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21
다 선
나는 지난해에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해 온 작은 꿈 하나를 실현하였다. 그것은 전원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본시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란 후 청년시절 서울로 상경한 나는 늘 마음속에 시골의 한적한 풍경이 작은 수채화처럼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전원으로 옮기는 것이 얼핏 보면 쉬운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정이라는 틀 속에 묶여 있다보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먼저는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첫 번째 장애물로 다가온다. 다행이 이 첫 번째 문제는 큰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막내가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장애는 아내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닌 그야말로 한번도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시골(?)로 내려간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가깝게 교재 하던 친구들과 멀어진다는 것이 아내가 선뜻 결단을 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말로 설득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한시적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기간은 3년으로 했다. 3년 간 살아보고 불편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는 조건이었다. 결정이 내려진 후 용인 양지 가까운 전원단지에 터를 구입하고 1년 가까운 공사를 통해 작고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드디어 작년에 입주를 했다. 학교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라 교통도 편하고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특히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지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시집 한권 출판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부담이 되었는데 글을 쓸 수 있는 작업실이 확보되어 무엇보다도 좋았다.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 중 오늘은 강아지들과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내가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주위에 나자 전원생활에 필요한 상식을 알려주거나 전원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선물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제자 하나가 하루는 생후 3개월쯤 된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찾아왔다. 교수님을 위해 특별히 진도견과 도사견을 교배하여 새끼를 내어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평소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속으로 큰 걱정이 되었다. 정성을 다해 교수를 위하여 교배까지 시켜가면서 새끼를 내어 왔다는데 돌려보낼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제자가 돌아간 후에 온 가족이 강아지 옆에 둘러앉아 걱정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아내가 가장 큰 걱정을 했다. 밖에서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데다 일거리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세월이 지나 6개월쯤 되자 제법 개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개가 개 같지 않은 것이었다. 밥을 가져다 주면 그냥 밥그릇으로 가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주인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밥 많이 먹어라 해야 비로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녀석의 이름은 차돌이었다. 차돌처럼 튼튼하게 자라라고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사람으로 말하면 예의바른 샌님이 되었다. 그리고 이 녀석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자가 강아지를 가져다 줄 때는 전원주택이니까 집을 잘 지키라는 뜻이었을 텐데 사람을 보아도 도무지 짖지를 않는 것이었다. 좀 더 크면 짖겠지 하고 기다려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급기야 차돌이는 아내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개가 개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3-4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흰 개 한 마리가 차돌이 주변을 배회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떠나지를 않았다. 집에서 도망을 나온 듯 목에는 개목걸이와 개줄이 달린 채로였다.
개 한 마리 있는 것도 키우는 것이 벅찼던 아내는 그 개를 쫓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막대기로 쫓아도 보고, 교양 없게 물도 끼얹어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뿐이었다. 어디론가 도망갔다가는 기회를 엿보아 다시 차돌이 옆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하루는 줄이 바닥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도망을 못 가는 상황이 되었다. 가족회의 끝에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만 집에서 기르기로 하였다. 며칠 동안 아내에게 시달린 탓인지 먹이를 주러 가면 꼬리를 내리고 슬슬 피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집을 나온지 꽤 시간이 흘러서인지 눈칫밥 먹는데 이력이 난 듯 했다. 그렇게 해서 녀석이 그 날부터 차돌이와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 녀석이 집을 찾아갈 것 같지가 않아서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밤이 깊었는데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겠거니 하였는데 분명 개 짖는 소리였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떠돌이 흰둥이 녀석이었다. 그동안 몇 개월 동안 개를 키우면서도 개 짖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아내가 “제는 개 같네요”하고 관심을 보였다. 유난히 겁이 많은 아내는 밤에 개가 있으면 낯선 사람이 왔을 때 개가 짖어 주면 좀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차돌이 녀석이 도통 짖지를 않으니 속으로 미워하고 있었는데 떠돌이 개가 짖으니까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내는 떠돌이 개에게 흰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밥도 정성스럽게 담아서 가져다 주었다.
흰돌이는 낯선 사람을 보면 낮이나 밤이나 관계없이 열심히 짖어댔다. 그리고 자신의 밥을 주는 아내 외에 다른 사람이 쓰다듬으려 하면 으르릉 거리면서 접근을 불허했다. 흰돌이에 대한 아내의 관심은 점점 깊어 갔다. 3개월쯤 지나자 차돌이와 흰돌이의 신세가 역전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는 양상이 되었다. 흰돌이는 개 같은 대접을 받고 차돌이는 개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항상 밥도 흰돌이를 먼저 주고, 차돌이는 나중이었다. 나는 개들에 대한 아내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든지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돌이는 착하긴 했지만 무능한 사람의 모습이랄 수 있고, 흰돌이는 비록 학벌이나 인맥은 없지만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능력 있는 사람의 모습이랄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가을에
(전원일기는 민다선시인이 대진전원마을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
느낀 일들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작품들로 언젠가 책으로 엮어낼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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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상의 작은 일들 가운데서 삶의 철학을 발견하는 다선님의 놀라운 통찰력이 부럽네요. 많은 깨달음 얻고 갑니다.
차돌이처럼 착하면서 흰돌이처럼 능력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욕심이긴 하지만요.
한국도 능력과 성실함이 성공의 기준이 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다선님! 우리의 삶속에서 평범한것 같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내용 부탁드려요.
다선님의 일상에 대한 글들이 문득 제 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전원생활의 기록들도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그 후 흰돌이, 차돌이 안부도 궁금하네요.
저는 개를 넘 좋아해서 그런지....차돌이도 흰돌이도 사랑스럽네요^^ 그렇게 얌전하신 사모님이 차돌이를 구박했다니 그점도 신선하고 재밌네요^^
어디서든지 필요한사람이 되어야 대접 받을수있다는말에 머리를 탁 맞은것같습니다 . 주어진 환경에서 나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려 발전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