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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11
시험과 관련된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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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1 -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홍도의 ‘서당’(1700년대 후반 추정). 서당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했어요.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렸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오는 14일 전국의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릅니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지요. 입학 외에도 취업, 면허, 자격증 등 살면서 시험을 볼 일이 생기지만, 시험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학교생활이 떠오릅니다. 시험이 없는 학교는 상상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고달파졌습니다. 아마 모두가 '세상에 시험이 없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수십 번 꿈꾸었을 겁니다. 옛 그림에도 시험 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 그림들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해요.
서당에서 회초리 놓고 질문했죠
선조들도 시험을 피해 가진 못했답니다. 18세기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작품 ①〉은 당시 서민의 일상을 생동감 있게 그린 풍속화로 잘 알려진 김홍도(1745~?)의 '서당'입니다. 옛 어린이들이 글을 배우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서당은 유학(儒學) 교육을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진 교육 기관이에요. 오늘날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나이대의 학생들이 다녔답니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학교를 세우는 대신, 교육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서당을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죠.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가 아닌 서당에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공부했고, 예의범절과 인간의 덕목을 익혔습니다. 서당에는 선생님 대신 훈장님이 있었지요. 지금처럼 나라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교사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 훈장의 학식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고 해요.
그림을 보세요.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아이들이 다 외워 왔는지, 훈장님이 회초리를 옆에 놔둔 채 아이들에게 차례로 질문합니다. 훈장님 앞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훌쩍거리는 아이가 있네요. 아마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고 있어요. 그림 왼쪽에 있는 아이들은 답을 살짝 귀띔해 주기도 하고, 책에서 답이 있는 쪽을 찾아 주기도 하네요.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보이는 그림이 외국에도 있어요. 주로 농촌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아드리안 판 오스타더(1610~1685)의 '학교 선생〈작품 ②〉'입니다.
부모님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마을의 한 어른이 선생님 역할을 맡아 아이들을 돌보며 글을 가르치는 모습이에요. 어둡고 허름한 교실에 손에 회초리 같은 막대를 든 선생님이 앉아있고, 세 아이가 불려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문제를 내고, 아이들은 정답을 맞혀야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상황 같아요.
당시 유럽 농촌은 문맹률이 매우 높아 대다수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농부의 자녀들은 글 읽기를 배우기보단 농사일을 배워 부모를 돕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당시 무역이 크게 발달한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서민들은 주로 교회나 민간 학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고, 인쇄술의 발달로 책 또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답니다.
그림에선 교실 여기저기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선생님 앞에 선 아이는 자신이 말한 답이 틀렸는지 눈물을 닦고 있어요.
대학 입학 후 긴장 풀린 모습도
〈작품 ③〉에선 책상에 앉아 공부는 하지 않고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는 한 남학생의 모습이 보여요. 우크라이나 태생의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이 그린 '시험 준비'입니다.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레핀은 어릴 적부터 그림에 뛰어나서 '미술 신동'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186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임페리얼 아카데미에 입학해 미술을 배워요.
'시험 준비'는 레핀이 입학한 해에 그린 것이랍니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 시험에 대한 긴장이 좀 느슨해진 것일까요? 기숙사에서 방을 같이 쓰는 친구는 시험 기간인데도 마음 편히 잠을 자고 있고, 주인공 남학생은 옆 건물에 있는 여학생과 눈길을 주고받느라 공부는 완전히 관심 밖이네요. 그런데도 제목을 '시험 준비'라고 붙인 화가의 유머가 돋보입니다.
〈작품 ④〉는 약 70년 전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모습입니다. 1956년 서울대학교 개교 10주년을 기념해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였던 화가 장우성(1912~2005)이 그린 '청년도'입니다. 책을 든 대학생들이 강의실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인데,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대학생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빨간 책을 들고 있는 여학생이에요. 신분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는 교육받을 수 있는 양반 귀족층과 일을 배워야 하는 평민층이 구분되어 있었고, 여성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죠. 여성 교육은 1920년대 들어서야 활성화되기 시작했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대학 생활을 그린 그림에 여자가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에요. 여자도 사회 일원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게 된 거죠.
1956년은 6·25전쟁이 멈춘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입니다. 밥을 굶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나라가 어려웠죠. 이런 상황에서 장우성 화가는 대학생들을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새 주인으로 그렸어요. 어려운 상황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통과해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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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2 -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아드리안 판 오스타더의 ‘학교 선생’(1662). 허름한 교실에서 여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이에요. 나무에 오일. /루브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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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3 -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시험 준비’(1864). 시험을 앞두고 딴짓을 하고 있는 학생 모습에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캔버스에 오일. /러시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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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4 -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를 지낸 화가 장우성의 ‘청년도’(1956). 강의실 밖에서 대화하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여성도 있어요. 한지에 수묵담채. /서울대학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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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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