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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2강-3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8. 26 -
阿含十二 方等八(아함12방등8), 전통적으로 교판. 소위 그 敎相判釋(교상판석)이라고 해서 8만 대장경 전체를 분류할 때, 부처님께서 설하신 연한을 저렇게 아함경을 12년 동안, 그리고 방등경을 8년 동안, 그리고
21년 동안 반야부 경전, 그것은 600권이나 되지요.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위시해서 600권이나 되는 반야부 경전을 21년간 설하고, 그 다음에
終談法華又八年(종담법화우팔년). 마지막으로 법화경을 또한 8년 동안 설했다. 最初華嚴三七日(최초화엄삼칠일) 그래요.
화엄경은 삼칠일 = 21일. 깨닫고 나서 그 깨달음의 법희선열을 누리고, 또 당신의 깨달음을 점검하고, 그래서 그 순수한 “깨달음의 경지를 그대로 토로해 놓은 것이다.” 라고 해서 화엄경을 소위 最初華嚴, 깨닫고 나서 三七日간의 부처님의 정신세계를 그린 것이다. 이렇게 敎判을합니다.
그것이 꼭 화엄경이 깨닫고 나서 21일 동안 설했다는 것이 아니고, 거기다가 말하자면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이 된 거에요.
그리고 법화경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직전 8년간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한 것이고요. 열반경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그 순간을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量이 상당히 많거든요.
열반경은 40권이나 됩니다. 또 화엄경은 80권이나 되는데 어떻게 21일간 다 설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하자면 그 순간의 부처님의 정신세계에다 초점을 맞추어서 깨달음의 세계를 그려 놓은 것. 이렇게 표현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21일간 화엄경을 설했다.”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법화경도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5ㆍ600년 뒤에 결집된 것이지만, 바로 “열반직전에 설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했다.”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경전을 하나 결집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럼 부처님 일생 중에서 ‘어느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내가 경전을 결집할 것인가?’ 이것을 구상하게 될 겁니다. 아무 때나 대고 할 것이 아니거든요. 막 깨닫고 나서 정말 젊은 부처. 35세쯤 되는 아주 씩씩한, 그리고 건강한 부처님의 어떤 모습에다 초점을 맞추어서 경전을 하나 편찬 하든지 아니면 한참 교화가 무르익을 무렵 신도들도 많고, 제자들도 많은 그 시기에다가 예를 들어서 초점을 맞추어 놓고 경전을 결집하든지, 경전을 결집할 때는 아마 그런 구상이 처음부터 다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해야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안 그러면 그것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요. 어떻게 21일간 설했느냐? 저는 처음에 그렇게 들었어요. 그래 무조건 그렇게 믿었지요. 믿어지더라고요. 21일간 설했다면 21일간 설한 것이지, 거기에 웬 잔소리가 많으냐? 그렇게 믿었어요. 그런데 차츰차츰 철이 들고, 이런저런 책을 많이 참고해서 보고 하다 보니까, ‘아. 이것은 21일간 다 읽으려 해도 다 읽을 수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걸 설 할 수 있겠나?’그래서 차츰차츰 합리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상식에 맞게 그것이 해석이 되어 지더라고요. 우리가 뭐든지, 지금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면 그런 상식에 맞게, 또는 합리적으로 경전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것도 중요한 것이지요.
경전에 뭐라고 해놨다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그대로 이야기하면, 현대인들에게 정말 안 통하지요. ‘무슨 상식에 어긋나는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가?’ 그것은 포교에 마이너스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게 그렇게 해석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과거불 증명장 했어요. 과거불을 증명하는 장인데요.
(2) 과거불 증명장
舍利弗(사리불)아 過去諸佛(과거제불)이
以無量無數方便(이무량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 而爲衆生(이위중생)하야
演說諸法(연설제법)하시니
是法皆爲一佛乘故(시법개위일불승고)라 是諸衆生(시제중생)이
從諸佛聞法(종제불문법)하고
究竟皆得一切種智(구경개득일체종지)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過去諸佛(과거제불)이 以無量無數方便(이무량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 而爲衆生(이위중생)하야 중생을 위해서 演說諸法(연설제법)하시니
제법을 연설하시니, 是法皆爲一佛乘故(시법개위일불승고)라
법은 다 일불승을 위한 까닭이다. 삼승도 아니고, 이승도 아니다. 일불승을 위한 것이다. 是諸衆生(시제중생)이 從諸佛聞法(종제불문법)하고, 부처님으로부터, 諸佛로부터 법문 하는 것을 듣고 究竟에 皆得一切種智(구경개득일체종지). 一切種智를 얻느니라.
一切種智. 그것이 “開 示 悟 入 佛知見” 할 때, 佛知見을 一切種智라고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과거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래불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는, 법화경의 진리는 어떤 입장에서 검증을 해 보더라도 “틀림없는 진리다.” 이 뜻입니다. 다른 경전은 이렇게까지 해있는 경전은 없습니다. 법화경만이 이렇게 철저히, 철저히 검증을 거친 형식으로 해놨어요.
(3) 미래불 증명장
舍利弗(사리불)아 未來諸佛(미래제불)이
當出於世(당출어세)하야
亦以無量無數方便(역이무량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 而爲衆生(이위중생)하야
演說諸法(연설제법)하시니라
是法皆爲一佛乘故(시법개위일불승고)라
是諸衆生(시제중생)이 從佛聞法(종불문법)하고
究竟皆得一切種智(구경개득일체종지)하리라
舍利弗(사리불)아 未來諸佛(미래제불)이 當出於世(당출어세)하야, 마땅히 세상에 나오셔서 또한 亦以無量無數方便(역이무량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써 而爲衆生(이위중생)하야, 중생을 위해서 演說諸法(연설제법)하시니라. 제법을 연설하시니라.
是法皆爲一佛乘故(시법개위일불승고)라. 이 법은 다 一佛乘을 위한 까닭이다. 하나의 부처의 삶. 어떤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살든 간에 그 내용에 있어서는, 궁극적 차원ㆍ본래인ㆍ우리 개개인의 본래인의 차원에 있어서는 모두가 一佛乘이다. 본래인의 차원에서는 부처다. 그 이야기입니다.
一佛乘을 위한 까닭으로 是諸衆生(시제중생)이 從佛聞法(종불문법)하고, 모든 중생이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究竟皆得一切種智(구경개득일체종지)하리라. 究竟에는 一切種智를 얻는다.
과거불장 미래불장 똑 같지요? 그 다음에 현재불 장도...
(4) 현재불 증명장
舍利弗(사리불)아
現在十方無量百千萬億佛土中(현재시방무량백천만억불토중)에
諸佛世尊(제불세존)이 多所饒益(다소요익)하야
安樂衆生(안락중생)하나니 是諸佛(시제불)도
亦以無量無數方便(역이무량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 而爲衆生(이위중생)하야
演說諸法(연설제법)하시나니
是法皆爲一佛乘故(시법개위일불승고)라
是諸衆生(시제중생)이 從佛聞法(종불문법)하고
究竟皆得一切種智(구경개득일체종지)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是諸佛(시제불)이
但敎化菩薩(단교화보살)하사 欲以佛之知見(욕이불지지견)으로
示衆生故(시중생고)며 欲以佛之知見(욕이불지지견)으로
悟衆生故(오중생고)며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入佛之知見故(입불지지견고)니라
舍利弗(사리불)아 現在十方無量百千萬億佛土中(현재시방무량백천만억불토중)에 모든 국토 가운데 諸佛世尊(제불세존)이 多所饒益(다소요익)하야 많이 饒益 되는 바, 이익 되는 바가 있어서 安樂衆生(안락중생)하나니, 중생을 안락하게 하나니 是諸佛(시제불)도, 모든 부처님도 또한 亦以無量無數方便(역이무량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와 言辭(비유언사)로써 而爲衆生(이위중생)하야 중생을 위해서 演說諸法(연설제법)하시나니, 諸法을 演說하시나니, 是法皆爲一佛乘故(시법개위일불승고)라. 이 법은 다 一佛乘을 위한 까닭이다. 글이 똑 같지요?
是諸衆生(시제중생)이 從佛聞法(종불문법)하고,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究竟에는 皆得一切種智(구경개득일체종지)하나니라. 一切種智를 다 얻는다. 여기 까지 글이 똑 같습니다.
