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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6 통권6
쟌기스 숲 외곽에 해당하는 지역은 이미 몬스터 토벌이 마무리되어 있었고,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몬스터들은 소형 몬스터들인지라 토벌대의 규모에 놀라 접근하지 않는 듯했다. 토벌대장인 베르그 남작은 그렇게 사흘 동안 무리하지 않으면서 쟌기스 숲 중심으로 행군했고 하루만 더 가면 대형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숲의 중심 지역이 있었다.
“뭔가, 감지되는 것이 없나?”
라혼은 베르그 남작의 물음에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남작의 종자에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당신이 가진 크로스 보우를 좀 빌려주시겠소?”
“….”
베르그 남작에게 기사 수업을 받는, 소년이라기엔 나이가 많아 보이고 청년이라기엔 아직 어린 종자는 말없이 등에 메고 있던 석궁을 라혼에게 건네주었다. 라혼은 말 위에서 석궁, 크로스 보우(Cross bow)의 시위를 당기고 크로스 보우용 화살인 쿼럴(quarrel)을 걸었다. 라혼의 단순한 행동에 그 크로스 보우의 주인인 남작의 종자는 물론 베르그 남작과 그레이드와 오월즈 후작의 기사들도 깜짝 놀랐다. 크로스 보우를 장전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보통 사람은 시위를 당기지도 못하고 훈련된 병사는 크로스 보우를 땅에 세우고 있는 아랫배로 지지한 후 두 손을 이용해서 단숨에 시위를 잡아당겨야 했다. 물론 모든 크로스 보우가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연사를 중요시하는 크로스 보우도 있었지만 지금 라혼이 간단하게 시위를 잡아당겨 화살을 장전한 크로스 보우는 대형 몬스터를 잡기 위해 가져온, 엄청난 탄성을 가진 활이었다.
라혼은 주위 사람이 놀라건 말건 크로스 보우를 들고 한쪽 방향을 향해 쿼럴을 발사했다.
―텅!
―쿠엑!
그리고 저 멀리 50야드 밖에 숨어 있던 코볼트 한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죽어 나자빠졌다. 그리고 라혼의 궁사는 계속되었다. 라혼의 손에 든 크로스 보우에서 쿼럴이 튕겨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수풀에 숨어 있던 코볼트들이 단말마의 괴성을 지르며 나자빠지고, 난데없는 괴성에 긴장하던 토벌대의 용병들은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에 절로 감탄했다. 그렇게 34개의 쿼럴이 허공을 가르고 34마리의 코볼트가 쿼럴에 급소를 맞아 절명했다.
“잘 썼소. 잘 만들어진 무기요.”
“자네 대단하군.”
“별말씀을…. 제가 생각하기로, 숲의 중심부에 있는 대형 몬스터들은 굶주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볼트의 시체를 걸어두면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트롤이 기어나올 겁니다.”
“미스터 라혼의 말대로 시험해볼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렇군.”
역시 사람은 뭐든 한 가지가 있고 볼 일이었다. 라혼이 힘 좋은 장정이 온 힘을 다해 요령껏 당겨야 하는 크로스 보우의 시위를 말 위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당겨 연사하며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의 명중율의 활솜씨를 보이자 라혼의 감지 능력을 의심하기까지 하던 나이트 렌치가 ‘미스터(Mr.)’라는 존칭을 붙여가며 추켜세우니 말이다.
라혼이 이렇게 잘난 척 나선 이유는 토벌대 내에서 발언권을 확실히 갖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쟌기스 숲의 몬스터들은 바로 자신이 내뿜는 마기에 취해 몰려든 것이므로 일말의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라혼, 당신의 정체는 도대체 뭐죠?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서 마녀에게 잡혀 제물이 될 뻔하다니 저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요.”
해가 떨어진 쟌기스 숲에 야영 준비를 마치고 무더운 날씨지만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하고 식사를 할 때 카이렌이 라혼에게 다가와 대뜸 정체를 물어왔다. 라혼은 그녀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내 이름은 라혼. 그리고 나는 마녀에게 잡힌 적이 없소. 또한 제물이 될 뻔했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럼, 당신이 마녀를 해치운 것이었나요?”
“글쎄,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대들이 해치운 것 아니었소?”
“아니에요. 우리가 마녀의 소굴로 들어갔을 땐 마녀는 이미 죽어 있었어요.”
“그럼 내가 해치운 모양이군.”
