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열심히 생활한 덕분에 5남매 중 저만 평범하나마 다른 형제들 보다는 잘 살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한 20년 살아보니 남편과 자식이 다가 아닌 것 같고 형제가 힘들게 사니 괴롭습니다. 도와주자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고, 안 도와주자니 의리가 아닌 것 같아 갈등이 됩니다. 남편한테도 친정 도와준다는 것을 숨겨야 되고요.
천만원 빌려달라고 하면 못받을 것 염두에 두고 백만원만 주는 것이 좋아 돈 안주면 큰 화는 없어
주려니 돈이 아깝고 안 주려니 욕먹을 것 같지요. 돈도 안 쓰고 욕도 안 먹겠다는 걸 욕심이라 그래요. 선택을 해야 됩니다. 도와 달라는데 안 도와줘도 법률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고, 털끝만큼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형제간의 문제는 독립된 가구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문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요? 바로 내 마음입니다. 오빠나 동생이 어렵다는데 외면하고 있는 내 마음이 좀 꺼림칙하다는 겁니다. 이 꺼림칙한 것을 해소하려면 돈을 좀 써야 돼요. 몸이 개운하지 않으면 돈 내고 목욕탕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개운하지 않을 때도 목욕료를 내듯이 돈을 조금 쓰면 돼요.
머리를 하고 얼굴을 예쁘게 가꾸고 좋은 옷을 입어서 인기관리 하듯이 형제한테 돈을 주는 것도 인기관리입니다. 그런데 돈이 아까우면 그 인기관리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미장원을 갈 때 적당한 건 혼자 결정해도 되지만 몇 십만원 든다든지 남편이 알면 문제가 생기겠다 싶으면 미리 말을 하는 게 좋겠지요. 인기관리 한다고 남편 몰래 큰돈을 쓰면 남편이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합니다. 큰돈을 줄 때는 의논해서 주고 작은 돈은 적당히 알아서 처리 하는 걸로 말입니다. 그리고 머리 안한다고 해서 문제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안 준다고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돈도 안 쓰고 인기관리도 하고 싶으니까 머리가 아픈 겁니다. 만약 돈이 조금 들더라도 인기관리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내가 도움을 주면 형제가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것은 다만 내 문제일 뿐입니다. 안 준다고 죄짓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렇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면 질문자에게 안 좋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돈은 100만원인데 내가 인기 관리하느라고 10만원만 줬다면 상대는 돈을 받으면서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처럼 주고도 욕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내야 돼요. 빌려주는 건 어리석습니다. 빌려주면 못 받을 확률이 높을 뿐더러 빌린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칭찬도 못 듣잖아요.
우리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때 우리는 줬다고 생각하지만 차관으로 줬기 때문에 북한은 빌렸다고 생각합니다. 빌려줬다면 ‘너 그거 어디다 쓸 거냐?’ 하고 간섭할 수 없지요. 과감하게 공짜로 주고 공짜로 주는 대신 어디로 가는지는 검사하자고 제안했으면 남쪽에서도 반대가 덜하고 관계도 좋아졌을 겁니다. 굶어 죽는다는데 빌려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빌려준 것도 아니니 이처럼 잘한다고 하는 일도 원칙에 어긋나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형제지간에도 주려면 공짜로 줍니다. 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면 못 받을 걸 생각해서 100만원을 그냥 줘버리고 끊어 버리는 것이 좋아요. 욕 좀 얻어먹고 인사 들을 생각은 아예 안 합니다. 하나도 안 주고 외면하면 욕을 많이 먹겠지만 이렇게 하면 큰 화는 안 일어납니다. 천만원 빌려주고 못 받으면 나중에 거의 원수 됩니다. 안 빌려주면 관계가 좀 서먹하겠지만 원수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게 다 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토회 지도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