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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
안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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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
안녕하세요. |
정은임 |
네. 자, 제가 오늘 근사하게 소갤 해 드렸으니까 오늘은 무슨 멋있는 말씀 해주실 건가요? |
정성일 |
어...아마 그 이 프로에서 거의 몇 달째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라는 잡지에서 뽑은 '80년대 영화 200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저도 그 시간의 열렬한 애청자 중의 한사람이기도 합니다. |
정은임 |
네. |
정성일 |
그래서 제가 이 자료 저 자료를 뒤지다가 그 까이에 뒤 시네마와 함께 프랑스의 양대 영화 잡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잡지의 이름이 바로 그 포지티브라는 잡지입니다. 까이에 뒤 시네마와 포지티브를 제가 잠깐 설명해 드리는 것이 필요할 터인데요, 까이에 뒤 시네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 세 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 한가지는 '작가주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까이에 뒤 시네마를 처음으로 창간했었던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젠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바젠은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것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의 그 감독은 시의, 소설의 작가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까이에는 앞으로 작가 정책을 밀고 나아갈 것이라 해서 라폴리끄 뒤 조띠에르라는 작가 주의를 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까이에가 찾아낸 전략은 '발견의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저주받은 걸작'들을 찾아내는 것인데요, 일반적인 관객들이 보기에는, 당대의 영화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시네마데끄속에서 영화를 이리저리 뒤져보다 보니 '그것이 아뿔싸! 놓인 걸작은 아니었을까'라는 것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네마데끄의 창립자이자 이것을 오늘날까지 이끌고 왔었던 앙리 랑그로와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할 것이며, 아마도 기억력 좋으신 청취자들이라면 제가 이 시간에 한 번 이 앙리 랑그로와를 소개해 드린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까이에의 가장 큰 특징일터인데, 그들은 항상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를 물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까이에는 항상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자신들이 서 있는 지역을 이리저리 이동해 온 것이며 까이에평론가 자신들은, 바로 자신들이 하는 역할이란 영화를 비평하고 평론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계보학, 영화의 지리학을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50년대 까이에가 이끌고 왔었던 것은 실존주의 정신이었고 60년대의 그것은 모더니즘이었었고, 68년 5월에서 75년, 중국에서 4인방 숙청이 있었던 그 시절까지 끌고 왔었던 것은 막시즘 그 중에서도 모택동주의였었습니다. 그리고 75년에서 87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통을 이끌고 왔었고, 87년 새로운 노선 누벨 이마주라는 것을 선언하고 이른바 누벨 이마쥬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한다면 포지티브는 그 까이에가 다소 심하게 말해서 저널리스트 정신이라면 포지티브는 진보적인 아카데미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포지티브는 아주 줄기차게 영화의 요소가 무엇이며 영화의 요소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것인가를 추구해 오고 있습니다. |
정은임 |
보다 원론적인 것, 문제에 집착하고 있군요. |
정성일 |
그렇죠. 그래서 까이에는 끊임없이 만화영화를 무시해 왔지만 포지티브는 끈질기게 만화 영화를 다뤄 왔습니다. 반면 까이에는 비디오 같은 첨단 뉴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포지티브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까이에와 포지티브가 같은 영화를 표지로 다룬다면 그것은 사건이라고까지 평명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까이에만 정기 구독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영화를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포지티브만 정기 구독하는 사람도 포지티브 아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다 봐야 비로소 균형적인 영화 사고를 할 수 있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물론 1년에 한 번 정도는 겹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겹친 영화는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작 |
정은임 |
