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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7월 2일 이른 아침, 나는 아이다호주 케첨의 한 주택 앞에 서서 총성을 듣는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방금 자신의 엽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거의 모든 것의 뿌리를 유럽에 두고 있는 미국이지만(특히 20세기 초까지는 더 그랬다),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이거야말로 미국인이 쓴 미국의 문학이라고 내세울 만했다.
실제로 그는 서부를 개척하는 초기 미국인처럼 하드보일드한 인생을 살았고, 그런 문장과 스토리를 자신의 원고지 안에서 승화시켰다.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군기자였으며 아프리카의 사냥꾼이자 쿠바의 낚시꾼이었던 헤밍웨이는 스페인의 투우를 사랑했다. 이게 작가로서의 세계적 유명세 역시 실컷 즐겼던 그의 겉모습이라면, 정작 그 이면은 처절했다. 두 차례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두개골 골절과 척추 부상을 입었고, 간 질환과 당뇨, 고혈압이 겹쳤다. 네 번의 결혼과 수차례의 불륜, 알코올 중독, 폭력적인 성격, 친구들을 향한 배신과 독설로 인한 불화로 그의 일상은 고통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특히 말년으로 갈수록 편집증과 우울증이 심각했다.
헤밍웨이는 FBI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망상에도 시달렸는데, 훗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밝혀진 바 FBI 국장 에드거 후버가 그를 사찰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글로는 빙산의 일각만을 드러내고 그 수면 아래 거대한 의미가 잠겨 있어야 한다는 헤밍웨이의 ‘빙산이론(Iceberg Theory)’은, 그의 간결한 문체와 행동 중심의 인물 형상화로 20세기 영미 문학의 스타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어쩐지 삶에 대한 법문(法門)처럼도 느껴진다.
말년이 좋아야 한다, 삶은 평안하고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분명 불행한 사람이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 패배가 예정된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주인공들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별것도 아닌 속물 주제에 대가인 척 세상을 속이며 백년을 채우려는 자들보다는 인간 헤밍웨이의 파멸이 정직하게 여겨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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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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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시인·소설가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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