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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 - David Munrow
연주자 -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
녹음 - 1973
레이블 - Virgin 5 61284 2 (2 CDs)
뭐지 이건?
이상할 정도로 잠이 안 오는 새벽 시간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더워서일까, 낡은 집에 하루가 멀다고 꼬이는 벌레 탓일까. 나도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가지고 싶지만, 그게 참 어렵다.
발라드라고 하면 흔히들 성시경이나 김연우를 떠올릴 것이다. 뭐, 그것도 맞긴 하다. 그런 발라드들이 꼭 필요한 삶의 어느 축축하고 누긋한 시점이 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이 앨범의 발라드는 많이 다르다. 발라드의 원래 뜻은(오늘도 위키에게 의존할 따름이다) 중세 프랑스의 시 형식으로, 대개 8행으로 이루어진 3개의 연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절의 마지막 한 두 행은 후렴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마쇼의 발라드는 A(1~3행), B(4~6행), C(7~8행)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책에는 나와 있다. 뭐, 시의 내용이 사랑이든 영웅의 삶이든 어떤 이야기가 주가 된다는 건 공통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기욤 드 마쇼(1300~1377)를 모른다. 하이쿠 쓰는 마츠오 바쇼는 알아도. 그는 중세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시인 겸 작곡가로, 보헤미아 왕의 시종으로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랭스 대성당의 신부가 되어 살았다. 대표곡으로는 미사곡 ‘노트르담’과 론도 ‘나의 마지막은 나의 시초(Ma fin est mon commencement)’가 있다. 문학적으로는 제프리 초서에게 영향을 끼치고, 음악적으로는 후대에 남을 여러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 기록된 걸 보면 당시에 제법 한 가닥 하시던 분이었나 보다.
그런데...음...좀 별로다.
이건 과연 누구를 위해, 아니면 뭘 목적으로 하고 쓰인 걸까.
이 앨범의 제목은 ‘궁정식 연애의 예술’이다. 중세시대 귀부인에 대한 비밀스럽고도 예스러운 기사도적인 사랑, 더 자세히는 기사가 가신처럼 여겨지는 봉건적 주종관계 하의 사랑이다. 아하, 그럼 대충 앨범의 분위기가 짐작이 되고,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발라드’의 개념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수도 있겠군.
일단 특기할만한 것은 앨범에 실린 그의 곡들 대부분이 선율들을 동시에 등장시키면서 화음이라는 것을 만든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위한 ‘대화’라는 것이 성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 이것을 원시적인 대위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심이 되는 주선율을 성악가가 부르는 식으로 진행하면 거기에 대응하여 기악 반주나 다른 성악가가 부가적인 선율을 엮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가다가 이게 좀 난잡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이 화음들은 어디서 콘트라스트를 주거나 어디서 해소감을 줘야지, 하는 목적의식이 희박해서, 되는대로 생기고 부딪히곤 한다. 머니코드같은 듣기 편안한 화성진행 같은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볼 사람도 있을 거고, 기어가 안 맞물린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각 멜로디의 가사가 달라지는 경우에는 더 듣기가 어려워진다. 이게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던 걸까? 만일 그걸 노린 거라면 마쇼 씨, 리스펙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리고 이놈의 백파이프랑 크럼호른이 약간은 신경을 건드린다! 마쇼 본인은 이 곡의 진정한 본성은 백파이프를 써야 드러난다고 했다는데, 어떤 의도에서였는지는 아쉽게도 아직 간파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집중은 되는 음색이다.
초기 다성악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앨범인 것 같다. 이 곡을 어떻게 듣는 게 최선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기본적으로는 나름 규칙적인 형식을 가진 세속적인 사랑노래들이니만큼 가사를 찾아보고(구글에 영문검색을 하면 나오는데, 다 불어라서 번역이 필요하다) 그때그때 생성되는 화음에 집중하기 보단 일단 가사에, 그리고 개별 성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각각 들으면 될 것 같다. 사실 감정적으로 뭔가 고양되거나 수학적으로 잘 짜인 곡들은 아니라는 인상을 자꾸 받는다. 그러나 기욤 드 마쇼라는 개인이 직업적인 ‘작곡가’로서 출현하여 처음으로 악곡에 ‘형식’을 부여하고 선율‘들’을 동시에 엮어내기 시작한 것은 아마 역사적인 가치가 충분하리라. 개인적으로는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도 듣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 앨범에 마쇼의 곡은 14곡이 있고, 그 중 발라드는 7곡이다. 이 앨범은 73년도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51곡을 데이비드 먼로우가 자신이 지휘한 고음악 그룹을 이끌고 하나하나 구성해낸 양질의 음반이다. 1977년도에 그래미 어워드(실내악 부문)를 받았다(!). 영국의 뛰어난 고음악 전문가이던 데이비드 먼로우는 이 음반을 내고 76년도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아쉬운 일이다. 우리나라 국악계에도 원전연주와 중세음악 복원을 전문적으로 할 수재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하고 기대를 해보는 바이다.
