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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 작가론/삼영사>
선구자적 자존심과 오만의 뿌리 - 김동인론
유금호
문제의 접근
한국 근대소설사의 기술에 춘원 이광수를 그 첫장에 놓는다면 두 번째로 금동(琴童)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사실 한국 소설문학사상 김동인만큼의 업적과 논의점을 남긴 작가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문학 초창기 <創造>를 통해 보여준 근대문학에 대한 자각과 "순수문학 운동의 선두주자"로의 그의 태도는 춘원의 1인 문단 시대의 계몽주의적 거대한 벽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가 후에 <朝鮮近代小說考>에서 밝힌 바 있는 "인생 문제 제시"라는 명제 역시 춘원의 이상주의적 계몽문학이라는 것이 앞에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늘 선구자적 자존심과 오만성이 관형사처럼 따라 다닌다.
단 한번 일주일간의 조선일보 학예부장이 직장생활의 전부였던 이 부잣집 도련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4후퇴 당시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병사 아닌 아사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기껏 20세의 나이로 주요한 등과 더불어 <創造>를 창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나, 초창기 단편소설에 대한 전형 창조의 업적이나,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실체를 보여준 소설을 통한 탐미주의적 시도, <大首陽>에서 보여준 역사소설에 대한 작가 나름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 시각 확립, <春園硏究>를 비롯한 비평 활동 등은 그가 생애 후반 역사와 야담류로의 현실도픽적 잠행의 마이너스적 요인들을 감안한다 해도 신문학 초창기의 여건을 고려하면 찬연히 빛나는 업적들이다.
그래서 동인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그의 업적에 걸맞을 만큼 긍정과 부정의 수많은 시각이 있어 왔다.
현재까지 그에 관한 접근과 연구는 이미 250여편에 이르고 있고, 김동인 문학전집도 1958년 이후 세 차례나 걸쳐서 발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왕성한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구자적 자존심과 오만의 뿌리를 확인해 보려는 시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 의식 전체를 관류하는 의식의 원형과 그 변화를 추적해 보는 작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동인 소설 체계에서 단편소설의 실질적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는 <배따라기>(1921)에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선구자로의 자존심의 원형을 확인해 보고 그 변화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는 김동인 소설의 형식과 상징체계가 <배따라기>를 출발점으로 그의 다른 소설에 어떤 식으로든 연계되어 갔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작가가 그의 생애를 통해 생산해 내는 작품의 대부분에 의식의 반복성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의 확인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배따라기>의 외형적 구조와 내포된 상징성을 추출해 보고 여기 나타난 인식의 원형이(arche-type)이 그의 소설 형식이나 구조, 상징 체계 속에서 유동 확산되어가는 것을 추적 고찰하고자 한다.
<배따라기>의 기본 구조와 상징 체계
동인의 초기 소설 <弱한 者의 슬픔>(1919)이나 <마음이 옅은 者여>(1919), <專制者>(1921) 등이 가지고 있는 취약성과 그의 말년, 역사와 야담류로의 도피를 제외한다면 그의 단편소설들은 <배따라기>를 뿌리로 하여 뻗어 나간 나무들이 될 것이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조감해 보면 대부분 반복적으로 들어나는 작가 의식이 있기 마련이고 동인에 있어서는 이 의식의 원형이 <배따라기>에 잉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배따라기>는 형식상으로 자기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랑생활의 그(형)가 액자 형태의 안쪽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작가)의 사색과 행동들이 밖에 자리 잡고 있는 전형적 액자소설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외화(外話)와 내화(內話)의 이중구조 속에 들어나 보이는 외화의 비중 문제이다. 물론 소설의 중심 축은 지금 회한의 유랑을 계속하고 있는 형의 과거와 현재이다. 작가가 등장하는 외화 부분을 생략하고 이 내화 부분만으로 충분히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는데도 작가는 이 내화 구조 위에 상당히 긴 분량의 외화를 덮씨워 놓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이 소설의 전체 구조를 다음과 같이 인지한다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1. 감상적인 동경 유학생의 사색과 공상/ 영유에서 들었던 배따라기의 애처러운 기억 회상/ 배따라기를 부르고 있는 남자와의 대면
2. 남자의 과거 이야기 (내화)
3. 다시 듣는 배따라기 / 그와의 이별
4. 남자를 찾아 나선다.(기자묘-모란봉-을밀대-강가)/ 새벽에 떠났음을 확인.
