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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3구간 제2부
해낮이마을삼거리-평화염전-장명수-
종대마을-환동로-태안읍성-태안향교
20260219
1.아담히 드리워진 백화산, 날자 새 태안이여!
일년 중 두 번째 절기인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를 맞이하여, 동서트레일 3구간 탐방을 위해 보도여행팀을 따라 몽산포항으로 떠났다. 날은 비교적 온화하고 맑다. 행담도휴게소에서 20분 휴식을 취하고, 몽산포항 주차장에 도착하여 하차하니 10시 5분,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탐방을 출발한다. 동서트레일 3구간은 태안군 남면 몽산리와 진산리, 태안읍 남산리와 장산리, 남문리를 거쳐 동문리 지역에서 끝난다. 태안군 남면 2개 里와 태안읍 4개 里 등 모두 6개 리(里) 지역을 지난다. 태안군 남면 들녘과 해안 지역을 거쳐 태안읍 중심지로 들어가 백화산 남쪽 자락의 태안읍성 안에 자리한 태안읍행정복지센터 북쪽 태안읍 동문리 태안향교 예절관 뒤쪽에서 마치게 된다.
동서트레일 안내판에 3구간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3구간은 몽산포해수욕장에서 진산리해변을 거쳐 태안읍내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태안의 해변경관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마지막 구간입니다. 진산리의 조개잡이 갯벌체험장, 남산리의 염전, 태안읍의 경이정과 목애정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구간이며, 태안읍은 태안군의 중심으로서 이용자의 입출입 및 주요 거점지역입니다." 설명 중 출발지인 몽산포해수욕장은 몽산포항으로, 목애정은 목애당으로, 안내도의 진산리 평화염전은 남산리 평화염전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동서트레일 3구간 주요 경유지는 "몽산포항 4.4km 진산리 4.0km 남산리 평화염전 4.2km 남문리 1.0km 태안읍행정복지센터이며, 전체 13.6km 거리이다. 동서트레일 3구간 탐방 체험을, 태안군 남면 진산리 해낮이마을까지와 그 이후로 나누어 2부로 정리한다.
제2부(해낮이들길~태안향교 예절관) : 태안군 남면 진산리 해낮이마을 진산1길 삼거리에서 태안읍 남산리로 넘어간다. 도로명은 안면대로 지선으로 바뀐다. 남산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왼쪽에 드넓은 양수장과 염전, 오른쪽에 넓은 간척농지를 두고 그 사이로 들길은 수로를 따라간다. 첫 번째 수문을 지나면 드넓게 펼쳐진 평화염전이 활짝 열린다. 걸어온 진산리와 남산리 들길이 되돌아오라는 듯 눈길을 주고, 바다에는 진산리 해안의 제방이 섬으로 이어지며 여러 펜션들이 자리한다. 두 번째 수문이 있는 곳에서 수문의 다리로 올라가서 살피면 평화염전의 광대함에 놀란다. 들길에서는 평화염전 앞쪽만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소금창고 뒤쪽까지 염전이 드넓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평화염전의 광대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수문 다리에서 평화염전의 진면목을 감상하고 내려와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골의 천연제방을 지나 남산리 장명제방으로 올라간다. 張明이 쌓았다고 하는 장명제방은 왼쪽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드넓은 간석지(干潟地)가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양식장과 양식장에 염수를 제공하는 염수저수지가 자리한다. 그러한 이유로 장명제방은 남산리 안쪽으로 바닷물이 깊숙하게 파고들도록 조성되었다. 장명제방에서 보면 이 지역의 지형이 몹시 특이하다. 간석지(干潟地)가 드넓게 펼쳐지고 남쪽에는 남면 진산리 제방이 바다의 섬과 연륙되어 북쪽으로 길게 돌출하며 진산리 제방 안쪽에는 평화염전이 펼쳐진다. 바닷물은 진산리의 돌출한 지역을 돌아 평화염전으로 들어오는데, 이 바닷물을 동쪽의 장명제방과 북쪽의 근흥면 안기리 제방이 막는다. 이 모습을 통해 지난 시절의 바닷물 지형을 그려보면, 바닷물은 남쪽의 남면 진산리, 북쪽의 근흥면 두야리와 안기리, 동쪽의 태안읍 남산리 지역으로 들어와 간석지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이 지역 드넓은 들녘은 간석지를 간척한 농경지일 것이다.
