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강해(7)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본문 : 살전 2:3-5
- 겁쟁이는 ‘안전할까?’를 묻고....
- 여론은 ‘인기 있을까?’를 묻지만.....
- 용기는 ‘옳은가?’를 묻는다(로드 로저스)고 합니다.
무엇을 묻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묻고 살아야 할까 ?
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의 모범이 되는 분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의 삶의 초점을 맞추며 살았습니다.
4절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그 결과로 따라오는 온갖 고난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십자가로 생각했습니다.
<복음의 사명>.....
오늘 본문 4절에서 바울은 먼저 왜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지를 밝힙니다.
첫째,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옳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 자신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이후 그는 율법이 아닌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써만 하나님 앞에
옳게 여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율법적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빌3:4-9>
4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6절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래서 십자가 외에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것은,
옳게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그를
믿는 믿음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바울은 먼저 왜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지를 밝힙니다.
첫째,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복음을 위탁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통해 복음을 세계에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행9장에 나옵니다.
사울(바울)에게 안수하기를 꺼려하는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목적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행9:13-15>
13절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임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갈1:11-12>
1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절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 후 그는 자신이 특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 위탁받았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갈2:7-8>
7절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절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을 하나님의 메시지를
맡은 ‘청지기’로 보았습니다.
‘청지기’는 자기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자기 주인에게 속한 것을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하는
부탁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맡겨진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복음 전파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부르시고 세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세>,,,,
그렇기에 바울이 전한 복음은 순수했습니다.
진실하였습니다.
3절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치 외판원이 물건을 파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간사함’이라고 번역된 말은 ‘미끼로 유혹한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려고
마치 영리한 외판원이 ...
자기의 물건을 사게 하려고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처럼 함정을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참된 전도와 교묘한 기술에 의한 전도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구원이란 영리한 논쟁이나 적절한 설명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의 결과입니다.
<고전2:1-5>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또한 복음 전파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5절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그는 자신을 하나의 종교적인 외판원이라고
고발할 이유를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사도로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하는 사역에 조그마한 누라도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대접받는 일에 있어서뿐 아닙니다. 먹는 일에
있어서도 바울은 자기 자신보다 남을 우선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울 시대의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이나 권력을
강화하려는 잘못된 동기를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빌1:14절 이하에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1:14-18>
14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절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8절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오늘도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좀 속된 말로 하면 우리 한국 교회에서
“꿩 잡는 게 매다”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복음만 옳으면 그 전하는 방법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사이 희한한 방법이 얼마나
동원되고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는 교회 부흥을 시킨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도하지는 아니하고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 끌어오는 공작(?)을
하는 것을 보는데,.......
물론 이 말은 다른 데서 이사 온 분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막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방법이 정당해야 합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아닙니다.
목적이 좋으면 가는 길도 좋아야지요.
떳떳치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사랑하는 성도님들 !
바울은 속이려는 마음이나 탐심의 탈을 쓰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유일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탁받았다는 확실한
소명이 있었습니다.
그 소명에 응답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5번이나 맞았고, 거의 죽었다가도 살아났고,
갖은 비난과 모함과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했던 것이며, 뿐만 아니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선언하면서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자신이 제물로
드려진다고 해도 기뻐한다(빌2:17)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그것은 복음증거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겉으로 드러난 태도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까지 파악하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동기에서부터 순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 하나님의 기쁨은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은 누구를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이 !
바울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
복음을 전하는...., 충성된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