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도의 유산> / 김선일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펴냄 / 304면 / 1만 5000원 |
전도, 참 불편한 단어다. 하는 사람에게도, 당하는(?) 사람에게도. 기독교의 공격적 전도에 대해 비기독인들이 가지고 있는 반감에 대해서는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독의 시대에도 나름 기독인이라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은 전도에 대한 (흔히들 말하는) 거룩한 부담감들을 여전히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담감만큼의 전도를 해내는 이들은 무척 드물다. 전도는 어렵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전도라고 말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데 정작 내가 복음에 대해 정리가 안 될 수도 있다. 사영리 같은 전도지를 일단 읽어 주는 것으로 무언가 시도를 해 볼 수도 있다. 교회 전도부의 사역들에 참여함으로 일종의 간접적 전도를 할 수도 있다. 새신자 초청 집회에 지인을 겨우 꼬드겨 교회 의자에 두 시간 정도 앉혀 놓을 수도 있다.
과연 이런 전도 행위들을 해낸 것으로 우리의 전도 사역은 충분한 것일까. 단순히 한국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현재 하고 있는 전도 사역의 진부함이나 식상함을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전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 없이 우리는 전도의 당위성과 행위성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온갖 전도 프로그램과 방법론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선일 교수는 <전도의 유산>을 통해 바로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탐사와 여정의 과정을 보여 주고자 한다.
위기의 한국 기독교는 전도에 대해서 여전히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김선일 교수는 지적한다. 전도의 돌파구에 대해서 찾는 답이라고는, 또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 전략, 도구 등을 갈구하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읊조리면서 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참 묻는 것을 번거로워한다. 아니, 두려워한다고 해야 더 정확하다. 교회가 전도에 대한 의문을 외면해 버리니, 비판적 성찰은 나올 여지가 전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회 공동체 내부에 대해서도, 외부(비기독인)에 대해서도 뚜렷한 전도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복음이 들리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전도의 갱신이 일어날 때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 복음을 우리 시대에 어떻게 듣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깊이 있게 탐구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복음이 신선하게 제시되었다. 복음 전도가 다시금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도입이 아니라 복음의 신선한 재발견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대안적 비전을 담은 신앙 공동체가 제시되어야 한다." (13쪽)
또한 저자의 말처럼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실천 행위(12쪽)"이다. 우리는 '전하는 것'과 '실천 행위'의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무척 애쓰고 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해, 즉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민감하지 못하다. 전도의 고전적 동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표현은 바로 '영혼 구원'이다. 교회는 "영혼 구원을 복음 전도의 핵심"(19쪽)으로 배워 왔다. 그렇지만 '영혼 구원'은 무척 오해의 소지가 많은 표현이다. 김선일 교수는 성경적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창조 세계의 갱신(20쪽)"이라고 밝힌다. 그렇기에 인간 개인의 구원은 바로 "이러한 새 창조에 새로운 신분으로 참여하는 것(20쪽)"이 되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를 따지고 묻는 이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 이를 다루고 있는 1장(전도, 영혼 구원 그 이상)은 모든 기독인이 꼼꼼히 읽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의 내세를 보장하는 사적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 전도는 총체적인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지적하며, 우리가 너무도 흔히 저지르는 전도에 대한 4가지 오해(영혼 구원과 예수 천당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좌우지간 전도하라? / 강권해서 교회로 데려오라? / 전도는 미련하게 하는 것이다?)를 다룬다. 특히 전도함에 있어 근거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본문들에 대한 짧고 명쾌한 주석을 통해 그 맥락을 되살려 이 본문들이 얼마나 오용되고 있는지를 밝혀 준다.
지금까지의 전도는 '결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축소된 복음을 전하는 축소된 전도 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쩌면 '결신'은 인간을 더 만족하게 하는, 눈에 보이는 척도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결신은 한 사람의 신앙에 중요한 '계기'일 순 있으나 그 순간만을 신앙의 분기점 또는 신앙의 출발점으로 여길 순 없다. 진정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들고, 신념과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은 결신보다 '회심'의 힘이 더 크다. 회심이야말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출발하는 것(47쪽)"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심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자라고, 죄 용서의 기쁨을 지속적으로 맛보게 해 주고, 자신의 인생 주권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교회 공동체와 성례전에 성실하게 참여하며,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세상을 섬기는 삶을 시작하게 한다. 회심은 위로부터의 능력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47쪽)
그러므로 "전도는 '회심'을 목표로(46쪽)" 삼아야 한다. 회심을 목표로 삼는 전도는 더 이상 결신에만 얽매일 순 없다. 이는 교회에서 전도특공대나, 전도부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전도사역자들은 그럼 도대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회심'을 추구하는 전도는 사역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한 사람이 회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목회자와 성도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전도는 교회 구성원 전체가 힘을 모으고, 수고하고, 공동체의 세심한 배려와 돌봄의 패러다임을 더욱 뜨겁게 껴안아야 한다. 그럴 때 "전도 사역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의 근본적 변화에 들어서도록 돕는 일(47쪽)"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전도를 다시 성찰하려는 방법으로 기독교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시대와 인물들의 전도 모습을 돌아볼 것을 제시한다. 기독교 역사에 대한 많은 저서와 서술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시대의 유산 속에서 전도라는 구슬만 따로 꿰어 보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전도에 대한 탐구는 거의 대부분 현대적인 내용에만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역사 속에서 행해졌던 전도의 면면들을 살피는 의도는 매우 신선하고 생산적인 접근이라 생각된다.
2장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전도의 유산을 탐구하는 여정은 예수와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초대교회와 중세 시대, 종교개혁 시대를 지나 근현대 시대와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까지 차근차근 각 시대에서 주목할 만한 전도의 모습들을 보여 준다. 각 장의 탐구마다 성찰이 풍부히 담겨 있지만,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세 시대에서 켈트 전도를 다루는 부분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변방으로 분류되는 켈트족이 복음화되는 과정과 특성들을 다루는 것은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에 부딪혀 있는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제법 크다. 이머징 교회가 대안적 교회로 주목받으면서(최근에는 '이머징'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뜸해지긴 했지만) 중세 켈트 영성이 어느 때보다 부쩍 관심을 받는 분위기이다. 시대의 긍정적 산물을 다시 현대 교회에 맞게끔 고민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켈트 전도를 다룬 4장은 좀 더 주목해서 봐도 좋을 장이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20%도 채 안 된다는 결과에 우리는 적당히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제 이런 문제엔 적당히 무관심할 줄도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나 그 적당함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이다. 누군가가 미워지면, 그 사람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 해도 그의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짐을 우리는 잘 안다. 이런 심각한 공적 위기 속에서 복음과 전도에 대한 전통적 개념과 방법을 방치해 두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몫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가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비참한 심경이다.
더는 복음 전파의 당위성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랑에 권태가 찾아오듯, 전도에 대한 순수한 열정도 언젠가는 식어 버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전도에 대한 바른 성찰과 고민 없이 계속 전진한다고 과연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남는 것은 진정한 '전도'가 아니라, 실적을 통해서만 증명되는 전도의 '사역'이다. 결국, 모든 것은 '카운트'로 환원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수록 교회와 선교 단체들은 쇠락의 카운트만 앞당기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도 전도의 벽에 부딪혀 고민에 고민을 쌓아 가고 있는 수많은 교회의 전도 사역자들과 선교 단체 간사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고민하며 토론하며, 모든 사역을 원점에 놓고 재구성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를 위해 <전도의 유산>은 아주 소중한 매개가 되어 줄 것이다.
송지훈 / 성서한국 사무국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