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반의 정치학과 구원의 심리학
―박혜강의 역사소설 『운주』(全5권)에 대하여
<검은 노을>,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 <안개산 바람들> 등의 작가 박혜강이 7년 만의 오랜 침묵 끝에 이른바 대하역사소설 <운주> 다섯 권을 내어놓았다. 고려 중기인 17대 인종 때, 이자겸의 난(1126)에 이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이 일어난 후 무신 정중부의 난(1170)과 망이, 망소이의 난(1176) 등이 연달아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그 이내(以內)의 시점(時點)을 이 소설은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좀더 분명하게 표현한다면, 묘청 주도의 ‘서경 천도운동’과 그것이 실패하고 난 후의, 낙원[미륵세상] 찾기에 나선 유민들의 ‘백제 부흥운동’, 이 두 민중운동이 이 서사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서경 천도운동이든 백제 부흥운동이든 그 주동 세력은 모두 민중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묘청 중심의 서경 천도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앞장선 이는 물론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김부식 평장사였다. 그리고 그 천도운동이 수포로 돌아가고 난 뒤 일어난 남도 유민들 중심의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한 자 역시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었다. 그러므로 이 역사소설 속에서 두 차례에 걸친 당시의 민중운동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는 김부식과 그 아들, 곧 이들의 부전자전 식 토벌작전의 성공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서 이런 세도가(勢道家) 김부식 평장사의 그늘 밑에서 그에게 충성을 바치며, 그 대가로 일신의 출세를 도모하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작품 가운데서 가장 다이내믹한 인물, 곧 무관(武官) 황정재 낭장이다. 황 낭장은, 먼저 서경 천도운동을 진압할 때 김부식의 아우이며 대단한 전략가인 김부의 밑에서 활약하면서 사실상 김부식의 서경군 진압활동을 도왔으며, 또한 새로이 일기 시작한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할 때는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부친(김부식)을 도와 백제군 진압활동을 개시한 그 아들 김돈중을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써 역시 은퇴 뒤 ‘삼국사기’나 집필하겠다고 자신의 거취를 밝혔던 김부식 평장사―또는 김부식 부자―를 한껏 도와 준 셈이었다고 보겠다.
황 낭장―당시는 ‘별장’의 신분이었던―이 서경성을 본격적으로 진압하는 작전에 일선 지휘관으로 투입되기 직전, 그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김부식의 지시에 따라 그가 고려 대(大)문장가 정지상을 잔인무도하게 거세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황 별장의 출세지향적인 인물됨을 확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황 낭장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을 도와, 백제 유민들이 지금껏 추진해 온 <잃은 나라 부흥운동>을 그 싹이 틔어나기 전부터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리는 장면에서도 독자는 그 점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백제의 부흥을 염원하는 이들이 모여 살던 천불동 계곡을 진압하면서 퇴로조차 철저하게 막아버려, 오로지 용화세상만을 꿈꾸어 오던 그들을 깡그리 섬멸하는 장면에서도 그 점은 여실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황 낭장은 바로 그의 그런 무서운 욕망 때문에 자신이 늘 탐내어 오던 출세 가도마저 마지막 단계에서 원천봉쇄되어 버렸다고 하겠다. 그도 결국은 순보와의 대결에서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는데, 황 낭장은 순보의 무리가 도피할 수 있도록 출구를 마련해 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무공(武功)만을 믿고 천불동 무리의 일망타진을 획책하다가 그런 비극적 결말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처럼 이 소설은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김부식 형제(또는 김부식 부자)의 그림자인 황정재 낭장과, 그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 순보, 그리고 역시 같은 처지의 또 다른 인물 삼정이 등이 주동적으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한 편의 대하(大河) 드라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사는 적어도 세 명의 복수주인공들이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결국 이 소설은 역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실재 인물’이 아닌 허구적 인물이라고 할 세 사람들 ―황정재, 순보, 삼정―을 역동적인 주인공들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들 중 그 3분지 2가 민중세력이라면, 이는 작가 자신의 민중사관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기서 민중 편에 속하는 두 인물 ‘순보와 삼정이’ 같은 이들은, 이를테면 작가가 자신의 전작(前作)인 <안개산 바람들>에서도 이미 설정했던 바와 같은 그런 복수 주인공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작품에서의 남경만과 김영도가 이 <운주>에 와서는 각기 순보와 삼정이 들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인물들에다가 역사적 인물[김부식]의 한 측근 세력으로 설정된 가상적 인물 황정재를 보태어서 모두 세 명의 복수주인공들로 삼은 것이 이 소설 인물설정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편 서사는 모반[역모]의 정치학과 구원의 심리학을 시종 이 작품의 내적 추진력으로 삼고 있다. 서경성에서의 묘청 중심의 천도운동은 바로 그대로 역모(逆謀)의 정치학인 것이며, 동시에 구원의 심리학이기도 하다. 그 점은 천불동에서의 백제 부흥운동 역시 같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엽도의 버들잎 문양이나 이자호의 평소의 구호, ‘망국의 한 풀이' 등은 백제 부흥운동으로서의 일종의 ‘역모의 정치학’이며, 또한 ‘미륵세상'이나 ‘용화정토' 등을 찾아 천불동 골짜기로 몰려든 남도 중심 유민들의 일상적 삶과 미래에의 희망은 바로 그대로 ‘구원의 심리학’인 것이다.
