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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피집 가는 길의 야생화 계곡을 오르는데 미나리냉이꽃이 하얀미소로 계속 반긴다.
▒▒ 풍경이 있는 한국여행
정연휘 시인의 포토에세이·3-167
숲으로-오지 대평리 굴피집
-산골소녀 영자,도혜道慧스님 생가가 있는
2016,5,1.
산행정보|이동거리:4km,소요시간:04:00(이동3:00,휴식1:00)고도:최저133m,최고421m
삼척에는 옛 화전민의 산간주택인 너와집과 굴피집이 신리와 대이리에 민속유물로 지정 돼 있다. 21세기 아직
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화전민의 굴피집이 있어 '삼척숲속여행' 산사람들과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 사무골士武
谷 오지탐방에 올랐다. 삼척에서 38국도를 타고 도계·태백으로 가다가 동굴아취 이정표가 있는 신기에서 직진
도계방면으로 고개를 넘어서 내리막길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에서 좌회전 다리를 건너면 대평리 마을이다.자
동차전용도로 다리 아래 계곡을 따라 가면 대성광업 현장 주차장에 자동차를 파킹하고 산속으로 뻗쳐 난 골짜
기가 사무골이다.
그 계곡을 밟아 가다가 옆의 언덕으로 올라 갔다가,또 계곡 바닥으로 내려 왔다가 물을 세번 건너고,경사 40도
에 이르는 깔닥고개를 몇 번이나 지나면서,이런 산속에 정말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어진다. 가파른 산 중턱에
약간씩 넓은 터, 돌축대를 쌓은 빈터 주위는 시누대밭이 둘러저 있어 근방 옛 집터임을 알수 있는 곳이 몇 군
데나 보인다.70년대에는 이 깊은 산골에도 마을을 이뤄 살았던 화전민의 흔적이다. 1.5km,30여분 그렇게 오르
다 보니 계곡 개울가에 빈 집이 하나 보인다. 문이 뜯기다시피 떨어저 나간 작은 방에는 쌓인 책들도 나뒹구는
살림살이도 없는 빈집이다. 아, 이 집이 2000년 7월 <그 산 속에 영자가 산다> kbs2 tv 그 영자의 집이다.
"등산의 기쁨은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그 절정에 달한다" 니체가 말했다.등산은 올라가기 전의 설렘과 힘들게
올라가는 도중의 기쁨과 좌절, 다시 힘내기를 걸처 정상에서 맛보는 땀의 결정체 희열이다. 거기에 80평생을
산에서 올인한 노老화전민 생애의 스토리가 있으니 금상첩화이다. 이 시대 마지막 화전민 노옹의 생애를 직
간접으로 만나 보는 것은 오늘 산행의 정상을 오름 보다 더 의미 있는 한시대의 꼬리를 만저보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굴피집이 있는 곳은 멀기도 멀다.영자의 집 뒷산 급경사를 이룬 산 위로 오른다. 짐승들만 다닐만한 토끼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기를 그렇게 10리쯤 1시간 40여 분만에 훠이훠이 어렵사리 만나는 굴피집,옛 화전민의 굴
피집 정상흥(86) 할아버지 집에 닿았다.
사무골 계곡 개울가에 제법 많은 야생화 -하얗게 아름다운 미나리냉이꽃,수줍움 타는 광대수염꽃,한쪽으로
기어가는 듯한 벌깨덩굴꽃,구술봉꽃...야생화들이 반겨주는 계곡을 거슬려 오른다.그 야생화들 머리 위에 5
월의 초록빛이 점점 짙어가고 있었다.봄이 절정을 맞으면 산에는 꽃보다 더 싱그러운 신록이 깔깔대며 우리
를 부르잖는가, 5월의 야생화와 신록이 유혹하는 숲으로 간다. 그 숲 끝머리에는 우리나라 유일한 화전민이
살고있는 굴피지붕의 굴피집이 있다.