“그렇게 말 돌리지 말고 말해봐요. 그레이드 경처럼 수련 여행을 하던 기사인가요?”
“아니, 나는 마녀가 소환한 마왕이오.”
라혼의 솔직한 대답은 카이렌이 원한 답이 아니었다.
“흥! 됐어요. 말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날 놀리다니….”
그렇게 팽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 카이렌의 모습에 오드넷이 말을 꺼냈다.
“이거 요새 내 눈이 호강하는걸. 언제나 냉철하고 차분한 카이렌 양의 다양한 표정을 볼 기회가 이렇게 많다니….”
“맞아요, 오드넷 대장.”
“라혼, 아는지 모르겠지만 용병들 사이엔 규칙이 있지.”
“과거를 묻지 마라!”
오드넷의 말에 함이 맞받았다.
“이 녀석이 대장 말씀하시는데….”
“왜 대장이 대장이오?”
“니가 대장이라고 부르니까!”
“내가 대장이라고 불러서 대장이면 내가 왕이라고 하면 왕이겠네요!”
“이게…. 저리 가!”
“왜 제가 가요. 대장이 가요!”
그렇게 언제나처럼 격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고단한 하루를 끝냈다.
***
다음날 아침. 드디어 쟌기스 몬스터 토벌대는 대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지역에 들어섰다. 라혼은 이미 쟌기스 숲 전체의 몬스터 수와 종류, 지금의 위치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니, 라혼은 원한다면 어제 만났던 작은 벌레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세상 무엇이든 어떤 물질이든 각각의 기운이 있다. 라혼은 그 모든 기운을 느끼고 감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범위는 서방 대륙인 시드그람 대륙과 인시드, 칸에 이르는 판게아 전역은 물론 둥근 공과 같은 땅덩어리를 넘어 신의 하늘 결계 밖 무생의 공간 저 너머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라혼은 인간으로서 뇌의 인식 능력상 판별하는 것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하지만 몬스터, 마물이라고 불리는 족속들은 마계와 가까운 존재들이어서 마왕으로서의 라혼에게 더욱 쉽게 감지되는 존재들이었다.
몬스터들은 라혼이 마왕으로서 존재를 드러내고 마력을 나눠주어 부하로 삼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마계의 문이 열리면 인간과 생명을 위해 싸우려는 존재들인 은둔자(Hermit), 불사의 하이랜더(Highlander) 그리고 각 종파의 템플러(Templar) 등… 비밀 결사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마계 마왕군 전위대의 역할은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고 그들의 희망을 꺾어 천계 천족들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라혼이 마계의 절반을 초토화시킨 이상 라혼이 마계의 편에 서서 천족과 싸우지 않는다면 마계를 멸망하거나 영원히 마계에 갇혀 나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라혼은 천계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마계와 천계는 본래 하나였다. 마계의 마왕들은 완벽한 세상을 위해 완벽한 우주에 대항하는 생명을 말살하고자 했다. 그러나 천계는 그것을 거부했다. 당연히 전쟁이 일어났고, 중재자이며 지켜보는 자인 드래곤들은 천족과 동맹을 맺고 마계를 중간계와 분리했다. 마계와 천계는 본래 하나다. 마계가 분리되자 천계도 같이 중간계와 분리되었고, 1만 년마다 천계와 마계는 전투를 벌였다. 마계가 이긴다면 모든 생명의 말살로 이어질 것이다. 천계가 이긴다면 인간이 위험했다. 마계의 마족들 다음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천계가 인간을 생명으로 보고 끝까지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생명들을 위해 인간을 적으로 규정할 것인가?
“모를 일이지….”
“음? 뭐라고?”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카이렌의 반응에 상념에서 깨어난 라혼은 손사래를 치고는 말의 옆구리를 찼다. 라혼을 태운 말은 그 뜻을 알고 앞으로 나아갔다. 라혼은 말을 몰아 베르그 남작에게 다가가 말했다.
“남작님, 제가 트롤들을 유인하겠습니다. 이곳에 진형을 만들어주십시오.”
“자네가 말인가?”
“예.”
“알았네. 자네 의견을 받아들이지.”
“그럼 크로스 보우를 다시 빌릴까 합니다.”
“크로스 보우? 칼!”
라혼의 부탁에 남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가르치는 종자 칼을 불렀다.
“예, 마스터!”
