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절)
한 때는 성령의 나타나심의 은사나 표적으로 인해 명성을 날리던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바짝 마른 나무가 되어 그 몰골을 드러내는 이유가 뭘까요?
바깥으로 나타나는 은사나 능력은 말씀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자신이 잘 나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처럼 예수만 믿고 쉽게
그와 같은 은사들을 받으므로 신앙생활을 기도만 해 하는 식으로 단순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큐티나 특별새벽기도나 다니엘 기도 또 제자훈련까지 다 교회의
생존의 몸부림일 뿐입니다. 구원의 원리에 대한 각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진행이 되다가 새로운 패턴이 유행하면 그만 흐지부지하게 되고 맙니다.
지금의 교회의 상황은 교회의 생존전략과 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에 대한 생존의 몸부림과 서로 합의가 된 신앙의 형태일 겁니다.
개혁주의 또는 복음주의라는 명분은 세우면서 원리는 실종이 되고 상황에 따르는
특성만 살려 감동적인 설교에 대한 순간의 감동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질그릇인 우리 몸이 진리의 성령을 모시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보배로 내주하시는 실존의
믿음을 가졌으므로 능력이 내게 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합니다(고후4:4,7)
은사나 능력이 내하기에 달렸다면 그 은사나 능력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는 자존적이신 분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게 됩니다(고후4:7)
고린도교회가 여러 가지 은사나 바깥으로 나타나는 표적은 있지만 그들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십자가의 도가 소용이 없습니다(고후13:5, 고전1:18)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선민의식만 가지고 하나님을 숭배적으로 믿으므로
다윗과 같이 계시로 여호와의 율법 곧 예수 그리스도의 동선을 좇아가는 묵상이
없이 바로 표적을 보여 달라(고전1:22)고 보채는 유치한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자칭 유대인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계2:9)
지금의 강해설교나 구속사적인 설교도 일종의 교회의 생존전략 중에 하나인데
십자가 까지는 잘 끌고 와서는 십자가 이후가 모호합니다. 성령이 임한 이후에
베드로가 회개의 방법을 제시한 그 과정을 따르지 않으므로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로
그 안에 내주하시므로 보좌로 향한 생명과 영광의 길이 열리지 않아 몸이 성전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성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성전 중에 모세의 장막과
솔로몬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성령이 그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이 이루어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 그리스도께로
가므로 구약의 수건을 벗고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봅니다. 주의 영으로
자유를 얻어 주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기 때문입니다.(고후3:17-18)
이런 사람을 사방에서 욱여싸도 똥개는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 하고 맙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열린 하늘 문을 향해 숨 쉬는 순간마다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는다는 의식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거꾸러뜨린다 해도
나는 물구나무서기를 해서도 창1:27-28절의 하나님의 계획대로 가는 길이라 외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익혔기에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므로 예수의 생명이
그 몸에 나타나는 체험을 실시간으로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몸은 죽었지만 영은 살았기에
예수를 위하여 그 죽음에 넘겨져 예수의 생명이 죽을 육체에도 나타납니다(고후4:10-11)
이런 사람은 사망 아래에 갇혀 있는 자들을 구출하는 사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그 심령이 진리의 성령 안에서 주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표적이 따릅니다(고후4:12)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육신의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기회가 됩니다. 그로 인해 잠깐 보이는 것을 주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보는 눈이 환하게 열립니다(고후4:16-18) 이와 같은
신진대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무리를 지어 서로 영광을 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위로와 응원이 필요 없습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 이사야나 다윗이나 엘리야와 예레미야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단독작전을 감행합니다. 이 험한 세상 길 속에서도 외롭지 않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입니다.
어제 내가 죽었어도 오늘 마귀가 다시
"옛사람" 을 부활시킵니다.
어제일은 다 소용없다는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매일 "오늘" 이라는 시간에
십자가의 도(세례와 성찬)를 묵상하고,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서로 말씀으로 피차 권면하며, 성령님께
새언약 안에서 살도록 간청해야함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망하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진리의 성령을 모심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보배로 내주하셔 나와 한몸이 되어있는 실존의 믿음으로 살게하심을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예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