굴피집 가는 길의 야생화1 광대수염꽃
굴피집 가는 길의 야생화2 벌깨덩굴꽃
정겨운 개울과 그 개울가에 핀 야생화와 5월의 눈이 부신 신록에 감탄하면서 개울 건너고,개울을 오른다.
옛 사무골 마을의 집터이다. 마당앞 돌축대의 이끼는 고풍하지만,오랜 세월에 일부는 무너저 내렸다.
굴피집 가는 길의 야생화3 산조팝나무꽃
굴피집 가는 길의 야생화4 말발도리꽃
개울 작은폭포 가에 하얗게 핀 아름다운 꽃은? 덜꿩나무 꽃일까? 말발도리 꽃일까? 물참대 꽃일까? 꽃이 금방
세수한 듯 하얀 얼굴로 반긴다.잎에 ∨줄무뇌가 있는 것은 덜꿩나무인데 ∨줄무뇌가 없으니 말발도리 꽃이다.
옛 집터를 지나고 혜일 수 있는 야생화에 미소를 띠우며 출발지로부터 1.5km,한참을 오르니 산골소녀 영자,도
혜道慧스님의 생가가 눈에 들어온다.
산골소녀 영자,도혜道慧스님 생가1
계곡길과 오른쪽 산길로 오르는 3거리 그곳에 외로운 섬 같은 양철지붕의 쓰러질듯 홀로 앉아있는 저 집이 산
골소녀 19살 영자의 집이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은 주인이 살지않는 영자,도혜道慧스님의 생가이다. 오늘의
정점 정상흥 할아버지의 굴피집으로 가려면 이 집 앞의 계곡으로 오르지 말고, 이 집의 뒷산 까파른 언덕배기
를 계속 올라야 한다.
산골소녀 영자,도혜道慧스님 생가2
산골소녀 영자,도혜道慧스님 생가4
세간을 뒤흔들었던 16년전 2000년 7월 <그 산 속에 영자가 산다> kbs2 tv 부녀의 삶이 방송 직후,때묻지않은
순수한 산골소녀 영자(당시19세)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동통신 CF모델로도 출연했고... 사건,
아버지의 죽음,...그 순수했던 산골 영자는 산더미같은 냉혹한 세파에 혼미했으나..., 현재는 도혜道慧스님으
로 삼척 산골 암자에서 불심정진 중이다. 세월이 흘러 주인이 없는 생가는 한 쪽으로 쓰려질듯 위태로운 그
영자의 집 윗방에서 밖 앗을 내다본 풍경이다.
영자의 생가 뒷산으로 오른다.아주 심한 깔딱고개를 조금 아니 많이 걸어야한다. 토끼길 같은 오르막 욱어진
숲길에는 미선나무 열매같은 부채모양의 느티나무 씨앗이 꼐속 밢였다.찾아가는 정상흥 할아버지의 굴피집
이 보일 기색이 없다.
굴피집 가는 길의 야생화5 아주 작은 파란 구슬봉꽃이 땀을 딲아준다.
오르다 보니 6부 능선쯤에서 작은 평지가 펼쳐지며 시누대숲이다. 이 깊은 산골에 시누대는 저절로 자랐는가?
아니면 마을이 형성되면서 옛날 방바닥 장판격인 시누대자리를 만들기 위해 누구인가 심어서 키웠는가? 사철
푸름을 잃지않는 시누대숲을 지나면서 이 산골에서 15가구가 살았다는 옛모습을 그려본다.
조금 더 오르니 보인다. 시누대 촘촘한 사이로 굴피지붕 추녀가 보인다.
굴피집 마당가에 환히 웃는 작약 식구들이 반겨준다.
대평리 사무골 정상흥 할아버지 굴피집1
십리길 1시간 40여분 산을 올랐다. 8부능선에 그리 넓지않은 평지 아래 푸른 시누대에 둘러쌓인 굴피집이 길
위 코 앞에 처다보인다.집 옆과 뒤에 옛날 불밭火田으로 일궜던 비탈밭,지붕가리용으로 채피해 쌓아 놓은 굴
피무더기,그 앞에 굴피집 본채와 마당 옆에 창고는 아직은 단정하고 건재하였다.