5. 일년후 그는 나타나지 않고 그의 추억만 남음
일반적으로 작가가 액자구조를 선택하여 액자 안쪽에 서사 구조를 안치시키는 이유는 허구가 아닌 실제의 사건이라는 믿음을 독자에게 주기 위해서거나, 그 서사 구조 속에 담긴 메시지에 대한 작가의 책임 회피를 위한 경우가 많다. 특히 그 서사 구조 자체가 개연성을 가지지 않는 특수한 상황이거나 비 상식적 내용일 때 이 방법은 작가의 도덕적 책무의 회피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배따라기>의 경우 나(작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인생에 대한 숙명론에 감동을 느끼며 동일시 되어가는 즉 외화와 내화가 상동관계로 연결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나와 그의 의식의 변환 과정, 결말처리 속에 두 개의 이야기는 상호 보완 속에 용해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배따라기>의 내적 의미망 속에 또한 작가의 직접적 발화의 비중이 의외로 높다는 사실에 유의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작가의 출생과 성장 과정의 배경에서 오는 자기 중심적 오만성과 반 이광수적 문학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의 나는 유복한 동경 유학생으로 봄이라는 계절적 배경 위에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사고의 행동의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까맣게 내려다 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놀잇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 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 보다도 부드러운 봄 공기를 흔들면서 날아온다. 그리고 거기서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 오른 조선의 아악(雅樂)은 느리게, 길게, 유장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또 애처롭게? 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 어음, 심지어 사람의 가슴 속에 봄에 뛰노는 불붙는 핏줄줄까지라도, 습기 많은 봄 공기를 다리 놓고 떨리지 않고는 두지 않는다.
아아, 사람을 취케하는 푸르른 봄의 아름다움이여! 열다섯살 부터의 동경생활에 마음껏 이런 봄을 보지 못하였던 나는 늘 이것을 보는 사람 보다 곱 이상의 감명을 여기서 받지 않을 수 없다.
봄이라는 배경, 그 속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는 진시황(秦始皇)에 대한 예찬으로 발전하여 그가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애를 쓰며 수고하는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 유토피아를 생각할때면 언제나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진나라 시황(秦始皇)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찌하면 죽지를 아니할까 하여, 소년 삼백을 배를 태워 불사약을 구하러 떠나 보내며, 예술의 사치를 다하여 아방궁을 지으며, 매일 신하 몇 천명과 잔치로써 즐기며, 이리하여 여기 한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황은 몇만의 역사가가 어떻다고 욕을 하든 그는 정말로 인생의 향락자이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한 순전한 용기 있는 사람이 있고야 우리 인류의 역사가 끝이 날지라도 한 사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큰 사람이었다."
하면서 나는 머리를 저었다.
역사나 현실에 대한 작가의 인식 태도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이지만 <배따라기> 외화에서 발견되는 동인의 자세는 그의 소설 세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의 하나로 생각된다.
다음은 <배따라기>의 내화 구조 속에 들어 있는 성적 갈등과 자살로의 갈등 해소 처리의 태도이다.
동인은 그의 첫 소설 <약한자의 슬픔>에서도 성의 문제를 소설의 갈등 구조로 선택했는데 <배따라기>에서는 형수와 시동생이라는 보다 심도 높은 금기의 성을 선택하고 있다. 이것은 인생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겠다는 그의 자연주의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성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그의 다음 소설의 방향에 하나의 암시를 던져준다.
아내와 동생의 불륜을 오해하는 남편, 그 오해에 항거해 물에 빠져 죽은 아내, 그 충격 속에 집을 떠나 방황하는 동생, 그 갈등의 회한 속에 떠돌며 배따라기를 부르는 남편이 이 소설의 내화 구조이다.
