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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100대 과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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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양 돌리 탄생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이안 읠머트 박사와 케이스 켐벨 박사는 성장한 양을 복제시키는데 성공해 그 결과를 1997년 2월 27일자 <네이처> 지에 게재했다. 1930년대 독일의 발생학자 스페만이 핵 속에 생명체 형성을 위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고 주장한 이래 복제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 개구리나 소, 양 등을 복제해 왔다. 그러나 윌머트 박사팀의 복제는 발생초기의 수정란을 나누는 기존의 복제와는 달리 다 자란 양의 체세포를 이용한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인류의 100 대 과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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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어머니의 몸밖에서 수정된 아기가 태어났다.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시험관에서 수정되었다고 해서 '시험관 아기'라 불린 루이스 브라운은 현대 의학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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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달 착륙
1958년 소련이 지구 둘레의 궤도를 선회하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 성공시키며 우주 경쟁 시대를 선포하자, 이에 자극 받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가 지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후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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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1957년 10월 4일에 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과학 기술의 우위를 믿고 있었던 미국으로서는 미사일 격차라는 참담한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해 11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과학기술 특별 보좌관을 임명하고 기존의 과학 자문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시켰다. 또한, 1958년에는 연방 과학 기술 회의가 설립되어 산업계, 행정부, 대학의 핵심 인물들이 과학 기술 정책의 주요 이슈를 토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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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구조 규명
한 생물체가 지니는 모든 형질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유전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사람은 멘델이었으나 그의 연구결과는 다른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30여 년이 지난 1900년 몇 명의 학자들에 의해 멘델의 연구가 재발견됨으로써 유전은 생물학계의 중심적인 탐구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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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원자탄 폭발
1905년 아인슈타인이 질량-에너지 등가법칙(E=mc2)에 의해 예언한 원자폭탄은 독일의 한과 슈트라스만이 연쇄반응을 발견하고, 페르미가 미국 시카고대학 축구장 지하의 비밀 실험장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듦으로써 가시화되었다. 급기야 '맨해턴 계획'을 통해 미국이 1945년 7월 16일 네바다의 한 사막에서 핵폭발 실험에 성공하자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인류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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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 건설
우라늄 핵과 같이 핵분열이 가능한 물질에 중성자가 충돌했을 때 물질은 붕괴하여 2개의 서로 다른 원자를 생성하고 많은 열을 생성한다. 이를 핵분열 과정이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성자들이 새로 발생하게 되고, 이들 중성자는 다른 원자들이 연쇄적으로 분열하도록 할 수 있다. 원자로의 기본 원리는 원자폭탄과 같다. 다른 점은 원자폭탄의 경우 이러한 연쇄 반응이 제어되지 않는 반면, 원자로의 경우에는 그것이 매우 조심스럽게 제어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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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발명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계산을 편리하게 해주는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세기의 과학자 파스칼이 최초의 계산기를 발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컴퓨터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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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가속기 건설
입자가속기는 입자를 높은 속도 또는 에너지를 갖도록 가속하는 장치이다. 가속기 건설은 자연 상태보다 고에너지 입자를 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또 자연방사능 원소에서 얻는 입자는 전자, 감마선, 알파 입자에 한정되어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1932년 이후로 점점 더 중요해져 가고 있다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러더퍼드의 실험 이후에 입자의 가속이 핵변환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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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팽창 발견
오랫동안 사람들은 우주를 질서정연하고 안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득한 고대부터 지금까지 별들은 늘 그 자리에 그 모습대로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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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약은 인류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왔던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탄생한 귀중한 산물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20세기에 앞다투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약들 중에서도 페니실린은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희망을 안겨 준 '기적의 약'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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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성립
미시 세계의 소립자들은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띠고 있으며,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불연속적인 값만 가질 수 있다.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가 체계화시킨 양자역학은 이러한 대상의 운동을 기술하는 이론이다. 이는 우리에게 미시 세계를 이해할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생각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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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개발
