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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3구간 제2부
장항마을 노루목당산-중황마을
20251212
1.노루목 당산소나무와 지리산 천왕봉
-천상에 오르려는 꿈과 지상을 향한 사랑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獐項里) 장항마을 노루목 당산소나무 위쪽의 쉼터에서 지리산둘레길 탐방 스탬프를 찍었다. 수령 400년이 넘는 당산소나무는 위쪽에서 볼 때도 아름답지만, 아래쪽에서 볼 때 그 우아한 자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답다. 줄기는 천상에 오르려는 꿈으로 솟아오르며, 지상을 향한 사랑으로 푸르른 가지들을 늘어뜨리고서 언덕의 바람길을 지키고 있다. 당산소나무의 푸른 꿈과 사랑에 탐방객 마음도 뜨거운 평온함에 젖어든다.
지리산서북능선은 바래봉과 덕두산(德頭山)을 솟구치고 동쪽의 람천(濫川)으로 꼬리를 내리며 생명을 다한다. 이 능선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 자락이 부채살처럼 흘러내리며 골짜기들을 형성하고, 장항마을은 이 산자락에 자리한다. 이 골짜기들은 장항마을을 포근하게 감싸며 지켜주는데, 남쪽에 살강골과 바람골, 동쪽에 뒷골, 그리고 북쪽에 앳골이 있다. 당산소나무는 앳골 언덕을 지킨다. 앳골 자락은 마치 노루가 목을 길게 내민 형국이기 때문에 노루목(獐項)이라 불렸으며, 당산소나무는 노루목을 지켜주기에 노루목 당산소나무라 불린다.
장항마을 노루목 당산소나무가 있는 곳은 윗당산, 그 아래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중당산, 그 아래 소나무숲이 있는 곳이 하당산인 듯하다. 노루목 당산소나무를 내려서며 정면을 바라보면 남원시 산내면을 에워싼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동쪽으로 서룡산이 가늠되는데, 앞쪽에 우뚝 솟은 산봉을 서룡산이라 생각했는데, 서룡산은 바로 그 뒤쪽 머리만 보이며, 서룡산에서 투구봉을 거거치는 능선의 끝에 삼봉산이 보인다. 그리고 동쪽에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를 이루는 등구재, 지리산둘레길이 넘어가는 등구재가 확인된다.
장항마을 중당산인 듯한 나즈막한 고개에 느티나무가 그윽하게 솟아 있으며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람천의 장항교를 건너 산내면 장항리 지역에서, 동쪽의 산내면 대정리 지역으로 넘어갔다. 람천은 남원시 운봉읍과 인월면, 산내면 지역을 흘러 함양군 마천면 지역의 임천에 합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지리산둘레길 1구간부터 3구간 이곳까지 람천을 따라왔으며, 이제 람천과 작별한다.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금계마을에서 너를 재회할 때 네 이름은 임천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너를 따라오며 남원시 운봉읍, 인월면 지역 곳곳을 즐기고 역사와 문화를 배웠다. 안녕, 고맙구나!
지방도 제60호선 천왕로의 장항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지리산둘레길을 벗어나 바로 위쪽에 조성되어 있는 지리산관문 공원을 살피고 돌아왔다. 지리산관문 공원에서는 통인문, 지리산 희생자 위령비, 지리산 성모상과 마고할머니상 조형자연석 등 인상적인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었고, 특히 지리산 능선 전망대에서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등을 조망하며 가슴이 펄펄 끓었다. 지리산 주능선과 동부능선을 산행할 때 저 산봉들을 지나간 추억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지리산 주능선 북쪽의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지역에서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는 맛은 색다르며 가슴이 펄펄 끓어올랐다.
지방도 제60호선 천왕봉로의 지리산둘레길 화장실 앞에서 건너편 감식초공장 표지판이 서 있는 언덕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멍청하게도 천왕봉길을 따라 퇴수정과 솔고개를 넘어 매동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멍청함 때문에 매동마을과 더 가까이서 지리산 천왕봉 능선을 살필 수 있어 행복하다. 그때에는 실수한 것에 대하여 약이 올랐지만, 지금은 그때 실수하여 더 걸으며 더 탐방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둘레길 화장실 앞으로 되돌아와 지리산 두레팜(유) 감식초공장 언덕으로 올라갔다. 길을 벗어났다는 초조감은 달아나고 이제 제 길로 들어섰다는 안도감을 찾았지만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이 불안감은 서진암 입구까지 이어지는 언덕길에서의 풍경 조망으로 모두 사라지고 통쾌감만이 치솟았다. 지리산서북능선의 끝자락 바래봉과 덕두산이 서북쪽에서, 그 남쪽에는 삼정산이, 그 서쪽에 반야봉과 성삼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 지리산둘레길에서 산줄기 확인의 즐거움이여, 그 풍경의 감동이여!
서룡산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다. 산내면 대정리 지역에 우뚝 솟은 산봉은 분명 서룡산이 아닐 것이며, 그 산봉 뒤쪽에 서룡산이 있을 것이라 가늠한다. 서진암 가는 숲길로 들어섰다. 600m 거리의 서진암 입구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룡산 골짜기 방향으로 이어간다. 이제부터 산내면 중황리 다래랑머루랑 산장까지는 숲길로 이어지며 열린 풍경은 없다. 행정 구역을 살피니 산내면 대정리, 백일리, 중황리 지역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백일리 지역은 서룡산 꼭대기에서 남쪽으로 좁은 통로를 내며 대정리와 중황리 사이의 산골짜기를 차지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서룡산 자락의 골짜기를 가로질러 대정리와 백일리 지역을 통과하여 해오름길 임도로 올라간다.
