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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장 주해와 적용]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장동수 /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누가복음 3장은 복음서의 두 번째 큰 단락의 시작인데, 첫 번째 큰 단락인 1~2장의 서문(1:1~4)과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 및 유소년기 이야기(1:5~2:52)에 이어서 나온다. 누가복음의 두 번째 큰 단락을 형성하는 3장과 4장 전반부(1~13절, 예수의 광야 시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에 대한 준비과정이 소개되면서, 첫 번째 단락(1~2장)과 흡사하게 요한과 예수가 병행으로 대비해 진술한다. 누가의 이러한 ‘요한-예수 병행 방식’을 보고서 우리는 양자를 서로 분리해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요한을 구약과 신약을 잇는 가교적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요한은 옛 시대의 끝과 동시에 새 시대의 시작을 소개하며(눅16:16,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예비하는 인물이다.
누가복음 3장부터가 원래 누가복음의 시작이었고 처음 두 장(1~2장)은 나중에 첨가된 것이라는 주장이 자주 제기됐으나, 1~2장과 3~24장의 연관성과 통일성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누가복음 3장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사역(1~20절)과 예수의 세례사건 및 족보(21~38절)로 이루어졌다.
이를 다시 세분한다면, 전반부인 요한의 사역부분은 세례 요한의 소명(1~6절), 선포(7~18절), 체포(19~20절)로, 후반부는 이미 언급한 대로 예수의 세례사건(성령이 주어지고 아들로 인정됨, 21~22절)과 족보(23-38절)로 구성된다.
본고는 방금 제시한 구분을 따라, 목회자들의 설교 준비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본문 주해와 함께 적용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I. 세례 요한의 시역 (3:1~20)
3장의 전반부(1~20절)는 세속사를 언급하는 가운데 세례 요한의 소명, 그가 선포한 메시지, 그의 체포로 구성됐다. 여기에 제시된 요한의 부르심, 메시지, 그의 운명은 그가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의 시작, 메시지 그리고 그 운명과 동일하거나 흡사한 점이 많다.
1. 요한의 소명(1~6절)
3장의 첫 문단 여섯 개 절은 복음서의 서론(1:1~4, 한 문장)과 흡사하게 긴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됐다. 본 문단은 팔레스타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시대 정치•종교 지도자들을 육중(여섯 직책을 언급하나 일곱 명의 인물을 거론한다)으로 표현하는 어구로 시작하여(1~2절 상반절),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여(2절 하반절), 그가 죄 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는데(3절), 이것은 이사야서 40장 3~5절의 성취임을 시사하는 구약인용으로 끝난다(4~6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요한의 시대 다음에 시작됐다기보다는 그의 사역과 동시에 시작됐다고 본다면(비교. 행1:22; 10:37; 13:24~25), 본 문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시점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누가는 세속사의 특정한 시점(티베리우스 황제 통치 15년째 해)을 그 기점으로 삼지만(1절), 그의 목적은 연대기적으로 정확한 연대를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세속사의 맥락에다 구속사의 결정적 사건을 연관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광야)에서 요한에게 임함으로 시작된다(2절, 비교 4절). 이렇게 연대기를 겹쳐 언급하는 것은 고대 역사가들의 습관이었으나 구약에서 선지자들의 소명을 언급한 구절들을 참고한다면(렘1:2, 사6:1, 겔1:1~3, 호1:1), 누가는 요한을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로 그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2절과 이사야서 40장 3절의 인용인 4절의 동일한 구 ‘엔 테 에레모(ἐν τῇ ἐρήμῳ, 빈들에서 혹은 광야에서)’를 보면 더 확실해진다. 이 두 구절의 ‘빈들(광야)에서’라는 어구는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은 이사야서 40장 3절에서 약속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이며 그 예언의 성취임을 시사한다. 구약(겔20:33~38; 호2:14~23)에서나 당대의 문헌(주로 쿰란 공동체의 문헌인 사해사본)에서 빈들(광야)은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갱신의 장소였던 것이다.
3절에 나타난 요한의 소명은 회개의 촉구이며, 다음 문단(7~18절)을 보면 그가 요구하는 회개는 국가적 혹은 율법적 의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윤리적•종교적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3절의 핵심어구 ‘밥티 스마 메타노이아스 에이스 아페신 하마르티 온(βάπτισμα μετανοίας 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에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원문에는 죄들의 사함을 위한)이라는 부분이 수식하는 어휘는 위치적으로는 회개가 더 가깝지만, 문법적으로는 (회개의) 세례가 될 수도 있다.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것은 회개의 세례(repentance baptism)가 아니지만, 요한의 세례는 죄 용서를 가져다 주는 회개의 표현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죄 용서를 위한 회개의 메시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중심주제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눅4:18; 5:17~32; 24:47, 행5:31; 8:22) 복음의 중심요소이며, 세레는 회개와 분리될 수 없고(행2:38; 13:24; 19:4; 22:16) 믿음과도 그러하다(행8:12~13; 16:31~33; 18:8; 19:4~5). 하지만 요한의 세례 기원이나 이것과 회개를 연관시킨 것에 대한 선례를 찾기가 매우 힘들어서, 세례의 물이 회개를 표현하는지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씻음을 표현하는지는 결정하기 힘든 점이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요한의 세례는 종말론적 구원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일시적인 세례이며, 그의 사역은 백성들로 하여금 ‘오시는 메시아’를 향하여 마음을 열어 반응하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도래를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4~6절은 이사야서 40장 3~5절을 70인역에서 인용하되, 5절 상반절은 생략하는 등 부분적인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누가는 다른 공관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6절에서 이사아서 40장 5절 하반절(“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을 인용함으로써 요한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다고 선포하는 이사야 예언의 성취임을 암시한다.