“미스터 라혼에게 크로스 보우를 드려라!”
베르그 남작의 종자 칼은 남작의 말에 두말하지 않고 라혼에게 등에 지고 있던 크로스 보우와 쿼럴이 담긴 통을 건넸다. 이미 그의 실력은 똑똑히 보았던 터여서, 아직 나이 어린 칼에게 그것은 경이였다.
“칼, 네게는 미안하지만 크로스 보우를 그에게 주었으면 하는데 괜찮겠느냐?”
“예, 괜찮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라혼 씨가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은데요 뭐. 그리고 크로스 보우야 또 구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렇다는군.”
“칼이라고 했나? 고맙군. 잘 쓰지.”
라혼은 존경심이 가득한 칼의 눈빛에 크로스 보우를 들어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남작에게 말했다.
“트롤 세 마리와 미노타우로스 다섯입니다.”
“…?”
라혼은 남작의 대답을 듣지 않고 빽빽한 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이라기보다는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입구로 말을 몰아갔다. 라혼의 감각에 근처에서 배회하는 트롤들과 미노타우로스가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라혼은 크로스 보우를 장전하고 의식을 확대해 제3의 눈으로 수풀 너머에 웅크린 트롤 한 마리를 겨누었다. 그리고 크로스 보우의 방아쇠를 가만히 당겼다.
―텅!
―핑!
―카아아아아~!
그러자 크로스 보우에서 특유의 묵직한 소음와 함께 발사된 쿼럴은 허공을 가르고 수풀을 꿰뚫으며 그 너머에 있는 트롤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그렇게 라혼은 숲 속 길을 누비며 연속적으로 열 개의 쿼럴을 더 날리고는 말머리를 돌려 토벌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까지 내달았다. 그런 라혼의 뒤를 화살에 맞아 화가 폭발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않고 흥분한 트롤과 미노타우로스들이 저돌적으로 추격했다.
―우워어어어어어~!
―카아아아아아아~!
―촤라라라락….
―쿵, 쾅, 쿵, 쾅, 쿵, 쾅, 쿵, 쾅….
“트롤이다.”
“진형을 흩뜨리지 마라! 침착해라!”
라혼이 몬스터 떼를 꼬리에 달고 나타나자 토벌대는 긴장하며 손에 쥔 무기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라혼은 몬스터들을 토벌대의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토벌대 전방 30야드 앞을 달렸고, 노련한 용병들과 베르그 남작은 라혼이 무엇을 바라는지 곧 깨달았다.
“궁수 앞으로, 준비, 발사!”
―핑, 피비비핑!
베르그 남작의 다급한 명령에 이미 각자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던 궁수들이 앞으로 나서서 라혼을 추격하느라 정신없는 몬스터들에게 화살 세례를 선사했다. 겨우 30걸음 밖의 표적이었다. 100명이나 되는 솜씨 좋은 궁수들이 쏜 화살은 거의 대부분 몬스터의 몸에 격중했다. 세 마리 미노타우로스는 고슴도치가 되어 움직이지 못했고, 재생 능력이 뛰어난 트롤들은 꿈틀대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섯 마리 미노타우로스는 피를 토하며 도주를 시도했다.
“기회다! 장창병 돌격 앞으로!”
―와~!
길이만도 3미터에 달하는 장창으로 팔랑크스 방진을 구축하고 있던 창병들이 베르그 남작의 명령에 함성과 함께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갔다.
―꺄라라라라라락
세 마리의 트롤과 다섯 마리의 미노타우로스가 창병들의 굵직한 창머리에 꿰뚫려 검붉은 몬스터 특유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미노타우로스의 경우에는 심장이 꿰뚫리는 것으로 끝이었지만 트롤은 달랐다. 온몸에 창이 박혀 있음에도 가래 끓는 숨소리와 함께 붉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역시 경이적인 재생력을 가진 트롤다웠다. 그런 트롤들의 머리를 커다란 양날 도끼 배틀 액스(Battle axe)를 든 용병이 목을 잘라냄으로써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와아~!
그렇게 첫 전투를 다친 사람도 없이 간단히 끝낸 토벌대는 트롤과 미노타우로스의 잘린 머리를 높이 들고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그보다 몇 마리 더 유인해올까요?”