이 바다를 장명수(張明水)라 이른다고 한다. 북쪽의 용요천이 근흥면 두야리와 안기리 사이로 흘러와 바다에 합수하는 곳에서 남면 진산리, 태안읍 남산리, 근흥면 안기리 해안이 감싸는 곳에 장명수 바다가 펼쳐진다. 장명수 바다는 특이한 해안 지도를 그린다. 장명수(張明水) 바다에는 매우 인색한 장명(張明)이란 부자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어느 날 욕심이 많은 장명이 두엄을 나르고 있는데,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자 쌀 대신 두엄을 주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그의 아내가 뒷문으로 나가 쌀을 시주하니 스님이 "조금 있으면 큰일이 날테니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나를 따르라는 말에 뒤를 따르다가 동네를 바라보니 순식간에 바닷물이 동네를 집어삼키고 어느새 아내가 서있는 곳까지 물이 들어와 아내도 물에 떠 내려가다가 바닷가의 바위로 변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망부석 각시바위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전한다.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출신의 지동환(池東煥, 1920~1986)시인은 이런 전설을 바탕으로 '長命水 散調'를 썼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전략) 이름만은 가히 좋다/ 그럴싸한 장명수/ 그 뿌리 알 수 없지만 장명이란 土富 있어/ 一穫萬頃 큰꿈 길러/ 南田北沓錢糧 馬匹 다 긁어모아/ 일대 모험 한판에 걸지라/ 장명 바다 밀물길/ 좁은 목 골라잡아/ 몇 백 보 안 되는 잘룩진 곳에 둑을 쌓으니/ 한 달에 보름밖에 밀물이 들지 않는/ 질펀한 갯벌 땅이 옥토로 폼을 바꿔/ 국화 이파리처럼 뻗어 들어간/ 넓고 넓은 간사지 갯벌 땅이 논이 되고 밭이 되어/ 小作農雇들은 구름처럼 모여들고/ 수백 수천 명줄이 새로 트이더라 (중략) 어느 날 山寺에서 한 도승 내려와/ 탁발 펴고 시주 공양 권하였건만/ 머슴 놉일꾼 부려 한창 봄 두엄 퍼내던 장명이/ 거치적거리는 중 때문에 일손 늦어질까 봐/ 느닷없이 감 썩은 두엄 한 쇠스랑 푹 찍어/ 도승 바랑 속에다 처넣어 주며 하는 말/ "이게 바루 쌀이 되고 조가 되구 보리두 되는 것이니 가져가게나" (중략) 이 광경 문틈으로 숨어 본/ 靑孀 과부 착한 며느리/ 얼른 입쌀 한 함지박 퍼 들고 샛문 나와/ 도승 뒤쫓아 앙달 걸음 재촉한다/ "여보셔요 대사님 한번만 살펴주오"/ 도승은 바랑에서 두엄 쏟고 쌀 넣으며 말하기를/ "내일 밤 아기들 데리고/ 子時 전에 아무도 모르게 뒷동산으로 올라가시오/ 내 말 지키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 하오" (중략) 착한 며느리 때가 되자/ 어린것들 안고 업고/ 옷가지 패물보따리 머리에 이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허위허위 뒷동산으로 올라가니/ 밤은 이슥허니 깊어 가고/ 소금발만 쓰린 바다 늘편 죽더라/ 갑자기 온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펑! 우르릉 꽝!/ 큰일났네 큰일났네/ 해일이 밀어닥쳐/ 장명이 원뚝 터졌다네/ 그 안엣 것 모두 잠기고/ 예전처럼 질펀한 갯벌로 돌아갔다네/ 장명이 혼만 삭아 푸석대는 갯벌이 되었다네. - 지동환의 '장명수 散調'에서
장명제방 북단(北端)에서 서해랑길 66코스와 헤어져 태안읍 남산3리 들녘으로 나간다. 서해랑길이 국토 둘레를 이어가기에 해안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동서트레일은 국토 중앙을 동서로 횡단하기에 내륙으로 이어간다. 태안의 외곽에서 지금부터는 태안의 내부 중심으로 들어간다. 솔개 한 마리가 하늘을 빙빙 돌면서 외부 침입자를 노리고 있다. 솔개는 길손을 마치 변방의 오랑캐인 양 경계하는 모습이다. 아니다, 솔개야! 길손을 반겨야지. 아, 언젯적이던가! 솔개가 마을의 닭을 후려쳐 잡아가던 모습을 본 적이. 솔개는 하늘에서 날개를 편 채로 정지해 있다가 순식간에 수직으로 낙하하여 먹잇감을 채간다. 솔개가 뜨면 닭들을 닭장으로 몰아넣던 지난 추억이 아련하다. 솔개의 추억에 젖어 남산3리 들녘 안쪽으로 들어가니 하늘에는 기러기들이 떼지어 날고, 들녘에서는 다른 기러기떼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태안군 장명수 바다 안쪽의 봄을 맞이하는 남산3리 들녘의 풍경이 한가롭다.
남산3리 경로당을 확인하며 용남로를 따라 올라간다. 용남로(용신리-남산리)는 근흥면 용신리에서 안기리와 두야리의 장명수를 거치고, 장명교를 건너 태안읍 남산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용남로를 따라 남문교차로 방향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산3리 북쪽 들녘으로 내려간다. 남산3리 들녘 맞붙은 두야리 지역에는 태양광발전소가 넓게 설치되어 있고, 대왕산과 구수산이 두야리 서북쪽을 막아준다. 남산3리 들녘은 동북쪽으로 펼쳐지며 장산리로 이어지고 두야리 들녘은 서북쪽으로 펼쳐진다. 이 일대의 들녘 또한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干潟地)였음에 틀림없다고 판단한다.
