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리턴 투 이노센스
"뭔 생각을 그렇게 하고있냐?"
준모 녀석이 센터에서 내려오면서 나를 툭 쳤다.
"야, 왜 벌써 나와? 아직 안 끝났잖아?"
"오후파트 근무 하는 녀석이 지 PT남았다고 지가 마무리 하고 들어간대, 가자~"
준모는 아예 자기차에 알루미늄 스폰지 매트를 가지고 다녔다. 가죽시트에다가 내가 하도 칼라크림을
묻혀대서 내가 시합을 마치고 오는길이면 항상 옆자리에 장판을 펴놓곤 했다.
그래도 항상 시합날이면 준모가 데리러 오는 덕에 거지꼴로 지하철 타는 수모는 겪지 않았다.
"이젠 끝난거냐?"
"응?"
"이젠 시합 안뛸거냐구?"
"... "
"이제 그만해라~ 너도 이제 네 살길 찾아야지"
"... "
"모은 돈에다가 좀 땡겨서 동네체육관이라도 알아보던지, 아니면 미친듯이 PT해서 돈이나 벌던지,,"
"... "
"아니면.. 다른일 알아봐~ 돈 돼는일 다른거,,"
"... "
"얘들한테는 연락 안했다, 너 시합 뛴거,, 얘들도 이제 좀 그래, 몇년째냐? 시합 끝나고 와서 술먹고,
매년 한번씩,,응원 왔다가 그냥 가고, 꽃다발 사왔다가 숨기고,, 오늘은 조용히 둘이서 술이나 마시자.."
"... "
"네가 열심히 한거 나도 알고, 그 깐도린지 뭔지 하는 사람한테 위대하신 운동 배워온 것도 알고, 다 아는
데,, 그만해라,, 너 그러다 정말 맛간다."
"언젠가는.. 돼겠지.. "
"그래~ 언젠간 돼겠지, 계속하면 돼겠지, 근데, 너 지금도 늦었어, 더 있다가 결국 돼면? 돼면 어쩔건데?"
"... "
"운철이 형 하는 체육관에 들어가든가,, PT넘쳐서 미칠려구 그러던데,, 요즘 그런데 없어~"
"내가... 내가... 좀 잘못 생각한게 있어서... 몇년동안 해맨거 같어... 잘할수 있는데... 잘 해봐야지..."
"그래 잘 해봐야지, 이젠 그만 해야지, 그게 잘하는거지~"
준모는 몇년전 지방대회 체급1등 한번 하고는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해 체전에 출전 가능한 선수였지만
접었다. 그리고는 PT일을 시작해서 미친듯이 돈을 벌었다. 차도 중고소형차에서 중형차 새걸로 바꾸고
몸도 많이 변했다. 그 사이 생각도 많이 변했다. 보디빌딩 이라면 항상 부정적이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선수생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해.. 그냥 한때 한거지, 뭐~"
"넌 그래도,, 그냥 한때 한건대도 성적 잘 나왔잖아?"
"모르고 한거니까.. 너처럼 이것저것 많이 알면 시합 준비 못해~ 난 그냥 내가 할수있는 운동만 *나게 했지,
그냥 *나게 다이어트 하고,, 너처럼 이런 운동도 해보고, 저런 운동도 해보고, 이런 다이어트, 저런 다이어
트 해본게 아니고 아는것만 죽어라 한거니까! 그러니까 실수가 없잖아, 몸은 뻔한몸 나와도. 원래 지방대회
는 뻔한몸 잘만들면 1등이야~ 코리아나 체전 정도 돼야 별난몸들이 나오는거지..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시합
3달전부터 그냥 아무생각 말구 남들하는 운동 *나게 하구 *나게 다이어트하고 유산소 타라구~ 새로운 운동법
이니 뭐니 하면서 유산소도 안타구 운동두 바뀌구 처먹는것도 바꿔대는데 네가 아직 그럴 수준이 안 돼는데.."
"... "
"이번에두 그래, 너 그냥 다이어트만 잘 말려서 올라갔으면 75 1등이야~ 왜 85를 나가, 뭔짓을 한거야~?
내가 그랬지, 네 몸 상태서 그냥 굶어서 빼서라도 말려내기만 하면 지방만 안 붙어있으면 1등이라구,, 넌
이제 이두 피크도 터져있구 하체도 안 밀리구 해서 바싹 말리기만 하면 됀다니까 왜 말을 안들어? 이번에
75 1등한 사람 봐, 아무것도 없잖아~ 복근밖에~ 팔 43 나올까 말까 한대도 잘 말리니까 커보이잖아~"
"그러면 발전을 못 하잖아.. "
"아~ 넌 그 이상 발전 못한다니까~ 빨리 그냥 체급 1등하고 빠져~ 빠져서 PT나 해~"
"... "
.
