 야경을 배경으로 남은 검은 실루엣 형상에서는, 또 다른 얘기가 쏟아져 나오는 듯 또 다른 느낌을 풍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 주제가 외롭고 허무한 것이지만, 그런 주제와 너무 들어맞다 보니 오히려 섬뜩해지기까지 했던 것으로.
그것 역시 성공이었다.
그런데 내 욕심은 또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와중에도 드로잉 수채 하나를 더 하고 마는데.
그러니까 이번에는 입체작업을 이용한 평면작업을 했던 것이다. 물론 내 스타일인, 사람의 윤곽을 그리지 않는 여백으로 남겨(흰 라인만 남은 형상) 허무함을 더 강조해주었는데, 결국 아파트촌 야경을 배경으로 난간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있는 한 사람의 그림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내 눈 앞에는, ‘실물’과 그 걸 종이 한 장에 옮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기묘한 분위기의 세상이 연출되는 느낌이었다.
행복했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예술가 아니면 느끼기 힘들 거라는 생각까지 드는 행복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행복을 만끽해보고 싶어, 한참을 그 속에 빠져있었다.
결국,
‘저건 나중에 좀 크게 유화로 해봐야겠구나.’ 하는 계획까지를 세워놓으면서야 그 작업을 마감했는데, 알고 보니 오늘이 ‘어린이 날’이었다.
그런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밤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불안해서 끝내 나는 그 작품을 다시 떼어 베란다 탁자에 앉혀 놓는 극성까지를 부리고서야 침대에 누웠는데......
1m 남짓한 내 침대와 그 작품 사이엔 정말 아무런 벽도 없는 것 같은, 그러니까 작품과 나 자신이 어떤 일치감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묘한 감정이기도 했다.
그런 희열과 함께 나는 죽음 같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온 하루의 노동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어제 어린이 날 얘기다. 5 . 5)
석고가 완전히 마른 것 같으니 유화 물감으로 색을 입혀야겠는데, 검은 색으로 할까? 그러면 너무 강하지 않을까? 그럼, 하얀색? 그 색은 너무 눈에 잘 띄어 어쩌면 아파트 관리실로부터 철거하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붉은색? 글쎄, 그것도 안 되겠는데......
나는 이제 ‘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에 색깔 입히는 문제로 고민에 빠진 상태다.
그런데 나는 그것과는 다른 계획 하나도 이미 세워두고 있다.
조만간 베란다의 다른 쪽에 ‘솟대’ 하나를 만들어 설치하려고, 그 재료인 나뭇가지도 다 주워 모아둔 상태다. 다만, 언제 작업에 들어가느냐의 시기를 놓고 역시 고민 중이다.
나는 화가지만, 사실 이런 쪽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니까 나는 2차원 평면이 아닌 3차원 입체로의 ‘조각’인 도심 공간에 대형 조형물 설치작업(공공미술)을 하고 싶은 사람인데, 정작 그런 일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면서 소꿉장난하듯 이런 조그만 모형 작품들을 만드는 것에서나마 대리만족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헛된 꿈을 꾸는 것일까? 이 주먹만 한 작품들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나?’ 하는 탄식을 내뱉곤 한다. 물론 이런 소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그와 동시에 서글픔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는 가끔, 허허로운 웃음을 짓곤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혼자서 허허로운 웃음만 짓는다.
5. 6
드디어 오늘 ‘솟대’를 만들어 베란다 난간에 설치해 놓았다.
허공에 던져진 아련한 공간감이 좋다.
그동안 참참이 재료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는 꿈에 젖어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팔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솟대는 내 팔자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내 마음 어딘가엔 늘 단순하고 허무한, 그러면서도 율동감이 느껴지는 그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또, 이 솟대가 ‘역마살’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왜냐면 가뜩이나 역마살 때문에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아왔던 나로써는, 솟대만 보면 나도 모르게 아득한 향수 같은 나른한 기분에 젖어 어딘가 멀리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다 못해 설레기까지 하던 걸 보면.