태안읍 남산3리 들길의 도로명은 그절미길, 특이하다. 그절미는 태안읍 장산리 동쪽에 있는 '끝절미' 산을 이른다. 산줄기 끝의 산이어서 ‘미(뫼山)가 붙어 끝절미>그절미가 되었으며, 남산리 들녘에서 장산리 그절미로 이어지는 길을 그절미길이라고 명명하였을 것이다. 그절미길을 따라 남산리 들녘을 걷는다. 중앙 뒤에는 태안의 진산 백화산이 하얗게 반짝이고, 들녘에는 백로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들녘의 북단과 남단 양쪽으로 소하천인 듯한 수로가 흐르고 중앙의 들녘에는 논들도 있지만 마늘밭이 전체를 지배하여 비닐이 덮여 있다.
그절미길이 끝나는 곳에서 태안읍 장산리로 넘어가며 도로명은 귀실길로 변한다. 귀실은 무엇일까? 귀실길은 장산2리 종자골의 귀실(貴實)마을에서 유래한다. 종자골의 종대마을과 귀실(貴實)마을은 모두 풍요로운 땅인데, 특히 귀실마을의 거렁뱅이논은 수렁 때문에 토양이 매우 걸어서 가뭄에 따른 흉년이 없기에 귀실(貴實)이란 지명이 유래한 것 같다. 종자골 입구의 종대마을 버스정류소 옆에 귀실 표석과 귀실정이 세워져 있는데, 귀실마을은 남쪽 숲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것 같다.
귀실정 옆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근흥면 두야리, 태안읍 남산리와 장산리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에 장명수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상상한다. 이 간석지를 간척한 농지에 벼와 마늘, 양파와 쪽파, 배추와 무를 재배하고 있다. 풍요로운 자연일까? 역경의 길이었나? 귀실길은 국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지하통로 앞에서 끝나고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도로명 환동1길이 이어진다.
태안게이트볼장 출입구를 지나 고개를 오른다. 이 고개가 태안읍 장산리와 남문리를 이어주며 경계한다. 아, 드디어 태안읍의 중심지로 들어가는구나. 지금까지 동서트레일 3구간 어느 지역을 걸어왔지? 태안군 남면 몽산리와 진산리, 태안읍 남산리와 장산리 지역이다. 이제 태안읍 행정복지센터와 태안읍성이 있는 태안읍의 중심지요, 태안군청이 자리한 태안군의 중심지인 남문리로 들어간다. 남문리를 통과하여, 남문리와 쌍벽을 이루며, 태안의 자존심 태안향교와 태안의 진산 백화산을 품은 동문리에서 탐방을 마치게 된다.
태안읍 중심을 통과하는 환동로, 동백로, 중앙로를 통과하며 이것저것을 날것으로 삼킨다. 보아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살펴도 주의깊지 않은 감각으로 덜렁거린다. 남면사거리의 무더위그늘막 기둥에 새겨진 붙은 문구 '날자, 새 태안이여! 더 잘사는 내일로!'가 길손을 스쳐지난다. 대형 경이정로 문주에 경탄하지만 순식간에 이를 통과하여 경이정1길을 따라 경이정, 그 뒤의 태안읍성을 살폈다. 태안읍성은 2023년에 일부 복원되었고, 앞으로 복원공사 더 진행될 것이며 이 일대에 역사문화거리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태안읍성 목애당과 근민당 옆에 자리한 태안읍 행정복지센터의 이전이 추진된다고 한다. 경이정에서 충분히 여유롭지 못했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는 끝이 닿은 데가 없다는 '풍월무변(風月無邊), 태안의 무변광대한 자연풍경을 허겁지겁 달려왔을 뿐이다. 태안읍성을 주의깊은 감각으로 살피지 못했다. 340년 연륜을 살아온 꼬부랑 할매 느티나무에 외경심을 충분히 전하지 못했다. 백화산의 반짝이는 화강암 흰빛이 길손의 무딘 감각을 쓸어내린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2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48분
진산리 해안의 제방에서 해낮이마을 들길(진산1길)을 따라 왼쪽 더쉐프 펜션 앞을 지나왔다. 오른쪽에 썬스톤풀빌라 펜션이 보인다.
태안군 남면 진산리 진산1길 해낮이마을 삼거리에서 태안읍 남산리로 넘어가 안면대로 지선을 따라간다.
태안읍 남산리 들녘이 펼쳐지 중앙 뒤에 국도 제77호선 안면대로가 지난다.
몽산포항 7.5km,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6.1km 지점, 태안읍 남산리 들녘에 마늘밭이 펼쳐져 있다.
안면대로 지선을 따라 남산2리 들녘을 지난다. 왼쪽 둑방 바깥에 염전이 펼쳐지고, 중앙 뒤에 백화산이 솟아 있다.
왼쪽에 남산리 평화염전 소금창고가 보이며, 수로 옆 안면대로 지선을 따라 수문 앞으로 이어간다.
몽산포항 7.9km, 태안읍행정복지센터 5.7km 지점, 태안읍 남산리 평화염전이 제방 뒤에 있다.