대평리 사무골 정상흥 할아버지 굴피집2
할아버지를 뵈려고 찾았으나 정지 대문은 열려 있어 외출은 하지 않은 것 같아 안심하며 집주변을 구경하였다.
집 옆에는 농기구 창고의 한쪽 흙벽이 무너 젔고, 그 주위에는 작약이 꽃망울을 만들었고,애기똥풀은 샛노랑꽃
을 피웠다.옛 화전민 너와집 구조의 집 부억에는 소마구와 소꼬질 다락방이 참 신기하였다.
툇마루
방
대평리 사무골 정상흥 할아버지 굴피집 집 구경을 하고 기념촬영
집 주변 밭으로 갔다.노지재배 딸기밭에는 흰꽃이 피고 있고,딸기밭 더럭 위 넓은 밭에서 할아버지는 황기씨를
채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전민 주택인 굴피집에서 사시는 어른을 만나고 싶어 찾아 왔다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더니 반가히 맞아 주었다.
정상흥(86) 할아버지와 정연휘 시인과 심동석 시인
시계방향으로 심동석,강복순,정상흥 할아버지,정연휘,최형순,최세영,000
할아버지의 생수 우물|집에서 200여m 떨어진 경사로 아래에 있는 우물이다. 예전에는 됫병 3병으로 물을 길
렀는데, 요사이는 수월치 않아 1병만 나른다.
우물과 텃밭을 구경하고 굴피집 마당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도시락 점심판을 펼쳤다.
점심 반주용으로 갖고 온 담금주를 올렸더니"담금주 보다 쌩소주가 좋다"며 맛있게 드셨다.한참 얘기를 나뉘다
가 됫병 소주를 갖고와서 손님 대접 하신다며 쌩소주를 직접 잔에 부어주었다.
일행 최형순 숲해설사가 "건배"하니까,정상흥 할아버지는 "짱"이라며 잔을 맞대 환히 웃었다.
할아버지 술 실력은 강건했다."장작으로 불때어 그 숯화로에서 냄비밥을 짖는다. 그 밥으로 아침과 저녁식사를
하고, 점심은 쐬주로 때운다"하였다. 매식마다 쐬주 3잔을 반주한다며,마음 놓고 술을 먹게되면 됫병 한병도 거
뜬하다 했다. 86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병원에 간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60세 정도로 뵈는 동안
에 강건했다.
정연휘 시인 정상흥 할아버지 인터뷰
정상흥 할아버지는 1931년에 태어났다. 가족은 부모님과 3남1녀이다. 4살 때 산아래 마을에서 사무골에 들어
와 26살 때에 군대에 갔다. 군 제대후 3천 평 땅에 황기를 심어서 3년후 캐고 나서,지금 살고 있는 집을 3년에
걸처 손수 지었다.5년마다 굴피지붕을 새로 가는 사이 2남2녀가 태어났고,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또
한 마을 사람들도 편리함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렸고, 학교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도 읍내로 떠나갔다.산 생활의
불편함쯤 모르고,봄이면 드릅과 초피를 따고 여러가지 모종을 심엇다.여름이면 800평 밭에 김을 매고,굴피집
을 이을 굴참나무의 껍질을 벗겼다.굴피집을 새로 잇고 수확시기에는 수확하고 틈틈이 하수오 등 약초를 캐고,
겨울이 오기전 쓰러진 나무를 져놓고... 그렇게 자손한테 손 벌리지 않고 자족하면서 손녀들에게 줄 용돈도 챙
겨둔다. 산사람 정상흥 할아버지는 산기山氣로 화색和色이 좋고,강건康健하고,동안童顔이니, 충분이 100수를
더 넘길 체질이다.할아버지의 장수를 예견하면서 푸르른 5월에 자연에 뭏여사는 자연인의 건강수명을 읽을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었다,굴피지붕은 어떻게 올리는지요? 굴피지붕은 밑에 사누대를 깔고 그 위에 굴피는 4,5장이 겹쳐있다.굴
피지붕의 굴피 수명은 5년이다. 하지만 수시로 덧덮어 주지 않으면 빗물이 새기 때문에 수시로 비가 새는 곳