해오름길에서 다래랑머루랑 산장 앞 중황길을 따라 산내면 중황리 지역으로 넘어간다. 중황길은 동남쪽으로 풍경을 활짝 열어준다. 서룡산-투구봉 능선이 삼봉산으로 이어지고, 가야할 등구재와 그 남쪽 백운산, 그 자락 북쪽의 중황리와 그 남쪽의 백일리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 능선이 펼쳐진다. 오, 황홀함이여, 통쾌함이여! 무슨 말이 필요한가? 날씨가 흐려 풍경이 조금 흐릿하게 들어오는 것이 무슨 상관이랴. 저 부드럽고 따스한 어머니 품처럼 드넓은 지리산 천왕봉 능선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가슴에 품는 것으로도 감동한다. 황홀하다. 이 구간에서 내내 눈길을 끈 삼정산은 지리산 주능선과 지리산서북능선을 모두 거느린 듯,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만나는 노고단과 성삼재를 서쪽 끝에 보여 준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 품에 안기어 잠들고 싶습니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3.5km
전체 소요시간 : 6시간 15분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노루목 당산소나무 위쪽의 쉼터에 국가지점번호 표지목과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장항마을 노루목 당산소나무 밑에 보호수 표석과 돌탑이 있다. 장항마을 당산제의 산제당은 이곳을 이르는 듯.
뒷산에 산제당(山祭堂)이 있고, 그 약간 아래쪽에 중당산이 있으며, 마을 앞쪽에 하당산(할머니 당산)이 있다. 산제당의 형태는 소나무 4~5그루 정도이고, 중당산은 소나무와 누석단(累石壇)이 결합한 형태이다. 하당산은 예전에는 귀목나무와 누석단이 함께 있었으나 1970년대 마을길을 넓힐 때 누석단이 없어지고 현재는 귀목나무만 남아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노루목 당산소나무는 2008년 12월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수령 400년, 수고 18m, 나무둘레 2.8m였다고 한다.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윗당산의 노루목 당산소나무 설명안내판의 내용을 옮긴다.
장항마을은 백두대간 지리산의 한 능선인 덕두산(德頭山)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한 자락이 부채살처럼 흘러내려 남쪽에는 살강골과 바람골을, 가운데로는 뒷골을, 그리고 북쪽으로는 높고 듬직한 앳골을 만들어 마을을 아늑하고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이 당산이 있는 자락은 앳골로서 마치 노루가 목을 길게 내민 형국이기 때문에 옛 이름은 노루목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노루 장(獐), 목 항(項) 자를 써서 장항리라 부른다.
노루목에는 세 개의 당신이 있는데, 이곳에 당산을 모신 사연은 북쪽이 텅 비어 북풍이 고스란히 마을로 넘어 오기 때문에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당산을 세워 그 허(虛)함을 막고 문(門)을 달아 복(福)을 가두어 마을의 지리적인 허(虛)함을 극복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세 곳의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이곳 윗 당산에서만 매년 정월 초사흘 날에 제를 지낸다. 수고는 10여m이고, 수관폭이 15m에 달하며, 사방으로 가지가 고르게 자라 매우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소나무는 마을이 형성될 무렵인 1600년대부터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전해 온다. 소나무 주변에 쌓아 올린 석단(石壇)은 당산제를 마치고 제물을 묻어 당산신을 비롯해 산신령과 산짐승 그리고 온갖 미물들에게도 정성을 드리는 헌식(獻食)의 장(場)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지리산의 환경과 오랜 역사 그리고 옛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자라온 소나무를 마을 수호신처럼 여기고 있으며, 소나무의 보호와 더불어 유서 깊은 고유의 당산제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왼쪽 아래 람천의 장항교는 산내면 장항리와 대정리를 경계한다. 왼쪽에 솟은 산봉 그 뒤에 서룡산, 중앙 맨 뒤에 삼봉산이 보인다. 맨 오른쪽 뒤 움푹 파인 곳이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의 경계인 등구재이며 지리산둘레길은 등구재를 넘어간다.
느티나무와 소나무숲이 있는 곳이 중당산과 하당산인 듯. 고개 오른쪽 아래에 장항마을이 있고, 지리산둘레길은 왼쪽으로 내려간다.
그윽한 느티나무가 있는 고개 오른쪽 아래에 장항마을이 있으며, 지리산둘레길은 느티나무 고개 왼쪽으로 내려간다.
느티나무 고개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오른쪽 장항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느티나무 고개에서 장항마을을 내려 보았다. 덕두산 줄기를 등지고 람천을 앞에 대하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인 듯.