舍利弗(사리불)아 是諸佛(시제불)이 但敎化菩薩(단교화보살)하사,
다만 보살을 교화하사, 최고 수준에 있는 사람. 그러니까 법화경을 공부한 사람은 무조건 보살입니다. 최고 수준에 있습니다.
뭐 어쨌든 오늘 처음 불교에 입문 했어도 할 수 없어요. 좋든 싫든 보살입니다. 최고 수준에 있다고요. 그래서 법화경이 인연이 된 것이다.
그렇게 봅니다.
다만 보살을 교화하사 欲以佛之知見(욕이불지지견)으로,
부처님의 知見으로써 示衆生故(시중생고)며, 중생에게 보이는 연고며
欲以佛之知見(욕이불지지견)으로, 부처님의 知見으로써
悟衆生故(오중생고), 중생을 깨닫게 하는 연고며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入佛之知見故(입불지지견고)니라. 부처님의 知見에 들어가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전부 최고 수준에 있으니까 이제는 부처되는 길만 남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佛知見이지요.
“중생이 바로 佛知見으로 開示悟入하게 한다.” 이런 뜻입니다.
아주 그 내용을 가만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조직이 참 잘 되어있어요.
그 다음에 석가불장. 이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석가불이 여기의 주인공이니까요.
(5) 석가불 증명장
舍利弗(사리불)아 我今亦復如是(아금역복여시)하야
知諸衆生(지제중생)의 有種種欲(유종종욕)과
深心所著(심심소착)일새 隨其本性(수기본성)하야
以種種因緣(이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와
方便力(방편력)으로 而爲說法(이위설법)하노니
舍利弗(사리불)아 如此皆爲得一佛乘(여차개위득일불승)과
一切種智故(일체종지고)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十方世界中(시방세계중)에
尙無二乘(상무이승)이어늘 何況有三(하황유삼)가
舍利弗(사리불)아 諸佛(제불)이
出於五濁惡世(출어오탁악세)하나니
所謂劫濁煩惱濁衆生濁見濁命濁(소위겁탁번뇌탁중생탁견탁명탁)
이라 如是舍利弗(여시사리불)아 劫濁亂時(겁탁난시)에
衆生垢重(중생구중)하야 慳貪嫉妬(간탐질투)하며
成就諸不善根故(성취제불선근고)로
諸佛以方便力(제불이방편력)으로 於一佛乘(어일불승)에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若我第子(약아제자)가
自謂阿羅漢辟支佛者(자위아라한벽지불자)가
不聞不知諸佛如來(불문부지제불여래)가
但敎化菩薩事(단교화보살사)면 此非佛第子(차비불제자)며
非阿羅漢(비아라한)이며 非辟支佛(비벽지불)이니라
又舍利弗(우사리불)아 是諸比丘比丘尼(시제비구비구니)가
自謂已得阿羅漢(자위이득아라한)이라
是最後身究竟涅槃(시최후신구경열반)이라하야
便不復志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변불부지구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하면 當知此輩(당지차배)는 皆是增上慢人(개시증상만인)이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若有比丘(약유비구)가
實得阿羅漢(실득아라한)하고 若不信此法(약불신차법)이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除佛滅度後現前無佛(제불멸도후현전무불)이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佛滅度後(불멸도후)에
如是等經(여시등경)을 受持讀誦解義者(수지독송해의자)는
是人難得(시인난득)이니 若遇餘佛(약우여불)이면
於此法中(어차법중)에 便得決了(변득결료)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汝等當一心信解(여등당일심신해)하야
受持佛語(수지불어)니 諸佛如來(제불여래)가
言無虛妄(언무허망)이라 無有餘乘(무유여승)이요
唯一佛乘(유일불승)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我今亦復如是(아금역복여시)하야,
나도 또한 亦復如是해서 知諸衆生(지제중생)의, 모든 중생들의
有種種欲(유종종욕)과, 가지가지 욕망과 深心所著(심심소착).
저~ 깊은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바를 알세.
隨其本性(수기본성)하야 그들의 本性을 따라서 以種種因緣(이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와 方便力(방편력)으로 방편의 힘으로
而爲說法(이위설법)하노니 그들을 위해서 설법하노니,
舍利弗(사리불)아 如此皆爲得一佛乘(여차개위득일불승)과,
이와 같이 다 一佛乘과 一切種智故(일체종지고)니라. 一切種智를 위한 까닭이다. 일불승과 일체종지를 위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본래인의 차원에서는 우리 모두가 “부처다.” 라고 하는 것이 一佛乘이고,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一切種智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
지혜라는 것이 딴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부처다.” “본래로 부처다.” 하는 이 사실을 아는 것이 一切種智입니다. 그 사실이 一佛乘이고요.
舍利弗(사리불)아 十方世界中(시방세계중)에, 시방세계 가운데
尙無二乘(상무이승)이어늘, 오히려 이승도 없거늘,
何況有三(하황유삼)가? 아이, 이승도 없는데 삼승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삼승이야 2다음에 3인데요.
舍利弗(사리불)아 諸佛(제불)이, 모든 부처님이 出於五濁惡世(출어오탁악세)하나니, 오탁악세에서 출현했으니 所謂劫濁ㆍ煩惱濁ㆍ衆生濁ㆍ見濁ㆍ命濁(소위겁탁번뇌탁중생탁견탁명탁)이라.
如是舍利弗(여시사리불)아 劫濁亂時(겁탁난시)에, 이와 같이 사리불아, 겁탁이 어지러울 때에 衆生垢重(중생구중)하야, 중생이 때가 무거워서 慳貪하고 嫉妬(간탐질투)하며, 成就諸不善根故(성취제불선근고)로, 여러 가지 不善根을, 선이 아닌 그런 것들을, 不善根을 성취하는 까닭으로 諸佛以方便力(제불이방편력)으로써 於一佛乘(어일불승)에서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분별해서 3을 설했다. 이것은 쪼개가지고 낱낱이 나눠가지고서 3을 설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근기가 不善根을 성취하고, 또 수준이 너무 하열하고 마음이 좁고 그릇이 작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그릇에 맞추어서 하다 보니까 하나의 불성. 하나의 부처의 삶에서 그래 너는 성문이야. 너는 연각이야. 너는 보살이야. 너는 이렇게 하면 잘돼. 저렇게 하면 재수 있어. 별별 방편을 해가지고 그렇게 이 삼승을 이야기 했는데, 오늘 날에 와서는 3만승ㆍ30만승ㆍ3000만승ㆍ3억 승도 더 돼요. 그런 여러 가지 방편교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한의 3입니다.
舍利弗(사리불)아 若我第子(약아제자)가, 만약에 나의 제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自謂阿羅漢ㆍ辟支佛者(자위아라한벽지불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아라한ㆍ벽지불이 된 사람으로서,
不聞不知諸佛如來(불문부지제불여래)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但敎化菩薩事(단교화보살사). 다만 보살들을 교화한다고 하는 이 일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 했을 것 같으면, 此非佛第子(차비불제자)며,
이것은 불제자가 아니야. 부처님은 다만 보살들만을 교화한다고 하는 이 사실. 이것이 부처님의 본업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본래의 마음이라고요.
부처님의 속심은 이것인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이겁니다. 그걸 알면 “아이 그래? 그것이 부처님의 본래의 마음이라면 나도 그거 해야지.” 이렇게 저절로 될 것 아닙니까?
왜 저~기 지엽을 자꾸 찾고 있을 까닭이 없이 않습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니라. 非阿羅漢(비아라한)이며, 아라한도 아니야. 말이 아라한이지 그리되면 그것은 아라한도 아니야.
非辟支佛(비벽지불)이니라. 벽지불도 아니야.
又舍利弗(우사리불)아 是諸比丘比丘尼(시제비구비구니)가, 또 사리불아, 이 모든 比丘ㆍ比丘尼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自謂已得阿羅漢(자위이득아라한)이라. 이미 阿羅漢을 얻었다. 是最後身究竟涅槃(시최후신구경열반)이라. 또 最後身인 究竟涅槃을 얻었다.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便不復志求(변불부지구), 더 이상은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를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當知此輩(당지차배)는 마땅히 알아라. 이러한 무리들은, 皆是增上慢人(개시증상만인)이라. 지혼자 잘 난체 하는 사람이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하면,
若有比丘(약유비구)가 만약에 어떤 비구가 實得阿羅漢(실득아라한)하고, 실로 아라한을 얻고 不信此法(약불신차법)이, 이 法을, 이 도리, 일승도리. 삼승은 방편이다. 일승만이 진실이다 하는 이것을 믿지 않는 것이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말입니다.