움직이는 영상을 전자기파를 이용해 먼 곳으로 전송하는 아이디어는 19세기부터 이론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정지 화상을 전송하는 장치는 실제로 제작되었다. 움직이는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데는 셀레늄의 성질이 이용되었다. 셀레늄은 1817년에 발견된 화학 원소로, 사진에서 은 화합물이 빛에 민감하듯이 이 물질의 전기 저항은 빛에 민감하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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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술의 발달
19세기 중엽부터 기계적 냉장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각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냉장고 사업에 뛰어들었고 1920년대에는 가정용 냉장고가 시판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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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이동설 등장
대륙이동설은 독일의 기상학자인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 1880?1930)가 1912년 경에 제안한 가설이다. 그것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세계상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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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 현상의 발견
초전도 현상은 어떤 조건 하에서 도체의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으로, 1911년 카메를링 오네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는 전류가 흘러도 열을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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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의 초파리 돌연변이 실험
1910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한 실험실에서 흰눈을 가진 수컷 초파리 한 마리가 태어났다. 당시에는 돋보기로 보아야 겨우 구분이 가능한 이 초파리의 탄생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유전학은 발생학 연구의 한 갈래 정도로만 인식되어 모건조차 발생과정의 돌연변이를 연구하기 위해 초파리를 도입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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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의 시작
인간의 말소리를 전파에 실어보낸다는 생각은 마르코니에 의해 무선 전신이 상용화된 후 여러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꿈이었다. 단순히 모스 부호를 통해 통신을 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음성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매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꿈을 달성한 것이 바로 벨에 의한 전화의 실용화와 라디오 방송의 실용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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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 등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독립적이고, 이 둘은 원래부터 우주에 존재했고 앞으로도 똑같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 질량을 가진 물체는 시간이나 공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물체들 사이에는 중력법칙에 따르는 인력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고전 물리학은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했고, 천체나 대포알 같은 거시 세계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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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의 최초의 비행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것은 고대의 신화나 설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인류의 오랜 꿈이자 숙원이었다. 이러한 꿈을 최초로 실현시킨 것은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에 의해 발명된 뜨거운 공기를 이용하는 기구(balloon)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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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 발명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교통과 통신의 혁명은 산업과 생활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통신 분야는 마르코니가 1890년대에 발전시킨 무선통신의 상업화와 그 뒤를 이은 여러 발명, 특히 진공관에 의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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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심리학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꿈이 '무의식으로 통하는 왕도'이며, 억압된 욕망이 꿈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여 성욕과 같은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과 콤플렉스를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의 근원을 성기에 대한 부러움과 거세 공포라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심리 발달을 전생애적으로 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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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의 양자가설
플랑크가 양자를 발견한 배경에는 19세기 말 물리학자들을 괴롭힌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 문제가 놓여 있었다. 그가 흑체 복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용광로처럼 가열된 구멍에서 복사되는 빛은 밝은 황색에서부터 적색, 청백색 등의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1884년 스테판의 추론을 같은 해에 볼츠만이 이론적으로 설명한 온도와 복사에너지의 관계는 총에너지=σT4 라는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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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혈액형 발견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외과는 수술기법과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두드러지게 진보했다. 마취술과 수술부위의 감염을 막는 무균처리법이 발달하면서 수술의 성공률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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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발견
