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호와로 인하여-
합 3:16-19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전쟁이 일어난지 백여일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가자지구는 아주 오래 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바로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가자지구입니다.
가자라는 명칭도 성경에 가사로 나오는데 바로 블레셋의 수도였던 도시입니다.
팔레스테인이란 나라도 바로 블레셋의 영어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점령할 때 하나님이 일부러 남겨두신 가나안 땅의 나라가 바로 블레셋이었습니다.
사사기 3장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즉 가나안땅을 점령할 때에도 하나님은 블레셋을 일부러 남겨두어서 이스라엘이 항상 전쟁준비를 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말게 하신 것입니다.
그 블레셋 지역, 가자지구를 지금 이스라엘은 아예 깡그리 없애고 자기 나라로 만들려고 계속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무자비하게 주변국과 전쟁을 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2600년 넘게 나라 없이 식민지 생활을 해서 힘이 없이는 자국의 평화와 존립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군사력을 중동의 아랍지역에 과시함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우리 이스라엘을 쳐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아예 팔레스타인 즉 블레셋을 없애려고 계속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어서 마치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처럼 북이스라엘 왕과 남유다 왕이 따로 정치를 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650년경에 앗수르에 의해 침략당해 멸망했고 하나 남은 남유다 역시 기원전 580년경에 신흥강대국인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라 없이 지내다가 최근 1945년에 드디어 유엔에 의하여 이스라엘이란 나라로 국권을 인정받았으니 그 동안 얼마나 나라 잃은 설움과 한이 맺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주 독하고 잔인합니다.
더 이상 나라를 빼앗기기 싫어서 전 국민이 다 군대에 지원하고 여자도 모두 군인이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라를 위해서라면 총을 멥니다.
오늘 본문인 하박국의 시대배경은 이러한 이스라엘이 멸망할 시기에 쓰여진 예언서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고 마지막 남은 남유다마저도 아주 무섭고 잔인한 바벨론 군인들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라는 계시를 받고 쓴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따지고 되묻습니다.
“하나님, 왜 저 잔인하고 포악한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우리같이 선량하고 착하고 하나님의 선민인 남유다를 침략해서 우리를 없애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남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사용하지만 그 바벨론도 얼마 안 있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면서 위로를 하십니다.
본문은 하박국의 결론부분으로서 이러한 남유다의 멸망소식을 듣고 노래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양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하는 바로 그 노래의 어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16절 말씀에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떨리고 내 입술이 흔들리고 내 뻐가 썩는다고 한탄합니다. 무엇을 들었기에 이러할까요?
바로 이제 포악하고 무서운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 와서 남유다를 짓밣고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라는 소식을 듣고 나니 창자와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절망과 고통과 좌절 가운데서 하박국선지자는 환경을 넘어서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기뻐할 것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래 가사입니다.
17-18절 말씀에 포도나무가 없고 무화과 열매도 없고 논밭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며 기뻐하리라.
비록 2600년전 남유다가 망하기 전에 하박국 선지자가 부른 노래이지만 이 노래는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신앙의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왜일까요?
현대사회는 돈과 경제력이 우리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세게요. 물질 만능주의의 세계요. 머니머니 해도 머니 돈이 최고인 경제적 맘모니즘 즉 돈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고 좋은 집,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만, 돈이 없고 달셋방에 살고 자전거도 없는 사람들은 늘 움츠리며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인간인지라 물질 때문에 어려워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대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에 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얼마나 마음에 와닿고 우리가 꼭 배워야 할 믿음의 태도인 줄 모릅니다.
하박국은 비록 이제 나라가 멸망하고 점령당해서 피폐해지고 가난해지고 궁핍해지는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물질적인 궁핍함과 어려움이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하박국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환경이나 여건, 조건, 물질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17절-18말씀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논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과 소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겨워하며 기뻐하리라.
즉 주변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나는 하나님 때문에 내 인생이 즐겁고 기쁘다 라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삶의 근원과 의미와 이유와 기쁨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의 신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제 1장 1과에서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 답을 보면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의미와 근간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즉 찬양과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최고의 인생의 즐거움과 목적을 잊어버립니다.
내 주위 환경이 좋아지면 행복해지고 내 주위 환경이 어려워지면 우울해집니다.
내가 살아서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사명이요 목적 달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고 하나님께 정성껏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시며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를 칭찬해주시며 받아주십니다.
내가 1등을 안하고 꼴찌를 해도 우리 삶이 예배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내가 부자가 아니고 가난해도 우리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논밭에 소출이 없고 소와 양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삶의 최고의 목적이요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2.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18절 말씀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포도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여호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이야 말로 참 믿음입니다.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요? 여호와로 말미암아.
누구가 그렇게 한다고요? 나는.
세상사람들은 출세와 명예와 부귀 영화와 세상 즐거움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
나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예언대로 남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왕을 비록하여 모든 귀빈과 고위관직자들과 장로들과 기술자와 여러 엘리트 계급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나중에는 일반백성들까지 바벨론으로 잡혀 갑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부 백성들이 다시금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 때의 귀환 모습을 느헤미야와 에스라서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오니 남아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집과 건물은 다 무너졌고 땅은 황폐 해졌고 과수원은 다 사라져서 먹을 것 하나 없었습니다.
당장 잘 곳이 없어서 천막을 치고 맨 땅에서 자야 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외칩니다.
느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황폐한 땅, 무너진 성읍과 가옥, 초토화된 과수원, 다 사라진 논과 밭, 도무지 사람들이 정착할만한 곳이 못되어 버린 이스라엘 땅을 보고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하지만 느헤미야는 반대로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환경을 보면 아무 것도 기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는 바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뻐할 것이 없는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3.나는 높은 곳에 다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19절 말씀에 주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라.
이 세상의 여건과 환경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나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때문에 높은 곳에 서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연연해 하지 않고 환경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더 높은 신앙의 세게, 영적인 세계, 성령이 주시는 환희와 소망의 세계에서 나는 거주하며 그 곳에서 뛰어논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 사람과는 다른 물질의 세계, 육신과 욕망만 있는 세계에서 거주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더 높은 세계, 더 고차원적이고, 더 숭고하고 고고한 영적인 세게, 하나님의 나라을 경험하고 맛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누리고 살아야 할 곳은 더 높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을 누리면서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저차원적인 곳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사슴처럼 뛰어 올라서 성령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다니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