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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6-7(P.413) 영원한 복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2026. 2. 15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방문하면 대표적 관광지인 밀라노 대성당을 필히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밀라노 대성당(두오모 성당)에는 세 개의 큰 아치가 있는데, 거기에는 각기 다른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밀라노 대성당 삼중 아치에 전해지는 라틴어 문구 ① 왼쪽 아치에는 ‘Omnia quae placent, momentanea sunt(기쁨을 주는 모든 것은 잠시뿐이다)’. ② 가운데 아치 ‘Omnia quae nocent, momentanea sunt(고통을 주는 모든 것 또한 잠시뿐이다)’.③ 오른쪽 아치 ‘Aeterna tantum momenti sunt(오직 영원한 것만이 중요하다)’
영원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영원을 생각하고 찾으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영원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만 영원하고 소중합니다.
<영원. 永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계가 있는 유한한 세상이라 영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겨우 100년을 살아가는 인간이 영원에 대해 논하는 것이 어불성설입니다. 이에 신학적 의미에서도 ‘영원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영원을 소망하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갈구하며 희망합니다. 그래서 ‘늙고 죽는 것이 없다’는 ‘무노사(無老死)’의 삶을 희망한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만들어 영원히 살려고 했습니다. 이집트의 왕이었던 파라오(바로)는 자신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미이라로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황금을 가지고 황금 미이라를 만들어 영생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황금미이라를 만들어 자신의 죽음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영생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몇해 전에도 우리나라에서도 완벽한 미이라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투브 동영상으로 보니 완벽한 미이라가 아니었습니다. 눈은 없고 피부는 말라 쪼그라 들어 있으며, 사람의 형체는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보면, 영웅 길가메쉬가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길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 나옵니다. 길가메쉬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하고, ‘내가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나도 결국 죽는 존재인가?’라는 공포에 사로 잡힙니다.
그리고 대홍수에서 모든 인류들이 다 멸망당할 때 살아남았던 대홍수의 생존자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메소포타이나판 노아)’을 찾아 떠납니다. 어렵게 우트나피튀심을 만났지만, 그는 길가메쉬에게 ‘신들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최고의 영웅이었던 길가메쉬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중국의 도교에서는 ‘신선이 되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해서 다들 신선이 되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피닉스’라는 전설의 새를 만들어 불사의 삶을 기원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해 살펴 보면, 모든 인간은 영원을 사는 데는 다 실패하였습니다.
영원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복음만은 영원합니다.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이미 죽었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 복음이 보여주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 받아 하늘나라에 영원히 사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사는 것만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사 40:28에는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영원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하루만 살다가 죽는 하루살이가 영원을 이야기 한다면, 코방귀 끼면서 웃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영원을 선포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 119:160‘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주의 말씀, 규례 즉 복음은 영원하다고 구약과 신약에서 입을 모아 말합니다.
금주일은 구정 연휴가 함께 있는 주일입니다. 단순하게 휴식하고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소중함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소개하고 알리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땅 끝까지 전파되는 영원한 복음이기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6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복음에 제외된 민족이나 개인은 없습니다. 복음이 필요 없는 민족과 복음이 필요 없는 개인이 없습니다. 복음은 시간적으로는 ‘영원’하고, 공간적으로는 ‘모든’ 곳에 전파됩니다. 복음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무제한으로 전해집니다. 이것이 복음의 보편성입니다.
2천년 전에 이스라엘에 오셔서 전하신 예수님의 복음이 2천년 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의 보편성이 먼저 믿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고, 인종을 뛰어 넘어 모든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눅 15장에 보면, 선한목자의 비유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눅 15:4절,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목자는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온갖 정성과 수고를 다 한 후 잃어 버린 한 마리 양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는 큰 잔치를 벌입니다. 6절,‘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양 한 마리의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진치를 벌인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생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이 시리아에 있는 IS테러 단체와 훈련소에 폭탄을 쏟아 부었다는 외신 뉴스가 있었습니다. IS라 표현되는 무자비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타종교를 전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것은, 타종교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IS가 천주교회를 불태웠다는 뉴스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IS가 불교인을 죽였다는 뉴스가 없습니다.
IS는 오로지 기독교인들만 죽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일신관을 주장하는 기독교를 용납할 수 없고 기독교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 보세요. ‘이단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네 교회만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오로지 자기들만이 참된 구원이라고 말합니다(신천지). 이렇게 자신들만 챙기는 이런 종교는 나쁜 종교입니다.
인류복지에 공헌하는 적십자사가 있습니다. 창시자 앙리 뒤낭은 185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목격하고 여러 나라에 인도주의 단체의 결성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1863년 제네바에서 국제 적십자 운동이 시작됩니다.