아직 내 학식과 마음이 얕아서인지, 더 많은 걸 배우고 접해야 할 뿐이다...
평점- 5.8/10
참조 (붉은 글씨가 기욤 드 마쇼가 쓴 곡들이고, 나머지는 다른 작곡가들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Volume I: Guillaume De Machaut And His Age
A1 A Vous, Douce Debonaire
A2 Hareu! Hareu! - Helas! Ou Sera Pris Confors 덩굴식물들을 위해 쓴 것 같다.
A3 Amours Me Fait Desirer 약간 성긴 곡이다. 음계에서 벗어난 반음들은 의도적인 것이리라. 특히 g음에서 c#음으로 바로 상승하는 멜로디가 약간 의아했지만, 나름의 맛이 있다.
A4 Trop Plus Est Belle - Biauté Paree - Je Ne Sui mie certeins 커튼 사이로 햇빛이 강하게 비친다. 집은 조용하다. 꽃들은 천천히 바람을 달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신비감과 영성, 따듯한 빛. 아멘. 3번째로 좋아하는 곡이다.
A5 Se ma dame m'a guerpy 이 앨범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 잔잔한 자장가와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선율이 고음부에서 진행될 때는 충만감과 처연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선율도 가능한 안정적이고 변화가 덜한 진행을 하며, 8분의 12 박으로 나뉘는 느린 춤을 춰도 좋을 것 같다. 해금을 붙인 국악 편곡으로 해도 괜찮겠다.
A6 Se Je Souspir 비교적 순진하고 동심이 드러나는 선율이다. 이 곡은 그냥 자연스럽게 들으면 좋다.
A7 Dame Se Vous M'estes lointeinne 기악곡이다. 이 곡은 아무래도 폭이 넓은 백파이프의 음색 탓인지 군인들의 의식에 걸맞다고 생각된다. 예스럽다는 느낌은 좀 적다.
A8 Quant Je Sui Mis 비올과 여타 현의 서주가 1분여 정도 먼저 나오면서 고즈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곡은 단순한 구성이지만, 서사성과 감성이 돋보인다. 석양녘에 혼자 지쳐서 언덕을 걸어가는 기사를 상상해보자.
A9 Mes Esperis Se Combat 빙엔의 송가처럼, 한 음절이 여러 음에 걸쳐 길게 불러지는 특징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은근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다각적인 곡이다.
A10 Ma Fin Est Mon Commencement
B1 Douce Dame Jolie 내가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비를레 형식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흥겹고 민요풍이며, 뇌리에 콱 박히는, 모던할 정도로 잘 짜인 선율이 나온다. 잡스럽지 않고 직설적인지라 호방하다고 할까. 잘 들어보면 몇몇 음절의 끝을 비슷한 발음으로 처리한 (e - 에, 어 발음) 운율이 돋보이고, 뼈대를 잡아주는 류트 소리와, 피리가 후렴에 따라붙는 것도 좋다. 가사는 여인을 향한 상당히 간절하고 절실한 사랑 고백인데, 유튜브에서 다른 편곡들을 찾아보면 이렇게 신나게 편곡을 해놓지는 않았고 Scarborough Fair 같은 느리고 서정적인 연주들이 여럿이다.
B2 De Bon Espoir - Puis Que La Douce 안정적이고, 서정적이며, 약간의 달콤함이 있다. 성벽 안쪽의 장미밭에서 듣기에 어울릴 것 같다.
B3 De Coutes Flours 이 곡은 3분 20초 정도부터 오르간 독주가 나오는데, 이 부분이 후대에 어떤 음악이 나올지 엿보여주는 것 같아서 제법 괜찮다. 중간 중간 오르간 선율의 리듬이 변칙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을 주목해보시라. 전반부의 반주도 비교적 풍부하게 차있다는 느낌이 든다.