아라한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것 까지도 다 알아야 그것이 진짜 아라한이지. 아라한도 가설이지만, 가설이라 하더라도 진짜 아라한은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 아라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除佛滅度後現前無佛(제불멸도후현전무불)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에 현전에서 부처가 없을 때는 제한다. 이랬어요.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부처님이 없으니까 혹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못 배울 수도 있지 않느냐? 몰라서, 못 배워서 무식해서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佛滅度後(불멸도후)에, 부처님이 멸도하신 후에 如是等經(여시등경)을, 이와 같은 등의 경을
受持ㆍ讀誦ㆍ解義者(수지독송해의자)는,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是人難得(시인난득)이라. 참으로 얻기 어렵다.
若遇餘佛(약우여불)이면 만약에 다른 부처님을 만날 것 같으면.
於此法中(어차법중), 이 법 가운데서 가운데서도 便得決了(변득결료)라. 곧 바로 해결한다. 깨닫는다 이 말입니다. 풀어지느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汝等當(여등당) 여등은 마땅히 一心信解(일심신해)해서, 일심으로 믿고 이해해가지고서 受持佛語(수지불어),
부처님의 말씀을 受持할지니, 諸佛如來(제불여래)는 言無虛妄(언무허망)하야, 말에 허망함이 없어, 거짓말이 없다 이겁니다.
無有餘乘(무유여승)이요 唯一佛乘(유일불승)이다. 이래 해 놨잖아요. 無有餘乘이라. 나머지 승은 없어, 2승 3승은 없다. 오직 일불승뿐이다.
唯一佛乘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부처의 삶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생겼든ㆍ어떤 삶을 살든ㆍ동ㆍ서ㆍ남ㆍ북ㆍ고ㆍ금ㆍ흙ㆍ백ㆍ민족차별ㆍ국가차별ㆍ어떤 차별된 현상을 우리는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더라도 그 내면의 궁극적 차원, 진실한 입장에 있어서는 모두가 다 一佛乘이다.
부처다 하는 것입니다. 그 내면을 알면요. 그런 내용입니다.
다른 것 없다 말입니다. 괜히 겉으로 드러난 것 가지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결이 친다고, 바람에 따라서 물결이 높이 칠 수도 있고 낮게 칠 수도 있고,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갈 수가 있는 것이지 그것 보고, 그 현상보고 쫓아갈 일이 아니라 물을 보라 하는 것입니다.
물을 보라.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차별상을 보지 말고, 우리 평등한 내면의 진실을 보라. 이런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동등한 부처다.
一佛乘이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중송이지요?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했기 때문에 重頌. 그렇게 합니다.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그렇게 했지요. 중송은 보면 전부 오불 증명장 - 제불 설명이 많아지지요. 방편문을 열다. 진실을 보이다. 이렇게 했는데, 여기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있어서 게송이지만 좀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아주 제일 좋아하는 게송이 여기에 있습니다.
3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 (2)오불증명장 - <2>과거불증명장. ←여기에 제가 꼭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3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답변을 허락함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 有懷增上慢(유회증상만)과
優婆塞我慢(우바새아만)과 優婆夷不信(우바이불신)과
如是四衆等(여시사중등)이 其數有五千(기수유오천)이라
不自見其過(불자견기과)하고 於戒有缺漏(어계유결루)어든
護惜其瑕疵(호석기하자)하나니 是小智已出(시소지이출)이라
衆中之糟糠(중중지조강)이니 佛威德故去(불위덕고거)니라
斯人尠福德(사인선복덕)하야 不堪受是法(불감수시법)이니라
此衆無枝葉(차중무지엽)하고 唯有諸貞實(유유제정실)이니라
(2) 오불 증명장
<1> 제불 증명장
가, 방편문을 열다
舍利弗善聽(사리불선청)하라 諸佛所得法(제불소득법)은
無量方便力(무량방편력)으로 而爲衆生說(이위중생설)하대
衆生心所念(중생심소념)과 種種所行道(종종소행도)와
若干諸欲性(약간제욕성)은 先世善惡業(선세선악업)이어늘
佛悉知是已(불실지시이)하시고 以諸緣譬喩(이제연비유)와
言辭方便力(언사방편력)으로 令一切歡喜(영일체환희)케하며
或說修多羅(혹설수다라)와 伽陀及本事(가타급본사)와
本生未曾有(본생미증유)하시며 亦說於因緣(역설어인연)과
譬喩幷祗夜(비유병지야)와 優波提舍經(우바제사경)하노라
鈍根樂小法(둔근락소법)하며 貪著於生死(탐저어생사)하야
於諸無量佛(어제무량불)에 不行深妙道(불행심묘도)하고
衆苦所惱亂(중고소뇌란)일새 爲是說涅槃(위시설열반)하니라
나, 진실을 보이다
我設是方便(아설시방편)하야 令得入佛慧(영득입불혜)하고
未曾說汝等(미증설여등)이 當得成佛道(당득성불도)호니
所以未曾說(소이미증설)은 說時未至故(설시미지고)니라
今正是其時금정시기시일새 決定說大乘결정설대승하노라
我此九部法(아차구부법)은 隨順衆生說(수순중생설)하야
入大乘爲本(입대승위본)일새 以故說是經(이고설시경)하노라
有佛子心淨(유불자심정)하야 柔輭亦利根(유연역이근)하며
無量諸佛所(무량제불소)에 而行深妙道(이행심묘도)라
爲此諸佛子(위차제불자)하야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호니
我記如是人(아기여시인)은 來世成佛道(내세성불도)하리라
以深心念佛(이심심염불)하고 修持淨戒故(수지정계고)로
此等聞得佛(차등문득불)하고 大喜充徧身(대희충변신)하리니
佛知彼心(불지피심행)行일새 故爲說大乘(고위설대승)이시니라
聲聞若菩薩(성문약보살)이 聞我所說法(문아소설법)하대
乃至於一偈(내지어일게)하면 皆成佛無疑(개성불무의)리라
十方佛土中(시방불토중)에 唯有一乘法(유유일승법)이요
無二亦無三(무이역무삼)이니 除佛方便說(제불방편설)이니라
但以假名字(단이가명자)로 引導於衆生(인도어중생)하나니
說佛智慧故(설불지혜고)니라 諸佛出於世(제불출어세)에
唯此一事實(유차일사실)이요 餘二則非眞(여이즉비진)이니
終不以小乘(종불이소승)으로 濟度於衆生(제도어중생)이니라
佛自住大乘(불자주대승)하시고 如其所得法(여기소득법)하야
定慧力莊嚴(정혜력장엄)으로 以此度衆生(이차도중생)이니
自證無上道(자증무상도) 大乘平等法(대승평등법)하고
若以小乘(약이소승화)化하야 乃至於一人(내지어일인)이면
我則墮慳貪(아즉타간탐)이라 此事爲不可(차사위불가)니라
다, 믿음을 권함
若人信歸佛(약인신귀불)하면 如來不欺誑(여래불기광)하며
亦無貪嫉意(역무탐질의)라 斷諸法中惡(단제법중악)일새
故佛於十方(고불어십방)에 而獨無所畏(이독무소외)니라
我以相嚴身(아이상엄신)하며 光明照世間(광명조세간)하야
無量衆所尊(무량중소존)일새 爲說實相印(위설실상인)이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我本立誓願(아본립서원)은
欲令一切衆(욕영일체중)으로 如我等無異(여아등무이)라
如我昔所願(여아석소원)을 今者已滿足(금자이만족)하니