방사능이란 물질 원자가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특성을 가리킨다. 1897년 앙리 베크렐은 우라늄 화합물에서 전에 본 적이 없는 강한 에너지가 저절로 방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곧이어 퀴리 부부는 우라늄 이외의 방사능 물질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각각 폴로늄과 라듐으로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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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통신의 등장
전신과 전화는 모두 통신 기술 시대의 도약을 가져온 큰 발명품들이다. 하지만 전파의 발견은 전신이나 전화보다도 더 큰 통신의 새 시대를 열었다. 전파를 발견한 것은 1887년 독일의 과학자 헤르쯔였다. 그러나 최초로 전파를 통신에 이용하여 한 사람은 귀리엘리모 마르코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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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의 발견
1879년에 영국의 크룩스(William Crooks)는 저압의 기체를 넣은 관에 고압의 전류를 흘리면서 알 수 없는 선이 음극으로부터 방사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보통 직선으로 진행하며 자기장의 영향을 받으면 구부러졌다. 그는 이 선을 음극에서 방사되어 나오는 극히 작은 대전된 입자의 흐름이라고 생각하여 음극선(cathode ray)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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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보존의 법칙 성립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열, 전기, 자기, 빛, 역학적 에너지 등이 서로 형태만 바뀔 뿐, 그 총량은 일정하게 보존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열기를 사용하면 전기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이는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만 열로 바뀔 뿐이다. 또 이 열로 물을 끓여 수증기를 발생시키고 이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면 열 에너지는 다시 역학적 에너지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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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발견
자동차가 바퀴 이래 교통 수단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발명품이라는 견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동차의 기본 전제는 간단하다. 소나 말이 끄는 탈것을 하나 골라서 모터를 달아 스스로 달리는 수레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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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츠에 의한 전자기파 확인
1860년대 초 맥스웰은 이전까지와는 약간 다른 방식을 이용해서 오늘날에도 전자기학의 뼈대가 되는 네 개의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어 내었다. 맥스웰이 만들어낸 방정식들을 연립해서 풀면 파동 방정식이 나오는데 맥스웰은 그 파동의 속도를 계산해내었다. 계산 결과는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그는 전자기파가 존재한다고 예언하고,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며 따라서 빛과 전자기파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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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등장
영화는 활동사진을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박물학자 마레(E.J. Marey)는 1888년에 권총형 사진기를 개량하여 감광판을 회전시켜 새의 잇따른 자세를 1초에 12회 촬영하였다. '연속기록사진장치'로 불린 마레의 카메라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영화촬영기의 모든 원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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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견
원자(atom)의 어원은 '쪼개지지 않는다'는 뜻의 그리스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원자는 단단한 당구공 같은 것이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라고 믿었다. 1897년 영국의 조셉 톰슨은 원자 내부에 질량이 수소 원자의 1/1000 정도밖에 되지 않고 음의 전기를 띤 아주 작은 입자, 즉 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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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의 발명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편리하게 쓰이는 전등은 1879년 토마스 에디슨과 영국의 조셉 윌슨 스완 경에 의해 동시에 발명되었다. 그러나 전등의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1811년 험프리 데이비 경이 두 전극 사이의 방전에 의한 빛을 발견하면서부터 전등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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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의 발명
1831년 영국인 마이클 패러데이가 금속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냄으로써 전화의 이론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1861년까지는 아무도 이 원리를 이용하여 소리를 전송하진 못했다. 독일의 요한 필리프 라이스는 1876년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꾸었다가 다시 소리로 전환하는 간단한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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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의 발명
근대 타자기의 원조에 해당하는 레밍턴 타자기는 1874년에 등장하였다.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 출품된 레밍턴 타자기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것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자기의 확산 속도는 매우 느려 1880년까지 팔린 타자기의 수는 단 5천 대에 불과하였다. 당시로만 해도 활자로 된 글은 오직 선전 광고뿐이었고 타자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은 인격적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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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방정식 성립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 기술은 물론 전자기학의 모든 법칙의 기본이 맥스웰 방정식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턴 물리학과는 달리 '장(field)'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이 정식화한 4개의 방정식은 이후 전자기학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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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완성
19세기에 많은 새로운 원소들이 추출되고 성질이 밝혀졌지만 원소들을 분류하려는 시도는 산발적으로만 이어졌다. 더욱이 1860년대에 70여 가지에 이르는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고 그 원소들의 속성을 잘 이해하게 되면서 원소들을 분류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이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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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횡단 해저전선 부설