용서받지 못할 자였군요. |
정성일 |
네, 맞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자는 까이에와 포지티브가 동시에 '우리시대의 가장 훌륭한 영화 중의 한 편'이라고 손꼽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
정성일 |
그 포지티브가 창간 40주년을 맞이해서 포지티브 동인들에게 앙케이트를 구해서 영화 사상 거장 11명과 영화 사상 걸작 11편을 뽑았습니다. 아마도 그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영국의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영화 사상 걸작 10편과 영화 사상 가장 위대했던 감독 10명을 10년을 단위로 뽑는 것을 기억해 내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점을 유의하십시요. 사이트 앤 사운드가 뽑은 그 앙케이트 명단을 유심히 살펴보면은 그것은 영미권과 영국의 식민지 경험이 있거나 영어를 쓰고 있거나 영어가 통하는 제3세계에 집중적으로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영미권의 즉 앵글로 색슨계의 베스트라고 부를 수 있지 진정한 영화 베스트 10이라고 부르긴 사실 어렵습니다. |
정은임 |
왜 그렇게 선정을 했을까요? |
정성일 |
아마도 이것이 지역주의, 지역 패권주의, 더 나아가서 일종의 사이트 앤 사운드가 정부의 돈을 받아서 만드는 잡지라는 것을 염두 해 두신다면 그것은 금방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니까 영국의 영화 진흥 공사에서 발행되는 잡지인 것입니다. 사이트 앤 사운드는, 그 반면에 포지티브는 해외에 대한 앙케이트는 전혀 구하지 않고 철저하게 포지티브동인들만을 중심으로 해서 뽑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선정은 대단히 프랑스 중심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포지티브나 사이트 앤 사운드를 비교해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실은 객관적인 영화 사상 베스트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포지티브가 선정한 '영화 사상 거장 베스트 11명'의 리스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감독들이긴 하지만 다른 리스트에는 들어가 있는데 또 이 리스트에는 빠져 있는 이름들을 보실 것입니다. 수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수많은 이론가들이 그리고 수많은 영화광들이 영화 시민 또는 바로 이 사람이 시민 영화라고 부른 오손 웰즈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규칙을 만들었다고 까지 이야기하는 장 르노와르 감독이 손꼽혀져 있습니다. 테크놀로지의 연금술사 또는 테크놀로지의 철학자, 헐리우드의 유일한 예술가라고 불리우는 스탠리 큐브릭이 들어가 있습니다. 길 이후 걸작들을 연달아 발표한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이자 그 이후 수많은 행보를 걸쳐서 최근에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에까지 이른 페데리코 펠레니가 있습니다. 이미 파니 앤 알렉산더로 은퇴하기는 하였지만 연극과 영화를 가장 행복하게 결혼시켰다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뽑혀져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은 자기가 나오는 영화라면 꼭 한 장면씩 나옵니다. |
정은임 |
네, [히치콕]이요, [알프레드...] |
정성일 |
네, 맞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올라와 있고, 그리고 포지티브는 누벨바그 세계 중에서도 '까이에파'를 거절하고 '세느좌안파'라고 알려진 히로시마 내사랑, 지난해 마렝바드에서와 같은 누보 로망의 소설을 끈질기게 영화화시켜서 소설 속의 문체를 영화의 수사학으로 바꿔 놓은 알렝 레네가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영화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불리우는 그리고 바그너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가 있습니다. 또 영화의 괴테라고까지 불리우는 막스 오필스, 그리고 아시아 영화 감독 중에 유일하게 뽑혀 있는 일본 영화감독 미조구찌 겐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리스트를 보면은 끄덕끄덕하다가 불연 듯 "쓰..아니, 왜, 이 이름들은 빠졌을까?"라고 생각하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은 누벨바그의 천재이자 모더니즘 영화의 기수이자 "이 사람 이전에 이 사람 없고 이 사람 이후에 이 사람 없다"고까지 불리우는 장-뤽 고다르가 있습니다. 고다르 영화를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흉내내기는 하지만 참으로 신기한 것은, 고다르 스타일은 고다르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다르영화의 창작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영화를 처음 찍을 때부터 '반칙 영화'로 시작을 했는데, '반칙 영화'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반칙 자체가 컨벤션이 되면 그 다음에는 매너리즘이 되고 매너리즘에 빠져 진부하게 반복되기 마련인데 고다르는 매번 반칙을 써 이제 최근에는 영화가 아닌 지점에까지 이른 영화를 찍기에 이릅니다. |
정은임 |
어떤 영화죠? |