베르그 남작은 라혼의 물음에 크게 기꺼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겠는가?”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날 하루에만 트롤 열두 마리, 미노타우로스 아홉 마리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만일 숲 속에서 멋모르고 행군하다 트롤을 만났다면 필히 죽거나 크게 다치는 사람이 나올 것이지만 단단히 방비를 한 상태에서 덤벼드는 트롤은 인간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트롤의 피와 체액은 힐링 포션(Healing potion)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재료가 되었으며 미노타우로스의 뿔과 힘줄 또한 쓰임새가 많았기에 해체 작업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한가하던 키파이 왕국 마법사 길드에서 파견된 마법사 위저드 오린은 몬스터 해체 작업을 일일이 확인하며 품질을 체크했다.
그렇게 그 장소에서 사흘을 머무는 동안 트롤 54마리와 미노타우로스 32마리를 잡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아직 지상 최강의 몬스터 오우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주위엔 몬스터가 없다는 말을 들은 베르그 남작은 라혼이 추천한 위치까지 토벌대의 주둔지를 옮겼다.
“이번엔 오우거 두 마리 같습니다.”
“오우거라….”
라혼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우거 두 마리를 감지하고 토벌대를 이끄는 베르그 남작에게 경고 했다. 그러나 이미 트롤을 54마리나 잡은 토벌대였다.
“알았네. 그레이드 경, 렌치 경, 그로얀 경.”
“저희들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주문을 준비하세요. 공격 마법은 그다지 효과가 없으니까 달려오는 오우거를 그리스 주문으로 쓰러뜨리고 곧바로 디스펠해서 기사님들이 상대해야 해요.”
“맞습니다. 단번에 오우거를 상대하려면 목이나 연한 눈 부분을 찔러야 하는데 괴력을 가진 놈을 상대하는 쓸데없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면 메이지 카이렌의 말대로 일단 오우거를 쓰러뜨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이렌의 제안에 이미 그녀와 손발을 맞춘 적이 있는 그레이드가 나서며 말했다. 그러나 남작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우둔한 오우거를 쓰러뜨리는 데 마법까지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어디로 달려들지 미리 알 수 있다면 병사들로 하여금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밧줄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일단 오우거를 잡는 것은 처음인데, 확실한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베르그 남작은 나이트 렌치의 의견에 동의하여 마법사들로 하여금 마법을 준비하라고 부탁을 했다. 이에 마법사들은 오우거가 지나갈 길목에 마법진을 그려 마법 트랩을 설치했다. 1서클 주문인 [그리스Grease]는 주문을 시전하는 캐스트로부터 10야드 내에서만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마법사들에게 지상 최강의 몬스터 오우거를 열 걸음까지 접근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모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한 마리는 제가 원하는 곳까지 유인할 수 있는데, 다른 한 마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한 마리가 제 도발에 걸려 쫓아올 때 괴성을 지르면 다른 하나가 반응할 것이라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그렇군.”
“어쩔 수 없죠. 나머지 한 마리는 제가 어떻게 해볼게요.”
“저도 카이렌 양을 돕겠습니다.”
메이지 카이렌이 위험을 무릅쓴다고 하자 신관 하나가 나서며 [그리스Grease] 주문의 [디스펠Dispell : 주문 해제] 주문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스Grease] 주문은 1서클 마법이었으므로 체계가 다른 신관의 백마법으로도 해제가 가능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 라혼은 말을 몰고 나아가 근처를 배회하는 오우거에게 쿼럴을 쏘아 보냈다.
―텅! 핑!
―퀴워어어어어어!
라혼의 크로스 보우에서 발사된 쿼럴은 정확히 오우거의 눈 속에 파고들었고, 오우거의 고통스런 괴성이 온 숲을 울리고 곧 생나무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오우거가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우지끈~!
라혼은 오우거가 내뿜는 흉험한 기운에 놀란 말을 진정시키며 몸을 뺐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준비한 마법 트랩으로 오우거를 유인했다. 라혼을 태운 말은 트랩 지대를 아무 이상 없이 통과했지만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오우거는 3미터에 달하는 거구를 이끌고 무작정 라혼을 쫓았다. 그리고 트랩 지대를 지나는 순간, 하얀빛이 폭발하며 마법 주문이 발동되었다.
―크워어~?
―쿠궁!