본 문단에서 누가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1~2절을 통해 보면, 누가가 예수의 오심과 요한의 출현을 세속사와 신적 역사의 틀 안에 두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세속사의 언급은 이미 2장 1~2절에서도 나왔고, 신적 역사에 대한 강조는 요한의 사역을 구약 인용으로 소개함으로써 그의 사역이 예언의 완성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강조하는 데서 발견된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도래와 인간의 반응이 동시에 강조되었다. 다른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보통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하지만, 누가는 유별나게 여기에 40장 5절 하반절을 첨가하여 인용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도래를 강조하고, 죄 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반응은 회개뿐만 아니라 5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도 포함된다(비교 1:48, 51~52; 2:24; 6:20~26).
셋째로, 6절에서 언급된 모든 이들을 위한 복음에 대한 강조다. 이 주제는 24-47절에서 더 분명해지고,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에서 그러하며, 이미 2장 30~32절에 암시됐는데, 본 문단에서 누가가 이사야서 40장 5절 하반절을 첨가해 인용하면서 아주 분명하게 강조한다.
2. 요한의 선포(7~18절)
본 문단은 앞 문단에서 간단하게 제시된 요한의 사역 혹은 그가 전한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요한의 설교를 통해 그의 명성은 퍼져 나가고 수많은 군중들이 그의 세례에 참여하려고 몰려온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에게 심하게 말하면서 그 진정성을 의심한 나머지, ‘독사의 자식들(7절)’이라고 부른다. 회개를 위한 그들의 준비에 대하여 요한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온 자들에게 세례주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회개를 보여 주는 마음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열매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알기 때문’이다(눅6:44). 요한은 임박한 종말론적 심판의 도끼와 불을 면할 수 있는 이러한 열매의 긴박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누가복음 3장 7~18절의 열두 절을 읽어 보면, 요한은 세례를 선포하고 있으나 누가의 관심은 세례가 아니라 설교자로서의 요한임을 알게 된다. 본 문단에서 세례 요한의 설교가 세 가지 예로 제시된다. 첫째(7~9절)는 성격상 종말론적이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다. 둘째(10~14절)는 7~9절에서 촉구한 회개에 수반하는 열매를 말하면서 다양한 윤리적 교훈을 제시한다. 셋째(15~17절)는 오시는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하여 요한이 공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 18절은 요한의 사역에 대한 요약이다.
처음 두 종류의 메시지에서 우리는 변화된 삶이 뒤따라오지 않는 한, 사람이 세례만으로 다가오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즉 결단과 변화가 긴박하게 요구된다.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 앞에서 회개의 열매가 요구되는데,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일에만 전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열매가 맺혀야 한다. 요한은 두 가지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군중들에게는, 필수적인 필요를 넘어서는 것들을 그것들이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즉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혁신적 관용을 요구한다. 요한은 선지자들이 외쳤던 인자함(미6:8, 호4:1)을 부르짖고 있다. 그리고 요한은 세리들과 군병들에게는 계명들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 번째 설교인 15~17절이 본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요한의 기독론적 설교의 예다. 그 중요성은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는 이가 더 능력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메시아와 비교하여 설명한 대목(16절)에서 두드러진다. 누가는 마태처럼 메시아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어구는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부분인데, 특히 ‘불’을 긍정적으로 보느냐(성령의 정결하게 하는 사역을 표현하는 축복) 혹은 부정적으로 보느냐(믿지 않는 자에게 떨어지는 불의 심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누가복음 3장 9절에 언급된 불은 신적인 심판을 의미하고, 16절 바로 다음 구절(17절)의 ‘꺼지지 않는 불’도 심판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불이 심판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어지는 17절에도 동일한 주제가 16절과 연결되어 요한의 종말론적 설교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메시아 시대는 그 성격상 두 가지 면으로 알려진다. 즉 메시아 시대가 회개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축복을,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불을 가져온다.