1830년대 후기에 탄생한 전신 기술은 해저에 전선을 부설하여 대륙 간에 통신망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1848년에는 독일의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가 해저 전선에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절연체를 개발했다. 2년 후 영국의 도버와 프랑스의 칼레를 잇는 첫 번째 해저 전신 부설이 시도되었으나 실패하였고, 1851년에 두 번째 전선이 시도되어 마침내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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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마이트의 발명
1846년 이탈리아의 소브레로가 최초로 합성한 니트로글리세린의 폭발위력은 당시까지 사용되던 흑색화약에 비해서 매우 강했지만, 충격이나 마찰에 의해 쉽게 폭발했을 뿐 아니라 액체상태였기 때문에 취급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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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발전기의 등장
1840년대와 1850년대에는 전지를 대체할 수 있는 전기 발생장치로서 발전기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러한 발전기들은 절연된 철사를 코일로 감아 그것이 철제 영구자석의 자기장 안에서 기계력에 의해 회전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좋은 영구자석이라도 극히 약한 자기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발전기는 효율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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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의 유전법칙 등장
멘델의 유전법칙은 아마추어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이룩된 인류의 큰 자산 중의 하나이다. 그의 유전법칙은 처음에는 무시되어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지만 십 여년이 지난 후 그 가치가 공인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 유전학의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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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의 등장
내연기관이라는 개념은 17세기에도 존재했지만 그 실현을 위한 본격적인 모색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이다. 프랑스의 르노와르(J.J. E'tienne Lenoir)는 1860년에 최초의 내연기관을 발명하였다. 그것은 가스와 공기의 혼합 기체가 전기 불꽃에 의해 점화되면 폭발하면서 동력을 내는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르노와르 엔진은 구조가 복잡하고 연료 소모가 많아서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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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머 제강법 등장
19세기 중반에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할 필요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1856년에 영국의 발명가 베세머가 해결했다. 그는 전로에 녹은 무쇠를 주입하고 공기를 불어넣어 용융강을 만드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방법을 따르게 되면 선철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규소, 망간, 탄소가 산화되면서 선철이 강으로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화열이 강을 용융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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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법칙의 발견
19세기의 에너지 문제는 열과 일의 합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주울의 결론을 받아들이면 열의 칼로릭 이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문제에 부딪혀 있었다. 1850년 클라우지우스라는 과학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노의 원리는 그대로 유지되어 열기관의 열효율이 두 온도에만 관계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열은 다른 아무런 변화 없이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흐를 수도 있으며,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카르노의 원리가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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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온도 개념 성립
1780년에 샤를은 모든 기체는 온도가 증가하면 부피가 같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체의 부피 팽창 계수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두 개의 고정점 대신에 하나의 고정점을 갖는 온도 스케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이 아이디어로 인해 이제까지 액체를 넣어 제작해 왔던 온도계에 다시 기체가 사용되게 되었다. 기체 온도계에 대한 실험에서는 기체의 종류가 변하더라도 그에 따른 온도 스케일의 변화가 거의 미미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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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수술의 시행
마취술의 개발과 발전으로 수술할 때 통증을 제거하거나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마취술이 없었던 시절에는 큰 수술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1840년대부터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의 효과를 발견하여 마취제로 사용하면서 외과수술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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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14연대측정법 등장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가 하나 새로 발굴되었다. 언제적 유적인지 어떻게 하면 알아낼 수 있을까? 만약 그 유적지에서 타다만 곡식 한 알이나 무덤 속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발견된다면 연대 추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탄소14 연대 측정법을 쓰면 지금으로부터 수백년에서 4-5만년 전 사이에 살았던 유기체나 그런 유기체를 가공해 만든 물체의 원래의 유기체의 사망시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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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술의 등장
