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겨울 이사
그런데 기로가 둔터니로 이사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정작 집 주인인 상범은 기로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선뜻 뭔가 공사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난 가을부터 기로가 두어 차례에 걸쳐 '흙집에 가서 살겠다'는 답을 주었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범은 그저 하루하루를 그 쪽엔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심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친구 사이였다고는 해도, 모든 것이 확실해야 행동에 옮기는 기로에 비해 상범은 일을 벌려놓기만 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흐지부지 넘기는 성격의 차이가 컸는데,
따지고 보면 이번의 경우도, 상범이,
"어서 와라!" 고 떠벌이고 있을 때,
서울에 있던 기로는 그 상황을 일일이 점검할 수 없었기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해 놓아라!" 라고 부탁 겸 통보만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2003 년이 되어 1월도 가고 기로의 책이 나오던 2월이 되어, 이제 이사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집은 괜찮은 거야?" 하고, 다시 두어 차례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는데,
이사 날짜가 다가갈수록 기로의 태도는 더욱 분명해진 반면, 상범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없는 말투로 변해가면서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은 그 즈음의 기로의 일기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그에 앞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 ‘夢想 別曲’은 기로의 홈페이지였던 ‘화가의 일기’의 내용이 근간이 되는데,
그 홈페이지는 제목처럼 기로의 일상(일기와 편지)을 세상에 알리는,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아주 은밀하면서도 개인적인 사이버 공간이라서, 독자가 그 내용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굳이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읽을 생각이 있다면, 기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화가의 일기'의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러지 않고서야(거짓된 이야기를) 독자가 굳이 시간 낭비를 하면서까지 읽을 이유조차 없을 테니까.
물론 아무리 한 화가가 자신의 일기를 세상에 알리는 사이트라고는 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화가가 100% 자기 자신의 실제이야기를 올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할 수도 있고 또 해도 될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라 해도, 자기 자신의 사생활은 있는 거니까. 그리고 사실 기로 역시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까발릴 수는 없었기에, 본인의 정직성은 유지하되(기본적이고 큰 틀에선 정직한 내용을 올리고 있었지만), 굳이 밝히기 싫은 개인의 사생활 부분이거나 안 좋은 것들은(예를 들어 성(性)적인 면이거나 금전 문제, 그리고 어떤 특정한 개인에 대한 악담이거나, 그 특정한 사람의 이름 등)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비록 자신의 사생활을 일부 숨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홈페이지의 독자들을 기만하거나 자신의 정직성엔 부끄러움이 없다는 자기 확신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로의 '화가의 일기'는 몇 년을 이어가고 있었고,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두 자리 숫자의 회원들이 꾸준히 들어오고도 있었으니까.
그런 내용이 이해가 된다면,
이제 기로의 홈페이지를 신뢰하는 자세로,
여기서 이사 전 며칠 치의 홈페이지에 공개됐던 기로의 일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물론, 이 이야기(‘夢想 別曲’)는 기로의 일기와 편지가 주를 이룰 것이란 점도 밝혀둔다.
*
그동안 이사 준비로 이것저것 마무리 짓느라 인터넷과 먼 생활을 해왔다.
그렇지만 오늘은 모처럼 하루 종일 내 원룸에서 보냈는데,
어차피 이삿짐도 싸야만 하고, 또 비도 내리는 바람에 일부러 나갈 일을 만들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없이 하루를 지내려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사실, 인터넷 망 자체를 끊어버린 건 아닌데, 업그레이드를 위해 컴퓨터 하드를 떼어 보냈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어서지만.
아무튼 오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구질다.
많은 비가 내리는 건 아니었지만, 내내 우중충했다.
전주의 상범한테서 전화가 왔다.
24일 날 서울로 물건을 싣고 와서 자신의 일을 본 뒤, 25 일 내려가는 길에 내 짐을 싣고 이사하자는 것이었다.
