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싣고 싶은 시조 · 4
사설시조
-조운, 서벌, 김진혁
김우연
(시조시인·문학평론가)
1. 사설시조
사설시조의 정형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학교 교육에선 “사설시조는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8음보 이상 길어지거나 각 장이 6음보 이상 길어진 산문적인 시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김제현 등과 같은 주장을 따르고 있다. 이광녕은 “형태면에서 단형을 평시조, 중형을 엇시조, 장형시조를 사설시조라고 하는데, 엇시조와 사설시조와의 엄격한 구분에는 아직 논란의 여기가 많다. 엇시조는 창법 상 ‘사설지름시조’를 말하며 엇시조의 정의에 대하여는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라고 하고 있다.
고전시가에 깊은 연구를 한 성호경 교수는 ‘사설시조’라 불리는 시조들의 유형을 7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리고는 “사설시조라는 것은 여러 시가 장르들의 양식이 복합된 현상을 이르는 말이기에, 이를 문학적 장르개념으로서의 인식,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음악적인 면을 떠나서는 실체성을 거의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사설시조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시조시인들은 평시조에서 확장된 것을 사설시조라 생각하고 창작하고 있으며, 축소하여 종장 하나만으로 쓴 시조들을 ‘단장시조’또는‘홑장시조’등으로 불리고 있어 이들은 시조가 아니라고 배제하는 것은 좁은 소견이라 할 것이다.
2. 조운, 서벌, 김진혁의 사설시조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劫이나 轉化해아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江도 바다도 말고 玉流 水簾 眞珠潭과 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連珠八潭 함께 흘러
九龍淵 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조운, 「九龍瀑布」 전문
조운(曺雲, 1900-?) 전남 영광군 영광면 도동리 출생으로 본명은 주현(柱鉉)이다. 1949(50세)년 가족들과 월북하였다. 조운 기념사업회에서 『조운 시조집』(2000)을 발간하였다. 처음에는 자유시를 쓰던 조운이 ‘식민지적 무의식’에서 벗어나 ‘시조’로서 당당히 우리의 역사와 현실의 삶을 노래하였다. 조운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자유시가 마치 뛰어난 것이고 우리의 시조는 역사적 사명이 끝난 고루한 것이라고 보는 식민지적 시각을 거부하였다. 그의 성찰은 ‘시조부흥운동’이라는 카프와의 대결에서 민족적인 것을 지켜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경지의 시조들을 개척하였다. 평시조 「석류」를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들은 물론, 사설시조 「구룡폭포」는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
못 이룬 꿈들, 알 수 없는 애틋한 꿈들, 땅속 꿈들이 얼기설기 뿌리 얽어 터널 내고는 직진하는 열차들을 대량 생산하여 바깥으로 내보낸 것이었구나.
저들 열차들은 하늘 가는 열차들, 가지들을 바퀴로 달고, 그리움의 바퀴로 달고 새파랗게 달리는 죽림선(竹林線) 열차들. 중간역 없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들. 달리고 달리는 동안 사계(四季)는 잎으로 모여들어 다도해(多島海) 이루고는 끌리고 있구나. 햇살들은 물론이고, 달빛 별빛들도 내리는 쪽쪽 몸들을 씻고, 바람은 오는 대로 수영선수 되는구나. 검은 배낭 지고 가던 구름이 빗줄기 좌악 쏟으며 묻는다. 이룰 꿈이 무어냐고 달리는 열차들에게 묻는다. 열차들은 그저 달리고, 열차들에게 끌리는 다도해 새파란 목소리로 귀띔해 준다. 깜깜한 땅속에도 하늘 수입해 들여 해 뜨게 하고, 달 뜨게 하고, 별밭 깔리게 하고, 바람 불게 하고, 비 내리게 하여 일곱 빛깔 무지개도 걸어보는 게 꿈이라고. 그 하늘 실어오려고 열차들 간다고.
그렇군, 달리는 열차 모두 그 때문에 하나같이 속 빈 찻간(車間)들이구나.
