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전자대전
원천석
[ 元天錫 ]
분야유형지역시대출처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인물/문인·학자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삼회리 |
고려/고려 후기, 조선/조선 전기 |
디지털가평문화대전-원천석 |
목차
- 정의
- 가계
- 활동 사항
- 학문과 저술
- 묘소
- 상훈과 추모
정의
고려 말 조선 초 경기도 가평 지역에 은거한 학자.
가계
원천석(元天錫)[1330~?]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자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운곡(耘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원시준(元時俊)이고, 할아버지는 정용위(精勇衛) 별장(別將) 원열(元悅)이며, 아버지는 종부시(宗簿寺) 영(令) 원윤적(元允迪)이다. 부인은 원성 원씨(原城 元氏)이다.
활동 사항
원천석은 1360년(공민왕 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고려 말의 문란함을 보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한때 이방원(李芳遠)의 스승이었던 연고로 이방원이 왕으로 즉위한 후 은총을 내리려 하였으나 치악산에 은거하며 피하였다고 한다. 태종은 대신 원천석의 아들 원형(元泂)을 기천(基川)[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수령으로 임명하여 원천석에게 은거의 명분도 주고 아들에게 물질적 봉양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원천석·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를 마치 은(殷)나라 세 명의 인자(仁者)와 같이 평가하였다. 원천석이 한때 은거하며 지었다는 운곡암이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삼회리에 있다.
학문과 저술
원천석의 저술로 『운곡시사(耘谷詩史)』와 「회고가(懷古歌)」가 있다. 『현종개수실록』을 보면 원천석이 지은 『사고(史稿)』 6권이 남아있다고 한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여러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내용을 볼 수 없도록 풀로 붙여 놓았다고 한다. 자손들도 원천석의 유언을 받들어 열어보지 않았는데, 유실된 것이 많다고 한다.
묘소
원천석의 묘는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에 있다. 강원도 기념물 제75호이다. 묘역에는 1670년(현종 11)에 세운 묘갈이 있다.
상훈과 추모
원천석은 1624년(인조 2)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던 칠봉서원(七峯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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