化一切衆生(화일체중생)하야 皆令入佛道(개령입불도)니라
라, 무지인을 위하여 소승을 설함
若我遇衆生(약아우중생)하야 盡敎以佛道(진교이불도)언마는
無智者錯亂(무지자착란)하야 迷惑不受敎(미혹불수교)니라
我知此衆生(아지차중생)이 未曾修善本(미증수선본)일새
堅著於五欲(견저어오욕)하야 癡愛故生惱(치애고생뇌)하며
以諸欲因緣(이제욕인연)으로 墜墮三惡道(추타삼악도)하며
輪廻六趣中(윤회육취중)하야 備受諸苦毒(비수제고독)하며
受胎之微形(수태지미형)으로 世世常增長(세세상증장)하야
薄德少福人(박덕소복인)이라 衆苦所逼迫(중고소핍박)하며
入邪見稠林(입사견조림) 若有若無等(약유약무등)
入邪見稠林(입사견조림) 若有若無等(약유약무등)일새
依止此諸見(의지차제견)하야 具足六十二(구족육십이)하며
深著虛妄法(심착허망법)하야 堅受不可捨(견수불가사)하며
我慢自矜高(아만자긍고)하야 諂曲心不實(첨곡심불실)하며
於千萬億劫(어천만억겁)에 不聞佛名字(불문불명자)하고
亦不聞正法(역불문정법)하나니 如是人難度(여시인난도)니라
是故舍利弗(시고사리불)아 我爲設方便(아위설방편)하야
說諸盡苦道(설제진고도)하야 示之以涅槃(시지이열반)호니
我雖說涅槃(아수설열반)이나 是亦非眞滅(시역비진멸)이어니와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로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이니
佛子行道已(불자행도이)하면 來世得作佛(내세득작불)이니라
我有方便力(아유방편력)하야 開示三乘法(개시삼승법)호니
一切諸世尊(일체제세존)이 皆說一乘道(개설일승도)니라
今此諸大衆(금차제대중)은 皆應除疑惑(개응제의혹)이니
諸佛語無異(제불어무이)라 唯一無二乘(유일무이승)이니라
<2> 과거불 증명장
가, 방편문을 열다
過去無數劫(과거무수겁)에 無量滅度佛(무량멸도불)이
百千萬億種(백천만억종)이라 其數不可量(기수불가량)이니
如是諸世尊(여시제세존)이 種種緣譬喩(종종연비유)와
無數方便力(무수방편력)으로 演說諸法相(연설제법상)하시나
나, 진실을 보이다
是諸世尊等(시제세존등)이 皆說一乘法(개설일승법)하사
化無量衆生(화무량중생)하야 令入於佛道(영입어불도)니라
又諸大聖主(우제대성주)가 知一切世間(지일체세간)
天人群生類(천인군생류)의 深心之所欲(심심지소욕)하사
更以異方便(갱이이방편)으로 助顯第一義(조현제일의)니라
若有衆生類(약유중생류)가 値諸過去佛(치제과거불)하야
若聞法布施(약문법보시)하며 或持戒忍辱(혹지계인욕)과
精進禪智等(정진선지등)하야 種種修福慧(종종수복혜)하면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諸佛滅度後(제불멸도후)에 若人善輭心(약인선연심)한이는
如是諸衆生(여시제중생)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諸佛滅度已(제불멸도이)에 供養舍利者(공양사리자)가
起萬億種塔(기만억종탑)하대 金銀及玻瓈(금은급파리)와
硨磲與瑪瑙(차거여마노)와 玫瑰琉璃珠(매괴유리주)로
淸淨廣嚴飾(청정광엄식)하야 莊校於諸塔(장교어제탑)하며
或有起石廟(혹유기석묘)하대 栴檀及沈水(전단급침수)와
木櫁幷餘材(목밀병여재)와 甎瓦泥土等(전와니토등)하며
若於曠野中(약어광야중)에 積土成佛廟(적토성불묘)하대
乃至童子戱(내지동자희)로 聚沙爲佛塔(취사위불탑)한이는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이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若人爲佛故(약인위불고)로 建立諸形像(건립제형상)하며
刻雕成衆相(각조성중상)한이는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或以七寶成(혹이칠보성)하며 鍮鉐赤白銅(유석적백동)과
白鑞及鉛錫(백납급연석)과 鐵木及與泥(철목급여니)하며
或以膠漆布(혹이교칠포)로 嚴飾作佛像(엄식작불상)하면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彩畫作佛像(채화작불상)하야 百福莊嚴相(백복장엄상)하대
自作若使人(자작약사인)하면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乃至童子戱(내지동자희)로 若草木及筆(약초목급필)이나
或以指爪甲(혹이지조갑)으로 而畫作佛像(이화작불상)하면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이 漸漸積功德(점점적공덕)하야
具足大悲心(구족대비심)일새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
但化諸菩薩(단화제보살)하야 度脫無量衆(도탈무량중)이니라
若人於塔廟(약인어탑묘)와 寶像及畫像(보상급화상)에
以華香旛蓋(이화향번개)로 敬心而供養(경심이공양)커나
若使人作樂(약사인작악)하대 擊鼓吹角貝(격고취각패)하며
簫笛琴箜篌(소적금공후)와 琵琶鐃銅鈸(비파요동발)과
如是衆妙音(여시중묘음)으로 盡持以供養(진지이공양)하며
或以歡喜心(혹이환희심)으로 歌唄頌佛德(가패송불덕)하대
乃至一小音(내지일소음)이라도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若人散亂心(약인산란심)으로 乃至以一華(내지이일화)를
供養於畫像(공양어화상)하면 漸見無數佛(점견무수불)하며
或有人禮拜(혹유인예배)커나 或復但合掌(혹부단합장)커나
乃至擧一手(내지거일수)하며 或復小低頭(혹부소저두)하야
以此供養像(이차공양상)하면 漸見無量佛(점견무량불)하야
自成無上道(자성무상도)하고 廣度無數衆(광도무수중)하야
入無餘涅槃(입무여열반)하대 如薪盡火滅(여신진화멸)이니라
若人散亂心(약인산란심)으로 入於塔廟中(입어탑묘중)하야
一稱南無佛(일칭나무불)하면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於諸過去佛(어제과거불)의 在世或滅後(재세혹멸후)에
若有聞是法(약유문시법)하면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2) 오불 증명장 - <2> 과거불 증명장 - 가, 방편문을 열다
똑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過去無數劫(과거무수겁)에 無量滅度佛(무량멸도불)이,
過去無數劫에 무량멸도 부처님이 百千萬億種(백천만억종)이라.
其數不可量(기수불가량)이니, 그 수가 不可量이니
如是諸世尊(여시제세존)이, 이와 같은 모든 世尊이 種種緣譬喩(종종연비유)와, 가지가지 인연과 譬喩와 無數한 方便力(무수방편력)으로 演說諸法相(연설제법상). 제법의 실상을 연설하시나니, 진실을 보이다 그랬어요.
나, 진실을 보이다
是諸世尊等(시제세존등)이, 이 모든 世尊等이 皆說一乘法(개설일승법)하사, 다 一乘法을 설 하사, 化無量衆生(화무량중생)하야,
한량없는 衆生을 교화해서 令入於佛道(영입어불도). 佛道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又諸大聖主(우제대성주)가, 또 모든 대성주가 知一切世間(지일체세간) 天人群生類(천인군생류)의 深心之所欲(심심지소욕)하사, 깊은 마음속에 하고자 하는 바,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아사,
更以異方便(갱이이방편)으로, 다시 다른 방편으로, 그 욕심이 다르니까요. 다른 방편으로써, 助顯第一義(조현제일의)라. 第一義를 도와서 나타낸다. 바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도와서 나타낸다 이 말입니다.
옆으로 은근슬쩍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若有衆生類(약유중생류)가 値諸過去佛(치제과거불)하야, 과거 부처님을 만나서, 若聞法布施(약문법보시)하며, 법을 듣고 보시를 하며,
또 혹 或持戒ㆍ忍辱(혹지계인욕)과 精進ㆍ禪智等(정진선지등)하야
種種修福慧(종종수복혜)하면, 가지가지 福慧를 닦을 것 같으면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皆已成佛道에 빨간 줄 확 그어야 돼요. 皆已成佛道. 이것이 여러 번 나옵니다. 몇 개가 나오는가 한번 그어봅시다.
若有衆生類가, 만약에 중생의 종류가 법을 듣고 보시를 하든지ㆍ계를 지키든지ㆍ인욕을 하든지ㆍ정진을 닦든지 · 선정 · 지혜. 禪智. 육바라밀이지요? 육바라밀 중에서 뭘 하더라도 이 사람은 皆已成佛道라.