-서벌, 「대숲 환상곡」 전문
서벌(徐伐, 1939-2005년)은 본명은 서봉섭(徐鳳燮)이며 경남 고성군 영현면 출생이다. 푸른 대를 열차로 비유하고, 가지들을 바퀴로 비유한 사설시조이다. 조운의 사설시조 <구룡폭포>가 현대 사설시조의 서장을 활짝 열었다면, 그 이후 수많은 사설시조 중에서 서벌의 <대숲 환상곡>은 사설시조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우담발화로 핀 것이다. 싱싱한 꿈을 담은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대를 보면서 저 높은 순수의 하늘로 가는 열차로 비유한 때문이다. 서벌의 사설시조집 『휘파람새나무에 휘파람으로 부는 바람』(신원문화사, 1991)에 실린 작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방했는지는 몰라도 이 작품 이후에 나타난 장사익의 노래(서정춘 시) 「여행」에서도 대를 열차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여행」전문, 2003) 서벌의 사설시조 <대숲 환상곡>과 장사익의 노래 <여행>은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또 전혀 다르게 형상화하고 있다. <대숲 환상곡>을 곡을 붙이거나, 낭송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국 현대사설시조의 꽃이 바로 서벌의 <대숲 환상곡>이다.
뿌리는 매의 발톱 대지大地를 움켜쥐고
장마 태풍 몰아쳐도 꿋꿋하게 자리하니
마음의 근본을 다잡아 흔들림 없이 살라하고,
하늘 향해 곧게 크되 사시장철 푸르니
큰 뜻과 고귀한 인품 꺾일망정 굽히지 않고
임 향한 늘 푸른 마음 군자의 덕목이요,
마디마다 절節을 하되 그 속은 비었으니
제 분수 제가 알아 굽은 길로 가지 말고
무소유 정신 하나로 집착을 버리라네.
한 매듭 가지 하나
천千 가지에 만萬의 잎이
제각기 제 맘대로 부딪히고 흔들려도
한 뿌리로 곧게 서서 억조창생 다스리고
잠깐 스친 바람에도 파도소리 자아내니
새파에 지친 중생들의 영혼까지 씻는다네.
꽃이랑 열매랑은 욕심내지 않아도
자손만대 번창하되 부러울 게 하나 없네.
한때 피는 꽃이란
철 지나면 자취 없고
시공 속 삼라만상
세월 가면 사라지니
욕심은 부질없는 것
붙잡아 무엇 하리.
열 가닥 스무 가닥 닿는 대로 쪼개져서
대바구니 대 돗자리 죽침에 죽부인까지
기꺼이 목숨을 바쳐 홍익정신 실천하고,
마디 잘라 구멍 내어 지그시 숨 고르면
오묘한 율려律呂 되는 만파식적 내 몸이요,
인생 고해 거친 파도 풍랑도 피리 불어 잠재우니
천하가 태평하구나, 중생구제衆生救濟 내 뜻일세.
-김진혁, 「대나무경經을 읽다-죽녹원에서」 전문
김진혁(金珍赫, 1947-)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 출신이다. 1984년 《시조문학》으로 천료하였다. 또 《오늘의 가사문학》으로 가사시로 등단하여 왕성하게 활동하며, 가사시집 『돌 속에 핀 노래』(고요아침,2022)를 발간한 바 있다. 위 사설시조 「대나무경經을 읽다」는 평시조가 4수이고 가사로 확장된 사설시조가 3수 등 7수로 구성되어 있다.
김진혁의 제6시조집 『나무 날다』에는 「대나무 경(經)을 읽다」, 「소쇄원 사계(四季)를 거닐다」는 아주 특이한 작품이다. 조운의 「구룡폭포」가 아직까지도 사설시조로서 충격을 주는 것과 같이 시조와 가사시가 결합한 사설시조는 새로운 경지의 사설시조를 개척하여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시집 해설에서 김종 교수는 “김진혁 시인에게서 시조와 가사시 두 장르에서 굳이 경중을 헤아린다면 40년 넘게 몸 바친 시조보다는 6,7년 전부터 연을 맺은 가사시에 골몰하면서 날밤을 새우는 형국인 듯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언어적 구속에서 무한 자유를 획득한 김진혁 시인의 표현력은 마치 갈증의 단계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능소능대한 가사시의 한 지평을 펼쳐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여겨진다.”라고 하였다. 결국 김종 시인은 김진혁 시인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이 가사시에 몰입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만큼 김진혁 시인은 특이하고도 독특한 사설시조의 경지를 연 것이다. 안동지방의 「내방가사」가 창작 및 경창대회를 오랫동안 이어오다가 2023년 현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가사’는 사라진 장르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