육중한 덩치가 쓰러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우거는 바닥을 나뒹굴었고, 오우거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던 토벌대의 용병들이 우우 나서며 튼튼한 그물을 경쟁적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물에 덮인 오우거를 향해 장창을 든 창병들이 덮쳤지만 역시 오우거의 질긴 가죽은 장창으로도 약한 생채기만 낼 뿐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물에 갇힌 오우거가 더욱 흉성을 드러내며 광분하게 만들 뿐이었다. 베르그 남작과 나이트 렌치가 소드 오러를 머금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 오우거의 목을 잘라내야 했다. 그러나 질긴 오우거의 피부로 감싼 목은 단번에 잘리지 않고 여러 번에 나누어 내리쳐서야 겨우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오우거 한 마리를 겨우 잡을 무렵 근처에서 배회하던 오우거 한 마리가 튀어나오며 괴성을 질러댔다.
―크워어어어어….
그리고 손에 든 곤봉을 바람 소리가 나도록 위압적으로 휘두르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붕~! 훙~!
―크르르르르르르….
하지만 작전대로 하려면 오우거의 화를 돋울 필요가 있었다.
“궁수대, 준비~! 발사!”
―투둥두두둥!
―크워어어어어….
―쿵, 쿵, 쿵, 쿵, 쿵,
역시 우둔하고 단순한 오우거였다. 질긴 피부를 때리는 쿼럴의 고통에 흉성을 질러대며 물불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격해오는 오우거가 10야드까지 접근하자 미리 주문을 캐스팅해두었던 카이렌은 그대로 주문을 시전했다.
“그리스Grease!”
―쿠워?
―와장창~!
그렇게 땅에 넘어져 거대한 덩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 오우거에게 튼튼한 그물을 든 용병들이 요령껏 내던졌고, 기사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신관이 나서서 주문을 해지했다.
“디스펠 매직Dispell Magic!”
그리고 다음에 나이트 그레이드가 푸르스름한 소드 오러를 머금은 바스타드 소드를 오우거의 목덜미에 정확히 박아 넣음으로써 오우거 사냥을 마무리했다. 그런 방식으로 서너 마리의 오우거와 40여 마리의 트롤을 처리한 토벌대는 이언스 계곡까지 진출했다. 그렇게 한 달을 사냥한 끝에 쟌기스 숲에서 몬스터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베르그 남작은 회군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번 몬스터 토벌에서 베르그 남작은 상당한 양의 오우거 가죽과 트롤의 체액 등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들이 쟌기스 숲에 모여드는 바람에 지불해야 했던 자금을 회수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베르그 영지의 몬스터 소동이 일단락되고 케사로 요새로 개선한 토벌대는 각자 약속된 보수와 약간의 보너스를 받고 그간의 피로를 펍(pub)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와하하하하….”
“그런데 말야, 그 친구가 목 잘린 트롤이 살짝 꿈틀대는 것에 기겁해서 땅을 데굴데굴 구르더라니까!”
“맞아! 그거 나도 봤어! 나는 그 친구가 미친 것이 아닌가 했다니까!”
라혼은 다소 과장되고 실제보다 더 우스꽝스럽게 이야기를 가공하는 그들의 입담에 입가를 일그러뜨려 나름대로의 미소를 짓고 술집 구석에 앉아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 이슬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 라혼에게 함이 대장이라고 부르는 오드넷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휴우~! 이것으로 베르그 남작 영지의 일도 끝이군. 그래 자네는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여행을 할 거요.”
“여행? 무슨 꼭 해야 할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글쎄요….”
“그럼 우리 패랑 같이 가세.”
“….”
오드넷이 손에 든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위저드 오린 경이 우리 패에게 이번에 획득한 몬스터 부산물을 키파이 왕국 마법사 길드 총본부가 있는 오리안까지 수송을 의뢰했어. 나이트 그레이드 경이 적극 추천했다더군.”
라혼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오드넷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았소. 나도 하겠소.”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네. 참, 그리고 이번에도 그레이드 경과 카이렌 양이 동행하게 되었네.”
라혼은 맥주를 한 잔 더 따라와서 다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왁자하게 떠들다가 주먹다짐이 벌어진 용병들의 활기찬(?)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는 공허한 마계의 공간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마계에서는 살기 넘치는 싸움이 아니면 죽음보다 고요한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을 내뿜으며 의지를 시험하는 속삭임과 라혼을 속여 이용하려는 시도만 끊임없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나중에는 공허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부유하는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장 참을 수 없는 시간은 바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던 지루한 그 시간일 것이다.
‘흐음. 하아~! 이것이 사람 사는 냄새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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