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강물에 씻기지 않는다/방종현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을 안고 살아간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실수도 하고 죄도 짓는다. 그러나 스스로 원한 적도 없는데 시대의 폭력에 휩쓸려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있다. 조선시대의 환향녀(還鄕女)가 바로 그러한 이들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나라만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여인의 삶까지 송두리째 앗아갔다. 특히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수많은 조선의 여인이 포로로 끌려갔다. 전해지는 기록에는 무려 5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날의 인구로 환산하면 수백만 명에 맞먹는 엄청난 숫자다. 평민도 있었고 양반가의 규수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몸값을 치르면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를 속환(贖還)이라 하였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을 환향녀라 불렀다.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고향은 더 이상 따뜻한 품이 아니었다. 전쟁의 희생자였음에도 사람들은 그들을 죄인처럼 바라보았다. 청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돌아온 여인도 있었고, 그 아이들은 '호로자식'이라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원래 호로(胡虜)는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남을 비하하는 욕설로 변질되었다. 환향녀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절을 잃은 여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오랫동안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유교적 가치관이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여인의 정절은 생명보다 무겁게 여겨졌다. 그들에게 씌워진 낙인은 전쟁보다 더 길고 깊은 상처였을 것이다. 시대는 피해자를 품지 못했고, 오히려 희생자에게 부끄러움을 떠안겼다.
마침내 조정은 사회적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한 가지 조치를 마련했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부녀자들에게 지금의 서대문 북쪽을 흐르는 홍제천에서 몸을 씻도록 한 것이다. 이를 회절(回折)의식이라 불렀다. 몸을 씻음으로써 마음도 함께 씻긴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일종의 사면이었다. 임금의 명으로 행해진 이 의식은 그들에게 다시 조선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을 부여하려는 시대의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종교에도 이와 닮은 의식이 있다. 천주교의 고백성사는 자신의 허물을 신부 앞에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예식이다. 신자는 알고 있는 죄를 모두 고백한 뒤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인간은 용서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신은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인간을 품어준다고 믿는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갠지스강을 성스럽게 여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갠지스강은 생명의 어머니이며 영혼을 씻는 강이다. 그 강물에 몸을 담그면 죄업이 씻겨 나가고, 죽은 뒤 유해를 강에 뿌리면 극락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멀고 험한 길이라도 평생 한 번쯤은 그 강을 찾아 정화의식을 치르는 것을 삶의 큰 축복으로 여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몸의 상처는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문득 되살아나 삶의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
환향녀들에게 홍제천은 과연 상처를 씻어주는 강이었을까. 강물은 몸을 씻을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까지 씻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용서는 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문득 나도 생각해 본다. 살아오며 가슴 깊이 묻어둔 아픈 기억 하나쯤 말없이 흘려보낼 수 있는 나만의 홍제천은 어디에 있을까. 강물은 오늘도 묵묵히 흐르지만, 씻기지 않는 기억은 여전히 사람의 가슴속을 맴돌고 있다.
방종현(BANGJONGHYEN)
2023 대구예술상수상
다구벌 수필문학회 회장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경북매일시민기자단장
대구시민언론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