태안읍 남산리 평화염전 옆 들길을 따라간다. 중앙 뒤에 백화산, 오른쪽 뒤에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아이원' 건물이 보인다.
남산리 평화염전(平和鹽田)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태안읍 남산리에 있어서 남산염전이라 했다고도 한다.
맨 뒤 남면 진산리 망원산 북쪽 해안에서 진산리 해낮이마을 들길과 남산리 들길을 따라 평화염전 앞으로 왔다.
태안읍행정복지센터 5.4km 지점, 오른쪽 이정목이 있는 뒤 왼쪽으로 수로를 따라 올라간다. 왼쪽 뒤에 백화산이 솟아 있고, 중앙 뒤에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아이원' 건물이 있다.
왼쪽에 수로가 흐르고 위쪽에 수문이 있으며, 제방 왼쪽에 평화염전이 있다. 수로 옆 들길을 따라 수문으로 이어간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5.1km 지점, 수로가 흐르고 제방 뒤에 평화염전이 펼쳐진다. 맨 뒤쪽에 남면 진산리 해낮이마을이 가늠된다.
수로가 흐르고, 제방에 염전 농가들이 자리한다. 평화염전 들길을 따라 위쪽의 수문으로 이어간다.
수문교에서 태안읍 남산리 드넓은 평화염전을 살핀다. 맨 왼쪽 소금창고 앞쪽도 염전, 그 뒤쪽도 염전이다.
왼쪽에 염전 농가들이 자리하고, 중앙에 소금창고들이 줄지어 있고, 그 앞뒤로 평화염전이 드넓게 펼쳐진다.
수문교에서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을 살핀다.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소나무숲 아래 들길을 걸어 제방으로 올라간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干潟地) 옆 천연제방의 소나무숲 아랫길을 따라 위쪽 장명제방으로 올라간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4.7km 지점, 장명제방(張明堤防)으로 올라와 제방길을 따라간다. 맞은편은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와 안기리 해안이며, 이 일대 바다를 장명수(張明水) 바다라 이른다고 한다. "장명제방張明堤防 : 장명수에 있는 둑. 장명이 쌓은 제방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제방으로 인해 320여 정보의 간척지와 40여 개소의 염전이 생겼다고 함."(태안군지)
동서트레일은 장명제방을 왼쪽으로 빙 돌아간다. 안쪽 태안읍 남산리 지역에는 양식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양식장 옆에는 염수저수지가 있으며, 그 뒤 수산물 판매업체 남산수산이 있다. 중앙 뒤에 백화산이 보인다.
바닷물이 근흥면 안기리를 지나 오른쪽 태안읍 남산리까지 깊이 파고든다. 제방은 오른쪽으로 돌아 건너편으로 나간다.
건너편에 근흥면 안기리 제방이 이어지고, 맞은편 중앙에 용요천 하구가 보이며, 이 일대를 장명수 바다라 이른다.
연륙된 남면 진산리 섬이 북쪽으로 뻗어 있고, 장명수 바닷물은 근흥면 안기리 해안 사이로 파고들어 드넓은 갯벌을 형성한다.
평화염전 북쪽으로 장명수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맨 오른쪽 진산리 지역 밖에 바다가 펼쳐진다.
장명제방이 왼쪽으로 돌아 근흥면 안기리로 이어지며 동서트레일은 제방과 헤어져 위쪽으로 올라간다.
서해랑길 66코스는 왼쪽 제방길을 따라 근흥면 안기리로 올라가고, 동서트레일 3구간은 위쪽 태안읍 남산리 들녘으로 나간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4.7km 지점, 서해랑길 66코스는 건너편 제방을 따라 근흥면 안기리로 올라간다.
갈림길에서 하늘을 보니 솔개 한 마리가 하늘을 빙빙 돈다. 참으로 오랜만에 솔개를 본다.
태안읍 남산리 들녘으로 나가다가 돌아서서 갈림길을 살펴보았다. 오른쪽 제방길을 따라가면 장명수 바다로 나간다.
왼쪽 용남로를 따라 남산3리 들녘을 지나간다. 뒤쪽에 백화산이 보이고, 오른쪽 속햇말길 들녘에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태안읍 남산3리 들녘 위 하늘에 기러기떼들이 날고 있다.
태안읍 3.8km 지점, 남산3리 마을 출입구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간선도로 용남로를 따라 올라간다.
남산3리 마을 출입구에서 이정목과 함께 태안읍 남산3리 마을을 살펴 보았다. 왼쪽 전신주 뒤에 남산3리 경로당이 보인다.
용남로를 따라 태안읍 남산3리 남산리 버스정류소를 지나 고개로 올라간다.
남산3리 마을 출입구에서 용남로를 따라 남산버스정류소를 지나서 도로표지판 위쪽으로 올라왔다.
용남로는 근흥면 용신리, 안기리, 두야리를 거쳐 태안읍 남산리를 잇는 도로명이다. 위쪽 전신주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3.5km 지점, 용남로 고갯길에서 왼쪽 남산3리 서쪽 들녘으로 내려간다.