1839년 프랑스의 한 화가가 세계 최초로 동판에 요오드화은을 칠한 감광판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은 이후, 1851년에는 면화약을 에테르에 녹인 코로디온을 칠한 습식 유리판이 발명되어 사진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습판 사진술은 초상 사진과 보도 사진에 적합했으며, 미국의 남북전쟁을 계기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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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 등장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함께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2대 이론으로 불리곤 한다. 지동설이 지구와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밀어낸 것처럼 다윈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숭이를 닮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격렬한 종교적, 윤리적 논쟁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다윈의 이론은 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인류 과학사에 큰 혁명을 가져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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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기 발명
1796년 볼타가 전지를 발명함으로써 전기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이래, 1820년에 외르스테드가 전류의 자기작용을 발견하고 1831년에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하는 등, 19세기 전반에는 전기학상의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발견과 함께 전기의 힘으로 기계적인 작업을 하는 장치인 전동기의 개발도 다각도로 시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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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
1831년 영국의 과학자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했다. 1820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나침반, 즉 자기장을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패러데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석을 움직여 주면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전자는 전동기의 원리이고 후자는 전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원천인 발전기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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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
1820년대에는 기하학에 있어서 대혁명이 발생하였다. 1826년 2월 로바체프스키는 유클리드의 평행성의 공리를 부정하고, 〈평행상의 직선 l 밖의 한 점을 지나서 이 평행선의 주어진 직선 l과 만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직선을 그을 수 있다〉라는 공리를 설정한 새로운 기하학이 성립한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소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다. 헝가리의 볼야이도 로바체프스키와는 전혀 독립적으로 같은 기하학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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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제조
건축 기술은 19세기에 시멘트와 강철이 사용됨으로써 현격히 발전하였다. 시멘트에 대한 특허는 1824년에 아스프딘(Joseph Aspdin)이 취득했으며, 대규모 시멘트 공업은 1850년대에 포틀런드(Potland) 시멘트가 개발되면서 시작되었다.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을 섞고 물을 가하면 단단한 콘크리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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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러의 요소유기합성 성공
19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유럽에서는 무기화학은 광물분석을 중심으로 상당히 발전해 있었던 데 비해, 유기화학분야는 상대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그 주된 걸림돌 중의 하나는 생기론의 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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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가드로 가설
돌턴의 원자설, 즉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설과 게이 뤼삭의 기체 반응 법칙을 동시에 모두 성립시키는데는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필요하다. 1811년 아보가드로는 "같은 부피 속에 들어있는 기체의 분자 수는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같다"는 분자설을 발표했다. 게이 뤼삭이 기체 반응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한 산화 질소 반응을 돌턴의 원자설과 결합시켜 합리적으로 이 두 가설을 성립시키려면 필연적으로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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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턴의 원자설 등장
돌턴은 오랫동안 기체의 여러 가지 성질을 연구하던 중, 여러 가지 기체의 물에 대한 용해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각종 기체들이 무수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모든 기체는 각기 고유한 작은 입자들로 되어 있어서 이 입자의 크기에 따라 물에 대한 용해도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단서가 되어 그의 최대의 공적인 원자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44
기차의 등장
철도의 기원은 광산업에서 찾을 수 있는데 처음에 철도는 탄광 내부에서 사용되다가 점차 탄전 지방과 공업 지역을 잇는 운송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많은 기술자들은 매끄러운 레일과 차륜을 직접 접촉시켜 그 마찰로 기차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43
기체팽창법칙 발견
기체의 성질에 관한 연구는 근대 과학이 탄생한 이래 과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탐구되어 왔다. 그 결과 기체의 압력, 온도, 부피 사이의 관계가 각각 보일, 샤를에 의해 발견되어 그들의 이름을 따라 보일의 법칙, 샤를의 법칙이라 불리게 되었다. 보일의 법칙이란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라는 것이고 샤를의 법칙이란 일정한 압력 하에서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42
볼타전지의 발명
18세기는 초기의 전기현상 연구에서 많은 발견과 발명이 이어진 시기였다. 1745년에 무셴브뢰크가 라이든 병을 발명함으로써 정전기현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18세기 중엽 프랭클린이 천둥을 전기방전현상으로 설명하였으며, 1780년대에는 쿨롱에 의해 쿨롱의 법칙이 증명되었다.
41
종두법 시행
천연두는 고대부터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질병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얼굴에 천연두 감염의 영구적인 흔적인 곰보자국을 지니고 살아가야 했다.
40
지층의 원리 정립
17세기 아일랜드의 한 성직자는 구약성서에 나온 여러 사건의 경과 시간을 계산하여 아예 지구의 탄생 시점을 기원전 4004년 10월 26일 오전 9시라고 못박았다. 퀴비에(Cuvier)같은 생물학자도 대홍수로 전체 생물종이 바뀌었다고도 하였다. 교회의 논리가 과학에 적용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스코틀랜드 출신 허튼(Hutton, 1726?1797)은 1795년 <지구의 이론>이라는 책에서 지구의 지형을 조사한 결과 지구 표면의 구조가 서서히 단계적으로 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썼다.
39
쿨롱의 법칙 발견
뉴턴은 물체 사이에는 항상 인력이 작용하며, 그 크기는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후 과학자들은 화학결합이나 전기적 힘에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그것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실이 바로 쿨롱의 법칙이다.