여기서 아내의 죽음은 세가지의 문제점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죽은 당사자의 현실적 갈등의 해소 기능이며, 그녀가 빠져 죽은 물과 남편이 일생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공간으로의 물의 상징성, 아내의 죽음이 가져 온 작품 구조상의 전환 기능이다. 어촌이라는 작은 공간 속, 예쁘고 애교 있고 쾌할한 아내와 맨날 바닷바람을 쏘였지만 얼굴이 희고 늠름한 시동생은 결국 죽음과 멀리 떠남으로 해서만 이질적 요인이 해소될 수 밖애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내의 죽음은 '물'을 통해 이루어지며 남편은 20년이 넘게 떠날 수 없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도 마침내 뱃사람이 되어., 적으나마 아내를 삼킨 바다와 늘 접근하여 가는 곳마다 아우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어떤 배를 얻어 타고 물길을 나섰다.
아내를 삼킨 공간이고 아우와의 소통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는 바다는 일반적으로 소멸과 재생을 상징하고 있다.
바다는 잠재의식적으로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고, 영적 신비와 무한, 죽음과 재생, 영원이 깃든 곳이다.
Jung의 이러한 의견 외에도 Eliade 역시 물의 상징성을 다음과 같이 순환론적 회귀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은 사자(死者)의 인간적 존재를 결정적으로 폐기시키고 사자를 살해해 버린다. 명예는 인간의 조건을 일종의 유충적 레벨로 축소하여 사자에게 남기 때문에 (........)사자는 결정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존재 양태만 주어진 것 뿐이다.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퇴행이다.
심청이 빠졌던 인당수 물이 재생적 상징성을 가졌듯이 <배따라기>의 바닷물은 아직은 그 남편에게 이입(移入)을 허락하지 않지만 그들 부부 사이의 오해를 해소시키는 상징적 공간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내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동생은 '저녁 해를 등으로 받고 더벅 더벅 동쪽으로' 떠났고, '역시 쥐댔구나.'로 시작되는 남편의 회한은 어쩌면 아내가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는 바다를 떠돌게 하는 전환점이 된다. 아내의 장례와 더불어 동생이 떠났고, 십년이 지나 폭풍우의 바다에서 의식을 잃었던 형은 잠시 동생을 상면하지만 '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있다가 새빨간 불빛을 등으로 받으며 더벅더벅' 다시 어디로인가 떠나고 있고, 배따라기 노래를 끝낸 그 형 역시 '시뻘건 저녁 해를 잔뜩 등으로 받고 을밀대를 향하여 더벅 더벅' 떠나고 있다.
관심의 확산과 변모
우선 동인의 소설 중 번역, 번안, 꽁뜨, 수필적 성격이 강한 작품을 제외하면 논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는 <배따라기>이후의 단편소설이 48편이다.
이 단편 소설중 외형적으로 <배따라기>와 같이 1인칭 서술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 22편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러한 서술 형태는 비현실성이나 반도덕성에 대한 작가의 방어와 회피이면서 이러한 장치 속에 내연하고 있는 작가의 탐미적 열정을 자유롭게 발산하고자 하는 시도가 담길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이 어차피 허구이지만 철저하게 사실과 관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해서 소설 속의 비상식, 부도덕, 탐미성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비껴 서 있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동인의 단편소설 중 <배따라기>에서 보인 액자 구조의 가장 안정된 형태를 보이는 작품이 <狂炎 소나타>(1930)와 <狂畵師>(1935)라는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의 액자구조 과정에 <K博士의 硏究>(1929)와 <발가락이 닮았다>(1932)가 놓여 있다. <K博士의 硏究>나 <발가락이 닮았다>에서는 서술자가 그 사건의 일부에 개입, 소통을 이루고 있는데 비해 앞의 두 작품은 처음부터 작가가 완벽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거기에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발가락이 닮았다>를 제외한 3편의 작품이 일반적인 상식과 현실성 도덕성을 외면한 일종의 탐미적 계열의 작품이고 <K博士의 硏究>가 <狂炎 소나타>보다 며칠의 차이로 앞서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 K博士의 硏究>에서 서술자가 사건 속에 동참하여 소통을 이룬 것이 부담이 되어 <狂炎 소나타>에서는 확실한 액자구조에 안주하려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오십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잇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 뿐은 있다.? 이만치 알아 두면 그만이다.(..........) 이러한 전제로써,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狂炎 소나타>의 경우 작가는 이러한 일차적 장치만으로도 부족했던지 여기에 다시 2중의 액자를 설치, 음악 비평가 K씨와 사회 교화자 모씨를 앉혀놓고 그들의 대사를 통해 악마적 탐미적 세계에서 이중의 거리 유지를 하고 있다.
