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1시 30 분 조금지나 종로 조개사 앞에서 버스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도솔암 이라고 행선지를 붙여 놓고 있었다.
사전 설명이 있었기에 타고 기사님 에게 물어 보니 전북 고창 선운사 뒤편의 도솔암 가는 거라 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2 시 정각에 출발 경부 고속도로로 가다 천안에서 논산으로 가는 새로생긴 고속 도로로 해서 다시 호남 고속 도로를 만나고, 정읍에서 고속
도로를 나와 국도로 선운사 경내 까지 왔다.
생전 처음이라 잘은 모르지만 자기차로 오거나 시간이 많은 분들은 선운사 를 들어 오는 길목에 풍천 장어 요리 전문 고장이 있으므로 그곳에서 지방 특선 요리를 맞보고 한다면 여행에는 더욱 흥취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선운사 경내로 접어 들면서 각종 안내표지판 들이 보이는데. TV 연속극
상도(임상옥 이라는 조선 후기의 상인) 촬영장이란 안내 표지판도 보였다.
사찰을 늘 찾았지만 선운사는 처음이고 도솔암은 더더욱 난생처음이다.
우선 경관이 참으로 빼어났고, 시설들이 자연을 가능 하면 다치지 않으려 애쓴흔적이 보여 보이기도 했다.
도솔천이란 용어가 말하드시 미래 부처가 될 보살이 머물던 곳이 도솔천
이라 했든 곳이다.
결론은 미륵신앙이란 예기 이고, 이곳 도솔암 이란 사찰은 지장기도 도량이라고 돌아 가신 분들의 영가의 천도를 통해 성불의 가피를 보자 하는 것이다.
미륵보살님은 본디 성씨가 미륵 이라 했고, 이름은 아지타(Ajita-阿逸多)라 했으며 인도의 바리나 시국의 브라만 신앙 의 집안 에서 태어난 분이라 했다.
도솔천이란 원래 불교 설화에서 무비란 산꼭데기에서 12유순(由旬-단위)
떨어진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라 하고 이곳 내원궁 이란 곳에
미륵 보살님이 거처 하시고 윤회의 마지막 일생을 위해 도솔천에서 설법을 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이런한 소망을 담은 도솔암 의 내원궁 에는 벌써 많은 신도님 들이 조상의 천도를 위한 철야 기도에 들어가 있었고, 나이가 지긋하신 여신도들이 대부분이였다.
그러나 그열기는 대단했고 스님들이 2시간 단위로 계속 철야 기도정진을 교대로 인도 하고 계셨다.
날씨는 시원 한 편이나 모기라 든가 해충도 있고 배도 고플탠데 신앙은그것을 초월 했든것 같다.
새벽4시30분에 잠시 눈을 부치고 대웅전에서 있은 1026일 지장제일의 준비 과정과 새로 지었다는 대웅전을 살펴 보았다.
많은 공과 정성으로 지은 건물이 건축담당자와 기능공들의 부실이 내 눈에 그대로 보여 상당히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목제가 대부분 수입제고, 목재는 반듯이 겨울 준비에 들어가 나무에 물이 내린후에 벌목을 하여 지어야 하는 것인데, 물이 올라온후 하절에 벌목을 한 것이 대부분이였다.
이는 나무가 무르고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것이므로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나는 조각 가도 아니고 더구나 예술품을 평할 자격은 갗추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슴 부분은 확실이 조성하신분의 정성이 결여 된것으로 보였다.
오래된 탱화등은 감동을 줄만한 것으로 보였고.
무었보다 천리길을 와서 밤세 철야 기도를 하고도 사시공양 이라하고 또
지장제 라고 하는 큰 행사에 온 정성을 다 하는 여인네 들을 보면서 저
힘과 정성이 우리나라를 만든 힘이였거니 하면서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린다.
무었보다 그렇게도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드는데도 어느곳이나 하는 시멘트 포장도 없이 옛길 그대로를 보존 하는 승려들의 자연 보존 도 박수를 드린다.
참으로 산들이 너무너무 잘 보존 되어 있었다.
점심을 12시 정각에 사찰식으로 하고 버스에 타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나 마음과 몸이 가벼운 것은 감사의 마음이 가득 해서 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