38
갈바니의 동물전기 발견
18세기는 라이든 병이 발명되고, 천둥이 전기방전 현상으로 설명되는 등 전기현상에 관한 초기의 연구들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기였다. 이 점은 생리학이나 해부학 같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생체에 미치는 전기의 영향, 특히 전기충격이나 전기뱀장어의 충격과 같이 생체가 나타내는 전기현상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37
연소 원리 규명
18세기 내내 화학 전반을 설명해 주는 이론 체계였던 플로지스톤 이론은 16세기 의화학을 창시한 파라켈수스가 제창한 것으로, 1700년경 독일의 화학자 슈탈(Georg Ernst Stahl)이 체계화하였다. 플로지스톤은 모든 가연성 물질에 포함되어 있고 불에 탈 때 연기와 불꽃으로 빠져 나간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금속은 불에 탈 때 산화하여 오히려 무게가 늘어나는데, 이는 플로지스톤 이론의 반박증거가 됨에도 불구하고 무시되고 있었다.
36
라부아지에와 화학혁명
18세기 무렵 화학은 다소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주로 영국의 화학자들을 중심으로 대기로부터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산소 등의 성분기체들이 분리되고 그 성질들이 다양하게 연구되는 등 경험적 자료의 축적 면에서 상당한 성과들이 있었던 반면, 그런 자료들을 포함한 많은 화학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에는 여전히 플로지스톤 이론이 동원되고 있었다.
35
아크라이트 방적기의 등장
영국의 기술자 아크라이트는 1769년에 수력 방적기의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영국의 섬유산업 발전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크라이트가 1769년에 특허를 얻은 기계는 종래에 이미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던 롤러드래프트 장치와 플라이어가 붙은 방차의 꼬기, 감기, 기구를 멋드러지게 결합한 것이었다. 이 방적기는 보통 수차로 작동했기 때문에 수력 방적기라 불렸다.
34
린네의 생물의 분류체계확립
1707년 스웨덴의 읍살라에서 태어난 린네(Linneaus, Carl, 1707-1778)는 18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식물학자이다. 흔히 '분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는 이명법을 분류학에 적용한 학자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33
증기기관의 탄생
증기의 힘을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대에도 알려져 있었고 기원 후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을 실제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증기의 힘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17세기 말에 와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32
뉴턴 고전역학의 성립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자라 할 수 있는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정립한 역학 체계는 아인슈타인이 나오기 전까지 수 백년 동안 인류의 시공 개념을 장악했다. 흔히 고전역학이라고 불리는 이 역학 체계는 뉴턴의 힘에 관한 세 가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31
세포의 발견
코르크는 원형질이 없이 속이 빈 세포가 규칙적으로 배열해있는 것으로, 부피생장하는 식물의 줄기, 가지, 뿌리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보호조직이다. 영국의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은 당시에 개발되어 사용되기 시작하던 현미경을 이용하여 코르크를 관찰한 후, 이를 '작은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를 빌어 '세포(cell)'이라고 이름지었다. 1665년 그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상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그 구조를 상세하게 기술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를 출간하였다.
30
미적분법의 발견
미분학은 곡선의 접선을 긋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적분법은 곡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의 면적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방법 자체는 그리스 시대부터 논해져 왔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미적분법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할 수 있다.
29
파스칼의 원리 정립
유체정력학의 확립에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되는 파스칼의 원리는 1652년 무렵에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이자 종교가인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에 의해 처음으로 분명하게 정립되었다. 그것을 쉽게 풀어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28
토리첼리의 대기압 실험
17세기에 들어와 서양에서는 공기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토리첼리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진공의 존재한다는 사실과 대기압의 위력을 다음과 같이 실험적으로 증명하였다. 한쪽이 막힌 길고 두꺼운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채운 다음, 한 쪽을 손가락으로 막아 수은이 담겨진 그릇에 세우고 손가락을 떼었을 때 유리관 속의 수은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27
수은온도계 등장
온도라고 하는 것은 보통 우리가 덥거나 춥다고 느끼는 감각을 결정한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가 접촉했을 때 고온의 물체는 시원하다고 느끼고, 저온의 물체는 따뜻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두 물체가 같은 온도에 도달했을 때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했다고 한다.
26
갈릴레이, <두 개의 우주체계에 대한 대화>출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33년에 코페르니쿠스 우주체계, 즉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교회가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해 금지령을 내린 상황에서 갈릴레이가 <두개의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를 출판하고 지동설을 옹호함으로써 금지령을 어긴 것이 죄목이었다.