샘물!
저 새물을 두고 한 개 이야기를 꾸미어 볼 수 없을까. 흐르는 모양도 아름답거니와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고 그 맛도 아름다운 샘물을 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의 머리에 생겨나지 않을까?(.....)한 화공이 있다.? 화공의 이름은? 지어 내기가 귀찮으니 신라때의 화성의 이름을 차용하여 솔거(率居)라하여 두자.? 시대는?
시대는 이 안하에 보이는 도시가 가장 활기 있고 아름다운 시절인 세종 성주의 대쯤으로하여 둘까.
이미 죽은 어머니로 표상되는 절대미의 설정으로 처음부터 비극을 잉태한 한 화공의 처절한 미의 탐색과 추구를 다룬 <狂畵師> 역시 처음부터 서술 내용의 허구성을 철저히 강조하고 있고, 서술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서술을 중단시켜가며 작가가 개입, 비현실적 허구임을 세삼 강조하는 독특한 서술 방법을 구사하여 작가의 도피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말미는 철저한 허구를 강조한 출발때와 중간 부분과는 다르게 허구 속의 주인공과 서술자와의 간접 교통을 이루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수일 후부터 한양성 내에는 괴상한 여인의 화상을 들고 음울한 얼굴로 돌아 다니는 늙은 광인(狂人)하나이 생겼다.(........)이렇게 수년간을 방황하다가 어떤 눈보라 치는 날, 돌베개를 베고 그의 일생을 막음하였다. 죽을 때도 그는 그 족자를 깊이 품에 품고 죽었다.
늙은 화공이여. 그대의 쓸쓸한 일생을 여는 조상하노라.
여는 지팡이로서 물을 두어번 저어 보고 고즈너기 몸을 일으켰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배따라기>에서 채택하였던 액자 구조는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 <배따라기>의 외화에서 보여주던 현실 쾌락적, 탐미적 자세는 액자구조에 힘 입어 이제 소설의 내부에 버젓이 안주하면서 <K博士의 硏究>나 <발가락이 닮았다>의 비상식을 건너 뛰게 하고, <狂炎 소나타>와 <狂畵師>에서 작가가 직접 몸을 피하면서도 어두운 열정과 악마적 쾌감에 도달하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으며, <배따라기>에서 서술자의 서술 진행상의 개입을 <狂畵師>에서 반복 변형 시켜 보여주는 것 까지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구체적 문학 양식으로의 소설은 인생을 축약적으로 들어내 보여주는 성(性)과 죽음을 완전히 외면하고 존재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소설이 또한 철학이나 종교, 역사 신화 등 문학의 선행이 되는 인간 의식의 발현인 '문화와 상호 관련을 가지면서도 문학 독자의 세계가 있고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미적 구조를 가진 것'이라면 성과 죽음의 문제에서 소설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동인이 <배따라기>를 발표한 1921년 전후의 우리 사회 여건과 문단 상황을 유추했을 때 시동생과 형수라는 극단적 금기의 성과 죽음을 화두에 던져 놓았던 것은 동인의 선구자적 기질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랜동안 금기시 되어오던 성과 죽음의 문제는 <거칠은 터>(1924)에서 <배따라기>와 같은 구조인 시동생과 형수, 형수의 자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감자>(1925)에서의 복녀의 죽음은 복녀라는 한 인물의 성을 통한 인식의 개안이 기존의 성적 질서에 도전을 보내고, 한 시대의 성 윤리의 변모를 보여 주면서 자연주의적 서술 태도의 한 단계를 보여준다.
<狂炎 소나타>는 단순히 성과 죽음이 연계되지 않고, 인간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 파괴 본능과 기존 사회의 통념적 질서 사이에 기존적 금기를 과감히 파괴해 가면서 원초적 자아 획득, 창조 행위에 연계되고 있다.
