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배워 볼까봐”
패션 브랜드 홍보를 맡고 있는 지인이 멍하니 꺼낸 말을 “왠 발레”라며 무시한 이유는 그녀에게 뺄 살이 없어서, 또는 자세가 흠 잡을 데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왠 발레인가. 공주 옷을 입고 싶으면 드레스 빌려 주는 카페로 가든가, 괜히 발가락을 혹사시키고 싶은 거라면 킬 힐을 신든가…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운동이라고는 헬스 클럽도 안 다녀본 친구가 발레에 관심을 보였을 때 나는 “왠 발레”라는 대답을 그만 두고 발레 학원을 찾았다. 대체 왜 발레지?
“발레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거든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발레 학원을 드나드는 이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도 발레를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발레는 그들에게 보통 운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통 옷을 입지도 않았고 보통의 동작도 취하지 않았으며 기억으로는 보통의 표정도 지어서는 안되었던 것 같다. 그 고상하고 예사롭지 않은 동작들은 무대 위의 예술이지 결코 취미 생활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찌든 우리 삶 위를 우아하게 콩콩 뛰어다니며 평생 섞여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의외로 발레는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운동이다. 스포츠 댄스, 재즈 댄스를 취미로 배우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고지에 올랐을 때 더 이상 늘지 않는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찾는 것이 발레다. 모델이 워킹의 기본기를 다질 때도, 뮤지컬 배우들이 더 아름다운 동선을 욕심 낼 때도 발레로 돌아온다.
여기에 스타 무용수의 출현, 지방순회공연, 창작 발레 등 발레의 대중화를 위한 지난 몇 년간의 눈물나는 노력은 기어이 발레를 사람들의 눈 높이로 끌어 내렸다. 최근 발레 학원을 찾는 이들은 “배워도 되느냐”는 질문 대신 간단하게 시간표만 묻는다. 토슈즈에 얽힌 동화적 상상력과 튀튀의 판타지를 벗어 버리고 발레는 태보와 요가, 필라테스와 함께 우리의 취미 생활 속으로 사뿐히 안착했다.
“살도 빠지지만 무엇보다 자세 교정 효과가 확실해요”
발레는 운동량이 상당히 크다. 달리기나 수영과는 달리 격렬한 움직임은 없지만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만 해도 엄청나다. 시선은 15도 정도 턱을 들어 거울 속 자신의 미간을 바라보고 등은 곧게 펴서 판판하게 하되 배는 내밀지 않으며, 엉덩이는 살짝 아래로 잡아 당기는 느낌으로 조인 상태에서 발가락 다섯 개는 땅을 누르고 몸의 중심은 양 발 사이 중앙에 위치한 채로 동작이 이루어진다.
한 마디로 몸을 직사각형으로 만든 후 팔 다리를 움직이는 식이라 끝나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평소 자세가 좋지 않은 사람은 더 힘들다. 이렇게 힘을 주고 있는 사이 허리와 엉덩이가 탄탄해지면서 군살이 빠지고 많이 사용하는 옆구리와 다리를 중심으로 라인이 살아난다.
좋은 자세를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의 동작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유연성과 근력을 기르기 위한 스트레칭도 반드시 함께 해주어야 한다. 더 발레 아카데미 최은영 원장의 말에 따르면 거의 한두 달이면 굽은 등이며 목이며, 대부분의 잘못된 자세가 교정된다고 한다.
“첫 시간엔 전부 땅만 보고 계세요. 그러다가 서서히 상체가 들리죠. 초보자 반에서는 바른 자세를 만드는 데만 거의 모든 신경을 쏟아요.”
그러므로 가자마자 토슈즈부터 신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초급반에서는 아예 발끝을 들 일조차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발레리나들의 발끝을 든 포인트 자세는 반복된 연습으로 붙은 근육과 상당한 요령이 필요한 동작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야 가능한 일이다. 튀튀라고 불리는 발레복도 필수품은 아니다.
트레이닝 복이나 레깅스, 그 위에 스포츠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랩 스커트를 두르는 등 편한 복장으로 자유롭게 배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고 해서 발레복의 화려한 레이스 자락에 끌려 발레 학원을 두드린 사람도 무안해할 필요는 없다. 입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가격도 생각만큼 비싸지 않다. 튀튀는 7만원 정도면 살 수 있고, 토슈즈는 4만 원대다.
발레의 가장 큰 적은 뻣뻣함도, 발가락 부상도 아니다. 여느 운동과 마찬가지로 단계별로 진행하기 때문에 진도를 못 따라갈 정도로 어려운 동작은 없다. 관건은 얼마나 자주, 꾸준히 하느냐 하는 것. 전문가들은 다이어트든 자세 교정이든 빠른 효과를 보고 싶다면 최소 1주일에 3회 이상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2회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 3회로 두 달 동안 하는 것이 주 2회로 세 달 간 배우는 것보다 실력이 훨씬 빨리 늘고 몸이 느끼는 변화도 다르다.
초보 바이올리니스트와 프로 연주자의 한 음절이 다르듯이 발레 역시 수평보다는 수직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단계별 정복-완성의 수순이 아닌 한 동작 안에서의 깊이를 더해간다는 점이 발레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질리지 않고 계속 발레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이런 심오한 이유 없이도 발레는 토슈즈의 은은한 살구빛 핑크 컬러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운동이다.
도움말: 압구정동 더 발레 아카데미 최은영 원장 www.theballet.co.kr
참고서적: 발레교수법, 금광미디어 황규자 저
알아두면 좋을 발레 기본 용어
1- 포인트 point
발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로, 발 끝으로 서서 몸 전체를 지탱한다.
2-쁠리에 Plie
다리를 굽히는 동작. 드미 쁠리에는 무릎을 반만 구부린 상태로 뒤꿈치가 들리지 않을 정도까지 내려가고 그랑 쁠리에는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드미 쁠리에를 거쳐 올라온다. 상체가 굽혀지지 않도록 주의.
3-바뜨망 탕듀 Battement Tendu
다리를 앞, 옆, 뒤로 미는 동작. 무릎을 쭉 편 상태로 포인 자세를 만들어 바닥을 충분히 밀어서 나간다.
4-빠세 Passe
양발을 180도로 벌린 상태에서 다리의 발 끝을 포인 자세로 서 있는 다리 무릎까지 들어 올린다. 움직이는 다리의 발끝에 중심을 주지 않고 무릎에 닿아 있을 수 있도록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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