마을 뒤 덕두산 줄기의 자락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데, 산세가 노루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獐)’, ‘목 항(項)’을 써서 장항리라 하였고, 지금도 사람들은 노루목이라 부른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으로 벗들[柳坪]과 한밭[大田], 묘동(猫洞)까지도 장항리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 지역은 매동으로 분리되었고, 원천리를 병합하여 장항리라 하고 산내면에 편입시켰다. 1600년경 이곳으로 수양하러 왔던 장성이씨가 처음 마을에 정착하였고, 그 후 각 성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1951년 한국전쟁 때는 국군과 공비 간의 격전지로 30여 호가 소실되었으나 그 후 다시 신축하였다. 산내면 초입 우측에 위치한 마을로 람천 건너에 있으며, 마을 뒤로는 높은 덕두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인월에서 흘러오는 람천이 흐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중당산인 듯한 느티나무고개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왼쪽 길은 장항마을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 아래로 내려간다.
느티나무 고개에서 솔숲 하당산으로 내려와 장항길 왼쪽으로 이어간다. 장항마을로 이어지는 장항길 오른쪽 앞 안내판을 살핀다. 중앙 뒤에 삼봉산이 보인다.
장항마을 소나무숲 하당산 앞 장항길로 내려와 장항길 길가에 설치된 지리산 신선 둘레길 종합안내도를 살펴보았다.
지리산 신선들도 감탄한 걷고 싶은 길 : 백두대간 끝자락에서 거대한 산으로 훨훨 일어나 능선의 길이가 무려 40km가 넘고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 있으며, 무수히 많은 비경들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 같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인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삼정산에는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먹고, 자고, 놀면서 수려한 비경을 즐기며 바둑을 두면서 놀다 감탄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그 길을 복원하여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신선같이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거닐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지리산 신선 둘레길'을 조성하였다.
갈림길에서 장항길 동쪽으로 지리산둘레길이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지리산 신선둘레길이 시작된다. 왼쪽에 김부각 판매장이 있다.
장항길 북쪽 길가에 김부각(김에 찹쌀가루로 쑨 죽을 발라서 말린 다음 기름에 튀긴 음식)과 조청한과 판매장이 있다.
람천이 산내면 장항리와 대정리를 가르며 흐른다. 지리산둘레길은 람천의 장항교를 건너 오른쪽 뒤 고갯길로 이어간다. 중앙 뒤쪽에 서룡산이 살며시 보이고, 오른쪽 맨 뒤에 삼봉산이 솟아 있다.
람천의 장항교를 건너 산내면 대정리로 넘어가 맨 오른쪽 뒤 고갯길로 올라간다. 중앙의 산봉 뒤쪽에 서룡산이 보인다.
인월센터에서 출발하여 람천을 따라오다가 수성대 계곡으로 올라가며 헤어졌던 람천과 재회하였다.
람천은 일성지리산콘도 앞을 지나서, 노고단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만수천을 합수하여 실상사 앞을 거쳐 마천으로 흘러간다.
중앙에 솟은 산봉 뒤에 서룡산이 살짝 보이며, 람천 건너편 오른쪽에 남원 산내 우체국&우정교육센터 건물이 있다.
장항교를 건너 장항길 북쪽 람천 둑방에 민박집 '둘레길 매동황토방'이 있다.
장항길과 지방도 제60호선 천왕봉로가 만나는 장항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장항마을 표석이 있는 천왕봉로를 따라 진행한다. 여기서 지리산둘레길을 벗어나 왼쪽 지리산관문 공원을 다녀오기로 한다.
지리산관문 공원 주차장 입구에 청정 산내고을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받침돌에 '청정 산내고을' 예찬 시가 적혀 있다.
"난 산내/ 굽이굽이 물길따라 산내에 오면 저~ 멀리/ 지리산이 날 반기네/ 오른쪽엔 삼정산 왼쪽엔 삼봉산 내 뒤엔 덕두봉/ 그 한복판이 나는 산내여라." 글 : 박달 고봉일 지음. ※본 표지석은 산내면 장항리 고봉일께서 기증.
지리산관문 공원 주차장에 산내 지역의 특산물, 지리산의 사계 풍경, 역사와 문화 관광 등을 안내하는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으며, 중앙 뒤쪽에 삼정산이 솟아 있다.
●산내 청정고을 친환경 특산물 : 사과, 포도, 고사리, 목기, 고로쇠 ●지리산의 사계 : 봄 팔랑치 철쭉, 여름 뱀사골 석실, 가을 뱀사골 단풍, 겨울 상고대 눈꽃 ●역사와 문화, 자연이 숨쉬는 산내 고을 : 실상사, 백장암, 뱀사골계곡, 와운 천년송, 장항 당산나무, 상황 다랭이논
지리산관문 조성비가 왼쪽 앞에, 그 바로 뒤에 달팽이 분수대, 오른쪽에 지리산통인문 표석이 서 있으며, 중앙 맨 뒤에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내면 지리산 관문은 2019년 착공하여 2021년 완공된 산내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우리 고장에 있는 국보와 문화재, 역사와 경관 등을 소개하였으며 천왕봉으로 가는 통천문을 마주하고 통인문을 배치하여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지리산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조성하였습니다. 지리산을 상징하는 성모상과 노고할머니를 자연석으로 조형하였으며, 동물로는 반달가슴곰을 조각함으로써 산내인과 자연 및 동물의 공존을 표현하였습니다.