정성일 |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은 편집 체계, 카메라 스타일 또 조명, 배우 연기 방법이 모두 엉망진창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고다르는 거기에 신처럼, 아주 갑자기 영화를 생각해 낸 것처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스타일일 것이며 바로 그래서 평론가들은 '고다르 이전에 고다르 없고, 고다르 이후에 고다르 없다'라는 이야길 합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자이자 또한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자이기도 했던 루이스 부뉴엘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교회에 끌려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싫었던지, 26살에 데뷔한 이후 87세에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교회를 비판하는 영화만 찍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의 아버지는 교회에 책임을 져야 할 판국입니다. 그리고 일본 영화의 천황이라고 불리운 구로사와 아끼라도 빠져 있습니다. 또 진정한 유물론자였었던 전함 포템킨의 그 천재 세르게이 미카엘 에이젠슈타인도 빠져 있습니다. 포지티브는 모더니즘의 정신으로 영화를 선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리스트가 포지티브가 선정한 영화 11편입니다. |
정성일 |
그리고 다음 리스트가 포지티브가 선정한 영화 11편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이 영화들은 순위는 없는 것입니다. 순위는 없이 영화는 쭉 뽑았는데요.. 우선 첫 번째 올라와 있는 영화는 장 르노와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입니다. 이 르노와르라는 이름하면 연상되는 이름이 있으실터인데요... |
정은임 |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화가가 먼저 연상이 됐어요.. |
정성일 |
맞습니다. 오귀스트 르노와르의 셋째 아들이기도 한데요... |
정은임 |
그렇군요. |
정성일 |
사실은 그 교과서에 나오는 지명도로만 이야기하자면은 인상주의의 르노와르가 휠씬 유명하겠지만은 프랑스에선 장 르노와르를 훨씬 윗손 꼽습니다. 그래서 오귀스트 르노와르를 소개할 때 흔히 장 르노와르의 아버지였다고 소개합니다. 이 장 르노와르가 직접 제작, 각본, 감독 그리고 조연을 맡은 영화가 바로 게임의 규칙입니다. 처음에는 게임의 규칙은 지구상에 사라진 영화였었습니다. 2차 대전 중에 이 영화는 문제 있는 영화로 낙인찍혀서 비시(?) 정권으로부터 개봉을 금지 당했습니다. 그리고 금지되어 필름이 담겨져 있었던 영화 박물관이 폭격을 맞았고 필름이 분실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시네마데끄의 앙리 랑그로와가 아주 열정적인 노력으로 유럽 전역에 흩어진 게임의 규칙의 프린트를 모두 모아서 1956년에 장 르노와르감독의 감수 하에 원판에 가장 가까운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날 보실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은 원판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판에 가장 가까운 영화이기는 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이것은 하루 낮, 하룻밤에 걸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부르주아들이 어울려 별장에서 낮에는 사냥을 그리고 밤에는 파티를 벌입니다. 이 파티는 그저 그렇게 진행될 것 같았었지만 여기에 생각되지 않았던 로맨스가 벌어지고 오해가 오해를 불러오고 마침내 이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부르주아들의 파티에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들의 노동자들이, 사냥꾼들이 그리고 음식을 나르는 주방장이, 하녀가, 하인들이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서로 엇갈리기 마련이고 남자는 여자를 쫓아다니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시침떼기를 부립니다. 그것을 사회주의자였던 장 르노와르는 부르주아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리고 연극광이었던 장 르노와르의 거대한 세트 속에 미로가 펼쳐집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름지어 '영화 사상 가장 완벽한 미장센느의 영화'라고 부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롱테이크와 정지된 카메라 속에서 복잡한 미장센느를 보여줍니다. 인물과 인물들이 복도와 복도 사이를 오가고 카메라는 그들 사이를 마치 춤을 추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춤추듯이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인물들 사이에 이상한 긴장 관계가 존재합니다. 그 긴장 관계를 장 르노와르는 두 계급 사이의 투쟁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얽히고 뒤성키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장 르노와르는 몰리에르의 연극과 보마르 쉐이의 희곡과 그리고 막시스트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총화를 이루어 냅니다. 가장 이 영화의 섬뜻한 장면은 부르주아는 죽고 하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고 그리고 파티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은 그 집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군인입니다. |
정은임 |
섬찟하네요... |
정성일 |
그리고 게임의 규칙 발표 2년 후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였고 궤벨서는 게임의 규칙을 처분시켜 버리라고 했습니다. |
정은임 |
마치 예언적인 영화네요. |
정성일 |