이미 불도를 이뤄 마쳤다. 皆已. 이미 이자입니다. 다 이미 불도를 이뤄 마쳤다. 이것이 중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육바라밀 안 닦은 사람 있어요? 한 사람도 없지요? 뭔가 해도 한 겁니다. 하다못해 자리하나 양보해준 것도 그것도 보시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가지고 皆已成佛道라고 했어요. 그 뜻이 뭔가? 그것이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諸佛滅度後(제불멸도후)에,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우리에게는 열반했잖아요. 若人善輭心(약인선연심)한 이는, 어떤 이는 참 착하고 마음이 부드러워요. 如是諸衆生(여시제중생)은, 이와 같은 모든 중생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마음이 착한. 불교하고 관계없어요. 마음이 착하기만 해도, 착하고 부드럽기만 해도 皆已成佛道입니다. 성불하는 것이 세상에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요? 이렇게 쉬울 수가 있어요? 그 다음에
諸佛滅度已(제불멸도이)에 供養舍利者(공양사리자)가,
사리에 공양하는 자가 起萬億種塔(기만억종탑)하며, 만 가지나 되고 억 가지나 되는 그런 탑을 세우며 金ㆍ銀ㆍ及玻瓈(금은급파리)와 硨磲ㆍ與瑪瑙(차거여마노)와 玫瑰ㆍ琉璃珠(매괴유리주)로 淸淨하게 廣嚴飾(청정광엄식). 널리 엄식. 잘 장엄을 해서, 莊校於諸塔(장교어제탑)하며, 모든 탑을 잘 꾸며서 或有起石廟(혹유기석묘). 혹 石廟를 일으키고, 돌로써도 만들고, 栴檀及沈水(전단급침수)와, 栴檀 향나무로도 만들고,
沈水향나무로도 만들어요. 木櫁幷餘材(목밀병여재)와 목밀로도 만들어요.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무 소나무도 좋고, 버드나무도 좋고, 뽕나무도 좋아요.
餘材. 다른 어떤 소재로도 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제 甎瓦泥土等(전와니토등)하며, 전탑도 있지요. 기와로 해서 와탑도 있지요.
흙 탑도 있습니다. 泥土. 이런 등으로도 할 수가 있다 이겁니다.
그리고 若於曠野中(약어광야중)에 積土成佛廟(적토성불묘).
흙을 쌓아서 “이것이 불탑이다”라고 한다 이 말입니다.
乃至童子戱(내지동자희)로 어린 아이들이 장난삼아 聚沙爲佛塔(취사위불탑). 어른들이 흙을 쌓고 나무를 쌓고 또 목탑도 세우고, 이렇게 해서 “부처님 탑이다.”라고 하니까 “우리도 탑 세우자.” 하고 아이들이 오줌을 싸가지고 모래를 뭉쳐가지고 동그랗게 해놓고는 “이것이 불탑이다.” ←聚沙爲佛塔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 이와 같은 모든 사람들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또 밑줄입니다. 皆已成佛道라. 부처되기 이렇게 쉬워요.
성불하기가 이렇게 쉬운데 뭐하려고 용맹정진 하고 있어요?
저 깊은 산 중에 토굴생활 왜 하고 있어요? 무릎 닳게 3천배는 왜 해요? 3천배 4천배 하다가 괜히 관절염만 생기지요. 그 하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하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거기에 뭐가 있다ㆍ공덕이 된다ㆍ성불하는 지름길이다ㆍ무슨 아비라 기도가 제일이다ㆍ능엄주가 제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것만이 제일이다ㆍ그것만이 성불의 길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냥 하는 것은 좋아요. 그냥 하는 것은 좋다고요.
그것은 자기수행 방법이고 자기 삶이고, 그것이 성이 차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것을 해야...
하루에 3천배를 해야 성이 차는 사람은 해야 돼요. 하지만 그것에서 ‘뭐가 온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착각이다 하는 것입니다.
용맹정진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좋아요. 그냥 그렇게 앉아서 정진 하는 겁니다. 정진해서 뭐가 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정진해서 얻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라고요. 그냥 참선하는 모습이 좋아서, 참선하는 삶이 좋아서 할 뿐입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참선만 하고 있어도 얼마나 근사 합니까? 욕심 하나도 없지요ㆍ탈속 하지요ㆍ고고하지요ㆍ아주 보기 참 얼마나 좋습니까? 깔끔하고ㆍ간결소박하고ㆍ자연스럽고ㆍ유연해 보이고ㆍ아무리 무식해도 아주 깊이 있어 보이잖아요. 입 딱~ 다물고 있으니... 딱~ 앉아 있으니까 얼마나 근사해 보여요? 하하하하하하하 그 모습이 정말 참 좋아요.
저도 한 10여년 이상 그런 생활 했습니다만, 정말 좋아요.
그러면 그 좋은 그 모습ㆍ그 삶이 좋아서 그냥 할 뿐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무엇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고 오해다 이겁니다. 뭐가 되는 것은 뭐라고요? 아이들이 모래를 쌓아놓고 불탑이라고 장난을 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은 皆已成佛道입니다. 다 불도 이뤄 마쳤어요.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본래 부처라는 뜻입니다.
궁극적 차원은 손톱하나 까딱 않고도, 손가락하나 까딱 아니하고도 우리 본래인의 입장은 그대로 본래 부처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이해 못하면 불교 헛공부 하는 겁니다. 불교 헛공부 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법화경을 잘 모르는 겁니다. 법화경을 가지고...
요즘 법화경 굉장히 유행하잖아요. 그래 가지고 법화경이 무슨 공덕이 있다ㆍ무슨 영험이 있다 해가지고 아주 삿되게 흘러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상당히 많거든요. 그것 크게 조심해야 됩니다. 제가 몸이 아프고 힘든데도 이렇게 책을 새롭게 편찬을 해가지고 여기에 올라온 것은, 여러분이 그래도 주지도 사시고 공부도 많이 하고 경력도 많고, 재가 신도 분들도 전부 포교사 이상 자격을 가지신 분들이고, 저는 저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어서 온 겁니다. 이런 분들에게 뭔가 正法을 한 마디라도 깨우쳐 줘야 되겠다고 하는 이 사명감으로 온 것입니다. 이 책 만드는데 순수 인쇄비만 7ㆍ800만원 들었어요. 교정하는데 10명이상 동원 됐는데 그런 것은 다 놔두고요. 저는 순전히 사명감으로 하는 겁니다. ‘정법이 하나라도 세상에 펴주십사’ 하는 그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아무도 겁이 나서도 못하고, 또 몰라서도 못한 소리. 저는 저 소신껏 당당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마침 법 보시 좋아하는 보살님이 제가 쓴 법화경의 열쇠와 비슷한 그 책도 이렇게 펴서... 정법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그런 책도 보시를 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아이들이 모래 탑을 쌓아놓고 장난삼아 했는데도 皆已成佛道라고 했잖아요. 부처에는 조건이 없어요. 수행이 필요치가 않아요. 수행해서 부처되는 것은 금방 무너져요.
이것은 조작한 부처이기 때문에, 조작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無次第佛(무차제불). 점차적으로 되는 부처는 없다.
無修證佛(무수증불). 닦아서 증득하는 부처는 이 세상에 없다.
선사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법화경을 제대로 공부하면요?
불교에 대한 지견이, 소견이 한껏 높아버려요. 그래서 눈만 높아져요.
하하하 눈만 높아져요 법화경은요. 어쨌든 높을 수 있는 데 까지 높아져야 됩니다. 그래야 정법과 사법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若人爲佛故(약인위불고)로,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위한답시고,
建立諸形像(건립제형상)이라. 여러 가지 형상을 꾸며, -저~기 강원도 어느 바닷가, 비슷한 돌멩이 가지고 누워있는 부처라고 이렇게 한다 합시다. 그것도 좋아요. 그것 가지고 刻雕成衆相(각조성중상)이라.
조각해서 衆相. 몸속의 법당이라고 해서 야단 무당 짓거리해도 좋다 이겁니다. 그것으로도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 그것으로서도 皆已成佛道라 이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해야 부처라는 뜻이 아니고. 본래 부처라는 뜻입니다. 온갖 행위를 여기에 다 그냥 망라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넘어가면 더 가관인 것이 있어요.