25
데카르트와 베이컨의 과학철학
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였던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교육제도의 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가 지은 저술 가운데 <학문의 진보>와 <과학의 신기관(Novum organum)>에는 17세기 초의 유럽 학문을 혁신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자신감에 충만한 그의 기독교적 학문 혁신론이 잘 드러나 있다.
24
하비의 혈액순환이론
고대이래 서양에서는 로마 황제의 시의이자 의학자였던 갈레노스의 인체구조 및 작용에 관한 이론이 정설로 통용되어왔다. 갈레노스는 인체의 세 가지 중요기능--소화, 호흡, 신경--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했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위와 장을 거쳐 간에 이르러 '자연의 영(natural spirit)', 즉 피로 바뀌어서 정맥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고 영양분으로 소모된다는 설명이 소화에 대한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23
케플러의 1, 2 법칙 발견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촉발된 천문학 혁명은 케플러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티코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던 케플러는 브라헤가 죽은 후 스승의 정밀한 관측 자료를 몽땅 물려받았다. 케플러는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몇 개의 원운동만으로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애써 봐도 8분의 오차를 없앨 수가 없었다.
22
천체망원경 제작
1609년 갈릴레이는 먼 데 있는 물체를 확대하여 보는 '망원경'이라는 것이 네델란드의 미델부르크의 안경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한스 리퍼셰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전해에 '망원경'의 발명특허권을 얻었다. 갈릴레이는 렌즈를 여러 가지로 조합하여 광학적 성질을 연구하고 손수 몇갠가의 개량된 망원경을 만들었으며 그것으로 하늘을 살펴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했다. 그는 망원경 관찰을 통해 천체가 전통적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지구보다 완전하거나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21
길버트, <자석에 대하여>
16세기 말 런던의 유명한 의사이며 후에 궁정의가 되기도 했던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가 1600년에 출판한 책 <자석에 대하여>는 근대 자기학과 전기학을 태동시킨 저작으로 일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석에 대하여>는 자기 현상에 관한 기본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놓은 체계적인 논의였고, 이 주제에 관한 이처럼 방대한 저술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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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의 발견
너무 작거나 멀리 있어서 맨 눈으로 분석할 수 없는 물체를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사용하여 확대해서 본다는 착상은 과학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작은 물체를 확대하는 기능을 가진 현미경은 1590년에 네델란드의 젠센에 의해 최초로 발명되었고, 현미경의 초점 조절 장치는 1668년 이탈리아의 캄피니가 개발하였다.
19
그레고리오력의 반포
1582년 교황 고레고리우스 13세는 기존의 달력체계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달력체계를 선포하였다.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율리우스력은 1태양년을 365.25일로 하고, 4년 마다 하루씩 '윤일'을 넣어 달력과 계절이 일치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측정할 때 생기는 약간의 오차로 인해 100년마다 하루씩 늦어지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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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살리우스의 새로운 해부학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돈다고 하여 천문학의 혁명을 시작하던 시기에 해부학에서도 벨기에 출신 베살리우스(Vesalius, 1514?1564)가 주도한 새로운 흐름이 있었다. 베살리우스는 파리와 이탈리아 파두아 대학에서 공부한 뒤 파두아 대학 해부학 교수로 임명된 뒤 당시의 관례인 대리 해부를 거부하고 직접 인체 해부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1543년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란 7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에 실린 해부도는 너무나 생생하여 한동안 능가하는 책이 없었다.
17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등장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이탈리아에 유학할 때 마침 붐을 이룬 신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우주가 단순하며 수학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16
삼차방정식의 일반 해법 발견
일찍이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x3 + x2 = c 라는 형태의 3차방정식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3차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그리스와 이집트에서도 3차 방정식을 풀겠다는 노력은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15
콜럼부스의 항해
황금의 나라 인도를 향한 스페인 왕실 소유의 탐사대는 드디어 1492년 10월 12일 벌거벗은 야만인들이 사는 한 해변에 도착하였다. 탐사대의 대장인 콜럼버스(Columbus, 1451?1506)는 이 땅을 '구원의 성자'란 이름의 '산 살바도르'라고 불렀다. 신대륙에 유럽인의 발자국이 처음으로 찍힌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이 땅을 진짜 인도 대륙이라고 믿었다. 1497년 브라질을 탐험한 아메리고 베스풋치의 항해기로 신대륙이 널리 알려진 뒤 그 이름은 비로소 아메리카가 되었다.