그러다가 최근 40대 중반이 돼서야 겨우 내 한 몸 편안하게 머물 공간이 생긴 게 서울의 이 조그만 아파트인데, 그렇게 살면서도 또 언제부턴가 나는 솟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요 얼마 전 ‘산티아고 가는 길’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 모으면서 솟대 만들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제 ‘난간에 걸터앉은 사람’이 생기자, 또 거기에 걸 맞는 다른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던 나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렇지만 마땅한 연장이 없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찾아냈던 게 판화용 조각칼이었고,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그걸로 나뭇가지에 구멍을 내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조각칼 세트의 둥근칼을 두개나 부러트린 것도 모자라, 내 오른손 검지에 물이 잡히는 우여곡절 끝에 솟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 내 아파트 베란다 난간엔, 가느다란 나무기둥의 두 가지에 기러긴지 오린지 모를 새 두 마리가 커다란 창의 공간으로 보이는 허공에 이야기하듯 자리를 잡고 있다.
먼 옛날 삼한시대 농경사회부터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과 행운을 비는 풍습으로 마을 어귀에 세워놓았다는 솟대.
나도 이 아파트에서나마 행운과 풍요를 빌어 볼까나?
허기야 나는 그 솟대가 갖고 있는 매력에 끌려서 삶 속에서 함께하려는 것이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왜 세워두는 건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행운과 풍요를 비는 것 역시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내가 요즘에 미쳐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떠나기로 결정한 동기 역시, 스페인 친구가 나에게 보여줬던 사진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철 십자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거고, 그 철 십자가가 풍기는 느낌도 바로 이 솟대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주구장창 솟대를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꿈을 꾸려고 나는 바로 코앞에다 솟대를 세워놓은 것일까?
늘 어딘가 떠나고 싶어 안달인 내가 또 얼마나 떠나고 싶어 하려고......
5. 7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우편함에 삐죽이 하얀 봉투의 한 부분이 보였다. 봉투가 커서 일부가 삐져나왔을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예감이 좋지가 않았다.
그랬다. ‘00대학교’에서 온 것으로,
‘선생님을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는 내용의 통보였다. 그러니까 교수 임용에서 떨어졌다는 말이고, 언제든 가능할 때 제출했던 서류를 찾아가라는 안내문이었다.
‘근데, 언젯적 일인데 이제야 이런 걸 보내고 난리야?’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확 짜증으로 솟구쳐 올랐다.
지난 2월, 그것도 초순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신문에서 ‘교수 임용’에 대한 광고를 보고는 자격 조건을 살펴보니, 외국어 능력과 현지 체류 실적에 가산점을 많이 준다는 조항이 보여서,
‘이번에는 제법 가능성이 있겠는데......’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서류를 준비해 딴에는 자신 있게 응시를 했다. 그리고 이 일 역시 혹시 미리 발설하면 부정이라도 탈까 봐, 이 홈페이지를 비롯한 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정말 마지막이란 각오로 임했던 일이다.
물론 쉽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계속 떨어져왔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허무하게 안 될 줄도 몰랐다. 더구나 스페인에서 몇 년을 살았던 나는, 나름 언어에도 상당히 자신이 있었던지라 더더욱 기대감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을 빼고 기다려도 대학교 측에선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3월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도 여전하기에,
‘무슨 이런 놈들이 다 있어?’ 하는 분노가 일었지만, (약자라서 그랬을까?)그렇게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보니 항의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비참함을 홀로 삭이면서 하늘을 원망하며 ‘교수’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시간강사 자리는 차마 그만둘 수가 없어서, 내가 이룰 수 없던 꿈인 ‘교수’라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던 캠퍼스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서는, 처절하게 밀려오던 굴욕감에 내 자신이 싫어서 죽고 싶기까지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몇 개월이 가다 보니, 또 어느새 분도 아픔도 먹먹해진 상태로 그 감각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는데,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그런 통보를 보내오다니!