或以七寶成(혹이칠보성), 혹 七寶로서 이루기도 하고, 鍮鉐赤白銅(유석적백동)과, 구리ㆍ朱鉐(주석)ㆍ赤白銅(붉은 구리ㆍ흰 구리)ㆍ白鑞及鉛錫(백납급연석)과, 白鑞은 납 이지요ㆍ또 鉛錫ㆍ鐵ㆍ木及與泥(철목급여니)나무ㆍ진흙. 이런 것으로도 해요. 이것은 불상을 조성하는 소재지요.
그래 이것을 或以膠漆布(혹이교칠포)로 嚴飾作佛像(엄식작불상).
아교나 옻이나 천으로 감지요. 나무나 흙으로 만든 부처님을 천으로, 그것도 삼베를 가지고 싸야 돼요. 그래야 그것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도 틀어지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麻로 아주 단단하게 싸요. 그리고 거기다 아교를 칠하고, 거기다 옻을 칠하고 거기다 개금을 하지 않습니까? 불상 조성하는 방법이 그렇거든요.
이런 것만 보더라도 불상을 조성하는 것이 상당히 발달했을 때, 이 법화경이 결집이 됐다는 것을 그냥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석가모니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라고,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읽습니다. 사실은요? 깨놓고 이야기 하면 법화경은 석가모니부처님보다 더 뛰어난 부처님이 설하신 것입니다. 이것은요.
석가모니부처님 당시는 이 정도 깊이 있는 경전이 필요치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 아함경 같은 그런류의 경전이나 통할 시절입니다.
이렇게 현학적인, 이렇게 깊이 있고 이중 삼중으로 뜻을 깔고 있는 이런 경전이 필요치가 않은 때입니다.
人智가, 사람의 지혜가 상당히 발달했을 때 그 사람의 지혜가 요구하는 바에 응해가지고, 깨달으신 많은 도승들이 이러한 경전을 새롭게 편찬한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지만 모든 경전은, 제가 오늘 날 경을 하나 써도 역시 如是我聞 하사오니 해가지고 부처님인 세존, 석가세존이 설하시고 아라한이 결집한 것으로 그렇게 맞춥니다.
언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30년 뒤에 결집을 해도 역시 그 형식과 그 법칙에다 맞추어서 결집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경전 결집은 하나의 원칙이 있어요. 그 원칙에다 맞추어서 결집 하면 아무 탈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련경도 나오고 지장경도 나오고 부모은중경도 나오고 우리나라에 오면 천지팔양경도 나오고 그렇지요.
그것 전부 중국에서 만들고 한국에서 만든 경전입니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전부 석가세존이 설한 것이다 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는 공부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 깨달으신 부처님이니까요. 최소한도 경을 결집할 정도, 편찬할 정도 되면 아주 뛰어난, 석가모니 깨달음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깨달음을 성취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도 다 부처입니다. 아무 손색이 없는 분들입니다. 안팎으로 다 깨달은 부처입니다. 우리는 속만 부처지만, 그 분들은 겉도 부처입니다. -불상 조성이 상당히 발달한 때에 결집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은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
또 줄그어요. 皆已成佛道. 무엇으로 불상을 조성했든지 불상 조성하는데 조금만 인연이 있어도 皆已成佛道라. 이것은 본래 부처라는 뜻입니다.
彩畫作佛像(채화작불상). 색깔로 그림을 그리고, 또 불상을 만들고,
百福莊嚴相(백복장엄상). 부처님귀도 어깨에 닿게 만들고 그냥 그림 그리고 형상 만드는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百福莊嚴相을 만들고
自作若使人(자작약사인)이라. 스스로 만들어도 좋고, 돈을 들여 가지고 남을 시켜서 만들어도 좋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다 이미 불도를 이뤄 마쳤다.
또 乃至童子戱(내지동자희)로, 동자가 장난삼아
若草木及筆(약초목급필)로, 나무를 꺾어가지고, 아니면 어디서 붓을 하나 훔쳐와 가지고 아니면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손톱으로,
或以指爪甲(혹이지조갑)으로, 손톱으로 나뭇잎에다 대고 그리는 겁니다. 손톱으로 나뭇잎에다 대고요.
인도에 큰 나뭇잎. 그것 장경 만드는 그 나뭇잎에 손톱으로 그리면 글씨 잘 써지고 그린 잘 그려지거든요. 或以指爪甲으로. 손톱을 가지고서 而畫作佛像(이화작불상). 불상을 그린다 이 말입니다. 불상을 그린다. 그럴 것 같으면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이, 이와 같은 모든 사람들이 漸漸積功德(점점적공덕)하야, 점점 공덕을 갖추어서 具足大悲心(구족대비심)일새.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皆已成佛道입니다. 무조건 皆已成佛道입니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손톱을 가지고 불상을 그려도, 그것이 뭐 착한일하고 수행이 됐다고 해서 皆已成佛道가 아닙니다. 본래 부처라는 뜻입니다.
궁극적 차원ㆍ본래인의 차원ㆍ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주 절대 평등의 차원. 그것을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것을 보는 겁니다.
그것만 보이는데요.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그것만 보여요.
차별상 안 보여요. 학식이 있다 없다. 잘났다 못났다. 무슨 뭐 그 사람이 선심이 있다 악심이 있다. 이것 안 보인다고요.
고려청자를 볼 줄 아는 사람은 고려청자만 눈에 들어옵니다.
안목이 얕은 사람은 그 수 억 짜리 고려청자를 가지고 개 밥그릇으로 써요. 하지만 안목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고려청자로 탁 들어옵니다.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모든 사람을 보니까 전부 부처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걸 부정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걸 부정할 수 없어서 해놓은 소리입니다 이것이요.
但化諸菩薩(단화제보살)하야 다만 보살을 교화해서
度脫無量衆(도탈무량중). 한량없는 중생들을 度脫하고, 이런 수준 높은 소리 아무에게나 하면 뺨 맞는 겁니다. 그거 외도나 하는 소리다.
아주 난 고생고생하고 용맹정진하고 육바라밀 열심히 닦고, 아~ 그냥 3천배 4천배하고 온갖 그런 난행고행을 하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뭐란 말이냐? 이렇게 되거든요. 결과적으로 네가 잘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부처가 될동말동하는데,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이것이 아마 경이 잘못 됐거나 외도의 경전이거나... 이렇게 이해하겠지요.
그 동안의 우리 상식적인 불교에서 볼 때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그런 불교를 익혔다 하더라도, ‘법화경의 차원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완전히 환골탈퇴를 해야 됩니다.
완전히 한 꺼풀 벗어나야 됩니다.
若人於塔廟(약인어탑묘)와 만약에 어떤 사람이 塔廟와 寶像(보상)과 及, 그리고 畫像(급화상)에 以華香旛蓋(이화향번개). 꽃ㆍ향ㆍ번개로서 敬心而供養(경심이공양)커나,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하거나
若使人作樂(약사인작악). 사람을 시켜서 춤을 추게 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게 하거나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하되, 擊鼓吹角貝(격고취각패)라. 북을 치기도하고 角貝를 불기도하고 또 簫笛琴箜篌(소적금공후).
퉁소를 불기도하고ㆍ젓대를 불기도하고ㆍ금슬공후를 불기도하고ㆍ琵琶鐃銅鈸(비파요동발). 비파를 타기도하고ㆍ鐃 銅 鈸(바라춤 출 때 쨍 하는 것.) 이런 것을 가지고 하기도하고ㆍ如是衆妙音(여시중묘음)으로, 이와 같은 갖가지 아름다운 소리로, 盡持以供養(진지이공양). 모두 가져서 공양을 하며 或以歡喜心(혹이환희심)으로, 혹 환희한 마음으로 歌唄頌佛德(가패송불덕). 노래를 불러서, 우리가 찬불가를 부른다든지, 온갖 노래 부르는 것 있지요? 그런 노래로써 부처님의 덕을 찬송하는 겁니다.
