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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때부터 그를 키워주신 노스님은 분노로 절절 끓는 그가 피를 토하듯 뱉어내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저 "그런데…그랬구나…" 하실 뿐이다. 그 때 세상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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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앞나무 바닥에 노스님이 마음을 다스리라며 써주신 반야심경을 한자 한자 칼로 파 새긴다. 하루 낮을... 그리고 하루 밤을 꼬박....
그렇게 새겨놓고 감옥으로 갔던 남자. 그 글씨들이 그사람의 마음 바닥에도 그대로 새겨졌던가.
노스님이 스스로 몸을 불살라 세상을 떠나고 오래 텅 비어있던 절에 중년의 남자가 돌아온다. 호수가 꽝꽝 얼어붙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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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닦으며 절을 지키는 남자. 절을 찾은 이름 모를 여인이 두고 떠난 아기가 그 남자의 옆에 남고, 맷돌짝을 끈으로 묶어 허리에 두른 남자는 눈 덮인 산길을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올라 산꼭대기에 부처님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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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아이는 산으로 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입에 억지로 돌을 물린다.
예전의 절에서 자라던 아이처럼.... 아이는 재미있어서 터질 듯 웃어대고, 산꼭대기에 모셔진 부처님이 가만 내려다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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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영화 역시 아이에서 소년으로,청년으로,중년으로 그리고 노년으로 옮겨가는 인생의 길을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바탕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비록 한 평생 사는 일이 돌고 도는 원이 아니라 태어남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이라 해도 우리들 서있는 자리는 결코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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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이 자신의 얼굴에 뚫린 모든 구멍을 "닫을 폐,막을 폐(閉)"자가 써 있는 종이를 붙이고 세상 떠날 때, 우리들 삶의 모든 죄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기에 참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그 무엇이 있어 평범한 우리들의 죄를 막고 닫아 줄것인가. 어떤 담도 벽도 그것을 해줄 수 없기에 영화속 절에는 담이 없고, 방에는 벽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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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너번정도 보았는데............. 저렇게 기막히게 지어놓은 저 사찰을 관리하기 힘들다면서 관청에서 없애버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글펐습니다.
ㅠ.. 안타까운 사실이네요 ... 너무 쇼킹? 하면서도 아름다웠던 물위에 떠있는절이 거의 없지 않나요?? 서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