차가 없는 나는, 물론 그의 계획에 따라주어야 할 처지였지만, 왜 그런지 이사하는 날까지가 까마득히 멀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오늘이나 내일 쯤은 이사할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미루는 바람에 이틀이나 더 기다려야하는 것이라서.
그러다 보니 갑자기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래서 평소에 보지도 않는 TV를 켜보아도, 짜증만 날 뿐이다.
2003 . 2 . 22
*
원룸 관리비가 3 개월 째 밀려있다고, 사무소에서 전화가 왔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떡하든 그 걸 마무리 짓고 이사해야 하는데...... 이사를 해도, 역시 아무 수입도 없는 건 마찬가진데......
그동안 1 년여 애를 먹은 끝에 책을 내긴 했는데, 내 생활은 안 낸 것과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니......
그렇다면, 시골로 내려가서는 어떻게 살게 될까?'
2 . 23
*
이사 문제로 심란한 상태로도 여기 저기 채널을 돌려가며 TV와 함께 했다.
온통 '대구 참사'에 대한 얘기 뿐이어서, 그 가족들의 통곡을 보다 보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애매한 죽음을, 신(神)은 어떻게 볼 것인지......
신은 있기는 한 것인지......
비는 곧 개리라 한다.
그래, 내일 이사할 때는 화창하게 개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사하는 것 역시 돈이다.
'원룸 관리비' 등 급한 불은 꺼놓았는데, 어쨌거나 걱정이다.
시골로 이사하면, 처음엔 거기도 돈 들어갈 곳이 많을 텐데, 그런 돈은 고사하고 여기 마무리도 가까스로 했을 뿐인데,
아, 그나저나 앞으론 어떻게 하나?
정말, 이놈의 돈 때문에 내가 생으로 늙어가는 기분이다.
전주 전화국에 통화를 해보니,
내가 가는 임실군 운암면 '둔터니' 마을은 인터넷망이 설치되지 않아 사용 불가한 지역일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지?
웬만한 불편함은 견뎌낼 수 있겠지만, 인터넷이 안 된다면 말이 안 되는데......
엊그제 알아볼 때가지만 해도, 3월 중에는 개통이 될 거라더니, 오늘은 안 될 거라고 하니......
이래저래 날 힘들게 할 일들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기분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저녁 무렵에 '이 씨'의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가 가져갔던 내 컴퓨터 하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새로 바꾼 것은 이상이 없는데, 그 전의 하드는 계속 다운이 된다면서......
난, 내 컴퓨터 하드의 용량이 다 찬 것이 불안했고, 그래서 하드만 새로 달아 놓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씨가 자청해 그 일을 해주겠다며, 직접 내 하드를 떼어 가져가는 친절까지 베풀어 주었었는데......
문제는 그 전의 자료들이다.
요즘 내가 정신이 없어서, 하드에 있는 자료를 백업시킬 짬도 없이 보냈었는데,
그 자료들이 없어진다면?
아, 안 될 일이다!
컴퓨터를 바꾸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그 자료들이 없어지는 건 재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씨도 좋은 뜻으로 나를 위해 일을 해준 건데, 엉뚱하게 꼬이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옳단 말인가?
전화를 끊고 나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도대체 이 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책임을 누가 져야하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큰일이다.
내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았던 자료 문서들도 컴퓨터 바탕화면에 상당히 남아있었는데,
그 게 사라져 버린다면?
아,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그렇게 몇 번의 전화가 오가다 보니, 밤이 깊어갔다.
그런데도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이 씨를 원망할 수도 없는 문제라 더 괴로웠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밤이라, 나는 조용히 이 상황정리를 하려고 했었는데,
마음정리는커녕 혼란만 가중된 상태로, 나는 지금 아무 정신도 없다.
오직, 그 하드를 복구하는 일만 성공되길 빌 뿐이다.
