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수원 |
| | 산림 과학원 |
| | 활엽수원 |
| | 조경인의 숲 |
| | 세종대왕 기념관 전경 |
| 가을이 오면 왠지 해야 할 것이 많은 느낌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는 노래처럼 건조한 인터넷 메일이 아닌 편지지 위에 사각사각 소리내며 연필로 편지를 써 정다운 친구에게 편지라도 보내고 싶고… 또 여기저기 가을 향기 따라서 여행도 가고 싶고…
이렇듯 가을은 여름과 무척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름은 파란 색으로 그리고 가을은 갈색으로 표현하고 싶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저절로 그런 느낌이다.
이번 주 여행지는 비록 드라이브 코스는 아니지만 가을 문턱까지 마중을 나서듯 수목원으로 가볼까 한다.
홍릉수목원은 벌써 가을이 한창이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숲속을 거닐면 길섶의 풀벌레소리, 숲속의 새소리, 하늘거리는 들꽃에 마음이 한결 넉넉해진다. 이번 주말엔 날렵한 구두 대신 투박한 캐주얼화를 신고 임업연구원 부설 수목원인 홍릉수목원으로 가 보자. 걸음걸음 삶의 쉼표를 찍어가며 걷는 그 길에선 발 밑에서 바스라지는 낙엽 소리, 머리 위에서 서걱대는 나뭇잎 소리가 들릴 터이다.
1. 가을로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2번 출구)에서 내려 한국과학기술원 쪽으로 15여 분을 걷다 보면 홍릉수목원의 정문인 통나무 담장에 닿게 된다. 통나무 담장을 훌쩍 넘어 수목원으로 들어서면 잿빛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지겹게 빵빵거리는 차 소리도, 매섭게 코를 찌르는 공기도 없는 원시지대 홍릉수목원. 숨통 트여 오게 맑은 공기와 나무향만 가득한 그곳에는 이미 나무마다 가을이 둥지를 틀어 환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잎을 툭툭 떨궈 내리고 있는 문배나무도 꽃처럼 붉게 피어난 복자기도 완전 가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2. 가을이 머문 숲
홍릉수목원은 임업시험장 창설과 함께 1922년 조성된 우리 나라 최초의 수목원이다. 통나무 담장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면 무궁화 78종을 나란히 심어놓은 아스팔트길(무궁화원)이 본관까지 곧게 뻗어있고, 길 양편의 울창한 숲에는 80년 성상을 견딘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쭉쭉 뻗어있다. 한 뼘 하늘을 보기 위해 제 멋대로(?) 자란 초본식물들도 야들야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천장산 남서쪽 사면 13만여 평의 너른 터에 침엽수원, 활엽수원, 관목원, 조경수원 등 수목원 9곳과 약용식물원, 수생식물원 등 식물원 3곳을 거느리고 있으며, 마로니에 쉼터 등 6곳의 휴게소와 홍릉터를 두고 있다.
제1수목원에서 제9수목원까지 번호 순서대로 둘러보아도 되고,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제2수목원에서 출발하여 산림과학관을 지나 산 능선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온실을 들리고 제1수목원을 거쳐 나와도 좋다. 어느 코스로 돌아도 3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천천히 담소하며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홍릉수목원을 효과적으로 보려면 둘레 4km 코스(약 1시간 30분)를 천천히 도는 것도 좋겠다.
3. 숲으로 가는 길
본관 좌우로 난 오솔길부터 흙길과 통나무 계단이 번갈아 이어진다. 숲길은 지루하지도 숨차지도 않을 만큼 완만한 등고선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되풀이한다. 가을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은 주로 본관 (연구동) 왼쪽 뒤에 자리한 활엽수원(제8수목원). 그곳에서는 우리 나라 특산수종인 좁은 단풍, 당단풍 등 수백 종의 활엽수가 고운 가을빛의 절정을 보여준다. 1시간 남짓 오솔길을 돌아 숲 꼭대기에 이르면 한국개발연구원과 경계를 이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찬란한 가을꽃을 피워낸 듯 울긋불긋한 활엽수들이 하늘을 빽빽하게 가린데다 때 이른 낙엽도 간간이 쌓여 숲은 꽤 농후한 가을빛을 띠고 있다.
활엽수원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나타나는 조경수원도 가을에 찾으면 운치있는 곳이다. 나무로 예쁘게 바닥을 깔아놓은 오솔길(산책로)을 따라 숲 꼭대기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조경인의 숲'이라 새겨진 커다란 암석 뒤로 조경수원이 펼쳐진다. 정원처럼 펼쳐져 있어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조경수원엔 복자기 나무, 좁은 단풍 등과 함께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압권이다. 눈처럼 지면을 하얗게 덮고 있는 구절초,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이들이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은 가을천상을 연상케 한다.
4. 멈추어 가는 길
산림 과학관과 홍릉터에선 잠시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정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습지원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산림 과학관은, 산림의 가치와 임업·임산업의 지식·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아름드리 나무 둥치 표본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식물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1, 2, 3전시실과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등과 조형 목조탑, 국내 원목 표본, 국내외 석재표본 등을 전시하고 있는 중앙홀을 갖추고 있는데, 내외부가 모두 질감 좋은 목재라 독특한 느낌을 준다. 또 산림 과학관을 둘러싼 정원도 단풍 든 나무들이 많아 매우 멋진 가을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 민비의 능이 있던 곳인 홍릉터는 연구동 뒷편 숲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고종이 승하한 1919년 경기도 금곡으로 능을 옮기고 1922년 일제가 이 자리에 우리 나라의 산림 자원을 수탈하고자 임업시험장(현 임업연구원)을 설치하면서 터만 남아 있어 특별한 볼거리가 되지는 못하지만 홍릉수목원이 홍릉의 능림(능 주위 숲)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때 한 번쯤 눈길을 돌려볼 만하다.
5. 보태어 가는 길
홍릉수목원 근처에 있는 영휘원(도보 5분)과 세종대왕 기념관(도보 2분), 경희대(도보 15분)도 여유를 갖고 둘러볼 만하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영휘원과 숭인원은 각각 고종황제 후궁 순헌귀비 엄씨와 이은 (영친왕)의 큰아들 이진의 무덤으로, 묘 주변에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이 많아 단풍이 화려하다. 세종대왕과 관련된 제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세종대왕 기념관도 소나무, 은행나무 등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전망과 경치가 뛰어나다. 또 경치가 빼어난 도시의 산책코스로 손꼽히는 국방연구원~경희대간 회기로를 따라 경희대까지 15여 분을 걸어보는 것도 좋고, 국내의 대학 캠퍼스중 가장 아름답고 잘 꾸며져 있다는 경희대(휴일에만 개방)에서 데이트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경희대 앞은 항상 젊은 인파로 북적대는 카페촌이라 개성이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6. 기타정보
매주 일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하며 입장료는 없다. 단, 평일에는 교육 목적에 한해 단체에게만 개방한다. 또 수목 보존을 위해 숲 속에선 담배는 물론 돗자리를 펴서도 안되고 도시락을 먹을 수도 없다. 홍릉수목원, 산림과학관 모두 단체 예약은 방문 예정일 7일 전에 팩스로 신청해야 한다. 한편 수목원에 갈 때는 식물도감을 가져가 실제 모습을 비교하며 관찰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홍릉수목원 : 961-2651, 961-2663
산림과학관 : 961-28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