.
.
준모 녀석이랑 그날 소주를 각자5병씩은 마신것 같다.. 안마시다 그래서 그런지 구역질이 자꾸 나는대도
계속 마셨다. 예전에는 꼴찌를 하고 와서도 술판에서는 안주 먹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날은 안주에 손도
안갔다. 이젠 정말 그만둘때가 됐다는게 내 자신도 실감이 나서였을까? 잊고 싶었다. 술을 마셔서라도..
다음날, 집에서 짬뽕밥 한그릇 시켜먹고 나니, 좀이 쑤셔 견딜수가 없었다. 운동은 하러 가고 싶은데 일하는
곳으로 가면 벌써부터 사람들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볼것 같고 해서, 후배녀석이 일하는 체육관으로 찾아가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정석이냐? 나다.."
"예, 예, 형~"
"누구있냐? 혼자있냐?"
"예, 들어와요, 사장님 와도 괜찮아요, 가끔 운동오는건데요, 뭘~"
"아니,, 그냥,, 괜히 눈치 보여서,,"
사우나랑 같이 있는 센터라 그런지 들어서니 후끈했다.
"어우, ㅆㅂ,, 어제 술먹었는데,, 운동하고 싶은 생각 싹 사라지네,,"
"형, 저기봐, 저기,, 저 사람이 장정훈이래~ 알어? 미스터 코리아 라던데?"
"뭐???"
"사모님 친척이래나봐,, 가끔 와,, 사장은 운동 하나도 안한 사람인데 친척중에 저런 사람이 있네~"
정말로 장정훈 이었다.. 가끔 시합장에서 옷 입고 돌아다니는 것만 봤었는데, 웃짱까고 운동하고 있는건
처음보는 광!경? 이었다. 국내 라이트 헤비급 최강자. 얼마전 기대하고 나간 세계선수권에서 아깝게 입상에 실패
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벗은몸을 실제로 보니 장난 아니었다. 어지간한 헤비급 보다 덩어리가 더 컷다,
지방도 없이..
'아, ㅆㅂ, 하필이면 여기서'
"형, 형, 가서 아는체 해봐, 가서 말도 좀 걸어보구 그래~"
"쪽팔려, 새끼야~"
"쌩까구 운동하구 있는게 더 쪽팔리지, 비교돼는데,,"
'아, ㅆㅆㅆㅆㅆ ㅃㅃㅃㅃㅃ..... '
생각해보니 정말 모른척하고 운동하고 있는게 뭐해서 슬쩍 다가갔다.
"저기, 안녕하세요? 저기 이성윤이라고, 저기 서울 시합 뛰는.. 선순데요,, "
"어,, 그래.. 어쩐일로? 반갑다"
"예, 그럼 운동 하세요~.. "
"넌 어디 소속이냐?"
"예?"
"어느 관장 밑에 있냐구? 그래야 나중에 아는척이라도 하지~"
"예, 아, 저기,, 시합은 그냥 등록됀 체육관 찾아가서,, 부탁해서 뛰구,, 운동은 깐도,, 아니, 저기 김관장
님 한테 배웠습니다,, 김관장님은 잘 아신다고 하던데 혹시 아세요??"
"어디 김관장? 김관장이 한두명이냐? 잠깐, 너 지금 깐도리 라고 했냐?"
왠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왜지? 왜 깐도리 얘기 나오니까?
"예,,그 분.. 맞습니다.."
"어.. 어.. 그래.. 친구야.. 어.. 그래.. 운동 잘하구 가라.."
장선수는 돌연 운동을 중단하구 샤워실로 들어갔다. 마치 누가 자기 운동을 보면 안돼기라도 하듯이.
"형이랑 얘기 하더니, 그냥 들어가네? 야~ 역시 형은 사람 쫒는 재주가 있어~"
"야, 저 사람 여기서 뭐했냐? 무슨 운동 하고 있었냐?"
"등운동 하던데? 턱걸이 *나 땡기던데~"
등운동? 턱걸이? 뭔가 불현듯 스치는게 있었다. 뭔가 있다.. 뭔가 있다!
"저 사람 혹시 턱걸이 할때 팔꿈치 이렇~게 하고 손목 이렇~~~게 하고 그렇게 하든?"
"아, 형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봐도 모르지~ 나 유도선수였어 형~ 왜 내 보디를 빌딩 시키려구 그래~"
김관장에게 배운 운동중에 가장 강조 돼던게 턱걸이 였다. 하지만 지금은 하지 않고 있는 운동이기도 했다.
뭐라 뭐라 설명하면서 자세를 잡아줬지만 너무 힘들고 별다른 효과도 느껴지질 않아서였다.