용남로 지선을 따라 내려가며 남산3리와 두야1리 지역의 간척지 들녘을 내려본다. 두야1리 들녘에 태양광발전소가 드넓다.
태안읍 남산3리 들녘에서 기러기떼들이 먹이를 찾아 먹고 있다.
왼쪽 용남로 지선을 따라 내려가면,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3.3km 지점을 알리는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용남로와 헤어지고 그절미길을 따라간다. 왼쪽 제방 너머 근흥면 두야리에 태양광벌전소가 드넓게 설치되어 있다.
소하천 옆 그절미길을 따라 올라간다. 왼쪽 제방 너머 근흥면 두야리 지역에 태양광발전소가 드넓고, 정면 뒤에 백화산이 솟아 있다. 그절미길은 태안읍 남산리 장명교에서 태안읍 장산리 탑골까지 이어지는 도로명으로, 그절미는 장산 동쪽에 있는 '끝절미' 산을 이르며, 산줄기 끝의 산이어서 ‘미(뫼山)가 붙었다고 한다. 오른쪽 마늘밭에 마늘들이 자라고, 정면 뒤에 백화산이 솟아 있다.
그절미길은 왼쪽 소하천 둑길을 따라 이어지고, 동서트레일은 수문의 수로 옆 그절미길 지선을 따라간다. 백화산이 중앙에 우뚝하다.
백화산白華山은 처음에는 산의 모양이 흰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화산은 서산시 팔봉면 금광산金光山의 줄기가 태안의 도내리와 어은리로 뻗어내려 오소산烏巢山(一名 五率山)을 이룩하고,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동쪽의 상옥리와 인평리 사이로 뻗어내려 서우산犀牛山(一名 勿金山)을 이루고 또 한 갈래는 남쪽의 상옥리로 뻗어내려 옥녀봉玉女峰이 되고, 여기서 곧게 서쪽으로 뻗어내려 흥주산興注山을 이룩하였는데, 이 흥주산이 태안읍사무소 뒤에서 백화산을 이루어 놓았다. 백화산은 태안의 진산인데,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한 때는 산림이 무성하여 특히 거목이 밀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도벌盜伐과 남벌 등으로 인하여 오늘의 암석만이 남아 있는 글자 그대로의 백화산白華山이 되었다. - 태안군지
비닐에 덮인 마늘밭이 펼쳐져 있고, 뒤에는 백화산이 빛난다. 그절미길을 따라 뒷골 출입구 다리를 지나면 귀실길로 이어진다.
백화산白華山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 읍면으로 뻗어갔는데, 그 중 한 줄기는 한티재大峙를 이루고 평천리에서 멈춘 채 밖으로 읍邑을 감싸고 있으며, 또 한 갈래는 낙조봉落照峰을 이루고,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동쪽으로 뻗어가서 중봉재中峰峙를 이루고 여우내如意川에서 멈춘 채 안으로 읍을 감싸고 있다. 또 한 줄기는 서남쪽으로 뻗어내려 마레기재馬力峙를 이룩하고, 여기서 또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남쪽에서 남문리 아맹이재衙望峙를 형성하면서 곧바로 남면을 거쳐 안면도로 뻗어내렸다. 그리고 다른 한 갈래는 반곡리로 뻗어내려 태안읍을 감싸고 있으며, 또 앞의 마레기재에서 갈라진 한 줄기는 삭선리에서 금골산金骨山이 되었는데,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져 하나는 서쪽의 근흥면으로, 다른 한 줄기는 북쪽의 이원면으로 뻗어갔다. - 태안군지
태안읍 남산리 그절미길에서 태안읍 장산리로 넘어와 귀실길 지선을 따라 장산2리 들녘을 지난다. 백화산이 의젓하다.
백화산白華山에는,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어서 동쪽으로 서산군 북주산北主山, 남쪽으로는 도비산봉수都飛山烽燧에 응하였다. 산이 흰 돌로 되어 있고, 꼭대기에 돌로 쌓은 백화산성이 있는데 둘레는 2,042자, 높이는 10자가 된다. - 태안군지
귀실길 지선을 따라 장산2리 종대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귀실정으로 올라간다. 귀실길 본선은 장산2리 탑골에서 종대마을과 귀실마을을 거쳐 장산2리 태안해안국립공원 사무소로 이어지는 도로명이다.
장산리長山里는 본래 태안군 근서면近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에 근서면의 장산리와 삼한리森汗里 그리고 군내면의 정과리正果里·귀실리貴實里·서문리西門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장산리라 해서 서산군 태안면에 편입시켰다. 그 뒤 1973년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장산리는 다시 태안읍의 관할 지역에 편입되어 내려오다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써 장산리는 다시 태안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태안군지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1.8km 지점, 태안읍 장산2리 종대마을 입구에 귀실정이 위치한다.