산내에 전래되어 온 설화를 기록한 유래석, 그리고 특산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간판으로 제작하였으며, 청정고을을 상징하여 달팽이 분수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지역의 슬픈 역사인 좌우이념 대결의 참혹한 결과로 인해 희생된 민초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위령비를 건립하였습니다. 우리 지리산 관문 추진위원들과 주민들은 우리들의 염원이 담긴 이 상징물들을 조성하는 데 도움 주신 분들의 고귀한 뜻을 잊지 않을 것이며,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이곳이 이 고을을 찾아오신 분들의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생- "인생도 바람이고 구름인 것을/ 즐겁게 살아요 멋진 세상!" 지리산관문 추진위원회 위원장 박준웅
"세상의 근원인, 사람에게 이르는 문으로 천왕봉에 있는 통천문과 댓구를 이루는 말로써, 산 아래 마을에 있는 문" 서기 2021년 5월 일
구산선문 최초가람 실상사 : 실상사는 우리나라에 선종불교가 처음 뿌리를 내린 사찰로, '구산선문 최초가람'이라 불린다. 신라시대에 증각대사 홍척(洪陟)스님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장스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하여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에 창건하였다. 실상사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1200여년의 역사답게 많은 수의 국보와 보물을 가진 문화재의 보고(寶庫)로 국보 1점, 보물 11점, 국가민속문화재 1점, 도지정유형문화재 7점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백장암 삼층석탑, 철조여래좌상, 동서삼층석탑 등이 있으며, 동서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잘 남아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원형을 추정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탑이다. 또한 실상사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 민중의 의지처였으며, 호국 사찰이었다. 약사전 철불은 백두대간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모셨다고 한다. 또한 보광전 동종에 새겨진 일본열도는 종을 칠 때마다 일본의 경거망동을 경고하는 의미가 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하고 실상사가 말하면 일본이 흥한다'는 말도 전해오고 있다. 오늘날 실상사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평화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1998년 귀농운동, 대안교육 운동을 시작으로 마을 공동체 운동을 해오고 있으며, 인드라망·생명평화·공동체의 가치와 삶을 배우는 교육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상사를 찾고 있다.
지리산 뱀사골 :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산록(遊山錄)에 의하면, 석실 부근에 백암사(배암사)라는 절이 있어, 백암사골(배암사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뱀이 죽은 골짜기'라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에는 '칠월 백중날 신선대에 올라가 기도하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는데, 실제로 해마다 신선대에 기도하러 올라간 스님들이 사라졌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어느 지혜로운 대사가 신선대에 올라 기도하려는 스님의 가사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다. 축시(새벽 1시~3시)가 지나자 신선대 아래 용소가 갑자기 뒤집힐 듯 요란한 물소리를 내더니 새까맣고 거대한 기둥이 쏜살같이 솟아올라 스님을 덮쳤다. 그것은 이무기였다. 독이 묻은 가사장삼을 입은 스님을 삼킨 이무기는 독이 퍼지자 몸부림치며 울부짖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용이 못된 이무기[뱀]가 죽은 골짜기라고 하여 '뱀사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무기의 제물로 바쳐저 반쪽 신선이 되었다는 의미로 '반선(半仙)'이라는 지명도 생겼다.
백장암 삼층석탑과 석등 : 백두대간의 서룡분맥인 수청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백장암은 실상사에 속한 암자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장암 삼층석탑과 백장암 석등의 제작연대로 보아 적어도 9세기말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름은 백장사로 큰 절이었다. 1679년(숙종5)에 백장사에 화재가 나자 백장사 스님들은 화재와 전란 등으로 폐허가 된 실상사 옛터를 재건하는 것이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실상사 중창에 힘썼고, 백장사 터에는 및 간의 건물을 지어 백장암이라 했다. <백장암삼층석탑>과 <백장암 석등> 등 5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은 백장암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동시대의 다른 석탑에 비해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탑의 각 층마다 추녀와 난간을 표현하여 목조건축의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탑신의 각 면에는 사천왕상과 신장상, 주악천인상, 천인좌상 등을 돋을새김하였다. ●백장암 석등(보물)은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백장암 경내에 있다. 특징으로는 앙련(연꽃이 위로 향한 모양의 무늬)의 윗부분에 난간을 표현한 점인데, 앙련대석에 난간을 둘러 장식한 것은 석등으로는 유일한 예이다. 상륜부 보주는 1989년에 도난당해 없어진 것을 2022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마한의 별궁 '달궁' : 달궁과 주변 고개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서산대사가 쓴 <황령암기>에는 "옛날 한나라 소제 즉위 3년(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난리를 피해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황 장군과 정 장군, 두 장군을 시켜 공사를 감독하게 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재를 이름하고, 72년간 보호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때 쌓은 도성이 '달궁'이다. ●정령치는 마한의 왕이 정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수비하게 했던 곳이며, 정령치 옆 고리봉 기슭 개령암 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12구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이 있다. ●황령치는 마한의 왕이 황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수비하게 했으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따르면, 신라 진지왕 원년(576년)에 운집대사가 중국에서 나와 황령 남쪽에 절을 세우고 '황령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팔랑치 : 마한의 왕이 달궁을 짓고, 사방으로 적이 넘어오기 쉬운 고갯길마다 수비군을 세웠다. 북쪽 고개에는 8명의 장군을 배치했다고 해서 팔랑치라 한다. 바래봉에서 팔랑치까지의 1.5km 구간은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며, 매년 봄이 되면 천상의 화원으로 변한다. ●성삼재 : 마한의 왕이 달궁 남쪽에 성이 다른 세 명의 장군을 배치해서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왼쪽에 지리산 반달가슴곰 조형물, 오른쪽에 지리산희생자 유령비 '파랑새 날다', 뒤쪽에 성모상과 노고할머니상 조형 자연석, 그 오른쪽에 지리산 주능선 전망대가 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앞의 설명비를 옮긴다.
