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가정교육] “가훈은 ‘하면된다’ 죠”…前 복싱 세계챔피언 홍수환씨
입력 : 2003-12-04
모든 면에서 자녀에게 삶의 모범이 되는 것이 좋은 부모의 정의라면 홍수환(53)씨는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는 부모는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복싱 사상 최초로 두 체급을 석권한 세계 챔피언이라는 영광 뒤에는 가수 옥희씨와의 스캔들과 첫 부인과의 이혼이라는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96년에 세례를 받고 나서 자주 간증을 하러 다닙니다. 그러면 간혹 대놓고 ‘본처하고 안 사는 사람이 어떻게 간증을 하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나는 그럼 내 인생,내 아이들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하죠.”
홍씨는 첫 부인과는 1남3녀를 두었고,옥희씨와의 사이에서 1남1녀를 얻었다. 그가 82년 미국으로 떠날 때 동행했던 첫 부인과의 아이들은 지금도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 회계사인 맏딸 정은(30)씨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몄고,둘째 지은(28)씨는 건축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셋째 대호(25)씨는 대학생이며,넷째 주희(24)씨는 부동산쪽 일을 하고 있다.
옥희씨와의 사이에 얻은 맏딸 윤정씨는 대호씨와 41일 사이를 두고 태어났다. 스캔들의 와중에 옥희씨는 윤정양에게 자신의 성을 붙였지만 윤정씨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닐 만큼 똑똑하게 자랐고,4년 전 유학을 떠나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지금 홍씨가 함께 살면서 사랑을 쏟고 있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인 막둥이 장환군이다.
“윤정이와는 화해를 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나를 제일 많이 닮은 게 윤정이거든. 미국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한국에 오면 우리 집에 묵으면서 집사람한테 ‘옥희 엄마’라 부르고,잘 어울립니다. 핏줄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핏줄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물림 복서로 나섰던 맏아들 대호씨에게 딱 들어맞는다. 대호씨가 사춘기 시절 반항심을 권투로 분출하라고 홍씨가 복싱을 권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매 맞는 걸 보는 것도 고역이지만 아비 입장에서는 체중 때문에 먹을 걸 못 먹는 걸 못 보겠습디다. 우리 어머니 심정을 이해할 수 있더라고.”
홍씨 이야기를 하려면 1974년 밴텀급 챔피언 자리에 올라 “엄마,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치는 그에게 “대한민국,대한국민 만세다!”로 화답했던 그의 어머니를 빼놓을 수 없다.
권투광으로 어린시절 그를 시합장에 데리고 다녔던 아버지가 그를 권투의 길로 이끌었다면,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가장이 된 그의 어머니는 아들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고,아들이 맞아서 번 돈 남에게 뺏길 수 없다며 직접 관리한 매니저 중의 매니저였다.
홍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권투를 하겠다고 나서자 “족보에 없는 놈이 나왔다”며 뜯어말렸지만 막상 권투를 시작했을 때는 운동하는 아들을 배곯릴 수 없다며 일하던 미군부대 식당에서 버터를 옷 속에 숨겨 나오기도 했고,그가 데뷔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우울해 하자 “수환아,딱 한번만 이기고 관둬라”라고 격려했다.
홍씨는 한번만 이겨보겠다는 생각에 두번째 경기를 치뤘고,그렇게 한번씩,또 한번 모두 50번 링에 올랐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성공하고 나서도 미군부대일을 계속하셨고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 식당을 운영했지요. 만약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더라면 내가 과연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봐요.”
홍씨 역시 대호씨에게 어머니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자식이 원하면 그 길을 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호씨의 데뷔전 때는 세컨드를 자청하며 아들을 도왔다. 그런데 3전3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하는가 싶었던 대호씨는 최근 연습 중에 눈을 다쳐 결국 권투를 포기해야 했다.
지금은 미국 패서디나 대학에 복학해 학생으로 돌아갔지만 한번 품었던 꿈을 접어야 한 그 속이 편할 리 없을 터. 홍씨 역시 아쉬움이 컸겠지만 ‘4전5기’의 주인공답게 “4번의 고통이 있으면 5번의 기쁨이 있는 법”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집 가훈이 뭐겠어요?‘하면 된다’지. 권투를 하든 뭘 하든 열심히 하자는 게 우리 집안 신조니까 대호도 앞으로 무얼 하든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홍씨는 아이들에게 좀 위험하다 싶은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한번쯤 궤도를 벗어나봐라’,‘때론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라’,‘패배 없이 나오는 근성은 없다’는 말들이 그런 것으로,그로서는 모두 굴곡 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통해 검증한 덕목들이다.
“그래야 자기 개척이 됩니다. 저는 자유롭게 아이들을 풀어 키웠지만 ‘그래도 아버지,그래도 어머니’라는 의식은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엄해야 할 때는 엄하게 대했어요.”
홍씨는 엄마로서의 옥희씨를 “정이 많아 탈”이라고 평한다. 도통 늦둥이 장환이를 혼낼 줄 모르는 아내를 두고 “정은 엄하지 못하지만 사랑은 엄한 것”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홍씨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황선홍 선수의 사인을 받아다줄 만큼 애지중지하지만 아들을 꾸중할 때는 용서가 없다. 그렇다고 매를 들거나 큰 소리 낼 필요도 없이 눈매를 찌푸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링에서 무수한 선수들을 제압했던 날카로운 눈매이니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이 대항하기에는 당연히 역부족일 것.
“그런데 대호한테는 별로 엄하지 못했어요. 이혼 때문에 사춘기에 가슴에 못 박힌 아이에게 또 상처를 줄까봐 당시에는 어떻게든 가르치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했어요. 그래도 대호나 다른 아이들이 다 착실해요. 적어도 아빠가 사랑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겁니다.”
권혜숙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2003120400000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