2023년에 준공된 귀실정 앞에 준공기념비가 서 있다. "이 마을은 山이 秀麗하고 水源이 豊饒로운 마을로 예로부터 種子골이라 傳하여 왔다."(귀실 표석과 준공기념비) "귀실(貴實) 마을은 수렁논들이 많아서 가뭄에 따른 흉년이 없기 때문에 종자고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렁논은 귀실에 있는 거렁배미논으로서 수렁이 있어서 논이 매우 걸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배미’는 논의 한 구역을 뜻하며, ‘걸은배미>거런배미>거렁배미’로 변화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태안군지)
종대 버스정류장 옆에 세워져 있는 귀실(貴實) 표석 내용은 귀실정 준공기념비 내용과 동일하다. 왼쪽 뒤에 종대마을, 오른쪽 골짜기에 귀실마을이 있다. 이 두 마을이 위치한 곳을 종자골이라 이르는 듯.
귀실정 옆에서 걸어온 귀실길 지선과 태안읍 장산2리 들녘을 내려보았다. 중앙 건너편은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지역이다.
태안읍 장산2리 종대 버스정류소와 귀실정, 그 뒤 숲 너머의 종자골 귀실마을이 가늠된다.
동서트레일은 귀실길을 따라 국도 제32호선 서해로 지하통로를 통과한다.
서해로가 귀실길을 따라 국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환동1길로 이어간다.
지하통로 앞에서 종자골을 돌아보았다. 귀실정과 그 뒤 종자골 숲의 귀실마을이 가늠되며, 오른쪽 뒤에 장산2리 들녘이 펼쳐져 있다.
서해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환동1길을 따라 '간장게장/대하장/돌게장 업체납품 전문업체' 앞을 지나간다.
귀실길에서 국도 제32호선 서해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환동1길로 넘어와 서해로 지하통로를 뒤돌아보았다.
환동1길을 따라 태안게이트볼장 출입구를 지나 고개로 올라간다.
태안게이트볼장 출입구 위에서 태안읍 장산2리 지역을 돌아보았다. 들녘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干潟地)였다가 간척된 듯.
환동1길을 따라 태안읍 장산리에서 고개를 넘어 남문리로 넘어가면 소공원 뒤쪽에 태안남문 미소지움아파트가 솟아 있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1.3km 지점, 환동1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앙 전신주 오른쪽에 래미안아파트가 보인다.
남문리南門里는 남문거리, 남문. 본래 부내면·군내면 그리고 태안면의 관할 지역으로서 태안읍성의 남문 근처에 형성되었으므로 남문거리 또는 남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문리·옥하리 그리고 동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문리라 부르고 서산군 태안면에 편입시켰다. 그 후 1973년 7월 1일부로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남문리는 다시 태안읍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었는데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써 남문리는 다시 태안군의 태안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태안군지
환동1길을 따라가며 정면 중앙의 래미안아파트, 그 오른쪽 정석볼링센터와 염광교회 등 남문리 지역을 살핀다. 아래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환동은 무슨 뜻이며 어느 지역일까? 정석볼링센터 오른쪽에 환동(環洞)마을이 있다고 한다. "환동마을은 고리골마을을 지칭함. 학교집과 탑골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의 지형이 고리처럼 둥글게 생긴 데서 유래된 이름."(태안군지)
환동1길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보령훼밀리 9차 아파트 앞에 한 그루 나무가 치솟아 있다. 무슨 나무일까? 낙우송이었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1.1km 지점, 수령 120년이 넘은 낙우송과 보호수 표석, 그 앞에 동서트레일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 있다.
환동1길에서 환동로로 나와서 환동로를 따라 태안읍 남문리 남면사거리로 이어간다. 정면에 백화산이 솟아 있다.
태안군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태안 시니어클럽이 환동로 건너편에 그 왼쪽 뒤에 태안 남문코아루아파트가 보인다.
중앙 뒤 남문교차로에서 남면사거리로 내려오는 환동로를 돌아보았다. 위쪽 남문교차로 오른쪽에 환동마을, 남문교차로 왼쪽에 태안군청이 자리한다. 중앙 오른쪽 뒤에 염광교회, 왼쪽 앞에 렉시움아파트가 보인다.
뒤쪽의 백화산을 바라보며 환동로 보도를 따라간다. 바로 왼쪽에 미소지움아파트 주차장, 건너편에 현대자동차 블루핸즈가 있다.
남면사거리 무더위그늘막 기둥에 '날자 새 태안이여 더 잘사는 내일로!' 구호문이 적혀 있다. 동백로 횡단보도를 건너 환동로를 따라간다.
남면사거리의 동백로 횡단보도를 건너 환동로 보도를 따라가다가 뒤돌아보았다. 건너편에 구터미널 버스정류소가 있다.
환동로 보도를 따라서 삼거리에서 환동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 동문리 방향으로 중앙로 보도를 따라간다.
환동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중앙로의 보도를 따라 동문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중앙로의 구터미널 택시정류장을 지나 내려간다. 태안버스터미널은 태안읍 남문리 외곽지대로 이전하였다.
중앙로 건너편에 경이정로(憬夷亭路) 대형 문주가 조성되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경이정1길을 따라 경이정으로 올라간다.
경이정1길 보도를 따라 올라가면 백화산 남쪽 아래 태안읍성 앞쪽에 경이정(憬夷亭)이 있다.