반달가슴곰은 과거 전국에 서식하고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해수구제, 한국전쟁, 보신문화 등으로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위기에 처해있던 중 1990년대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5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2004년 반달가슴곰 6마리가 방사되었고, 17여년이 지난 지금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서 스스로 살 수 있는 개체수 이상으로 복원되어 지리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국전쟁전후 좌우대립 지리산 희생자 위령비 '파랑새 날다' 옆에는 국제로타리 3670지구 표석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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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전후 좌우대립 지리산 희생자 위령비의 시 '파랑새 날다' - 산내주민 일동. 글 : 도법, 파랑새 날다 글씨 : 홍순관. 이 위령비는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산내면 주민들의 뜻을 모아 국제로타리 3670지구 남원용성로타리클럽·남원지리산로타리클럽·남원운봉로타리클럽에서 건립했습니다.
어젯밤 꿈에 노고단할머니 오셨다./ 이승만 김일성 앉혀놓고,/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70여 년 전 그때, 마구 불 질렀지./ 때려잡자 좌익 우익하고,/ 그 불길 그 광풍/ 지리산 골골, 마을 집집 불살랐지/ 참으로 날벼락이었지/ 형님은 좌익으로 동생은 우익으로/ 서로 원수 되어 총 겨눴지./ 사람들 눈에 핏발이 섰지./ 갓난아이 패대기쳤지./ 누이는 피 토하며 쓰러졌지./ 할머니 피울음 삼켰지./ 어머니 정신줄 놓았지.// 그리고 70여 년/ 여전히 산천골골마다에/ 손자들 가슴가슴마다에/ 불신과 공포, 분노와 증오,/ 원한과 원망, 응어리져 있네./ 지금도 핏발선 눈으로/ 누구는 촛불, 누구는 태극기 들고/ 소리 지르고 있네.// 내가 누구인가./ 좌익 우익 그 누구도 아니네./ 한반도 우리 민족이요./ 부모 형제요, 손자손녀요,/ 친구요, 이웃이요, 지구촌 시민이네./ 보시게. 지리산이 저렇게 푸르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싱그럽기 그지 없네./ 물려주려는가! 저 악몽의 역사를,/ 그대 자손들에게.// 이제 끝내시게, 그대들이./ 우리 가슴을 찢어놓는/ 좌우 남북의 철조망을 걷어치우게./ 그리하여 평화의 강물 흐르게 하세./ 희망의 파랑새 날게 하세./ 나 노래 한 소절하려네./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임을,/ 그대기 나임을, 그대가 나이었음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이제 알았네. 그대가 나임을,/ 그대가 나임을, 그대가 나이었음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두 사람 물끄러미 먼 하늘 바라본다./ 말없이 고개 끄덕인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때 생각이 짧았었네./ 안목이 부족했었네,/ 부끄럽고 미안하네, 용서하시게./ 우리 함께 희망의 파랑새 날개 하세."// 그 순간 나는 야호하고 환호하며/ 꿈에서 깨어났다./ 천왕봉 너머로 희망의 북새가/ 장엄하게 날아오르는 새벽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왼쪽에 노고할머니상 조형 자연석, 오른쪽에 성모상 조형 자연석이 있고, 그 뒤에 지리산 주능선의 산봉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자연석 왼쪽에 지리산 성모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리산 성모상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산성모 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기록, 석가여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전설이 있다. 지리산이 민족의 영산으로 오랜 세월 동안 민간신앙의 대상이 된 것에서 기원하며 민중은 천왕봉 인근에 성모상을 세워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다. 이곳에서 당신의 소원을 말해 보세요!!
자연석에 지리산 노고할머니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리산 노고할머니는 고대 산신이 여성이어서 할미가 산신이라는 설이 있고, 손님 굿의 주인공 '노고하마(할멈)'가 손님을 잘 안내하고 모셨기 때문에 복을 받아 신격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도 전한다. 속담에 '새옹밥을 3년 먹으면 소원이 다 풀린다'는 말이 있는데, 새옹밥은 노고할머니를 위하여 정성을 드리는 밥으로 이는 노고할머니가 부 또는 복을 가져다주는 신의 표상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옛다~ 복 받아라!!
전망대에 지리산 주능선 조망 안내도와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 뒤에 천왕봉과 지리산주능선이 펼쳐진다.
바로 앞에 '둘레길매동황토방', 맨 오른쪽 뒤에 노루목 당산소나무, 그 왼쪽 아래에 김부각 판매장, 왼쪽 뒤에 삼정산이 솟아 있다.
전망대에서 지리산관문 공원을 바라보았다.
지리산관문 공원을 살피고 지방도 제60호선 천왕봉로의 장항마을 입구 삼거리로 되돌아왔다.