14
금속활자 등장
우리 나라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책을 인쇄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금속활자가 처음 만들어져 사용된 것은 고려 시대 고종 21년(1234) 경이었다. 당시의 학자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 후집에서 <고금상정예문> 50권을 주자(鑄字)로 인쇄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고금상정예문>은 오늘날에 전해지지 않아 어떤 모양의 책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3
0의 발견
그리스의 수학이 엄격한 논리적 사고를 북돋우는 기하학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도의 수학은 일찍부터 수의 추상화에 성공하여 복잡한 산술이나 대수를 발달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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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의 발명
역사상 중국인에 의해 발명된 최고의 발명품으로 나침반, 종이 그리고 화약이 손꼽힌다. 이들 세 발명품은 거의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나침반은 지자기에 의해 자침이 항상 자기북쪽을 향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 항해, 여행 등 먼거리를 이동할 때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정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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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알렉산드리아 토박이였던 고대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뮤제온에서 천문학, 점성술, 광학, 지리학 등을 연구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알마게스트>라는 천문학 책인데, 이는 '가장 위대한 것'이란 뜻으로 훗날에 아랍인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서가 너무나 훌륭하다고 해서 원제목 대신 붙인 이름이다.
10
종이의 발견
종이는 흔히 나침반, 화약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발명 중 하나로 간주되는 발명품이다. 중국 고사에 따르면 종이는 서기 105년에 후한(後漢) 대의 환관이었던 채륜(蔡倫)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 연구 결과로는 적어도 그보다 250년 이상 일찍 발명되어 기원전 140년경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9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수학책은 단연 유클리드(Euclid, B.C. 259년경 활동)의 <기하학원론>이다. 유클리드가 지은 <기하학 원론>은 천 년 이상 기하학의 고전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기술하는 수학으로 그와 라이프니츠가 만든 미적분법을 사용하지만 정작 뉴턴 자신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사용하여 자신의 법칙을 증명하였다.
8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였다. 그는 문학 이론부터 역사, 정치학, 논리학,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수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더욱이 그는 이 분야들을 하나로 포괄하는 거대한 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7
히포크라테스의 의술
고대인의 의학은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아 '죄에 대한 벌'로 질병을 보는 도덕적 질병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기원전 약 460?375년경)는 질병을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 코스 섬 출신 의사인 히포크라테스의 주장과 그를 따른 학자들의 주장은 이른바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남아 있으며 이 전집은 오랫동안 의학의 최고 경전으로 칭송받았다.
6
고대 원자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근본적 원소의 존재 여부에 대한 토론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주창했던 고대의 원자론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온 세계는 아주 작은, 무한히 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원자들은 진공 속에서 계속해서 움직인다. 또한 이 원자들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러 크기, 모양으로 무한히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5
금속의 발견
인류가 획득한 여러 가지 기술 중에서도 금속의 사용은 재료의 면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금속은 석기에 비해 가공성이 뛰어나고 외부의 강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4
피타고라스 정리의 발견
고대 그리스 수학의 발전은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 시작되었다.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 정리를 그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삼각형이 세 변의 길이의 비가 3 : 4 : 5나 12 : 13 : 5이면 그 삼각형은 직각 삼각형이라는 사실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오고 있었다.
3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작
일반적으로 과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일컬어진다. 자연 현상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고, 자연을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전통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
바퀴의 발명
바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 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바퀴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000년 경으로서, 탈것에 부착된 것이 아니라 도공(陶工)들이 사용하는 물레에 사용되었다.
1
불의 이용
초기 인류가 이룩한 가장 큰 기술적 변혁으로는 불의 발견과 그것의 광범위한 사용을 들 수 있다. 인류가 초기에 달성한 기술적 성과 중에 직조와 재봉 등은 이미 몇몇 동물들에 의해 선행되고 있었지만 불은 어떠한 동물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또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마찰에 의해서 불을 일으킨 것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기술의 위력을 경험한 최초의 사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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