방화, 사체 모욕, 시간(屍姦), 살인으로 이어지는 금기의 파괴가 한 단계씩 높아지면서 거기에 비례한 창조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狂畵師>역시 성적 경험과 동시에 순수를 잃은 소경 처녀의 죽음으로 결말 구조에 이른다. 30년을 야행성으로 살아 온 추남 화가 솔거에게 있어 '자손의 미까지 모두 빼앗었던지 세상에 보기 드문 미인'이었던 어머니는 미인의 원형으로 고착되어 버렸고, 이 모성 고착(mother fixation)은 현실에서 그 대상을 찾을 수 없다는 원초적 비극을 애초부터 내재하고 있다. 결국 성은 절대미를 파괴시키고 그 상실감은 살인으로, 그 죽음은 다시 절대미의 완성 쪽으로 묘한 순환고리를 이 소설은 이루고 있다.
"에이 바보야. 천치야. 병신아."
생각나는대로 저주의 말을 연하여 퍼 부으면서 소경의 멱을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병신다이 멀겋게 띄운 눈동자에 원망의 빛깔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더욱 힘 있게 흔들었다. 흔들다가 화 공은 탁 그 손을 놓았다. 소경의 몸이 너무 무거워졌으므로?
(.........)
망이 소조하여 허든거리던 화공은 눈을 뜻 없이 자기의 그림 위에 던지다가 악! 소리를 내며 나자빠졌다.
그 그림의 얼굴에는 어느덧 동자가 찍히었다.(.......) 두 눈에는 완전히 동자가 그려진 것이었다.
이제 화공은 그 그림을 품 속에 안은 채 수년간을 방황하다가 눈보라 치는 날 돌베개를 베고 죽는 것이다.
<狂炎 소나타>와 <狂畵師>가 쓰일 무렵 동인의 개인 환경이 현실적으로 본부인 김혜인과의 별거, 관개 사업의 실패, 불면, 준엄한 검열들의 고통스러운 여건들의 중첩의 시기였고, 여기에 자존적 성격이 현실을 벗어난 창조적 자아의 독특한 탐미적 세계에 탐익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형기는 동인의 이 무렵 작품 세계를 '신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보고 있고, 윤홍로는 '반도덕적 반사회적 예술관은 기존 질서의 깨뜨려짐에서 얻는 자극으로 새 질서 예술을 창조하는 것으로 위고의 이른 바, 선을 빛으로 빛을 불꽃으로 만드는 전이적 이행, 변형적 조형과 상통'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배따라기> 서두 부분에서 유토피아와 진시황에 대한 찬미 속에 동인의 이러한 시각이 이미 잉태 되었던 것을 상기하고 싶다. 현실 파괴적인 극단적 탐미성의 추구는 미리 <배따라기>에서 충분히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제는 그후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되는 <붉은 산>(1932)에서 육체의 생명을 넘어서는 고차원적 이행을 보이며 비교적 말기의 작품인 <가신 어머니>(1941)에서는 보다 관조적인 생사관으로 변형 발전되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소설 속의 죽음은 <배따라기>에서 보여 주었듯이 현실 탈출 내지 현재적 고통의 무화(無化)의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專制者>(1921),<딸의 業을 이으려고>(1927),<遺書>(1924),<거칠은 터>(1924) 등 초기 작품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그의 예술적 원숙도와 함께 <狂炎 소나타>,<狂畵師>,<붉은 산>에서 보듯이 육체적 생명이 새로운 생성력으로 변이, 발전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에 대한 관심은 앞서 검토한 자품 외에도 <결혼식>(1931),<어떤 날 밤>(1934),<大湯池 아주머니>(1938),<金姸實傳>(1939), <先驅女>(1939)등에서 끊임 없이 작가의 관심권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배따라기>에서 아내가 빠져 죽은 물, 그리고 남편이 20년이 넘도로 떠나지 못하는 물의 이미지가 그의 <狂畵師> 속에서 작가에게 상상력의 원천으로, 소설 속의 소경 처녀에게는 제 눈을 떠줄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재생적 공간으로 상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맺는 말
동인의 <배따라기>를 동인 소설의 출발점으로 상정하고 그의 선의식(先意識)적 원형이 그의 단편소설 전체에 영향을 끼치면서 이를 계승, 변용, 심화시켜 나갔을 개연성을 전제로 <배따라기>이후의 단편소설들을 구조적 측면과 의미망의 상징체계 속에서 검토해 보았다.
그것은 김동인이라는 고유명사를 지우고 한국소설사의 기술이 불가능하고 <배따라기>를 건너 뛰어 김동인 소설 체계와 위상 점검이 가능하지 않다는 전제 위에서의 시도였다.