천왕봉로의 장항길 입구에 2019년에 세워진 장항마을 표석이 서 있다. 표석 뒤쪽 천왕봉로 길가에 지리산관문 공원, 왼쪽 '장항길' 길가에 매동황토방이 있다.
왼쪽 뒤 언덕의 노루목 당산소나무에서 느티나무 고개를 거쳐 장항길로 내려와 장항길을 따라 장항마을 입구 삼거리로 왔다. 김부각 판매장, 장항교, 둘레길 매동황토방이 보인다. 삼거리에서 위쪽에 자리한 지리산관문공원을 살피고 되돌아왔다.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지역을 통과한다. 인월 7.3km, 금계 13.2km 지점의 천왕봉로 북쪽 길가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건너편에 남원 산내우체국과 우정교육센터 건물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법정리인 대정리(大井里)에는 중기리(마을)·대정리(마을)·매동리(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으며, 대정마을에 산내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대정리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솔고개에 큰 샘이 있어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큰샘몰’이라 하였다. 솔고개는 고개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솔고개라고 하였다. 본래 운봉현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평리·대전리·묘동·매계리·중기리를 병합하여 대정리라 하고, 남원군 산내면에 편입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방도 제60호선 천왕봉로 오른쪽에 지리산둘레길 화장실이 있고,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감식초공장 언덕으로 올라간다.
지방도 제60호선 천왕봉로 오른쪽에 지리산둘레길 화장실이 있으며, 오른쪽 뒤에 삼정산이 솟아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감식초공장 표지판이 있는 언덕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무턱대고 천왕봉로를 따라 솔고개를 넘어 매동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 입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지리산 능선의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 말과 조선 초, 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마을이다.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梅洞)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마을은, 각 성씨의 오래된 가문과 가력을 말해주듯 네 개의 재각과 각 문중 소유의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 후기 공조참판을 지낸 매천(梅川) 박치기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지은 ‘퇴수정’(退修亭)과 그 후손이 지은 재실인 ‘관선재’(觀善齋)가 있는데, 우거진 소나무들을 뒤로 두르고 앞으로는 만수천이 흐르며 발밑에는 흰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박치기 생존 당시에는 백여명에 달하는 시인묵객들이 이 정자 밑 너럭바위, 세진대(洗塵臺)에 모여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매동마을 앞을 흐르는 만수천은 여러 골짜기의 물들이 모여들어 붙여진 이름인데, 노고단에서 시작되어 달궁계곡, 뱀사골과 여러 지리산 골짜기의 계곡들이 합류하여 굽이굽이 흐르다 산내면 실상사 부근에서 람천에 합류하여 엄천으로 흐른다. - 지리산둘레길
매동마을 입구에서 되돌아와 천왕봉로 동쪽의 감식초공장 앞 언덕길로 올라간다. 감식초는 감을 재료로 써서 만든 식초이다.
감식초공장 위쪽 언덕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중앙에 일성지리산콘도&리조트 건물이 솟아 있다. 그 왼쪽 뒤 삼정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오른쪽 뒤 지리산 주능선과 오른쪽 맨 뒤의 반야봉을 가늠한다.
오른쪽 맨 뒤 지리산서북능선의 덕두산, 그 앞쪽 능선의 배너미재를 넘고 또 중앙의 작은 고개를 넘어 왼쪽 노루목 당산소나무와 느티나무 고개(중당산)을 거쳐 장항길로 내려와서 장항길을 따라 천왕봉로 장항마을 입구 삼거리로 나왔다.
천왕봉로 장항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지리산관문 공원을 다녀온 뒤 남원 산내 우체국&우정교육센터를 지나 지리산둘레길 화장실 앞에서 지리산 두레팜(유) 감식초공장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왔다. 왼쪽 전신주 맨 뒤에 덕두산이 솟아 있다.
언덕의 송이민박 건물이 있는 삼거리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서룡산은 중앙에 솟은 산봉 뒤쪽에 있을 것이다.
왼쪽에 송이민박이 있고, 원불교 지리산국제훈련원은 왼쪽 길,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송이민박 삼거리에서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뒤의 덕두산과 그 왼쪽 두 번째 바래봉이 가늠된다.
송이민박 삼거리에서 언덕길을 따라 사자상과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 계속 올라간다.
인덕원농장 사과나무 위쪽에서 덕두산과 그 왼쪽 두 번째 바래봉을 확인한다. 왼쪽 뒤 장항리 장항마을이 보인다.
인덕원농장 언덕의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중앙에 솟은 산봉 뒤에 서룡산이 있다.
인덕원농장 위쪽 언덕에서 오른쪽 뒤 지리산서북능선의 맨 오른쪽 덕두산과 그 왼쪽 두 번째 바래봉을 다시 바라본다.
인덕원농장 위쪽에서 왼쪽 뒤 삼정산, 그 오른쪽 뒤 지리산주능선, 중앙 맨 뒤 반야봉, 아래 중앙의 일성지리산콘도 건물을 확인한다.
인월 8.2km, 금계 12.3km 지점의 갈림길 이정목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왼쪽은 원불교 지리산국제훈련원 가는 길이다.
산자락 임도는 굽이돌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감나무에 따지 않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며, 중앙 뒤에 삼정산이 보인다.
언덕의 감나무밭을 돌아가며 지리산서북능선의 맨 왼쪽 바래봉과 맨 오른쪽 덕두산을 다시 바라본다.