태안읍성 앞에 오랑캐를 경계하라는 뜻의 경이정(憬夷亭)이 있고, 경이정 앞에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경이정(憬夷亭)은 태안읍성 밖에 지어진 관아 건물이다. 안흥항에 들어온 중국의 사신이 휴식을 취하거나 방어사*가 군사 명령을 내리던 장소이다. '경이(憬夷)'라는 이름은 "오랑캐를 경계하라"라는 뜻으로 고려 말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던 태안지역의 상황을 반영하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왜구의 침략이 점차 줄어들고 경이정이 중국 사신의 휴식 장소로 이용되면서 "항해하는 사신의 평안을 빈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어 전해진다. 매년 정월 보름날에 주민들과 방어사가 함께 평안과 태평을 비는 제사를 지냈으나 1907년에 중단되고,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주민들이 공부할 수 있는 야학당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노인을 위한 쉼터로 이용하다가 1988년에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八(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여러 차례 고쳐 지은 흔적이 있지만 조선 시대 관아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방어사(防禦使) : 조선시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배치하여 군사를 통솔하고 고을의 수령 역할을 하던 종 2품에 해당하는 직책. - 안내판
경이정 내부에, 자연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풍월무변(風月無邊)' 편액과 다른 편액 두 개가 걸려 있다.
백화산 남쪽에 태안읍성이 자리한다. 왼쪽 앞에 설명안내판, 오른쪽 성벽 앞에 碑石群, 선정비들을 모아 줄지어 놓았다. 태안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축조됐으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훼손되었다. 태안군에서는 태안읍성 복원정비를 위해 2020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하였고, 2023년 동안문과 성곽 일부를 복원하였으며, 현재도 복원 중이라고 한다.
태안읍성(泰安邑城)은 돌로 쌓은 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는 한편, 군사 및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읍성을 많이 쌓았는데 태안읍성도 이들 중 하나이다. 1416년에 태종(太宗)이 사냥을 하기 위해 태안에 행치하였다가 왜구에 의해 황폐화된 지역의 모습을 보고 복구를 명하여 다음 해인 1417년에 태안읍성을 쌓았다. 처음 성을 쌓을 당시의 둘레는 약 728m의 규모였으나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44m로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 정도이다. 과거 기록에 따르면 남문과 동문에 옹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현재는 동문과 옹성 터만 남아 있으며, 읍성 안에는 목애당(牧愛堂)과 근민당(近民堂) 등의 관아 시설이 일부 남아 있다. 태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동쪽 성벽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시대 읍성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옹성(甕城) :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시설. - 안내판
경이정1길을 따라 유실된 태안읍성 안쪽으로 들어왔다. 왼쪽 뒤에 태안초등학교가 보이며, 앞에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그 옆에 목애당과 근민당, 맨 오른쪽에 동안문이 보인다.
백화산이 솟아 있고, 오른쪽 목애당과 근민당 뜰에 그윽한 느티나무가 자란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2005년 12월 30일 건립된 태안비(泰安碑)가 서 있다. "아담히 드리워진 백화산/ 내가 살고 누울 자리 태안/ 사랑하고 지킴은 나의 몫 - 위대한 태안인 생각."
근민당 앞 수령 340년 느티나무는 높이 15.0m, 둘레 4.1m이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왼쪽 목애당 뜰의 느티나무도 그윽하다.
근민당(近民堂) 편액이 붙은 홍살문을 통과하여 목애당 뜰로 들어간다.
오른쪽 뒤에 백화산이 솟아 있고, 목애당(牧愛堂) 왼쪽에 설명안내판이 있으며, 그 왼쪽에 태안읍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태안(泰安) 목애당(牧愛堂)은 조선 시대 태안군 관아의 동헌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목애당과 함께 오늘날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은 근민당(近民堂)과 경이정((憬夷亭)이 있다. 기존 동헌 건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화재로 사라졌으나 1901년에 안흥진성(安興鎭城)과 소근진성(所斤鐵城)의 기와와 목재를 가져다 새로 지었고 1904년에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라는 뜻으로 '목애당(牧愛堂)'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태안면사무소, 태안군청 민원실 등으로 사용하면서 건물이 덧붙여지고 내부가 변형되었으나 1997년에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2단의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운 앞면 6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조선 시대 관아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기단(基壇)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 - 설명안내판
왼쪽 뒤에 백화산이 솟아 있고, 오른쪽의 태안읍성 동문은 2023년에 복원되어 동안문(東鴈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안문 밖으로 나가 동안문과 옹성, 성벽을 살피고 되돌아온다.
태안읍성 동문을 나와 동안문 앞에서 태안읍성 동문인 동안문(東鴈門)을 살폈다.
태안읍성 밖에서 태안읍성 동쪽 성벽과 동안문을 살폈다. 출입구 성벽 앞의 설명안내판을 읽고 근민당 앞으로 되돌아간다.
