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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역사
한국 뮤지컬의 역사
한국에서 뮤지컬이 시작된 시기는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뮤지컬이 탄생한지 꼭 100년이 지난 1966년 무렵이다. 유럽에서 태동하여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뮤지컬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우리 문화 예술계에서는 이론적 체계 정리와 토착화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방향을 계속 모색하여 왔다. 우리나라에는 그 양식은 조금 달라도 형식적인 면에서 뮤지컬과 같은 공연물들이 올려져 왔다. 1930년대에 유행하였던 대중극의 대표적인 악극, 우리의 정서를 담은 창극과 같은 전통 음악극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용어 자체가 외래 문화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의 시작인 '예그린 악단'에서 찾을 수 있다.
제3극장의 의 [새우잡이](1965) 같은 뮤지컬 형식의 작품도 있지만 예그린 악단의 [살찌기 옵소예](1966)를 본격적인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것은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중적인 인기에서도 역시 서구적인 뮤지컬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그린 악단은 처음엔 연극 형태의 음악극을 시도하였다. 첫 작품으로 발표한 [삼천만의 대향연]이 그랬다. 연극과 음악을 합성한 형태였으며 그 이후에도 그와 같은 형식의 공연물이 올려 지다가 1963년에 공연된 [흥부와 놀부]에서 처음으로 무용, 음악, 연극이 함께 만나는 뮤지컬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흥부와 놀부]는 극에 맞는 새로운 작곡을 하여 공연된 본격적인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극의 줄거리에 맞도록 기존 민요를 적절히 편곡하여 엮어 나간 작품이었다. 예그린 악단의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은 단장 박용구,음악(상임 지휘) 최창권, 무용 임성남, 연출 백은선,임영웅이 한 팀이 되어 1966년에 만든 [살짜기 옵소예]가 시작되었다. [살짜기 옵소예]는 당시 상당한 반응과 호응을 일으켜 음반으로도 제작되었고 패티 김이 부른 주제가 '살짜기 옵소예'는 어느 대중 가요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무용,연극 등 각 분야의 전문인 또는 인기 스타가 모인 이 작품은 화려하게 한국 뮤지컬의 시작을 알렸다.
그뒤 예그린 악단은 [꽃님이 꽃님이](1967), [대춘향전](1968), [바다여 말하라](1971), [화려한 산하](1971), [종이여 울려라](1972)등을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하다가 1974년 국립극장에 국립가무단이란 이름으로 편입되어 [시집가는 날](1974), [상록수](1975),[태양처럼](1976)등을 공연하였다. 또 1876년부터는 국립 예그린 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이런 사람](1977),[시집 가는 날](1977)을 역시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이 단체가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립뮤지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에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에 소속되면서부터이다. 시립가무단은 [달빛 나그네](1978), [우리들의 축제](1981), [사랑은 물이랑 타고](1983), [포기와베스](1984), [지붕위의 바이올린](1985), [용이 나리샤](1988), [고향의 민들레](1990),[춤추는 도시](1922),[서울 사람들](1994),[간도 아리랑](1995) 등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다.
민간 극단에서 올린 최초의 뮤지컬은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이 드라마센타에서 공연한 [포기와 베스]이다. 당시 미국에서 연극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유인형이 동랑레퍼토리극장의 젊은 배우들인 신구, 백의현, 양정현, 안민수 등과 함께 만들어 큰 호평을 얻었다. 이후에 만들어진 [방황하는 별들] 등 별 시리즈는 청소년 뮤지컬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 1973년 극단 가교는 톰 존스 작의 [환타스틱스]를 [철부지들]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국립 극장에서 공연하였는데 오랫동안 고정 레퍼토리로 관객들에게 선보여 왔다. 이 작품은 우리 뮤지컬 사상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공연한 우리나라 극단의 수만 해도 10개에 이를 정도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극단으로 이 작품을 공연한 단체는 뿌리, 대중, 현대극장 등이 있으며 , 심지어 서울시립가무단과 서울예술단에서도 공연되었다. 출연 인원이 8명에 불과하고 음악이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가능하기 대문에 영세한 민간 극단이 제작하기에 부담이 덜 가는 작품이었다.