2 . 24
이렇듯,
어쨌거나 기로의 인생 전체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그래서 큰 결단을 내려 실행하고 있는 시골로의 이사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게다가 3 년 여 전에 했던 이혼으로 혼자 살아왔던 기로에게 남은 건 덜렁 전세 원룸 한 채 뿐이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그려왔던 본인의 그림 보관 문제로, 당장 그 원룸조차 처분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 그림들까지 싣고 시골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다 보니 기로의 입장에서는, 서울은 서울대로, 또 앞으로 시골로 내려가 살면서의 지출은 또 거기대로 이중 부담을 감당해야만 했는데, 그나마 정규적인 수입원이었던 대학의 시간 강사 자리까지 내 놓고 떠나는 입장이라,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었겠는가.
*
날이 왜 이리 답답하게 뿌연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씨다.
비가 개기에 맑아질 줄 알았는데, 아침에 낀 안개는 10 시가 되도록 걷힐 줄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제 16 대 대통령 취임식’이라는데,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다던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을 텐데, 날씨가 이래서야......
나 개인적으로 이사하는 것은 별 거 아니겠지만,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날씨가 이래서야 원......
아침 일찍 와서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돕겠다던 제자는 아무 소식도 없다. 그런데 친구 상범은 곧 차를 가지고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으니, 이 이삿짐을 어찌하나?
결국 제자 녀석의 전화가 왔는데, 어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이제서 일어났다며 지금 바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우리는 짐의 일부를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그리고 일부는 아래로 옮겨 놓았다. 그러는 사이 허둥지둥 도착한 제자가 일손을 거드니 한결 수월했다.
많은 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은 짐도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는 물품의 기본은 갖춰진 것이라서......
짐을 싣자마자 원룸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나는 트럭에 올랐다.
이제 떠난다. 새로운 삶의 터로......
서울을 벗어나면서 차가 밀려 서행을 하는데, 바로 앞차의 번호를 보니 7 땡이었다.
상범과 나는 이사하는 길에 그런 번호를 보는 건, 뭔가 좋은 징조 아니냐며 웃었다.
기분 나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좌석이 높은 상범의 타이탄 트럭 앞좌석에 앉아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나는 이사하는 게 아니고 어디 멀리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오전의 안개는 어디로 갔는지 많이 걷힌 상태였다.
물론 화창하게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기온은 높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서울을 떠날 거라고 알렸을 때부터 아주 깊은 관심을 갖고, 이사하는 곳에도 가보리라던 '구 병태'한테선, 부부가 지금은 지리산 부근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날더러 언제쯤 둔터니 현지에 도착할 것 같냐고 묻기에,
오후 5시는 넘으리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뒤, 호남 고속도로로 접어드는데 이 씨 한테서 전화가 왔다.
컴퓨터 하드를 아무 이상 없이 복구했다는 것이었다.
아,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연거푸 '수고했다'며 고마움을 표했고, 그는 평소대로,
"뭘요......" 할 뿐이었다.
그러니 다시 마음이 푸근해질 수밖에.
그렇게 전주에 도착했는데, 친구 상범이 다른 업자와 약속이 돼 있어서 바로 '둔터니'로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가 일을 보는 관계로 한 시간 쯤 늦어졌다.
그 일을 끝내고 다시 차에 다시 오르자, 구 병태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딘가요?" 하고 물으니,
"호수가 보이고, 뾰족한 산이 보이는 곳에 와 있소." 했다.
그렇다면?
그랬다. 그들은 바로 내가 이사할 곳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아래 통나무집이 보이지 않나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는 걸로 보면,
그는 호수 외곽도로의 한 쉼터에서 전화를 걸고 있던가 보았다. 그래서,
"바로, 거기가 거기요!" 하며 우리는 서로가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니, 거기서 기다리슈!"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를 가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다시 전화를 걸어,
"그렇게 있느니, 차라리 아래로 내려가 '통나무집'이 아닌 그 옆집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오!" 했더니,
그도 웃었다.
그렇게 우리 트럭이 '둔터니' 입구에 도착하니,
구 병태 부부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지 그 집 굴뚝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손님이 그 집의 임시 주인이 될 나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 .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