예언적이고 놀랄 만한 통찰력이 있는 것이며 이 영화는 역사 속 영화이면서 또한 영화가 바로 역사를 지켜볼 수 있는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장 르노와르가 그저 단순히 뛰어난 연출자이기도 일뿐 아니라 바로 영화 속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의 역사를 끌어내어 그것을 이야기하는 감독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장 르노와르의 화면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동하는 화면입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양쪽으로 위아래로 열려진 공간입니다. 그것은 흔히 헐리우드 영화 감독들이 한 화면 내에 모든 것을 담아 내려 하는 대신 그 이곳 저곳으로 열려짐으로서 이른바 영화에의 '숨통 열어 놓기'라고 불리우는 영화 연출 방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것을 앙드레 바쟁은 이름지어 '민주주의적인, 데모크라틱한 미장센느'라고 불렀습니다. 게임의 규칙에 이어서 뽑힌 영화는 어떤 '영화 베스트 10'에도 빠지지 않는 , 오손 웰즈의 |
정은임 |
시민 케인이요 |
정성일 |
네, 맞습니다. 조르주사들은 이 영화를 이름지어 '시민 케인 이전에 시민 케인 없고 시민 케인 이후에 시민 케인 없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프랑소와 트뤼포의 이 문장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 정통 종합 영어를 보다가 번역해 놓고선 희희낙락했었던 문장인데요, '시민 케인의 위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문구가 떠오르실 겁니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 평론가들에 의해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까지 불리웁니다. 이것은 결코 지나친 평가가 아니며 과장이 아닙니다. 시민 케인은 영화의 역사를 나누는 일종의 경계선같은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시민 케인 이전의 영화들은 초기 영화라고 불리워져야 할 것이며 시민 케인 이후의 영화들은 현대 영화라고 불러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던 시네마의 경계선을 나누는 지점에 시민 케인은 서 있는 것입니다. 오손 웰즈는 이 영화 속에서 그 이전에 따로따로 흘러들어 왔었던 두가지 전통, 그러니까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의 정신을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미학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딥포커스이고 또 하나는 롱테이크입니다. 딥포커스라는 것은 카메라의 장 초점 렌즈와 단 초점렌즈를 이용하여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클로즈업된 피사체와 롱숏부분에 있는 피사체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이 스튜디오를 영화로 찍는다면은 정은임씨의 얼굴과 지금 저밖에 있는 홍동식 피디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화면일 것입니다. 만약에 장 초점렌즈 만이라면 밖에 있는 홍동식 피디의 얼굴만 보일 것이고 단 초점렌즈는 정은임씨의 얼굴만을 보일텐데 두 개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손 웰즈는 영화를 무한 확장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을 롱테이크라는 쁠랑세캉스라는 끊이지 않는 편집되어지지 않는 그 시간 속에서 그래서 딥포커스의 무한 확장된 공간 속에서 롱테이크로 무한 확장된 시간을 담아 냅니다. 이제까지 화면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늘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민 케인을 통해서 비로소 시간과 공간이 서로 나눠지게 되고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미지가 운동하는 것, 그래서 들루슈가 이마쥬 무브망이라고 불렀었던 그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낸 것입니다. 시민 케인이야말로 진정 영화의 영상이 어떠한 것이 되어야 되는지 그 영화 언어를 만들어 낸, 영화의 문법을 만들어낸, 영화의 규칙을 만들어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로소 시민 케인을 통해서 영화는 예술속에서, 예술의 수 많은 장르속에서 시민권을 얻은 것이라고 부를수도 있을것입니다. 만일 영화사에 단 한편의 영화가 있다면 21세기에 영화가 사라진다면 그래서 박물관에 영화를 보존해야하는데 자리가 없어서 단 한편의 영화만을 보존해야된다면 그 이름은 당연히 시민 케인이 되어야할것입니다. 세 번째 뽑혀져 있는 영화는 바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그 유명한.... |
정은임 |
현기증인가요? |
정성일 |
네, 맞습니다. 이 영화는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도 걸작으로 뽑혀져 있는데요... 알프레드 히치콕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위대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가 영화의 작가주의 전통에 가장 적합한 예라는 것입니다. 작가주의라는 것은 위대한 영화를 많이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고 헐리우드라는 시스템 내에서, 상업주의권 내에서, 즉 영화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돈을 갖다 들여야 되고 많은 사람들을 써야 되고 그래서 이것이 이윤을 창출해내지 않는다면 어떤 제작자도 그 비싼 돈을 내고 찍지 않을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것과 음악을 작고하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과 바로 그래서 영화는 다른 것입니다. 