외국선수들 이나 국내 탑클래스들 운동 하는걸 봐도 그런식으로 하는 사람은 없었고 퉁퉁, 쭉쭉 올라가지.
그렇게 지랄? 같이 자세를 잡아놓고 올라가는 경우는 없었다. 김관장은 네가 아직 느끼질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언젠가 제대로 걸리면 알거라고 말하곤 했다.
김관장에게 운동을 배우는 동안 정말 죽어라고 열심히 했고 열심히 배웠지만 김관장 특유에 운동들중 내게
소화됀것은 없었다. 결국 일반적인, 스탠다드한 보디빌딩 운동과 자세들을 배웠고 정말 중요하다면서 뜸을
들이며 가르켜준 운동들은 사실 이해도 잘 못했고, 그건 그냥 그 사람몸에 맞는 운동이겠지,, 하며 잊어버
리고 있었다. 1년후 내가 떠나던 날, 김관장은 내게 이런말을 했다.
"운동하면서, 운동하면서, 내가 했던말들이 떠오를거야, 네가 포기 안하고 하면 그때 조금씩 기억날거야,
지금은 백번 말해도 몰라, 기억도 안나고, 네가 하다보면 기억날거야, 내가 그때 왜 그 운동에서 그런말을
했었는지, 그리고 그게 어떤뜻이었는지, 나중에 아~ 그게 그런뜻이었구나~ 했다가 또 아닌가? 했다가 할거야.
그러다 언젠가 정확히 떠오를 거야, 내가 했던말, 다 기억날거야, 바로 오늘 본것 처럼~"
깐도리, 김관장은 그렇게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날 배웅 나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던 운동.. 그 운동이 혹시 아까 그 사람, 장정훈이가 한 운동이 혹시..
어쩌면 같은 운동이 아닐까?
'말도 안돼, 그런게 어딨어? 그냥, 운동, 영양, 휴식 이야, 그거 잘하는놈이 이기는거구, 약 쓰는 놈들이
더 좋은 몸 만들어 나오는거구, 그게 다지, 그런게 어딨어?'
그러면서도 머리속에서 턱걸이가 떠나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철봉도 있었다.
'다시, 한번, 해볼까?.. 지금하면,, 지금 하면,, 지금은 내가 힘이 더세지고 느낌이 좋아져서 뭔가 다른게
느껴질까? 그럴까? 과연? 그때는 아무 느낌 없이 힘만 들었는데..'
결국 턱걸이 앞으로 가서 운동가방을 내려 놓았다.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고 스트랩을 꺼내고 웃옷을 벗었다.
축구하고 뛰어놀던 아이들이 우~와!!! 하면서 몰려 들었다.
"와! 와! 존 시나! 존 시나! 와! 와!"
시끄러운 아이들 목소리 속에서 눈을 감았다, 철봉에 힘껏 스트랩을 감았다.
'광배야, 길게 좀 빠져라, 우리 한번 날아보자, 응? 쥐포처럼 납작 붙어있지만 말구, 나비처럼 로니처럼
한번만, 한번만 펄럭여 보자, 친구야'
손가락 각도, 팔꿈치 각도, 얼만큼 올라갔을때 얼만큼 이부분 저부분을 회전시키고 어디까지 짜내고,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제일 네거티브를 걸고. 김관장이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했던 말들이, 어느새 내 입에서
웅얼웅얼 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몸을 당겨 올렸다. 등이 조이는게 아니라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맨위에서 멈췄다. 흔들리지 않았다.
'이부분에서 이렇게 내밀고 여기로 몸을 빼, 그래야 안 흔들려, 버텨 봐, 버틸수 있으면 제대로 걸린거야'
버틸수 있었다. 버티고 있지만 크게 다른 힘이 들지 않았다. 광배가 드르륵 드륵 떨리는 느낌이 났다.
'광배근이 제일 큰 근육중 하나야, 제대로 걸리면 무겁지 않아, 편하게 할수 있어, 이두 짜내는 것처럼'
서서히 김관장이 했던말을 떠올리면 내렸다. 다시 올라갔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5년전이었던가? 오늘도 손바닥 한번 찢어보자..'
어느샌가 더 이상 아이들에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편안했다, 철봉과 내몸이 섞인것 같았다.
철봉에서 그렇게 레터럴을 하는것처럼 설렁설렁 움직이고 있었다. - 8부에 계속 -
ps : 위내용은 픽션 입니다.
2009년 이른 봄날에, BodyBuilder & P.T 멋진빌더
첫댓글 풀업에 비밀이 나오는군요^^
ㅎㅎ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놔~~턱걸이 넘 어려워...ㅠㅠ 풀업은 왜케 어려운지...저도 나중에 잘 걸리면 안힘들까용?ㅋ
나날이 발전 하시겠죠,, ^^
잼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