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뛰어난 인물이기를 원한다. 사회적인 화려한 성공은 물론이고, 외모 또한 출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의 희망을 채우면 어딘가 하나는 남들에 비해 모자라는 불만을 안고 산다.
그런데 이 모두를 성취한 젊은이가 지금 화제가 되고 있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의학도로 2002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되고도 모자라 MIT와 하버드에까지 합격한 금나나 씨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때마침 자신의 자서전 <나나 너나 할 수 있다>(김영사) 출간과, (주)효리원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공부 잘 하는 방법에 대한 ‘어린이를 위한 책’ 출간을 앞두고 팬 사인회를 위해 코엑스에 있는 서점 ‘반디엔루디스’에 나온 금나나 씨를 만났다. 어머니와 함께 동행을 했는데, 모녀간이라기보다 자매처럼 보일 정도로 스스럼없이 다정한 모습이었다.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늘 제게 도전의식을 심어 주었지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결국 소망하던 바를 이룬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조금은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스코리아 진에 뽑힌 미인이라는 선입관 때문이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처럼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행복에 휘둘려 있을 듯한, 그러면서 어딘가 ‘가녀린 마음을 지녔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무너졌다. 그녀는 미녀인 동시에 개척정신이 투철한 한 젊은이였다.
금나나 씨의 자서전을 읽어본 독자는 그녀의 이 말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녀의 성공 뒤에 감추어진 땀과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금나나 씨는 경북 영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에 있는 경북과학고에 진학한다. 수재들이 모인 이 곳에서 그녀의 성적은 바닥을 맴돌았다. 치열하게 시험공부에 매달려 마침내 성적은 상위권으로 올라섰으나, 이 때 받은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과 폭식증에 시달리게 된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여느 여대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예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그녀는 한때 키 172cm, 허리둘레는 30인치가 넘었고, 체중은 62kg에 이르기도 했다. 운동복을 세 벌씩 겹쳐 입고 하루 두 시간씩 달리면서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한 끝에 그녀는 10kg 감량을 무난히 통과하고, 내친김에 미스코리아가 되기도 했다.
금나나 씨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2003년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대회 참가가 계기가 됐다.
“대회를 위해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한 그녀가 이런 포부를 가지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스폰서 회사와 디자이너 등을 동반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본 대표와 엄청난 정부 지원 을 받는 중국 대표를 보면서, 혼자 옷가방을 메고 허둥거린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 도전정신이 강한 그녀로서는 이보다 뭔가 한 걸음 앞서야 한다는 강한 경쟁심이 발동했다. 그녀는 미국 서부와 동부의 대학들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래, 이왕이면 아이비리그,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하버드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미스코리아 진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모델이나 방송 연예계로 진출하는 등 수상 경력을 기득권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금나나 씨는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그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다.
금나나 씨는 귀국하자마자 또 다른 자기의 목표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5개월 동안 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해 하버드와 MIT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언급하며, 자신은 노력하는 경지에까지는 온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을 오직 성공을 위한 에너지로 바친 게 아니었다. 성공은 하나의 목표이긴 하지만 그 곳으로 가는 노력은 바로 ‘그 것을 즐기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게 어떤 일이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체육교사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체력 덕분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경북대 의예과 수시모집에 합격하였지만, 그녀는 내신 성적 때문에 국내 대학에 줄줄이 떨어진 아픈 추억도 있다. 그래서 수능점수 1점 차로 운명이 좌우되는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처럼, 학력을 높이는 자기만의 수업방법을 스스로 개발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백만 불짜리 노트 필기법’, 3시간 공부 효과를 내는 ‘3분 명상법’, 과목별 공부근력 키우기 등의 독특한 공부 방법을 개발하여, 결국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안티 미스코리아’가 생길 정도로 어떤 사람들에겐 미인대회가 부정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외과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였던 금나나 씨에게는 미스코리아가 단순히 자신의 미를 성취하는 목표의 자리만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스코리아 출전은 도전정신에 대한 확인과 함께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한 한 준비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그런 고정관념을 스스로 한번 깨 보고 싶었던 다.
금나나 씨와 대화하는 동안 필자는 문득 그녀가 ‘들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미스 코리아라면 누구나 화려한 장미꽃을 연상한다. 인터뷰하는 동안 동행한 어머니와 다정하게 서점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평범한 모녀와 다르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학교 선생님인 부모를 대신하여 손수 요리를 하며 동생들을 챙겨 먹이고, 걸레질을 하면서 집안 정리를 하는 일에 익숙했다고 한다. 이번 자서전에는 이런 그녀의 소탈한 모습들이 소개된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주로 입고, 운동화를 즐겨 신고, 눈썹화장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털털한 미스코리아, 그리고 달리기를 좋아하여 지금도 하루 두 시간씩 걷고 뛰는 강인한 체력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학교 가정 선생님인 그녀의 어머니와 체육 선생님인 아버지의 특별한 가정교육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부모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부엌에 들어가 스스로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 재료로 장난을 치거나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무작정 자유를 주는 건 아니었다. 뒤처리도 스스로 하도록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모는 아이들을 강제로 학원에 보내거나 아이들의 적성과 다른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래서 금나나 씨는 5살 때 안짱다리 교정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강제로 무용학원에 다니게 된 것 외에는 서예, 피아노 등을 모두 자신이 원해서 배웠다. 이런 가정교육으로 인해 금나나 씨는 일찌감치 스스로 도전하고 성취하는 데 필요한 튼튼한 독립심을 배웠다.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의과대학으로 전공을 택하는 것도, 미국 대학에 도전하는 것도 모두 그녀 스스로 결정하고 이루어낸 것이었다.
지금 20대 초반의 젊은 그녀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 ‘국내 최초의 의학도 미스코리아 진’ 여기에다 ‘미국 하버드와 MIT에 동시 합격한 수재’라는 뉴스의 타이틀이 크게 작용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금나나 씨를 이런 뉴스 제목의 튀는 충격만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나나 너나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자서전 제목처럼, 조그만 실수나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녀의 이런 ‘들꽃’ 같은 강인한 도전정신은 훌륭한 귀감으로 작용하리라는 기대가 더 크다.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공부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우선은 크게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현재의 나 자신을 다듬기 위한 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물론 목표나 희망이 중요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너무 목표에만 매달리다가 현재의 자신을 손상시키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는 그녀에게서 범상치 않은 깊은 철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