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와 뽀뽀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혜영
문득 생각난다. 어린 시절에는 어찌 그리 말라리아가 심했는지, 여름에는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하루는 아프고 하루는 괜찮아, 하루거리라고 했다.
나는 이른 여름부터 서리가 내리는 가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앓았다. 심한 오한과 두통은 말로 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 때는 일제 말기라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 농촌에서는 병원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금계랍이란 쓰디쓴 약만 먹고 견뎌야 했다.
민간요법도 많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밤에 오래 묵은 묘에서 재주넘기를 하여 놀라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무서운 경험을 하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이웃집 출입도 안하시는 분인데 아침 일찍 나를 불러내어 이웃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들었지만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꼼짝 못하고 따라가서 옆집 마루에 할아버지와 함께 앉았다. 할아버지께서 옆집 아저씨에게 무엇인가 지시를 하시니 아저씨는 황소를 끌고 내 앞으로 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꼭 안으시고
“빨리해!”하셨다.
아저씨는 황소를 내 얼굴에 바짝 들이대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나는 울며 몸부림을 쳤다. 소도 겁이 나는지 딱 버티고 꼼짝을 하지 않으니 아저씨는 소를 끌어당기고 할아버지는 나를 더욱 꼼짝 못하게 붙드시느라 몸부림을 치셨다. 한참을 그렇게 하시다가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 하시고 끝났다. 순간이지만 그런 난리가 없었고, 나는 초죽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는 속이 상하셨는지
“그러니 이제 그만 아파라 하셨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은 말라리아가 없어졌다고 믿고 살았는데 경기도 연천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요즈음은 좋은 약이 있으니 나의 어린 시절 같은 고통은 없으리라.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황소와 뽀뽀도 해봤으니 대단한 슈퍼 우먼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황소처럼 꿋꿋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2012․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