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모두
이 달 형 베네딕도 / 선화동 성당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마치 소나기가 등을 타고 내리는 것처럼 온몸에 진땀이 흐른다. 당신은 교회에 무엇을 청합니까? 신앙을 청합니다. 순간 뜨거운 액체가 뜨겁게 두 뺨에 흐르고 있었다. 교회가 당신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다시 한 번 목이 메이고 두 볼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영원한 생명의 문턱에 서서 나는 세례성사를 받고 있다.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수 없이 많은 지난날의 암울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2003년 1월 12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예비자 교리반에 입교했다. 교리를 통해서 그 동안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오던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한 걸음 한 걸음 하느님을 향해 다가서는 내 모습에 나 자신은 너무나도 놀랐고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날 나에게 너무나도 큰 시련이 절벽처럼 내 앞을 가로막았다. 첫째, 그 동안 생활해 온 수 없이 많은 세상의 나쁜 습관들이 너무나도 나를 힘들게 했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 위해 성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성서를 쓸 수 있을 거라 믿어지지 않았지만 나 자신의 습관들을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피곤하고 힘이 들었지만 매일 다섯 시간씩은 꼬박 쓸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말씀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처럼 행복했던 시간은 없었다.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세례를 받기 전에 신약을 모두 쓸 수 있었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기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변화되어 갔다. 그리고 나 자신과 아니, 세상과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가 생겼다.
오래 전 또 하나의 힘겨운 삶이 떠오른다. 긴 세월의 방황으로 가정은 폐허가 되었고 산더미 같은 빚더미에 막막하고 앞이 캄캄했다. 점포에 달린 방 하나에 천막으로 덮은 가건물에서 우리 가족이 겪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힘겨웠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스런 가족, 그 속에서도 불평불만 없이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과 용기가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가족의 믿음과 사랑이었다. 나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용기와 희망과 믿음 또 사랑을 간구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용역 회사를 찾아갔다. 난생 처음으로 너무나 힘이 드는 막노동을 시작했다. 첫 날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피멍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쓰러질듯 피곤했다. 그 날 저녁 일당으로 받은 54,000원을 아내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나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그 때의 보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떨리는 듯 한 손으로 그 돈을 받아 든 아내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함께 뜨거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돈을 아까워서 어떻게 쓰냐는 아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하며 때로는 더위에 때로는 추위에 너무나도 힘이 들었지만 매일 성서를 쓰면서 힘과 용기를 얻고 이런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 감사 드렸다.
그런데 한 달에 필요했던 돈은 삼백만 원이 넘는 큰 액수였다. 열심히 일해도 한 달에 백이삼십만 원 정도였다.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용기가 생겼다. 믿음과 희망 속에서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평화로운 우리 가정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매달 모두 결제를 하고도 항상 이삼만 원씩이나 남았다. 우리는 그 때마다 그 남은 돈을 들고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든 지난 일들이 생생하고 그 뜨거운 눈물은 식지 않고 우리 가슴속 깊이 남아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가득한 우리 가정, 그 삶이 너무나도 신비스러웠다. 하루하루 변화되어가는 나 자신에게 우리 가족 모두가 아니, 나 자신은 너무나 놀랐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통해서 성숙시켜 주시고 계시다는 걸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나의 영혼을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위해 참고 기다려준 사랑하는 아내, 소중한 자녀들. 그 큰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돌아올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를 비워 놓고 기도와 사랑과 헌신으로 인내하고 기다려준 그들에게 뜨거운 참회의 눈물과 함께 감사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나는 항상 나와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이런 나를 눈물로 걱정하시던 부모님을 사랑한다.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아내를 사랑한다. 나를 믿고 의지하던 아들 그리고 딸을 사랑한다. 형제자매를 사랑한다. 이웃을 사랑한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두를 사랑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두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