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역에서 두시 출발이라 해서 15분 전에 도착하니 벌써 다들 와 있고 내가 마지막인 듯싶다. 바로 개찰을 하고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여럿이 가는 여행이라선지 괘스리 마음이 들떠 기분이 하늘을 날 것 같다.
오늘 여행에 참가한 친구는 김장군, 영훈, 갯돌, 남장군, 기화, 주현. 아곡, 닉슨, 박사, 향산, 익용, 솔뫼, 한스, 해리 이렇게 14명이나 되었다.
2시5분 기차가 서서히 출발하자마자 회장 박사가 분주히 움직이며 먹을 것을 챙긴다. 그러면 그렇지. 보기만 해도 질리게 커다란 패트병에 담김 소주와 맥주를 꺼내어 양 손에 들고 다니면서 종이컵에 부어 준다. 그리곤 어디서 샀는지 돼지족발을 나눈다. 한 사람에 한 봉지씩 간식거리도 준다. 우리는 뜻밖에 너무도 꼼꼼히 준비해 온 회장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면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돌자 목소리들이 커진다. 다른 손님들도 있으니 자제하자고 서로서로 달래면서 후보생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제대할 때까지의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그 군대 얘기는 40여년을 했는데도 지긋지긋하지도 않은지, 아무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끝도 없고 한도 없다. 거기에다가 요즘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술이 취해 갈수록 더욱 철저한 애국자가 된다. 옛날 김구 선생의 열혈 연설은 저리가라다.
기차가 출발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차창 밖은 어둑어둑하고 기차는 어느 산골짜기를 헤치고 달리는지 휘휘한 기분마저 든다. 이제 기차가 탄광지대를 파고 드는 모양이다. 밖을 내다보니 빠징고로 유명한 사북역이다. 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시계가 6시 반을 가리켰을 때 비로소 기차는 늑대같은 기적소리를 내며 태백역에 섰다. 장장 4시간 반이나 걸려서 이 촌구석에 온 것이다.
우리 일행이 표를 내고 대합실로 나오니 예약한 여관의 안주인이 우리를 맞이한다. 얼굴이 참한 50대의 중년 부인이다. 헌데 말을 못한다. 오늘 사랑니를 뺐단다. 말을 시켜도 솜을 물고는 말하면 안 된다고 막무가내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역에서 한 5분쯤 되는 어느 골목길에 <영빈장>이란 간판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머물 곳이 5층이라는데 계단이 어찌나 가파른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배낭을 방에 던져 놓고 아주머니가 안내하는 음식점으로 갔다. 가는 길은 태백시의 중심가인 듯 무척 번화한 거리여서 서울의 뭰만한 곳 뺨치게 휘황찬란하다.
쇼윈도우에 걸린 마네킹들은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윙크를 보내고 있고 거기 걸린 옷들은 모두 이름난 브랜드의 명품들이다.
그 거리를 걷는 젊은이들의 옷차림도, 발걸음도 서울의 청춘 남녀들에 뒤지지 않는다.
이젠 서울과 시골의 차이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세상이 그만큼 바뀐 것이다.
아주머니는 그 긴 태백의 다운타운을 다 가로질러 가서야 <현대식당>이라고 하는 고깃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 집이 태백에서 제일 좋은 고기를 씁니다.” 이를 빼어 솜을 문 여인은 어눌한 말투로 한 마디 하고 많이 드시라 하며 나갔다.
태백의 생고기는 옛날부터 유명한 터라 내 이미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과연 이 집 고기는 맛이 있었다. 기차 안에서 하도 떠들었던 까닭인지 허기가 돌던 차에 맛있는 고기로 배를 채우고 반주로 소주 한 잔을 마시니 갑자기 몸이 나른해 온다.
저녁을 마치고 여관 근처로 와서 <차차차> 노래방으로 갔다. 마이크를 잡으니 모두들 명카수다. 그 중에도 갯돌의 <칠갑산>은 그야말로 “짱”이었다.
11시 반 여관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누우면서 모두들 오늘 밤엔 누가 코를 골아 잠을 설치게 할까 걱정들이다.
첫댓글 아곡으 총기와 문장력에 찬사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