첫째 형식과 구조적 측면에서 <배따라기>에서 보인 1인칭 서술의 시점은 48편중 22편이 여기에 해당되어 수치적으로 절대 우위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대표적 문제작으로 객관적 검증이 끝난 <狂炎 소나타>,<K 博士의 硏究>,<발가락이 닮았다>,<붉은 산>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고, 액자소설의 객관성 획득 및 신빙성의 확대를 위한 장치로서 <붉은 산>을 위시한 <遺書>,<거칠은 터>,<大湯池 아주머니>,<街頭>,<김덕수>,<주춧돌>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소설의 허구성을 철저히 허구로 재 강조하여 작가가 도덕적 책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狂炎 소나타>와 <발가락이 닮았다>,<狂畵師>의 액자 구조 형식이 주는 효율의 극대화를 확인하였다. 이것은 형식 문제만이 아니라 그가 <배따라기>에서 이미 잉태하고 있었던 현재적 쾌락과 탐미성의 완성이며 발전을 위한 유효한 장치가 되고 있었다.
Ingarden은 작품 구조내에 들어 있는 '틈새'나 '부정확한 부분'을 독서 행위를 통해 독자가 채워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배따라기> 서두의 외화 구조 속에 보이던 서술자의 진시황 찬미의 직접적 발화가 그의 문학적 성숙 속에서 동인 소설의 한축으로 발전해 온 것을 또한 확인하였다.
작가는 초기의 <遺書>에서 서술자가 직접 살인 행위에 개입했던 것을 후회하며 확실한 액자 구조의 탈출 방법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그가 <배따라기>에서 선택했던 인간의 사고와 행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의 '성'과 '죽음'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의 삶을 축약했을 때 우리는 출생과 음식, 수면과 사랑, 죽음을 든다. 이때 가장 적극적 갈등 요소와 의미 부여가 가능한 항목이 사랑과 죽음이며 많은 작가들이 이 문제에 집착을 보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박에 없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근대문학 초창기에 형수와 시동생이라는 극적 금기 상황 속에서 성과 죽음을 화두로 던져 놓았었다.
위에서 검토한 48편의 작품 중 15편이 '죽음'을 작품의 가장 큰 갈등 구조로 선택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거칠은 터>,<遺書>,<딸의 業을 이으려>,<감자>,<狂畵師>,<狂炎 소나타>,<포플라>등 7편은 죽음과 성이 직접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배따라기>에서 보이던 '성'과 '죽음'에 대한 관심은 양쪽을 포함하여 7편으로 확산 변용되어 갔고, '성'은 '성'대로 <결혼식>,<어떤날 밤>,<大湯池 아주머니>,<金姸實傳>,<先驅女>에서 계속 작가의 관심의 중심에 들어 있었다.
'죽음'은 '죽음'대로 <明文>,<罪와 罰>,<거지>,<붉은 산> 등의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단순한 현실 탈출에서 부터 새로운 생명의 전이 가능성을 보이며 심화, 변용되어 가는 것이 쉽게 눈에 뜨인다.
한 작가에게 있어 모든 작품의 뿌리, 내지 원형으로의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근대소설 초창기에 탁월한 선구자적 의식 위에서 작품 활동을 해 왔던 김동인에게 있어 그의 <배따라기>는 하나의 출발점이며 다시 되돌아 그의 모든 소설의 기착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추적해 보았다.