적십자정신은 비록 전쟁 중이라도, ‘아군뿐만 아니라 부상당한 적군도 함께 치료하는 것’입니다. 내 편이라고 아군만 치료하고 적군을 죽게 버려두는 것은 적십자정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의사는 나쁜 의사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고 장기려박사님(부산 청십자병원)은 김일성을 치료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여도 충분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복음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속아 현혹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다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적군 아군이 없고 니편 내편이 없습니다. 북한사람에게도 복음이 필요하고, 미운 짓 골라서 하는 중국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의 후렴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어느 누구나 구분하지 말고, 어느 누구나 차별하지 말고 나와서 주님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제한을 두어서 안 됩니다. 누구나 쉽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5세기 종교개혁을 말하면 마르틴 루터만 떠오르지만, 사실 마르틴 루터 이전에 위대한 종교개혁가로 꼽히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30–1384)이며, 다른 한 사람은 죤 낙스입니다.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는 호칭을 받았던 분으로써, 1382년에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놀라운 업적을 남깁니다. 당시 라틴어는 학문적 언어라서 라틴어 공부를 따로 배운 일부의 천주교회 사제들만이 라틴어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당에 라틴어 성경이 전시되어 있지만 평신도들은 읽지 못해서 장식품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장식품 라틴어 성경을 일반 평신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하는 놀라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위클리프가 라틴어 성경을 영어 성경으로 번역한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성경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읽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는 자신들의 글과 말로 된 성경이 없는 부족에 들어가 그들의 말을 익히고 성경을 번역해 주는 일을 합니다. 몇 년의 단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십년에 걸쳐 대를 이어서 이루어야 하는 이런 엄청난 일을 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읽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약 6,600개입니다. 이 가운데 구약과 신약 모두 번역된 언어는 500개 미만입니다. 쪽복음이라도 번역된 언어는 2,538개입니다. 나머지 소수부족들과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성경이 전해지지 않았고,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들 민족에게도 언젠가는 복음이 전해질 것이고, 전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영원하기 때문에 오고 오는 모든 세대,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영원하지 못하다면, 이미 복음은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복음이 영원하지 못하다면 다른 민족에게 전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은 영원합니다. 이 영원한 복음을 내가 믿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 영원한 복음을 내가 이미 받았다는 것에 또한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영생을 소개하고, 생명의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알리는 구정명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2. 하나님만 경배하는 명절 연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7절,‘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복음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벌을 주기 위하여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심판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는 공의로운 심판은 불신자들에게는 공포와 재앙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능력의 장이 됩니다.
그래서 7절 상반절‘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하나님이 만물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심판자이신 하나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허락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변치 않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1)“하나님은 사랑이시다”와 2)“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다”라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좋은 하나님, 언제나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은 죄 지은 것을 용서하지 않고, 엄하게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어느 한 면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허허 웃으시는 하나님만 보아서도 안 되고, 무조건 벌을 내리시는 무서운 하나님을 보아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도 가지고 있지만, 죄는 엄단하시는 공의를 함께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반드시>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합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반드시’라는 단어가 187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문구에 연결되어 있을까요?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는 하나님’이라는 축복의 문구가 있는 반면,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무서운 심판의 문구도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걸출한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 1910–1988)라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실천의 삶을 살았지만, 어느 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나는 하나님을 위해 일했지만 정작 하나님과 함께 살지는 않았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 세상 것들과 단절한 체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며 거룩함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의 진리는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후로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든지 아니면 사람을 두려워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사람이 두렵지 않는 법입니다.
빌 2:12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현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두렵고 떨림이 없습니다. 교회를 마치 자신의 놀이터나 사교장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에는 예배, 헌신, 순종, 하나님 경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참 성도이고, 참 교회입니다.
단 6:26절,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오’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신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라고 가르칩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고,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며 경배의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오늘 주보에 실려 있는“행복한 인생을 위한 톨스토이의 10훈”이라는 글을 다시 소개할까 합니다. 1)일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2)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능력의 근원입니다. 3) 운동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끊임없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4)독서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5)친절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6)꿈을 꾸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대망을 품는 것입니다. 7)사랑하고 사랑받는 데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구원 받는 자의 특권입니다. 8)주위를 살펴보는 데 시간을 내십시오. 이기적으로 살기에는 너무 짧은 하루입니다. 9)웃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영원의 음악입니다. 10)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그것은 인생의 영원한 투자입니다.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천들은 영원한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2026년 시작해서 2월의 중순을 걸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영원한 복음과 함께 2026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무니만 크리스천이 아니라, 복음을 가슴에 품고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정 연휴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