요한의 세 종류의 설교로 구성된 본 문단에 나타나는 누가의 메시지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세례의식이나 회개의 고백에만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보여 주는 삶이 따라야 한다. 둘째는 종말론적이며 기독론적 강조가 두드러지는데, 종말론적 메시아 시대는 그 성격상 두 가지 면으로 알려진다. 즉 메시아 시대가 회개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축복을,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불을 가져온다. 셋째는 본 문단에서 기독론적 요소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예수는 선지자 세례 요한보다 위대하며, 이스라엘의 소망과 갈망이 달려 있는 분이시다. 예수는 메시아이시며 기다리던 성령을 주시는 분이시다.
3. 요한의 체포(19~20절)
누가는 그의 초점을 예수에게로 옮기기 전 에 요한의 투옥에 관하여 간단히 언급한다. 1~2장에서나 3자 1~6절에서 요한은 예언을 성취한 인물로 묘사됐으나, 누가에게 요한은 지나가는 인물이다. 요셉푸스는 그의 『유대 상고사』 (18.5.2)에서 헤롯이 요한을 투옥시 킨 것은 정치적 이유라고 말했지만, 누가복 음은 다른 복음서 기록들과 함께 종교적 이 유를 제시한다. 헤롯 안디바에 대한 요한의 책망은 레위기의 구절들(18:16; 21:21)에 기 초했을 것이다. 누가는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이라는 어구를 첨가시킴으로써 헤롯 의 악함을 강조하여 요한의 선함과 대비시킨 다. 누가는 요한의 투옥을 통하여 예수의 운 명에 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비교. 눅 13:33).
II. 예수의 세례 사건과 족보(3:21~38)
누가복음 3장의 후반부는 이미 앞부분에서 언급된 요한과의 연결점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누가의 이야기는 예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1. 예수의 세례사건: 성령이 주어지고 아들로 인정됨(21~22절)
하나의 긴 복합문으로 이루어진 누가복음 3장 21~22절은 원문에서 세 개의 부정사(한글 번역으론, 각각 21절의 열리며 , 22절의 ‘강림하시더니’와 ‘나기를’이다)로 이루어진 연속되는 사건에 초점이 잡혀 있다. 이 짧은 두 구절에서 누가는 예수의 세례를 보고한다기보다는, 세례 후 기도하시는 동안 하늘이 열린 것을 보고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하늘로부터의 목소리로 확언되고, 그 분의 그리스도, 즉 기름부은 바 된 자로서의 역할이 성령이 그 위에 강림함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은 이사야서 61장 1~2절(누가복음 4장 18~19절에 인용함)의 사역에로의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인데, 이는 예수께 주어지는 사명부여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는 새 시대에는 성령이 그 중심역할을 한다는 것이 강조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초점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하늘의 음성 속에 나타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됨의 독특성이다. 이 어구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인 이사야서 42장 1절과 왕의 대관시인 시편 2편 7절과 언어적·신학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2. 예수의 족보(23~38절)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에는 하나님을 포함해 일흔여덟 명의 이름이 나온다. 누가의 족보는 뒤에서부터 보면 하나님의 아들 아담(38절)부터 시작하여 일곱 사람이 들어가는 일곱 세트로 나눠지고, 매 일곱째마다 중요한 인물이 위치한다. 즉 에녹(37절), 아브라함(34절), 다윗(31절), 요셉(30절), 예수(29절), 요셉(24절), 예수(23절)다.
우리가 누가의 족보를 대할 때 만나는 문제는 마태의 족보와 현격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를 복음서 시작에 두지만(마1:1~17), 누가는 예수의 세례(눅3:21~22)와 시험(눅4:1~13) 사이에 두고 있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예수에게서 끝나는데, 누가는 예수로부터 역순으로 올라가 아담과 하나님에게서 끝난다. 마태는 동사(낳고)를 사용하나, 누가는 속격(‘그 이상은’으로 번역됐으나 원문은 ‘의 [아들]’이라는 관사의 속격을 사용함)을 사용한다.
마태는 다윗의 조상들을 솔로몬에서 여고냐(마1:6~12)로 보지만, 누가는 나단에서 네리(눅3:27~31)로 본다.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세 번의 열네 대, 즉 42명을 거명하지만(마1:17), 누가는 57명을 거명한다. 마태는 스룹바벨에서 예수까지 열두 명을 거명하지만, 누가는 21명을 거명한다. 이렇듯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족보와의 상이점에 대한 해결책이 다양하게 제시됐으나, 만족스런 해답은 없다.
하지만 누가가 예수 족보를 통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많다. 그는 족보를 예수의 세례와 시험(눅4:1~13) 사이에 위치시킴으로써, 예수를 인간의 대표로서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사단의 시험을 받게 한다. 또한 다윗/아브라함까지 뿐만 아니라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예수를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소망의 성취로 부각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아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어구에서 아담을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로서의 아들로 표현함으로써, 예수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에 있는 아들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족보에 나타난 누가의 주요 메시지는 기독론적이다. 이 주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하는 데서 발견된다. 이것은 마태복음 3장 17절이나 마가복음 1장 11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초대교회 전승을 누가가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데, 본 문단에서는 예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복음의 우주성과 예수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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