현대적인 뮤지컬을 지속적으로 공연한 단체는 역시 현대극장이다. 민간 극단으로 부담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형 뮤지컬을 1977년부터 꾸준히 공연하였으며 류관순 기념관에서 [빠담 빠담 빠담]을 올려 상업극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성공하였다. 이 작품은 1996년에 극단 유인촌레퍼토리 제작으로 네번째 리바이벌 공연을 하여 대성공을 기록하였으며 더 이상의 상업극 논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현대극장은 그뒤 [피터팬](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에비타](1981),[백설공주](1982), [뿌리](1982), [올리버](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레미제라블](1988)등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번역하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주무대로 활동하여 왔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왕성하게 만든 대형 무대의 뮤지컬로 현대극장은 우리 뮤지컬의 토양을 다지는 데 크게 공헌한 셈이다. 여기에 중형 무대의 뮤지컬로 일대 뮤지컬의 대중화 바람을 몰고 온 것은 극단 민중, 대중, 광장의 세 극단이 1983년에 합동으로 공연한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이 공연은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본 미국 뮤지컬이다. 1983년 초연 이후 1997년 현재까지 13년 동안 연 200만명 이상의 관객이 공연을 본 것으로 집계되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대성공은 세 극단으로 하여금 뮤지컬을 계속 제작 공연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극단 민중은 1984년에 [카바레]를 극단 광장과 합동으로, 1992년에는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을 공연하였다. 극단 대중은 1989년에 [쉘부르의 우산],1990년에 [캐츠],1991년에 [넌센스]를 공연하였으며 극단 광장도 극단 단 민중과의 합동 공연인 [캬바레]를 비롯하여 1987년에 [피핀], 1992년에 [코러스 라인],1993년에 [레미제라블]을 공연하였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열기가 가득할 때 88서울예술단(현 서울예술단)에 뮤지컬 전문 단체로 변신하여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뮤지컬 대중화에 불을 당겼다.
1987년에 [한강이 흐른다]를 시작으로 1990년에 [백두산 신곡], 1993년에 [뜬쇠가 되어 돌아오다], 1995년에 [꽃전차] 그리고 [아틀란티스 2045], 1996년에는 [살짜기 옵서예]를 리바이벌한 [애랑과ㅣ 배비장],[성춘향]등을 비롯하여 창작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하였다.
1988년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출발하였던 롯데월드 예술 극장도 전속 단원을 확보하고 [신비의 거울속으로](1989), [가스펠](1990), [아가씨와 건달들](1990),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91), [돈키호테](1992),[레미제라블](1993) 등 번역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하여 오다가 결국 재정적으로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해체되고 말았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극단 맥토가 [동숭동 연가](1993), [번데기](1994) 등 우리 창작극을 무대에 올려 높은 완성도로 관심을 모았고 젊은 극단인 모시는 사람들은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는 [블루 사이공]등을 내놓았다.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록큰롤](1995), [사운드 오브 뮤직](1996), [7인의 신부](1995), [만해 한용훈]등을 공연해 관객 동원에도 성공하였다. 또 뮤지컬프로덕션 에이콤이 뮤지컬 전문 단체를 표방하고 나서서 [아가씨와 건달들](1994)에 이어 [스타가 될거야](1995), [명성황후](1996), [겨울나그네](1997)등을 공연하면서 국내 최고의 민간 뮤지컬 단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여기에 서울뮤지컬컴퍼니는 [사랑은 비를 타고](1995), [쇼 코메디](1996) 등 우리 창작극을 개발하여 무대에 올려서 새로운 뮤지컬 극단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삼성영상사업단은 [42번가](1996),[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을 수입하여 한국과 미국의 스탭과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는 공동 시스템의 작품을 선보이며 대형 뮤지컬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뮤지컬과 유사한 형태의 극양식이 선보인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서구 음악극을 모방하여 가수의 노래에 연기와 무용을 추가한 30년대의 악극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공연도중에 막간을 이용하여 변사나 삐에로 같은 출연배우들이 짤막한 코미디나 만담, 가요, 숨은장기 등을 보여주는 막간극이었는데, 이것이 의외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자 독립적인 오락물로 공연하게 되었고, 노래, 춤, 코미디 등이 연관없이 나열되던 종래의 형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를 갖추면서 가극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1930년대에 들어서 대중극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가극은 연극시장, 태양극장, 협동무대, 낙랑좌 등에 의해 더욱 연극적인 양식으로 다듬어졌으며, 명칭도 악극으로 바뀌었다.