을 찾아 굴피를 덧덮고 잇다. 굴피지붕의 재료인 굴피를 채피할 때는 낫과 지게만 지고 나가면 된다.굴참나무
는 한번 겁질을 벗기고 3년이 지나면 속껍질이 다시 살아 나와서 다음에 또 껍질을 벗길 수 있다. 껍질을 벗길
때에는 속살이 상하지 않게만 벗기면 껍질이 새로 살이나고 또 살아나고 하니 지붕재료는 연속적으로 풍부
하다.굴피를 벗길 때 너무 어린 굴참나무는 껍질이 얇아서 못쓰고, 너무 큰 나무는 억세서 못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무골에는 열댓집 정도가 불밭火田을 일구며 살았다.사무골뿐만 아니라 건너편에 보이는
큰병산 8부능선에도 꽤 여러채의 집이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의 여기 집들은 대부분 억새로 지붕을 이은 샛집
이거나 굴피집이었다. 이 산중의 두메마을이 없어진 것은 70년대에 벌어진 화전민정리사업 때문이다.문뜩 이
오지 산중에 샛집지붕, 너와지붕,굴피지붕을 이은 수십 채의 집과 불밭火田에서 체험하는 소규모의 민속촌은
정상흥 할아버지처럼 장수하는 산촌힐링촌으로 각광 받지않을까-.
정상흥(86)할아버지는 100세시대에 100세 이상으로 무병장수 하실분이다.100세 장수 특성을 다 지녔기 때문
이다. 무병장수한 분들의 특성은 데즈먼드 모리스의 '머리기른 원숭이'에서 7가지를 보면,①천성적으로 규칙
적인 운동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할아버지는 이런 운동을 평안한 마음으로 산보 대신 산일과 밭일을
좋아한다.②장수노인들은 평온하면서도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했다.할아버지는 삶에 대한 열정은 있
지만, 분노나 극도의 흥분과 같은 감정들을 애초 품지 않으니 그러하다.③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지 않는다고
했다.할아버지는 과거 속에서 살지 않고,지극히 현실적으로 오늘의 활동에 정력적이다.④자신들이 하는 일
에 성공을 거둔다고 했다.할아버지는 작고 평범하지만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목표를 달성,자신이 한 일에 더
자부심을 느낀다.⑤습관은 모나지 않고 온건하다고 했다.할아버지는 매일 세끼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으며,
적당량의 술도 마신다.⑥규칙적으로 삶을 산다 했다.할아버지는 혼돈과 스트레스가 없는 일상적이고 반복적
인 생활을 즐긴다.⑦눈은 반짝거린다고 했다.할아버지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동안에 유머 감각이 살아 있고,
단신으로 긍정적이다. 그래서 정상흥(86)할아버지는 100세시대에 원시림 산속에서 신선한 공기와 천연샘물
과 매일 산일 밭일로 산사람이기에 100세 이상으로 무병장수 하실분이라고 감성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인터뷰를 마치고 맛있게 쐬주 한 잔 드시는 정상흥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아쉬워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일행을 배웅하며 서 계시는 5척단신의 할아버지 무념무상 표정이다.할아버지의 무념무상 표정을 읽을 수는 없
었지만, 5월의 신록에도,여름 장마비에도, 가을의 단풍에도, 겨울 눈이 툇마루까지 쌓일때도 늘 혼자 지내는
것만은 알 수 있잖는가.
첫댓글 좋은곳 소개해주시고 상세설명까지 감사드림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전설의고향에서 본 집 같아요
저런곳에서 아직도 살고 계시네요
할아버지가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