‘차라리 이런 통보마저 하지 말지......’ 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그 서류 봉투를 든 채 가슴이 벌렁거리는 흥분과 다시 엄습해오는 절망감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꽉 조이다 못해 쓰라리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젠 그런 일에선 어느 정도 자유로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몸조차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로 보면, 그게 아닌가 보았다. 아니어도, 한참 아니었다. 순간,
‘아, 어쨌거나 나는 떠나야할 사람인가보다. 이런 일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떠나는 수밖에 없다......’ 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그 즉시,
‘떠날 여비도 없이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하고 있었다.
슬펐다.
아파트에 들어와 보니, 바람이 세게 부는지 베란다 창 너머 앞동산의 나무들이 서로 쥐어 할퀴듯 엉켜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라! 뒤집어져라!’ 했지만, 하필이면, 오늘이 ‘어버이 날’이었다.
아까 아파트로 걸어오다가, 곱게 차려입은 한복 가슴에 카네이션을 꼽은 노파 둘을 보았고 자연스럽게 어머니 생각도 했었던 것이다.
아, 만약 아직까지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나는 오늘 얼마나 면목 없어 했을 건가 말이다......
그런 뒤, 오늘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5 . 8
아, 내가 ‘교수’가 되려고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닌데 왜 자꾸만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생기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미 이 홈페이지에,
대학교수가 내 목표는 아니라고 호기롭게 큰소리를 칠 때까지만 해도, 그걸로 모든 게 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미련마저 지우고 살아왔는데.
더구나 오늘 같은 경우는 짜증스럽다 못해 비참했던 지난 기억을 되살리게까지 해서 정말 울고만 싶었다.
더욱이 이 홈페이지의 지난 글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다 보니, 무엇보다도, 그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사실 그렇게 큰소리를 쳤으면서도 지금도 나는 대학 강사직으로 입에 풀칠하는 처지로, 어떻게든 ‘대학 강단’과 연관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일을 없었던 듯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고, 스스로도 찝찝해서 차라리 이 사이트에 다 털어놓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난 글 역시 내가 거짓으로 쓴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도 없고 뒤늦게 수정할 이유도 없는데, 다만 이제 와서 그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고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양 쉬쉬 숨길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바뀐 것도 없다. 나는 그렇게 대학 교수에 대한 꿈을 포기했고, 이제는 그런 일에 관심조차 두지 않으니까. 다만, 그 놈의 대학 측에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자극을 가해 왔기 때문에 그 상황에 따라 심경의 변화를 표현했다는 말은 하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도의적이라는 큰 틀에서의 변화만 없다면 어떤 식으로의 반응이라도 괜찮을 거라는 쪽으로 자위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어떻든지 갈등을 느낀 건 사실이고, 그 얘길 사이트에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게, 내가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핵심이다.
5. 8
베란다의 샷시에 구멍을 뚫어 굴러다니던 전선으로 줄을 쳐 놓았다.
나팔꽃 넝쿨을 위해서였다.
5 . 11
오후 실기강의를 하는데 어째 창밖이 어둑해서,
‘비가 오려나?’ 하고 창을 열어보니, 이미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3시 반 경에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제법 내렸는지, 새까맣게 빛나는 아스팔트엔 이미 물도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을 나서는데, 웬 여인들 한 떼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내가 나가는 대학과 같은 재단이면서 같은 캠퍼스 안에 있는 여고도 수업이 끝나 학생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는데, 그 딸들에게 우산을 들고 온 엄마들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아, 나에겐 우산을 갖다 줄 사람도 없구나.’ 하는 쓰잘 데 없는 감상에 젖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러면서, 누군가 나를 위해 우산을 들고 기다려주는 사람의 모습도 그려보았다. 물론 여인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여인을 무척 아름답다고 여기는 나니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에 젖어 멍- 하게 지하철에 올랐다가 나는, 환승역을 지나치는 바람에 쓸 데 없이 몇 정거장을 더 돌아와야 하는 불필요한 고생도 했던 오후였다.