乃至一小音(내지일소음). 다 안 따라 해도 좋아요. “둥글고 밝은 빛”한구절만 해도 좋은 겁니다. 乃至一小音. 조그만 것 하나만 한다 하더라도 뭐라고요? 그 다음에 이것 저는 모르겠네요. 참~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 입니까? 야~ 보십시오. 참 법화경, 세상에 이렇게 불교가 쉬운 겁니다. 사실 이것이 마음에 확 다가서기만 하면 이보다 더 쉬운 것이 없습니다. 사실불교는 쉬운 겁니다. 괜히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난행고행하게 하고 용맹정진하게 하고, 뭐 돈도 없는데 계속 보시하라고 하고, 그것 참 갈등이잖아요. 갈등할 것이 없어요. 욕심 부리고 사세요. 아무 갈등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부처입니다. 우리 본성을 보라고요. 本來人. 본래인에 착안을 하라. 궁극적 차원. 나에게 내재해 있는 궁극적 차원에 착안하라. 겉으로 떠 있는 내 모습 말고, 내 내면의 모습에 착안하라. 이렇게 쉬운 것을 갖다가... 그 다음에 더 가관인 소리가 나와요.
若人散亂心(약인산란심)으로, 若人이 散亂心. 이것이 뭡니까?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여기 앉아서 ‘법화경공부 합네 하고 책을 펴놓고 있지만 속으로는 온갖 잡생각 다하고 있어도’이런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乃至以一華(내지이일화)를 법화경한권 펴 놓는 것, 이것이야 굉장하지요. 그런데 꽃 한 송이. 이걸 가지고 供養於畫像(공양어화상)이야. 그림 앞에 놓든지 아니면 불상에 갖다 놓든지 하면
漸見無數佛(점견무수불). 점점 無數佛을 친견하고 또
或有人禮拜(혹유인예배)커나, 예배를 하거나 또는 或復但合掌(혹부단합장)커나, 합장만 하거나, 합장도 하기 싫고 예배도 하기 싫으면 손만 한 번 번쩍 들어요. ←乃至擧一手(내지거일수).
참 쉽다. 乃至擧一手입니다. 한 손만 번쩍 들어요.
그것도 귀찮으면 或復小低頭(혹부소저두)라. 조금 고개만 까딱해요.
제가 제일보기 싫어하는 것, 고개만 까딱 하는 것. 세미나 같은 것 하고, 사회자가 손님을 청해가지고 손님들 소개할 때 고개만 까딱하는 것, 제가 세상에 제일보기 싫더군요. 일본 T V를 딱 틀면 고개를 척~ 숙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할 때, 일본사람들은 고개를 척~ 숙이는데,
한국 사람들은 고개만 까딱하고 말아요. 그 정도 밖에 아니해요.
하는 짓이 참 박복하게 돼있어요. 그래도 여기는 부처라고 해놨어요.
小低頭. 한국 사람들처럼 고개만 한 번 까딱해도 以此供養像(이차공양상)하면, 이것으로써 불상에, 부처님이 아니고, 불상에만 공양을 해도 漸見無量佛(점견무량불)하고, 점점 無量佛을 친견하고 自成無上道(자성무상도)하고, 저절로 無上道를 이룬다. 이것이 皆已成佛道나 마한가지지요. 저절로 無上道를 이루고 廣度無數衆(광도무수중)한다.
한량없는 무수한 중생들을 널리 제도해서 入無餘涅槃(입무여열반).
無餘涅槃에 들어가되, 如薪盡火滅(여신진화멸)이니라. 불이 다 타고 불이 꺼지고, 재까지 싸늘하게 식은 것과 같이 그렇게 열반에 들어간다.
또 若人散亂心(약인산란심)으로,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散亂心이 뭡니까?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그 마음으로,
入於塔廟中(입어탑묘중)하야, 塔廟中에 들어가, 부처님 탑이나 뭐 있으면 탑 가까이에 떡 가가지고는 一稱南無佛(일칭나무불)이야.
南無佛! 한 번 소리치는 겁니다. 그렇게만 해도 그 다음에는 뭐라고요?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 한 번 南無佛! 하는 것으로 皆已成佛道라고 했잖아요.
방편품이 법화경에서 안목이라고 그러거든요. 眼目.
그렇게 안목이 될 만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皆已成佛道라고 하는 이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고, 참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지요. 그 동안 말해오던 불교에 비춰볼 때,
이 말은 청천벽력과 같습니다. 여기 용맹정진 하라는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3천배 하라는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뭐 참선해야 된다ㆍ기도해야 된다ㆍ경 봐야 된다ㆍ무슨 주력해야 된다ㆍ뭐 비파사나 해야 된다ㆍ그런 소리 한 마디도 없어요.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우리의 현재 이 마음 이대로도 좋다 말입니다.
우리내면의 참다운 나. 거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만 있으면 끝이다 말입니다. 궁극적인 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얼굴 이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것 떠나서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것 떠나서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皆已成佛道니라.
於諸過去佛(어제과거불)의, 모든 과거부처님이 在世或滅後(재세혹멸후)에, 세상에 있을 때나, 혹은 열반에 든 뒤에 若有聞是法(약유문시법)하면, 이런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만약에 어떤 이가 ←若有. 만약에 어떤 이가 이 법을, 이 가르침을 듣기만 할 것 같으면 뭐라고요?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니라. 하~~ 참, 이것 기가 막힌 내용입니다.
법화경의 이 이야기 듣기만 해도 전부 불도를 이뤘어요.
그럼 궁극적으로 뭐냐? 말 하고ㆍ들을 줄 알고ㆍ고개 끄덕거릴 줄 알고ㆍ기뻐서 하하 하고 한 번 웃을 줄 알고ㆍ화나면 화도 한 번 낼 줄 알고ㆍ이 위대한 능력입니다. 이것이 그것을 바로 가르쳐 주는 소리입니다.
그 능력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닙니다. 절대 평등한 지극히 높은 그 자리. 지극히 고귀한 그 자리입니다.
皆已成佛道니라. 제일 마지막 구절이 제일 좋네요. 부처님 계실 때든지 돌아간 이후, 지금 이 순간이든지 若有聞是法.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들을 것 같으면 皆已成佛道니라. 이 이야기를 듣는 이것으로써...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관계없어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여기 마지막에다가 이 법을 듣는 사람은 다 불도를 이룬다.
아~ 우리가 그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구나. 하나님이구나.
神이구나. 그대로 살아있는 신이요ㆍ살아있는 하나님이요ㆍ살아있는 부처구나ㆍ조금도 손색이 없구나. 바로 이러한 因입니다.