그 자본주의적인 체제 내에서 자기의 생각, 자기의 메시지, 자기의 화면, 자기의 주인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주 제한된 감독들에 제한된 것이며 또한 그것을 자기가 강요하고 억지로 하려다 보면 결국에는 제작자들로부터 버림받고 저주받기 일쑤입니다. 히치콕은 그 시스템 내에 들어가서 그 시스템의 조건을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자신의 퍼스널리티, 자기의 개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히치콕은 영화 자체를 일종의 편집광과 정신분열증, 노출증과 훔쳐보기, 미장센과 몽따쥬, 스타일과 주제, 테크놀로지와 내러티브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긴장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프랑소와 트뤼포와의 인터뷰한 책에 의하면 그렇게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낸 경우가 바로 현기증일 것입니다. |
정은임 |
네, 그럼 네 번째 영화는 무엇인가요? |
정성일 |
네 번째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입니다. 일반적으로 스탠리 큐브릭하면 2001년 우주 오딧시를 그의 걸작으로 뽑겠지만, 큐브릭 자신도, 큐브릭의 열광적인 신도들도 그리고 저도 진짜 대표작이라면 배리 린든을 얘기하겠습니다. 배리 린든은 아주 유명한 한 풍속 소설이자 세속 소설이기도 한데요, 배리 린든은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귀족의 세계로 들어가려다 결국 좌절한 한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기엔 그저 피카데스크 소설 같은 구조처럼 보입니다. 악당 소설 같은 구조인데요, 그것을 스탠리 큐브릭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장대한 벽화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시는 회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요. 이것은 르네상스 부르주아 회화의 극치라고 부리우는 그 과잉의, 바로 그래서 매너리즘을 거쳐 인상주의 전야에 이르는 세계입니다. 이것은 정물화에서 풍경화에 이르는 시점의 변화와 빛의 변화가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것을 큐브릭은 단 한 점의 그림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회화의 원리를 이용하여 화면들을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3시간 40분에 이르는 영화가 끊임없이 화면이 변해갑니다, 아예. 영화를 만드는 법칙이 완전히 변해져가기 시작합니다. |
정은임 |
마치 회화사 같겠네요.... |
정성일 |
그렇죠,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다루려는 그저 회화의 역사가 아니라 회화의 역사는 또한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의 변화이기도 했습니다. 큐브릭은 르네상스적 인간이 근대적 인간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이 변해 간다는 것을 쫓아갑니다. 만일 2001년 우주 오딧시가 공간의 오딧시라면 배리 린든은 시간의 오딧시이며 인류역사의 오딧시이며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 이르는 오딧시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화 사상 유례없는 역사 영화이며 아마도 맹세코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할 것입니다. |
정은임 |
네....오늘 소개해 주신 영화는 네 편인데 그 포지티브에서 뽑은 그 많은 영화를, 그 수많은 세월에 걸쳐서 뽑은 걸작을 오늘 한 시간에 다 소개해 주신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속편을 기대하면서요, 아직 6편정도 남았나요? |
정성일 |
제가 짤막하게 혹시나 궁금하실 것 같아서 미리 그 제목들을 말씀드리겠는데요. 남은 영화는 장 비고의 아딸란타호입니다. 바로 레오스 까락스가 베꼈었던 퐁네프의 연인들을 베꼈던 그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 또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영화는 두 편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와 노스페라투입니다. 그리고 버스터 키튼의 장군이 들어가 있고 일본 영화감독인 미조구찌 겐지의 산쇼다이유 그리고 막스 오필스의 쾌락이 그 영화입니다. |
정은임 |
네, 확실히 까이에 뒤 씨네마와는 보는 시각이 달라서인지 다른 감독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요, 어쩌면.... |
정성일 |
그리고 선정 기준이 대단히 고전적이기도 하죠. |
정은임 |
네, 그렇죠. 뭐 진실이라는 것이 당파적 진실이라 말해야 사람들은 서로 젼혀 다른 시각의 두 잡지를 서로 비교해 보면서 보는 것도 참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정성일 |
그리고 이 선정에 흥미가 있으신 여러 청취자 여러분들이시라면 그리고 만일 제가 한가지 제안 드리는 것인데 MBC FM 영화음악실 청취자 여러분들이 뽑는 '영화 사상 베스트 10'을 뽑는다면 저도 기꺼이 거기에 한 표를 던질 용의가 있습니다. |
정은임 |
허....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 예,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포지티브가 뽑은 세계 걸작 영화, 그 중에서 오늘 4편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장 르노와르의 게임의 규칙,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스탠릭 큐브릭의 배리 린든. 그 중에서 이 영화 배리 린든 중에서 오늘 마지막 곡 띄워 드립니다. 헨델의 사라방드를 들으면서 홍동식 피디와 저는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