역모의 정치학은 먼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묘청이 끌고 나갔던 서경 천도운동에서 나타났었으며 다음으로는, 망국의 한 풀이를 외치며 운주사 골짜기를 중심으로 천불 천탑 건립운동을 앞장서 이끌어 나갔던 이자호의 백제 부흥운동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는 김부식 형제, 또는 김부식 부자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으며, 이 진압 작전에는 언제나 출세제일주의자인 무관 황정재가 따라붙어 있었으므로 어렵잖게 그 일이 수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구원의 심리학은 첫째, 서경성 전투에서의 순보나 삼정이와 같은 민중세력에 의해 간단(間斷) 없이 이어져 왔음이 증명되었다 하겠으니,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묘청 대선사마저도 참살되어 버린 상황에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던 서경성 전투가 지속될 수는 없었던 것이라 하겠다. 농민군들은 개경 문벌귀족들의 부패 타락한 정치를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었으므로 미륵하생의 새로운 낙원을 이룩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관군과 싸웠던 것이다. 다음으로, 그 점은 천불동 골짜기의 전투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순보와 삼정이 들은 미륵 정토에의 구원의 기대[희망] 때문에 마지막까지 싸우다 산화했던 것이다. 언젠가 미르와 기백이―'순보와 이자호의 아들들'―같은 후세에 의해 그 낙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박혜강의 이 장편 서사는 고구려 유민과 백제 유민들 가운데, 앞서 잃은 고구려의 국토 회복운동 또는 백제의 부흥운동에 가담한 유력자들이 그런 국가 회복운동 혹은 부흥운동의 개념과는 무관한, 오히려 일종의 초월적인 세계―인간의 궁극적 관심의 세계―로서의 용화정토․미륵세상의 도래를 꿈꾸는 순진 소박한 민중들과 연합해 부패 타락한 정권(국가권력)을 지탱해 주는 관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민중의 무한한 잠재력을, 그 싸움의 승패와는 무관하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
# 최근 우연히 최단 고문님의 운주사 기행문[사진들을 동시 등재한]을 읽게 됨을 계기로 해서, 같은 운주사를 배경으로 한 작가 박혜강의 역사소설 <운주>의 내용이 떠올라, 앞서 이미 써놓았던 글을 여기 다시 올려 회원님들께서 참고하시도록 해 보았습니다. *
첫댓글 임영천 교수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다시한번 시간내서 읽어 보겠습니다
장 시인님, 저의 다소 딱딱한 글을 '좋은 글'이라고 여겨 읽어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이런 깊은 내용이 있는 줄 모르고 정말 감명 깊게 읽었읍니다 운주사의 민불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소박함이 배여있는 정말 민중의 얼굴이 마음에 와 닫았읍니다 감사합니다
최단 시인님의 독서 영역이 무궁무진하십니다. "코너 곳곳 어디라고 뒤지지 않으신 곳이 없을 정도"라고 표현하는 게 사실에 가깝겠지요. 저의 딱딱한 글을 읽고 강평까지 곁들여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너무 과찬 이십니다 교수님의 저서 한권 받고 싶습니다
학창시절 가장 싫어하던 과목이 역사 .지리여서 '삼국지'를 완독할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끝내 완독을 못한 전력은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요. 수많은 인명들은 나를 주눅들게 했지요. 선생님의 현대소설 평은 너무 재미있게 읽는데, 위글을 몇 줄 읽다가 역사적인 얘기라 안읽었거든요. 새삼 읽으니 재미가 있군요.
그러면 제가 박 주간님의 독서 스타일까지 바꿔 놓은 셈인가요? 하여간 위의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매우 감사합니다.
참, 잘 쓰셨네요! 참나무같은 단단함을 느낍니다. 저도 그런 스타일이라서 교수님의 글 타입에 매력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촌 시인님의 과찬에 당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