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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에 사는 ‘폴마야’는 29살 주부입니다.
헌칠한 키에 가녀린 몸매를 가진 그녀는 까무잡잡한 피부지만
한눈에 봐도 미인입니다.
딸만 둘인 그녀의 직업은 ‘포터(짐꾼)’입니다.
지금 살고있는 포카라도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읍(邑)규모의
작은도시지만 그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히말라야 오지에서 농사짓는 남편을 남겨두고
이곳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TV조선에서 스마트폰으로 캡쳐한 여성포터의 모습>
포터는 고산정복에 나선 전문산악인 또는
히말라야산맥을 트레킹하는 도보여행객들의 짐을 들어주거나
고산마을이나 학교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실어 나르는 짐꾼입니다.
며칠전 모 종편채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여성포터 ‘폴마야’에 관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화면에 등장한 그녀는 35세인 이웃집 주부와 함께 이날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학교에 부식을 배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얼핏봐도 체중이 50kg 남짓해 보이는 그녀가 배달한 부식의 무게는 45kg이더군요.
억새로 만든 항아리모양의 통에 채소, 계란, 빵, 고기등 부식을 담아
끈을 머리에 고정시킨채 통을 어깨에 메고 걸어가는 ‘폴마야’의 발에는
운동화가 아닌 슬림퍼가 신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슬리퍼를 신은채 그 무거운 통을 짋어지고 2박3일간 산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건장한 체격의 담당PD가 중간에 한번 짋어지겠다고 나섰다가
뒤로 넘어질 만큼 뭐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그 갸날픈
여자들이 사쁜사쁜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애처로웠습니다.
날이 저물면 산속 골짜기 외딴집 처마에서 주인이 갖다준
멍석위에 돗자리같은 생긴것을 덮고 잤습니다.
식사 역시 중간 중간 고산마을 주민들이 바가지에 담아 준 밥으로 해결하더군요.
때론 산을 타넘고, 때론 계곡을 건너고, 때론 수풀을 헤치며
사흘만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둘이 짊어지고 온 부식을 학교 식당에 풀어놓으니 정말 대단한 양이더군요.
부식 검사가 끝난뒤 ‘폴마야’가 받은 돈은 원화로 환산하면 1만6천500원이었습니다.
돈을 받을때 그녀는 기쁜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다시 2박3일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품 12살, 8살 딸둘이 울면서 안깁니다.
엄마가 일나간 동안 어린자매는 얼마나 엄마가 보고싶었겠습니까.
큰 아이의 나이로 볼 때 폴마야는 아마 17살에 시집온듯 합니다.
<TV조선 사이트에 있는 '폴마야' 모습>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개인에게도 운명이 있듯 세대와 각 나라의
국민에게도 운명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50-60년대 보릿고개를 넘어왔던 우리 부모님들은 지금
우리세대에 비해 얼마나 사는게 힘들었을까요.
50년전만해도 우리나라는 북한이나 필리핀보다도 못살았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격변속에서도 국가지도자의 영도력과 국민들의 근면, 성실함으로
지금 세대는 어느 선진국보다도 당당하고 품위있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네팔 주부 ‘폴마야’는 나름 행복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고생을 하더라도 눈에 집어넣어도 안아픈 예쁜딸들과 성실한 남편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머니가 아닌 여성의 삶을 잃은채 10대때부터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네팔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폴마야’같은 여성포터들이 포카라에만 200명이 있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산악국가인 스위스는 험난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관광인프라를 구축해
세계적인 산악관광지로 외화수입을 올리고 있는 선진국입니다.
단순비교는 어렵겟지만 네팔사람들은 언제까지 히밀라야산맥에 의존해
외국 산악인과 관광객 그리고 열악한 교통인프라 때문에 포터만 하며 살아야 할까요.
네팔여성 ‘폴마야’의 지난한 삶을 보면서 개인과 세대와 국가의 운명은
지도자의 리더십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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