산자락 임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왼쪽 뒤에 지리산주능선이 펼쳐지고, 중앙에 삼정산, 맨 오른쪽에 반야봉이 솟아 있다.
중앙의 바래봉, 그 오른쪽 두 번째 덕두산이 멋지다. 앞쪽 능선 왼쪽 아래에 노루목 당산소나무와 장항마을이 보인다.
인덕원농장 위 언덕을 오른쪽으로 돌아 원불교 지리산국제훈련원 갈림길에서 오른쪽길을 따라 문중 묘지를 돌아왔다.
인월 8.6km, 금계 11.9km 지점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불조삼 안내판이 서 있다.
통신탑이 솟아 있고, 아래쪽 산내면 대정리 뒤쪽에 내령리와 장항리 지역이 펼쳐진다. 왼쪽 뒤에 삼정산, 중앙 뒤에 반야봉이 보인다.
직진하면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 지리산둘레길은 왼쪽 서진암 방향으로 북진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은 1700년대에 솔고개에서 김씨들이 들어오고, 뒤이어 밀양박씨들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을 앞 200m쯤 되는 곳에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괭이골로 부르다가 묘동(猫洞)으로 고쳐 불렀는데, 1870년대에 땅의 모양이 매화꽃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다시 매동(梅洞)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매동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3일에 마을 당산제(堂山祭)를 지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서진암 방향으로 올라가며 해발 1073m 서룡산 남쪽의 전위봉을 올려보았다.
서진암 가는 길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지리산서북능선의 바래봉과 덕두산이 보이고, 왼쪽 산자락에 장항마을이 자리한다.
오른쪽 아래 통신탑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따라오다가 북쪽으로 꺾어 올라오고 있다. 왼쪽 맨 뒤에 반야봉이 흐릿하다.
서진암 가는 길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왼쪽 뒤에 해발 1187m 삼봉산이 솟아 있다.
서진암으로 북진하는 숲길로 들어가며 해발 1073m 서룡산(西龍山) 남쪽의 전위봉을 올려보았다.
서진암 삼거리에서 왼쪽은 서진암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서진암(瑞眞庵)은 실상사(實相寺)의 부속 암자로서 승려들의 선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진암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했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22년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대영비구가 다시 세웠다. 1917년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했다. 1927년에는 서진암으로 명칭 변경을 신청해서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1933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1935년에 중수했다. 현재 서진암에는 독특한 손 모양을 한 불상과 1516년에 만든 석조나한상 외 4구의 나한상이 있다. 실상사의 부속 암자인 백장암과 마찬가지로 서진암도 승려들의 선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인월 9.4km, 금계 11.1k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에 서진암 입구라고 적혀 있고, 서진암은 왼쪽 600m 거리에 있다는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서부터 지리산둘레길은 동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진암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따라오다가 급경사 비탈 나무계단길로 내려왔다.
서진암 입구에서 200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국가지점번호 표지목에서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서룡산 자락의 골짜기를 가로질러 오른쪽의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쭉쭉 솟은 가는 줄기의 소나무숲을 통과한다.
소나무숲을 통과하여 서룡산 자락의 골짜기를 다시 가로질러 고개를 넘는다. 산내면 대정리에서 백일리로 넘어왔다.
산내면 백일리(白日里) 고개에 인월 10.1km, 금계 10.4km 지점을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사람 손이 떠난 논밭, 묵답'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난다. 이곳에 다랭이논밭이 있었으나 이농 이후 숲으로 변한 것 같다.
산업화의 물결 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이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의 본능을 볼 수 있다.
산내면 백일리 지역의 우회도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나 서룡산 자락의 골짜기를 가로지른다.
●우천시 지리산둘레길 우회노선 안내 : 본 구간은 우천시 계곡이 범람하고 미끄러워 위험합니다. 그림을 숙지하시고 우회하시기 바랍니다. 잠깐!! 혼자 걷는 것보다 함께 걷는 것이 안전합니다. ●문의 : 지리산둘레길 남원센터 063-635-0850 ●이용수칙 : 지리산둘레길 이용자는 기을 열어주신 마을주민께 감사드리며 안전여행, 책임여행을 합니다. 흡연금지, 농작물채취금지, 쓰레기 되가져가기
서룡산 자락의 골짜기를 가로질러 똑같은 우회도로 안내판이 서 있는 곳을 지나 해오름길로 올라간다.
인월 10.6km, 금계 9.9km 지점의 해오름길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해오름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해오름길에서 바라보면 정면 뒤에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지고, 맨 왼쪽에 백운산이 솟아 있다.
해오름길은 동쪽의 산내면 중황리와 서쪽의 산내면 백일리 지역의 경계를 이룬다. 왼쪽 뒤에 백운산, 중앙 뒤에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지며, 지리산둘레길은 해오름길에서 왼쪽 다래랑머루랑 산장 앞 중황길로 이어간다.
지리산둘레길은 2017년 우수민박업소로 선정된 다래랑머루랑 산장의 돌담 앞 중황길을 따라간다.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다래랑머루랑 산장의 돌담 앞 중황길을 따라간다. 맨 오른쪽 뒤에 등구재로 이어간다.
머루랑다래랑 산장 앞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왼쪽 앞의 삼정산, 중앙 맨 뒤의 성삼재와 종석대를 어림한된다.