그런데 그런 기분으로 아파트에 돌아와 저녁을 챙겨 먹었던 나는, 뭘 했는지 그저 앉아 있다가 고꾸라져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어렴풋하게 그러면서도 성가시게 들려오던 소음에 한참을 시달리다가 겨우 눈을 떠 보니, 이미 방송이 끝났는지 TV의 칙칙 대는 화면만 보일 뿐이었다. 무거운 몸으로 힘들게 일어나 TV와 불도 끄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랬더니 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났고, 이렇게 일어나 독백까지 올리게 되었는데, 여전히 멍- 할 뿐이다.
그런 뭔가 멍- 한 생활을 하는 요즘인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에 나가,
‘얼마나 자랐나?’ 하고 나팔꽃을 바라보는 일이 그나마 내 유일한 낙이라고나 할까.
5 . 15
나팔꽃이 고개를 내밀고 간절하게 뭔가 타고 올라 갈 대상을 찾는 것 같다. 이제는 포기마다 너덧 개씩의 이파리를 달고 있기도 하지만, 넝쿨이 될 줄기도 제법 굵어진 상태다.
그런 걸로 보면, 이제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나 보다.
5 . 17
요즘, 나팔꽃 얘기 아니면 할 말이 없다.
날은 조금씩 더워지는데, 나는 삶의 활력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물론 날씨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멍- 할 뿐이다.
5. 17
오늘은 무슨 날인지 스페인에서 두 개의 메일이 와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누리아(Nuria)'와 마드릳의 '호세(Jose)'로 부터.
그런데 그들은 스페인인이면서도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한다는 걸 너무 잘 됐다며 좋아하는 내용의 글을 합창이나 하듯 보내왔던 것이다. 물론 그들도 아직 그 길을 하지 않은 상탠데, 내가 하는 걸 보고 나중에 자기들도 해 보겠다는 내용마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써 보낸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들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아무튼 메일을 둘이나 받고서도 나는 심란해져만 갔다.
에이! 어쨌거나 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밀고 나가는 수밖에.
나팔꽃은 이제 넝쿨을 뻗는다.
줄도 튼튼히 매 주었으니 그 걸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넝쿨이 직선으로 위로만 뻗어 올라가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그들을 지그재그 조절해줄 것이다. 작년에 그걸 배웠고, 그게 효과적이란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름인가.
며칠 전부터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누워도 밖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쾌적하다 못해 하늘에서 자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전망을 가진 아파트에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5 . 18
나팔꽃은 신이 난 듯, 쑥쑥 위로 치솟고 있다.
어떤 놈은 이파리 하나가 벌써 애 손바닥만 할 정도로 활기차다. 넝쿨을 뻗기 시작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어느새 그리 커 가는지.
사실 길이로만 따진다면 이미 베란다 높이를 훌쩍 넘어가는 놈이 있을 정도로 한창이다. 그나마 내가 수시로 넝쿨의 방향을 공간에 맞춰 조절해주었기 때문에, 물론 내 기준으로의(인위적으로) 보기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내 베란다는, 솟대와 한들거리는 나팔꽃 이파리들로 싱그럽고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나는 바로 베란다에 나가 나팔꽃과 마주한다. 물론 내가 이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제일 가까운 접이식 침대에서 자기 때문에, 이제 나팔꽃이 밤새도록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얘긴데, 잠에서 깨어난 내가 나팔꽃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꼴일 수도 있다.
“어머! 이뻐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너무 좋네요. 이렇게 꽃을 가꾸는 걸 보면 선생님은 여성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바깥에 있는 솟대와도 너무나 재미있게 잘 어울려요.”
오랜만에 놀러 온 그전 미술학원에서 가르쳤던 여 제자 H가 베란다의 나팔꽃에 탄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렇게 끈을 매주는 것도 보통 정성이 아닐 텐데요.”