태안읍성(泰安邑城) 동안문(東鴈門)은 태안읍성의 동쪽 성문이다. 1417년(태종 17) 처음 성을 쌓을 당시에는 입구의 폭이 약 4.8m이고 옹성*은 없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방어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입구의 폭을 약 3.6m로 좁히고 옹성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동안문 입구에는 개거식** 문루를 세우고 바깥에는 해자***와 해자를 건너는 적교****를 설치하였다. 안쪽에는 동헌을 비롯한 관아 시설이 자리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의 태안읍성 전투와 일제강점기 읍성훼철령, 근현대 시기의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읍성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2020년 태안읍성이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후부터 본격적인 발굴과 정비를 추진하여 2023년 동문 일대의 성벽과 문루를 복원하였다. 문루는 문헌과 발굴 조사를 토대로 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개거식 형태의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였다. 화남문(華南門)이라는 이름이 전하는 남문과 달리 동문은 이름이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아 2023년 군민 공모를 통해 승전 등의 희소식을 전하는 길조인 기러기와 동문의 의미를 조합하여 동안문(東鴈門)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태안군이 상서롭고 복된 고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옹성 :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에 둘러친 성벽 **개거식 : 성문 위에 석재가 없는 문루 형식 ***해자 :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성 바깥 둘레를 따라 판 구덩이 ****적교 :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
태안읍성 동안문을 살피고 근민당 옆 태안읍성 행정복지센터 앞으로 되돌아왔다. 태안읍성 복원사업과 태안읍 역사문화거리 조성사업으로 태안읍 행정복지센터의 이전이 추진된다고 한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옆 경이정1길을 따라 올라가면 백화로 건너편에 태안초등학교가 있다. "태안초등학교는 1911년 9월 1일 태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33년 4월 1일 태안공립심상소학교로, 1941년 4월 1일 태안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태안국민학교로, 1996년 3월 1일 태안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1960년 4월 1일 어은분교를, 1964년 3월 20일 화동분교와 송암분교를 국민학교로 승격·분리하였다."(다음백과)
백화산 자락에 은행나무가 솟은 중앙 뒤의 태안향교가 보인다. 백화로 보도를 따라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후문 방향으로 간다.
태안읍 행정복지센터 후문을 지나면 태안읍성 동벽 북단 앞에 옐로카펫 표지판과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백화로 건너편 성황단길, 태안향교 예절관 뒤 보도여행팀 안내버스 앞에 동서트레일 3·4구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3·4구간 안내판 앞에서 태안읍 행정복지센터와 목애당의 느티나무를 돌아보았다.
태안향교 예절관 뒤, 큰별미술학원 옆에 설치되어 있는 동서트레일 3·4구간 안내도를 살펴 보았다.
동서트레일 3구간은 몽산포항에서 진산리해변을 거쳐 태안읍내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태안의 해변경관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마지막 구간입니다. 진산리의 조개잡이 갯벌체험장, 남산리의 염전, 태안읍의 경이정과 목애당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구간이며, 태안읍은 태안군의 중심으로서 이용자의 입출입 및 주요 거점지역입니다. - 안내판
탐방을 마친 뒤 태안향교 출입구로 와서 태안향교 표석과 典校를 역임한 조재충 송덕비, 조의호 공적비, 정동혁 공적비를 살폈다.
태안향교(泰安鄕校)는 조선조 태종 7년(1407년)에 창건되어 그 뒤에 두 번씩이나 옮겨지어 1720년 태안읍 동문리 725번지 현재 위치에서 291년을 내려오면서 여러 번 보수하고 중수하여 오늘의 건물이 유지되고 있으며 시설 내용은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홍전문(紅箭門) 등으로 이루어졌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었으나 1975년에 이를 헐고 대성전에 39위 선성현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또한 태안향교는 1975년 2월 5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12월 23일자로 충청남도 문화재기념물 제139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建立 孔紀二五六二年(西紀二千拾一年) 五月 拾一日
태안향교 홍살문 왼쪽에 태안향교 설명안내판, 오른쪽에 하마비, 뒤쪽 외삼문 오른쪽에 태안향교 교궁중건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태안향교(泰安鄕校)는 태안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던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고려 때부터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조선 시대에는 전국의 모든 고을에 세워졌다. 향교를 통해 유교를 알리고 인재를 길러야 했으므로 나라에서 향교에 땅과 노비, 책 등을 주었고, 고을의 수령이 정성껏 관리하였다. 태안향교는 공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던 명륜당, 학생들이 거주하는 동재·서재로 이루어져 있다. 태안향교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초까지만 해도 '몇 칸의 초가집'이 전부였을 만큼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1413년(태종 13) 사양동에 사당을 새로 세웠다. 그후 향교 자리에서 뱀과 호랑이가 나타니 현 태안중학교 자리로 옮겼는데 화재로 불타 버리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향교의 대들보 상량문을 보면 1407년(태종 7)에 건물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에서는 유교 경전과 역사를 배우고 글쓰기도 익혔다. 천민만 아니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이 독차지했고, 태안향교의 학생 정원은 30명에서 점차 늘어 50명까지 되었다. 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라는 큰 제례를 올린다. 태안향교는 제례와 함께 유림의 날 행사를 진행하여 유교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 안내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