악극은 1930년대의 동양극장을 무대로 당시의 흥행극단들이 공연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었다.
조선 악극단, 반도 가극단 등 대표적인 악극단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던 악극은 195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나라에는 1962년에 예그린 악단이 창단되면서부터 현대적 뮤지컬 공연이 시작되었다. 창단 후 연극형태의 음악극을 공연하던 예그린 악단이 본격적인 뮤지컬 공연을 시작한 것은 최창권 작곡의 "살짜기 옵서예 "를 공연하면서 부터이다. "살짜기 옵서예"는 음악, 무용, 연극 등 각분야의 전문인과 인기배우들이 동원되어 당시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 뒤 예그린 악단은 국립 가무단(1976)을 거쳐 국립 예그린예술단으로 활동할때까지 "꽃님이 꽃님이 (1967)", "대춘향전 (1968)", "바다여 말하라 (1971)", "화려한 산하 (1971)", "종이여 울려라 (1971)", "시집가는 날 (1974)", "상록수 (1975)", "태양처럼 (1976)" 등을 공연하였다. 이 단체는 1977년 서울 시립가무단 (현 서울 뮤지컬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세종문화회관을 주무대로 "달빛나그네 (1978)", "포기와 베스 (1984)", "지붕위의 바이올린 (1985)", "간도 아리랑 (1995)" 등을 무대에 올렸다.
예그린 악단과 더불어 우리나라 뮤지컬의 현대화에 기여한 공연단체는 현대극장이다.
1977년부터 꾸준히 뮤지컬 공연에 정성을 기울인 현대극장은 상업극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빠담빠담빠담 "을 비롯해서 "피터팬 (1979)","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980)', "사운드 오브 뮤직 (1981)", "에비타 (1981)", "올리버 (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87)", "레미제라블 (1988)" 등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연하였다.
극단 민중, 대중, 광장 등은 1983년 "아가씨와 건달들 "을 공동제작하여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뮤지컬로 지금까지 약 이백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극단 민중, 대중, 광장 등은 1983년 "아가씨와 건달들 "을 공동제작하여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뮤지컬로 지금까지 약 이백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아가씨와 건달들" 이후로 극단 민중은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 (1992)"을, 극단 대중은 "쉘브르의 우산 (1989)", "캐츠 (1990)', "넌센스 (1991)" 등을, 극단 광장도 극단 민중과 합동공연한 "캬바레 (1984)"를 비롯하여 "코러스 라인 (1993)", "레미제라블 (1993)" 등을 공연하여 뮤지컬 붐 조성에 이바지 하였다.
이밖에도 88서울예술단이 "한강은 흐른다 ", "백두산 신곡 ", "꽃전차 ", "아틀란티스 ", "애랑과 배비장전 " 등을, 롯데월드예술극장이 "신비의 거울속으로 ", "가스펠 ", "아가씨와 건달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돈키호테 " 등을 공연하여 뮤지컬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극단 맥토가 "동숭동연가 (1993)","번데기 (1994)" 를,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1995)", "사운드 오브 뮤직 (1995)", "7인의 신부 (1995)", "만해 한용운 " 등을, 서울뮤지컬 컴퍼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 (1995)", "쇼코메디 (1996)", "브로드웨이 42번가 (1996)" 등을 공연하여 한국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뮤지컬 프로덕션 에이콤이 출법하면서 뮤지컬 전문단체를 표방하고 "아가씨와 건달들 (1994)", "스타가 될거야 (1995)", "겨울나그네 (1997)"를 공연하였다. 에이콤은 지난 1995년 국내에서 공연하였던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가지고 1997년 8월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의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함으로써 한국 뮤지컬 역사의 새장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