참 정말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3> 미래불 증명장
가, 방편문을 열다
未來諸世尊(미래제세존)이 其數無有量(기수무유량)이라
是諸如來等(시제여래등)이 亦方便說法(역방편설법)하리니
一切諸如來(일체제여래)가 以無量方便(이무량방편)으로
나, 진실을 보이다
度脫諸衆生(도탈제중생)하야 入佛無漏智(입불무루지)케하나니
若有聞法者(약유문법자)는 無一不成佛(무일불성불)하리라
諸佛本誓願(제불본서원)은 我所行佛道(아소행불도)를
普欲令衆生(보욕영중생)으로 亦同得此道(역동득차도)니라
未來世諸佛(미래세제불)이 雖說百千億(수설백천억)
無數諸法門(무수제법문)이나 其實爲一乘(기실위일승)이니라
諸佛兩足尊(제불양족존)이 知法常無性(지법상무성)이언만은
佛種從緣起(불종종연기)일새 是故說一乘(시고설일승)하시나니
是法住法位(시법주법위)하며 世間相常住(세간상상주)하니
於道場知已(어도량지이)하고 導師方便說(도사방편설)이니라
<4> 현재불 증명장
天人所供養(천인소공양)인 現在十方佛(현재시방불)이
其數如恒沙(기수여항사)라 出現於世間(출현어세간)하사
安隱衆生故(안온중생고)로 亦說如是法(역설여시법)이시니라
知第一寂滅(지제일적멸)이언만 方便力故(이방편력고)로
雖示種種道(수시종종도)하시나 其實爲佛乘(기실위불승)이니라
知衆生諸行(지중생제행)의 深心之所念(심심지소념)과
過去所習業(과거소습업)의 欲性精進力(욕성정진력)과
及諸根利鈍(급제근이둔)하시고 以種種因緣(이종종인연)과
譬喩亦言辭(비유역언사)로 隨應方便說(수응방편설)이시니라
<5> 석가불 증명장
가, 중생을 위한 대자비
今我亦如是(금아역여시)하야 安隱衆生故(안온중생고)로
以種種法門(이종종법문)으로 宣示於佛道(선시어불도)니라
我以智慧力(아이지혜력)으로 知衆生性欲(지중생성욕)하야
方便說諸法(방편설제법)하야 皆令得歡喜(개령득환희)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我以佛眼觀(아이불안관)호니
見六道衆生(견육도중생)이 貧窮無福慧(빈궁무복혜)하야
入生死險道(입생사험도)하야 相續苦不斷(상속고불단)하며
深著於五欲(심저어오욕)하대 如犛牛愛尾(여리우애미)하야
以貪愛自蔽(이탐애자폐)하야 盲瞑無所見(맹명무소견)하며
不求大勢佛(불구대세불)과 及與斷苦法(급여단고법)하고
深入諸邪見(심입제사견)하야 以苦欲捨苦(이고욕사고)할새
爲是衆生故(위시중생고)로 而起大悲心(이기대비심)호라
나, 방편문을 열다
我始坐道場(아시좌도량)하야 觀樹亦經行(관수역경행)하며
於三七日中(어삼칠일중)에 思惟如是事(사유여시사)하대
我所得智慧(아소득지혜)는 微妙最第一(미묘최제일)이언만은
衆生諸根鈍(중생제근둔)하야 著樂癡所盲(착락치소맹)이라
如斯之等類(여사지등류)를 云何而可度(운하이가도)어뇨
爾時諸梵王(이시제범왕)과 及諸天帝釋(급제천제석)과
護世四天王(호세사천왕)과 及大自在天(급대자재천)과
幷餘諸天衆(병여제천중)의 眷屬百千萬(권속백천만)이
恭敬合掌禮(공경합장례)하고 請我轉法輪(청아전법륜)커늘
我卽自思惟(아즉자사유)하대 若但讚佛乘(약단찬불승)이면
衆生沒在苦(중생몰재고)하야 不能信是法(불능신시법)일새
破法不信故(파법불신고)로 墜於三惡道(추어삼악도)리니
我寧不說法(아녕불설법)하고 疾入於涅槃(질입어열반)이라하다가
尋念過去佛(심념과거불)의 所行方便力(소행방편력)하고
我今所得道(아금소득도)도 亦應說三乘(역응설삼승)이로다
作是思惟時(작시사유시)에 十方佛皆現(시방불개현)하사
梵音慰喩我(범음위유아)하사대 善哉釋迦文(선재석가문)
第一之導師(제일지도사)여 得是無上法(득시무상법)하고
隨諸一切佛(수제일체불)하야 而用方便力(이용방편력)이로다
我等亦皆得(아등역개득) 最妙第一法(최묘제일법)이언만은
爲諸衆生類(위제중생류)하야 分別說三乘(분별설삼승)호라
小智樂小法(소지낙소법)하야 不自信作佛(불자신작불)일새
是故以方便(시고이방편)으로 分別說諸果(분별설제과)호니
雖復說三乘(수부설삼승)이나 但爲敎菩薩(단위교보살)이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我聞聖師子(아문성사자)의
深淨微妙音(심정미묘음)하사옵고 稱南無諸佛(칭나무제불)하며
復作如是念(부작여시념)하대 我出濁惡世(아출탁악세)호니
如諸佛所說(여제불소설)하야 我亦隨順行(아역수순행)하리라
思惟是事已(사유시사이)하고 卽趣波羅奈(즉취바라나)호니
諸法寂滅相(제법적멸상)을 不可以言宣(불가이언선)이언만은
以方便力故(이방편력고)로 爲五比丘說(위오비구설)호니
是名轉法輪(시명전법륜)이라 便有涅槃音(변유열반음)과
及以阿羅漢(급이아라한)과 法僧差別名(법승차별명)호라
從久遠劫來(종구원겁래)로 讚示涅槃法(찬시열반법)하대
生死苦永盡(생사고영진)이라하야 我常如是說(아상여시설)호라
다, 진실을 보이다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我見佛子等(아견불자등)의
志求佛道者(지구불도자)가 無量千萬億(무량천만억)이
咸以恭敬心(함이공경심)으로 皆來至佛所(개래지불소)하니
曾從諸佛聞(증종제불문) 方便所說法(방편소설법)이라
我卽作是念(아즉작시념)하대 如來所以出(여래소이출)은
爲說佛慧故(위설불혜고)니 今正是其時(금정시기시)로다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鈍根小智人(둔근소지인)과
著相憍慢者(착상교만자)는 不能信是法(불능신시법)일새
今我喜無畏(금아희무외)하야 於諸菩薩中(어제보살중)에
正直捨方便(정직사방편)하고 但說無上道(단설무상도)호라
菩薩聞是法(보살문시법)하고 疑網皆已除(의망개이제)하며
千二百羅漢(천이백나한)도 悉亦當作佛(실역당작불)이니라
라, 희유한 법과 사난장(四難章)
如三世諸佛(여삼세제불)의 說法之儀式(설법지의식)하야
我今亦如是(아금역여시)하야 說無分別法(설무분별법)호라
諸佛興出世(제불흥출세)는 懸遠値遇難(현원치우난)이며
正使出于世(정사출우세)라도 說是法復難(설시법부난)이며
無量無數劫(무량무수겁)에 聞是法亦難(문시법역난)이며
能聽是法者(능청시법자)가 斯人亦復難(사인역부난)이니
譬如優曇華(비여우담화)를 一切皆愛樂(일체개애락)은
天人所希有(천인소희유)라 時時乃一出(시시내일출)일새니라
聞法歡喜讚(문법환희찬)하대 乃至發一言(내지발일언)이면
卽爲已供養(즉위이공양) 一切三世佛(일체삼세불)이라
是人甚希有(시인심희유)는 過於優曇華(과어우담화)니라
汝等勿有疑(여등물유의)어다 我爲諸法王(아위제법왕)하야
普告諸大衆(보고제대중)하노니 但以一乘道(단이일승도)로
敎化諸菩薩(교화제보살)이요 無聲聞弟子(무성문제자)니라
汝等舍利弗(여등사리불)과 聲聞及菩薩(성문급보살)이
當知是妙法(당지시묘법)은 諸佛之秘要(제불지비요)니라
마, 진위를 가려 믿기를 권함
以五濁惡世(이오탁악세)에 但樂著諸欲(단락착제욕)일새
如是等衆生(여시등중생)은 終不求佛道(종불구불도)하며
當來世惡人(당내세악인)이 聞佛說一乘(문불설일승)하고
迷惑不信受(미혹불신수)하야 破法墮惡道(파법타악도)하리니
有慚愧淸淨(유참괴청정)하야 志求佛道者(지구불도자)어든
當爲如是等(당위여시등)하야 廣讚一乘道(광찬일승도)호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諸佛法如是(제불법여시)하야
以萬億方便(이만억방편)으로 隨宜而說法(수의이설법)하나니
其不習學者(기불습학자)는 不能曉了此(불능효료차)니라
汝等旣已知(여등기이지) 諸佛世之師(제불세지사)의
隨宜方便事(수의방편사)하고 無復諸疑惑(무부제의혹)하며
心生大歡喜(심생대환희)하야 自知當作佛(자지당작불)이니라
妙法蓮華經 弟二 方便品 終
첫댓글 _()()()_
...........皆已成佛道. _()()()_
唯一佛乘(유일불승)이니라. ㅡ 오직 부처의 삶이 있을 뿐이다. 궁극적인 차원(본래인)에 착안하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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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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究竟皆得一切種智하니라... 본래인의 차원에서는 우리 모두가 “부처다” 라고 하는 것이 一佛乘이고,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一切種智이다..唯一佛乘... 이 세상에는 오직 부처의 삶이 있을 뿐...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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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는 것은 좋아요. 그냥 하는 것은 좋다고요. 그것은 자기수행 방법이고 자기 삶이고, 그것이 성이 차는 사람이니까요. ...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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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已成佛道...본래 그모습그대로이다.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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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_()()()_
묘법연화경 나무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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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_()()()_
잘 보았읍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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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皆已成佛道. _()_
개인성불도 ^^ 감사합니다. 혼자 독학 중인데 큰 도움이 되엇습니다.
佛知見=一切種智
모두가 부처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일체 종지다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皆已成佛道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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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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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