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산 20번지는 여산 송 씨 정가공파 파조(派祖) 휘(諱) 서(瑞)의 제단(祭壇)을 비롯 장남 사복공(司僕公) 휘 인번(仁蕃)의 묘(墓). 차남 판서공(判書公) 휘 윤번(允蕃)의 제단. 판서공의 장남 찬성공(贊成公) 휘 전(琠)의 묘. 찬성공의 삼남 대언공(代言公) 휘 인산(仁山)의 묘. 대언공의 차남 공무공(恭武公). 휘 문림의 묘 및 공무공의 자손들 묘가 소재하는 면적(面積) 40,590평의 성역입니다.
. 정가공 (1278~1353) 고려말 추성보리 익찬공 광정대부 벽삼한중대광 도청의 우정승 판전리사사 여랑부원군 식업일천호 시호는 정가공입니다. 묘가 장단지역 비무장지대에 소재하여 자손들 묘가 있는 이곳 중앙에 1978년 설단 입비(立碑)하고 1987년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습니다. 제단의 비문은 방손(傍孫)지영이 글을 짓고 방손 성용(成鏞)이 글을 썼으며, 신도비문은 방손 지영이 글을 짓고 羅州 崔 國慶이 글을 썼습니다.
. 사복공의 묘 : 고려말 봉익대부 판사복사사(判司僕寺事)를 歷任하셨으며, 묘는 성역 북쪽 신좌지원입니다. 현재의 묘비는 1980년에 세웠는데 後孫 龍範이 글 짓고 昌寧 조규인이 글을 썼습니다.
. 판서공의 제단 : 고려말 가선대부 병조참판 증(贈) 이조판서이며 묘가 진잠에 있었으나 亂後에 失傳되어 1978년 이곳 정가공 제단 남쪽에 설단 입비하였습니다. 제단 비문은 정가공 20세손 주형이 글을 짓고 방송 성용이 글을 썼습니다.
. 찬성공(?~1430)의 묘 : 朝鮮初 가선대부 판나주목사(判羅州牧使) 증(贈)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좌천성(議政府左贊成)이며, 묘는 성역 남쪽 산좌시원입니다.
. 대언공(?~1132)의 묘와 공무공(1411~1476) 및 자손들의 묘. 대언공은 조선초 충청감사(忠淸監司) 좌부대언(左副代言) 증(贈) 좌찬성(左贊成)이고 공무공은 문과에 급제하여 監司 대사간(大司諫) 대사헌(大司憲) 좌리공신(佐理功臣) 吏曹判書 여성군 자헌대부 시(諡) 공무(恭武)이며, 자손들은 출사하였습니다. 묘가 성역 주위 여러 등성이에 散在해 있었는데 2004년 찬성공 墓下에 移葬하였습니다.
연산 성역에는 원래 사복공과 찬성공 숙질(叔姪)분의 墓所가 있었는데 壬辰. 丙子의 양대병화(兩大兵禍)로 인하여 묘소와 위토 (位土)를 잃은 채 찾을 길이 없던 중 정가공의 14세손 술지당공(述志堂公) 휘 창(暢)(1716~1789)이 중심이 되어 수십년간의 訟事를 통해 다시 찾은 緣由가 있어 聖域은 영구히 빛 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