“알기는 아네! 암, 보통 정성이 아니지. 날마다 일어나자마자 나팔꽃과 인사를 하면서 물을 주고, 어디에 끈이 필요할까를 살피면서 매주는 게.”
“근데 어쩌다가 이런 생각까지 하셨어요?”
“생각은 무슨. 그냥 심심해서였지.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낫지 않아?”
“그럼요! 낫구 말구요. 어디 낫기만 하나요? 너무 훌륭해요. 무슨 작품 같기도 하구요. 암튼 이런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닐 텐데......”
“그렇긴 하지.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어. 그리고 내가 어릴 적부터 좀 곰살 맞은 구석이 있다고들 했었거든. 난 가만이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야. 뭘 만든다든지, 그린다든지, 쓴다든지....... 그냥 가만히 놔두면 혼자서도 잘 놀거든. 그리고 생각이 미치는 것이 있으면, 안달을 내며 가만히 있질 못해. 흠, 근데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뭔가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지 못한 허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응, 그러니까 사실, 나는 이런 저런 조형 작품들이나 대형 벽화를 멋지게 만들어 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거든. 거대한 프로젝트로 아주 커다란 예술작품으로 말야. 그렇게 신바람 나게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내 현실이 안타까워 이런 식으로나마 마음을 풀어야겠기에, 이 조그만 아파트 안에서 소꿉장난하거나 장난치듯 노는 거지. 그러니 뭐, 여성적이라거나 또는 그런 식으로 보일지도 모르고.”
“그럼, 하시면 되잖아요?”
“세상일이 그렇게 쉬워?”
“그래도 시도를 해야......”
“일을 안 시켜주는데 어떻게 해?”
“선생님이 찾아 나서야지요! 이렇게 아파트에만 계시면 누가 일을 주나요?”
“내 말이. 근데, 나는 그럴 주변머리가 없어.”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보시지 않구요.”
“나도 뭔가 시도를 해 왔는데, 안 먹히드라구. 그러다 보니 이젠, 지치고 시들해져서 이러고 있는 거야. 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펼쳐보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게 안 되드라구. 그런 대형 건물의 조형물 같은 건, 실력도 없는 대학 교수란 것들이 직위를 이용해서 다 해쳐먹고, 작품성도 없는 조각가란 조각가들도 다 그런 일에 눈을 뒤집고 덤벼들고 있다 보니 자기들끼리 나눠먹기 하는 것마저 피를 튀기듯 어찌나 경쟁이 심한지, 온 나라가 그런 환경공해에 가까운 오합지졸로 채워지는 건 물론 나 같은 사람은 언감생심 거기에 뛰어들 생각하는 것조차 바윗돌에 달걀을 던지는 꼴이고......”
나는 평소와는 달리 심사가 나서 그런 말도 흥분한 채로 마구 내뱉으면서도 H의 눈치를 보자,
“아, 그렇겠지요. 그게 이 세상이니까요.” 하고 H도 그 상황을 수습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얼른,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제풀에 지쳐서, 맨날 생각하는 게 어디 떠날 궁리나 하고......” 하면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 산티아고에 가시는 것도 멋있잖아요.”
“뭐? 멋있다고?”
“예. 그런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선생님은 또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그대로도 충분히 멋지고 또 행복해 보여요.”
“그래? 하긴 가끔은 행복은 하지. 내 스스로 행복해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 너무 허무하니까.”
“그래서 제가 보기엔, 선생님은 행복한 분이라니까요. 어디든 가고 싶으면 가고, 비록 조그만 작품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렇게 재미있게 사시니까요.”
겉으로 보기에 늘 명랑하고 웃음을 달고 사는 H와 오늘 나눴던 대화였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간 뒤에, 나는 다시 한 번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역시 허무할 뿐이었다.
그래. 나는 솟대를 바라보며 아파트에서 소꿉장난하듯 나팔꽃이나 가꾸는 혼자 사는 사람이니까......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