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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식이란
자기와 남을
있는 그대로 보는
객관적인 안목이다.
순수의식이 발로되지 못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안목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도 육체적으로 보면 동물과 같이
두개의 육체의 눈으로 바깥을 보며 산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볼 수 있는
제3의 눈인
영안이 하나 더 있다.
이 영안으로
자기의 안을 들여다보며
사는 생활을 해야
순수의식이 발로되면서
동물적인 삶에서 사람다운 삶으로
진일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태양을 위시한 모든 물질의 빛은
자기를 비추지 못하고
자기 이외의 것만을 비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밖으로 나가는 빛을 돌이켜
자기의 안을 비추며 살아가는 생활을
시작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밖으로 나가는 봄(빛)을 돌이켜
자기를 돌아봄의 생활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것이 영성을 계발하는 1단계 수행이다.
이 단계에서는 밖을 보는 힘이 강하고
안으로 돌아보는 힘이 약하여
"돌아봄"이 끊어질 수 밖에 없는 단계이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놓치고 잡고 반복하기를
끊임없이 하게 되면
돌아봄의 힘이 밖을 보는 힘과
대등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리하여
밖을 보면서도 안을 보고
안을 보면서도 밖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게 된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되어
안과 밖의 구별이 사라지므로
이윽고
돌아봄의 수행이
여기에서 일단락된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영안이 떠지고
잠재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른바
바라봄의 단계로서
2단계 수행이다
여기에서는
육안으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영안으로
자기의 생각(욕심)과 감정까지 바라보게 된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환하게 드러나 보이므로
생각과 감정을 미리 알아
생각과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빈도가
차차 늘어가게 된다.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빈도가 늘어간다.
그러나
아직 속물의 신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아
생각이나 감정에 이끌리는 때가 있으므로
"바라봄"의 고삐를 놓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육안과 영안의 구별마저 사라지고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늘봄"이 되고
생각과 감정이 난무하지 않고
난무하더라도 즉시 자취가 없어
봄이 무르익는다.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유자재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유와 행복과 평화라는 말도 사라진다.
사랑이니 자비라는 말도 빛을 잃는다.
모든 추구하는 것이 사라진다.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인연 따라 저절로 움직이고
침묵 가운데 인연 따라 저절로 말이 나온다.
동물성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명실상부한 만물의 영장으로 완성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봄의 3단계 수행"을 통해
육체의 허물을 벗고
미숙한 인간을 완성시킬 의무와 권리가 있다.
오직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살고 있다.
오직 이 일을 완성시키기 위해
내일도 태양이 떠오른다.
천지만물은
나 하나 인간 만들려고 존제하고 있다.
오직 사람다운 사람 하나 만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