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단어 <차이나>는 중국이란 뜻일뿐만 아니라 도자기란 뜻도 있습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도자기나라로 불리워왔습니다. 그럼 중국과 도자기사이에는 구경 어떤 관계가 있겠습니까?
고고학자료가 증명해준 바와 같이 도자기의 전신은 원시적인 청자기였는데 이는 도기로부터 자기로 이행하는 과도단계의 산물로서 도자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도기의 흔적까지 가지고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원시적인 청자기는 산서 하현의 룡산문화유적지에서 발견되였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미 약 4200년의력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귀중하게 소장한 도자기는 동한시기에 나타났습니다. 도자기는 먼저 남방지역인 절강성에서 나타났습니다. 그후 도자기제작기술은 남방에서 북방으로 전해져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일어난 제일 중요한 변화는 흰 도자기의 산생인것입니다.
흰 도자기는 청자기로부터 발전해온것으로서 량자간의 구별은 질그릇과 유약의 철함량이 부동한것입니다. 도지기를 만드는 진흙에 철함량이 적으면 흰색으로 되고 철함량이 많으면 비교적 어두운 색이 납니다.
도자기의 발전은 단일 유약도자기로부터 칼라유약도자기로 발전해왔습니다. 절대부분의 칼라도자기는 모두 흰색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칼라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흰 도자기의 산생은 도자기의 발전에 대해 아주 심원한 영향을 미치였습니다.
기원10세기부터 13세기초에 이르는 당나라와 송나라시기 중국의 도자기제작기술이 계속 발전하였습니다. 당삼채가 바로 이 시기에 산생된 칼라도자기공예품입니다
. 이는 주로 진흙으로 만든 도자기원형에 먹인 천연색유약이 구워내는 과정에 화학적인 변화를 발생하여 이루어진것입니다. 당삼채는 중국 국화와 조각 등 공예미술의 특징을 채용하여 붙이고 조각하는 등 형식의 장식도안으로 한 도자기그릇에 동시에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유약을 사용하는것입니다.
이렇게 3가지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워내면 3가지 유약이 서로 어울려 3가지 색갈이 여러가지 색갈로 변합니다. 원색과 복색으로 된 이런 도자기는 사람들의 눈에서 여러가지 색갈로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삼채유색의 특징입니다.
명나라와 청나라시기는 중국 도자기생산의 전성기로서 도자기생산의 수와 질이 최고봉에 이르렀습니다. 남방도시 경덕진이 도자기도시로 확립된후 경덕진도자기가마가 명나라와 청나라 도자기분야를 수백년동안 유지하게 되였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의 최고급 도자기가 여전히 여기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중국도자기는 8세기부터 국외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유명한 실크로드가 벌써 중외상업무역과 문화교류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중국은 실크의 나라로 불리우게 되였습니다. 8세기에 들어선후 중국도자기가 외부로 수출됨에 따라 중국은 또 도자기의 나라란 미명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중국 도자기는 최초에 주로 아시아지역에로 수출되였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선후 서부유럽의 황실과 궁전에서 중국 도자기를 소장하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뽀르뚜갈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후 도자기는 또 유럽사회의 가장 진귀한 선물로 되였습니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 류행되던 로코코예술풍격은 생동하고 아름다우며 자연스러움을 특색으로 하였습니다. 로코코의 에술작풍은 중국예술풍격의 정밀하고 보드라우며 깜찍하고 우아한 특징과 일치합니다. 이것은 도자기를 포함하여 중국의 풍격을 가진 물품이 전반 유럽에 진입하도록 촉진하였습니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17세기에 중국은 해마다 약 20만개의 도자기를 수출하였는데 18세기에 와서는 해마다 백만개의 도자기를 수출하였습니다.
중국도자기가 전세계의 범위에서 팔리고 세계적인 상품으로 되였습니다. 차이나란 이 단어도 중국 도자기가 영국과 유럽대륙에서 널리 전파됨에 따라 도자기의 대명사로 되여 중국과 도자기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중국고대도자기의 휘황한 성과와 그로 인한 도자기전파로 하여 중국의 특색을 가진 이 물품이 세계인민의 사랑을 받게 되였고 중국과 도자기는 하나로 련결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