B4 Quant Theseus - Ne Quier Veoir 이 곡은 두 선율의 가사진행이 조금씩 다름에도 큰 이질감 없이 엮여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느낌이다.
B5 La Septime Estampie Real 피리, 북 편성의 기악곡이다. 야만인들이 외지인 주인공을 묶어놓고 불을 핀 채 춤을 추는 영화의 한 장면에 넣으면 상당히 괜찮을 것이다.
B6 Quant J'ay I'espart 약간 부드럽고도 처연한 느낌이 있다. 금관으로 성악 반주를 하는 것은 신선한 느낌이 있다.
B7 Phyton, Le Mervilleus Serpent 보컬의 놀리는 듯한 가벼운 선율이 멜로디언 같은 반주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생각보다 머리에 오래 남는다. 특히 ‘레미솔파미레도’ 음형이 기억에 남는다.
B8 Armes, Amours - O Flour Des Flours
Volume II: Late Fourteenth Century Avant Garde
C1 A L'arme, A L'arme
C2 Phiton, Phiton
C3.a Hé, Trés Doulz Roussignol
C3.b Ma Tredol Rosignol
C4 Fumeux Fume
C5 De Home Vary
C6 Istampitta Tre Fontane
C7 Trés Doulz Amis - Ma Dame - Cent Mille Fois
D1 Plasanche Or Tost
D2 Amour M'a Le Cuer Mis
D3 Tribum Quem
D4 Helas! Je Voy Mon Cuer
D5 Contre Le Temps
D6 Andray Soulet
D7 Le Greygnour Bien
D8 Ma Douce Amour
D9 Restoés, Restoés
Volume III: The Court Of Burgundy
E1 Cemoys De May
E2 La Belle Se Siet
E3 Je Ne Fai Toujours
E4 Files A Marier
E5 Amoreux Suy
E6 Jeloymors
E7 Navré Je Suis
E8 Lamentatio Sanctae Matris Ecclesiae Constantinopolitanae (1454) (O Trée Piteulx - Omnes Amici)
F1 Par Droit Je Puis
F2 Donnés L'assault
F3 Vostre Trés Doulz Regart
F4 Helas Mon Dueil
F5 Bien Puist
F6 Vergine Bella
F7 Basse Danse II La Sagna
Baritone Vocals – Geoffrey Shaw
Composed By – Anthonello De Caserta* (tracks: D2), Borlet (tracks: C3.a, C3.b), Franciscus (tracks: C2), F. Andrieu* (tracks: B8), Binchois* (tracks: E3 to E6, F3, F5), Dufay* (tracks: E1, E2, E7 to F2, F4, F6), Machaut* (tracks: A2 to A4, A6 to A9, B1 to B7), Johannes Vaillant* (tracks: C7), Jehan De Lescurel (tracks: A1), Johannes De Meruco (tracks: C5), Joannes Simon Hasprois* (tracks: D8), Matheus De Perusio* (tracks: D6, D7), Pykini* (tracks: D1), Solage (tracks: C4, D4), Solage (tracks: D4)
Conductor [Director] – David Munrow
Cornett [1st] – Michael Laird (2)
Cornett [2nd] – Iaan Wilson
Countertenor Vocals [1st] – James Bowman (2)
Countertenor Vocals [2nd] – Charles Brett
Drums [Nakers], Drums [Tabor], Tambourine – David Corkhill
Engineer [Balance] – Stuart Eltham
Ensemble – The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
Lute, Strings [Citole], Viol [Tenor], Crumhorn [22nd] – James Tyler
Organ, Harp [1st] – Christopher Hogwood
Other [Pronunciation Advisor] – Michael Freeman
Producer [Recording] – Christopher Bishop
Rebec [Bass], Strings [Crwth], Viol [Bass], Crumhorn [3rd], Recorder [3rd] – Oliver Brookes
Rebec [Treble], Fiddle [Mediaeval], Harp [2nd] – Eleanor Sloan
Recorder [1], Crumhorn [1st], Shawm, Bagpipes [Cornemuse], Reeds [Kornholt], Bagpipes – David Munrow
Tenor Vocals – Martyn Hill
Text By, Text By [Translations] – David Munrow, Michael Freema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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