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상식의 화려한 상징 ‘레드카펫' |
연말이면 으레 TV에서 접하게 되는 각종 시상식 소식들. 화려한 레드카펫에 턱시도와 드레스로 한껏 치장한 연예스타를 필두로 방송사별 가요, 드라마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각종 타이틀로 무장한 수많은 시상식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매스미디어의 자양강장제로 요긴히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연예인 위주의 시상식은 이제 조금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이런 대중의 비판을 반영하듯 연말 방송사 가요시상식이 잇달아 폐지되면서 ‘기준’도 모호하고 ‘목적’도 불분명한 정체불명의 시상식들은 점차 그 명분을 잃어가는 추세로 보여진다. 정체불명의 시상식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린 시절, 가족들과 TV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금년의 남우주연상은 누구지?”하며 가슴 졸이던 감동이 한편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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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필요한 시대”
△ 붉은악마의 외침 “우리에게는 영웅이 필요해!!!” |
숭실대 조규익 교수는 지난 월드컵 당시 범국민적인 붉은 악마의 열광적인 호응을 두고 세상사에 지친 시민들이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러한 기대심리를 미 끼로 방송사들은 저마다 한해의 영웅을 만들어내려는 심사로 수많은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음직하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스타’가 가지는 ‘영웅성’이란 사실 브라운관(이제는 LCD나 PDP?)이 만들어낸 허구에 다름아니다. 수많은 대중을 울고 웃긴 공로도 분명 인정하지만 그들의 업적이란 사실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다. 즉, 대부분의 대중과는 사실 별 상관없는 시상식이라는 것. 그러면 진정으로 모든 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 시대의 영웅찾기는 어느 시상식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공군, TOP GUN을 발견하다.
11월 30일(목) 서울 공군회관에서 거행된 보라매 공중사격대회 시상식을 새롭게 주목해 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영화제목으로 익숙한 ‘탑건(Top Gun)’이 선발되는 보라매 공중사격대회는 1955년 F-86을 도입한 후 전투조종사 개개인의 전투기량을 평가하는 ‘대대 대항 공군폭격대회’로 시작, 1994년부터 현재의명칭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본래 ‘탑건’이라는 용어는 美 해군에서 조종사의 전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과정명으로 사용하였는데(영화 ‘탑건’의 뜻), 우리 공군에서는 1988년도부터 공중 사격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조종사에게 ‘탑건’ 칭호를 부여해 오고 있단다. (기막힌 용어의 재생산이 아닐 수 없다) ‘조국의 영공을 수호하는 보라매 중에서 하늘의 제왕’을 가려낸다는 보라매 공중 사격대회 시상식. 화려한 타이틀만으로도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찾기’에 근접할만한 행사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레드카펫과 화려한 스타들 대신에 빨간마후라와 전투조종사들이 자리한 ‘보라매 공중사격대회 시상식’의 가치는 그러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고보니 스타들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다. 어깨 견장에 그야말로 별(스타)을 단 장군님들이 대거 참석했으니 오히려 진정한 ‘스타(Star)들의 시상식’ 아니던가. 더구나 금년 행사는 실제 아카데미 수상식처럼 화려한 영상과 진행을 더한 모습으로 선보여 ‘국민영웅’ 탑건을 빛내는 자리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사진으로 보는 시상식 요모조모
수상자들의 화려한 입장. 참석자들의 환호와 각종 매체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자 수상자들의 표정은 일순간 긴장하는 기색이다.
1부 진행에 이어 2부 진행을 맡은 지성 병장과 국군방송의 손은아 아나운서. 멋지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더해져 시상식은 더욱 돋보였다.
시상식 전경. 공군회관 대연회장은 생각보다 넓진 않았지만 일반 영화제를 보는 듯한 영상과 무대연출로 軍시상식으로서는 ‘획기적’인 모습이었다.
오프닝멘트와 최종 탑건 시상을 한 김성일 공군참모총장. “오늘 탑건은 분명 영화 탑건의 탐크루즈를 능가하는 외모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유머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이제는 공군행사의 주요 게스트가 된 전투조종사 최을렬 대위의 아내, 가수 리아의 공연도 빠지지 않았다. “조종사의 아내로서 탑건 시상식에 온 기분이 너무 벅차다”라는 말에는 정말 꾸밈이 없어 보였다. 리아 이외에도 현숙, 김범수등의 가수들도 초청되어 축하공연을 이어갔다.
공중공중투하부문을 수상한 제5전술공수비행단 류완규 중령. 감동에 벅찬 눈물이 앵글에 들어왔다. 보라매 공중 사격대회에서는 탑건 뿐 아니라 항공정찰부문, 탐색구조/공중투하부문등 공군의 주요 작전분야에 대한 시상을 함께 했다. 여조종사 중에는 제8전투비행단 소속의 하정미(27. 공사50기)대위가 저고도 사격부문에서 A-37전투기를 타고 이 부문 최우수 조종사로 선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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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발표된 올해의 탑건. 19전투비행단 김재민 소령(34. 공사44기)이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쏟아지는 취재 열기는 아카데미 수상식 못지 않았다. 올해 공군의 ‘남우 주연상’ 김재민 소령은 “2003년 하늘나라로 가 편히 계실 아버지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쁘다. 항상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와 남편 내조하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진심으로 고맙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김소령은 최종 후보영상에서 “전투조종사가 된 계기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어릴적 등화관제 훈련을 할때 동네 아저씨가 ‘상공에서는 담뱃불도 보인다’고 해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조종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수상자의 깜찍한 조크에 순간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질문에는 “이것이 실전이라 생각하고 독기를 품고 출격한다”라고 대답해 전투조종사의 카리스마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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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령은 KF-16을 몰고 공대공 사격부문에서 기관포 500발을 모두 명중시켜 만점을 받은데 이어 지상 목표를 공격하는 공대지 사격에서도 1000점 만점에 930.4점을 받아 명실공히 최고의 기량을 지닌 ‘하늘의 제왕’에 등극했다. 2001년 처음 대회에 참가, 공대지 사격부문 사상 최고점수를 경신하며 2위를 차지했던 전력의 김소령은 바람, 고도, 속도, 진입각등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공대지 사격의 최고 ‘명사수’로 통해왔다. 사실 말이 쉽지,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수십킬로 너머의 표적에 불과 몇미터 오차를 두고 정확히 명중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동전 던져 트레비분수 4번째 동상 콧잔등에 얹기’에 다름아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토록 뛰어난 조종사가 이 나라의 하늘을 책임지고 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시라”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영웅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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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필요한 시대다. 고도리에 쓰리고를 외치는 타짜 조승우도, 섹시한 복근을 보여줄랑 말랑하는 가수 비도 문화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시대. 엊그제는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이원희 선수가 유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며 또다시 스포츠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 이제는 잠시 시선을 돌려 진정으로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영웅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탑건도 좋고 훌륭한 소방관도 좋다.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들도 영웅의 반열에 오름직하다’라는 생각에서다. 편집진의 짧은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져 내년도 보라매 공중사격대회 시상식은 공중파에서 생방송이 검토될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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