남쪽을 조망하면 영신봉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 삼정산이 솟아 있고, 중앙 아래 백운산 자락에 산내면 백일리(白日里)가 자리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의 법정리인 백일리(白日里)는 예전에는 산내면의 소재지였으나 지금은 실상사 입구의 마을로 관광객의 탐방이 잦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통혼권, 경제권이 하나여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이 없는 동서 문화의 대표적인 융합 지역이었다. 마을 뒤로는 백운산(白雲山)[902.7m]이 있고,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어 아침이면 백운산과 천왕봉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맑고 밝게 비치는 마을이라 하여 ‘흰 백(白)’, ‘날 일(日)’자를 써서 백일이라 하였다. 일명 큰 통 안에 있다 하여 통내(通來)라고도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머루랑다래랑 산장을 지나며 북쪽을 올려보면 서룡산-투구봉 능선이 보인다. 이 능선은 삼봉산으로 이어진다.
중황길을 따라 해오름펜션 입구를 지나며 맨 뒤쪽의 삼봉산을 어림한다.
왼쪽 뒤에 남원과 함양의 경계인 등구재가 있고, 오른쪽에 백운산이 솟아 있으며, 산자락에 산내면 중황리가 자리한다.
중황리(中黃里)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 뒷산 백운산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5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이 있어 황강사의 황(黃)자와 복치혈의 치(雉)자를 따서 황치(黃雉)라 했다. 한편 황치(黃雉)의 치(雉)를 고개 치(峙)로 써서 황치(黃峙)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 주변의 세 개의 자연 마을(상황, 중황, 하황) 중 가운데 있어 중치, 중몰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중황(中黃)이라 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조중삼(趙重三)이 관직을 버리고 산골을 찾아 수양을 하러 가던 중 전라남도 구례에서 이주해 정착하였다. 1600년경 강화노씨(江華魯氏)들이 임진왜란을 피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나, 노씨들은 하황으로 이주하여 결국 조씨와 박씨가 마을에 대종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상황리(上黃里)와 하황리(下黃里) 일부가 병합되어 중황리(中黃里)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산내면 중황리 하황마을 아래 백운산 서남쪽에는 산내면 백일리(白日里)가 자리한다. 오른쪽에 삼정산이 솟아 있고, 중앙 뒤에 지리산 주능선이 영신봉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백일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으로 가는 입구이며, 천년 고찰 실상사(實相寺)의 관문이기도 하여 많은 인가가 들어와 살게 되었다. 또 장자터까지 주택이 들어서서 1900년대에는 100호가 넘는 큰 세를 형성하였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백일(白日), 동수(東水), 서수(西水), 저전(楮田), 하황(下黃) 일부를 병합하여 백일리라 하고 남원군 산내면에 편입하였다. 1914년 백일리에 산내면 사무소와 경찰주재소가 설립되었고 1937년 산업조합이 설치된 이후, 1971년까지 산내면 소재지였다. 1968년 산내지서와 1971년 산내면 사무소가 대정리로 이전함에 따라 마을의 세는 약화하였으나 실상사로 인해 여전히 상가가 활발히 형성되어 있으며, 기존 주민들과 귀농인들의 유입으로 여전히 대촌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장자터[楮田]·다시내[多信來]·동수(東水)·서수(西水)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원백일(元白日)·백일(白日)·저전(楮田) 등 3개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뒤로는 백운산이 솟아 마을은 가파른 경사지에 위치하여 있으며, 마을 앞으로 낙동강 상류인 람천이 흐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른쪽에 백운산이 솟아 있고, 그 북쪽 자락에 산내면 중황리가 자리하며 중앙 뒤에 남원과 함양을 이어주는 등구재가 보인다.
중황리는 산내면의 동부권역으로 산간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뒤에는 1,186.7m의 삼봉산이 솟아 있다. 삼봉산을 분기점으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룬다. 해발 400m의 고지대로 농업을 주업으로 한다. 1974년에는 새마을회관 및 공동 창고를 건립하였으며 12월에는 전기가 들어왔고, 1977년에는 한지 공장을 건립하여 하천에 흩어져 있는 원시적인 공장이 없어지고, 기계화된 한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인력 부족과 경쟁력이 뒤떨어져 활성화를 기하지 못하고 2~3농가만이 옛 생산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가 2007년 거의 사라졌다. 가가호호 감나무가 무성하고, 옛날부터 당산(堂山)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당산제를 올려 일 년 동안 마을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풍습이 현재에도 행하여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리산둘레길 중황마을 쉼터 앞을 지나 고개를 넘어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뒤쪽에 삼봉산이 솟아 있다.
지리산둘레길 중황마을 쉼터의 고개를 넘어 앞쪽의 펜션촌을 지나 돌아 내려왔다.
중황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앙에 삼정산이 솟아 있고, 왼쪽 뒤에 지리산 주능선, 오른쪽 뒤에 성삼재와 작은고리봉이 보인다.
중항길을 따라 골짜기로 내려간다. 오른쪽 아래에 백일리 마을, 오른쪽 뒤에 삼정산, 중앙 뒤에 지리산 주능선을 다시 확인한다.
서룡산-투구봉 능선 자락의 골짜기를 잇는 산내면 중황리 지역의 호음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