결국 한국소설사가 김동인을 괄호 처리하여 서술될 수 없는 것처럼 <배따라기>는 동인 소설의 모태이며 우리 근대소설에 하나의 원형으로 자리매김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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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論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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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김동인 소설 목록
제 목 발 표 지 면 발 표 연 대 비 고
1. 弱한 者의 슬픔 創造 1?2 1919. 2-3
2. 마음이 여튼 者여 創造 3?6 1919. 12-1920. 5
3. 音樂공부(류성기) 創造 8 1921. 1 필명:김만덕
4. 목숨 創造 8 1921. 1
5. 專制者(暴君) 開闢 9 1921. 3
6. 배따라기 創造 9 1921. 5
7. 笞刑(獄中記의 一部) 東明16?34 1922. 12-1923. 4
8. 이 盞을 開闢31 1923. 1
9. 어즈러움 開闢35 1923. 5
10. 눈을 겨우 뜰 때 開闢37?41 1923. 7-1923. 11
11. 거츠른 터 開闢44 1924. 2
12. 被告 時代日報 1924. 3.21-4. 1
13. 遺書 靈臺1?5 1924. 8-1925. 1
14. X 氏 東亞日報 1925. 1. 1
15. 감자 朝鮮文壇4 1925. 1
16. 明文 開闢55 1925. 1
17. 정희 朝鮮文壇8.9.11.12 1925. 5-1925. 10
18. 시골 黃서방 開闢60 1925. 6
19. 원보 부처 新民11 1926. 3
20. 명화 리듸아 東光11 1927. 3
21. 딸의 業을 니으려 朝鮮文壇20 1927. 4
22. 젊은 그들 東亞日報 1929.9.2-1931.11.10 324회 연재
23. 同業者(눈보레) 東亞日報 1929. 9.21-9.30 7회 연재
24. K博士의 硏究 新小說 1 1929. 12
25. 强盜를 잡으면 東亞日報 1929.12.25-1930.1.11
26. 女人 別乾坤24-31 1929.12-1930.8
27. 狂炎소나타 中外日報 1930.1.1-1.12
28. 아라사 버들(포플라) 新小說2 1930. 1
29. 구두 三千里1 1930. 1
30. 徘徊 大潮1-4 1930.3-1930. 7
31. 베끼운 貸金業者 新民57 1930. 4
32. 花環 新小說3 1930. 4
33. 無能者의 아내 朝鮮日報 1930.7.8-8.8
34. 大洞江 每日新報 1930. 9.6-9.7
35. 證據 大潮6 1930. 9
36. 罪와 罰 解放12 1930. 9
37. 信仰으로 朝鮮日報 1930.12.17-12.29
38. 追憶의 더듬길 彗星1-8 1931.3-1931.11
39. 거지 三千里17 1931. 7
40. 結婚式 東光24 1931. 8
41. 박첨지의 죽음 三千里20 1931.10 미완
42. 발가락이 닮었다 東光29 1932. 1
43. 雜草 新東亞6-7 1932.4-5 미완
44. 붉은 산 三千里25 1932. 4
45. 論介의 還生 東光33-36 1932. 5-8 4회 연재 미완
46. 해는 地平線에 每日新報 1932.9.30-1933.3.18 163회 연재
47. 적막한 저녁 三千里31-32 1932.10-1932.12 미완
48. 詐欺師 新生46 1932. 10
49. 小說急告 第一線 1933. 3
50. 가신 어머니 朝光29 1933. 3
51. 雲峴宮의 봄 朝鮮日報 1933.4.26-1934.2.5 연재
52. 寫眞과 便紙 月刊每新4 1934. 4 번안
53. 水平線 너머로 每日新報 1934.7-12 연재
54. 大洞江은 속삭인다 三川里 1934. 9
55. 崔先生 開闢(新1) 1934. 11
56. 어떤날 밤 新人文學12 1934. 12
57. 巨人은 움직인다. 開闢(新3-4) 1935.1-1935.3
58. 형과 아우 學燈18 1935. 8
59. 狂畵師 野談1 1935. 12
60. 巨木이 넘어질 때 每日新報 1936.1.1-1936.2.29 24회 연재
61. 街頭 三千里文學1 1938.1
62. 帝星臺 朝光45-54 1938.5-1939.4 9회 연재
63. 大湯池 아주머니 女性 1938.10-11
64. 殘燭 新時代 1939.2.10 미완
65. 女人譚 野談52 1939. 2
66. 金姸實傳 文章2 1939. 3
67. 先驅女 文章4 1939. 5 金姸實傳 속편
68. 젊은 勇士들 少年 1939.7-12
69. 首陽大君 中央29 1939. 9
70. 落王城秋夜譚(王府의 落照)中央31 1940.1
71. 집주름 文章23 1941.2
72. 大首陽 朝光 1941.3-12
73. 어머니(곰네) 春秋3 1941. 4
74. 白馬江 每日新報 1941.7.9-1942.1.31 연재
75. 忠魂(阿片戰爭中 一部) 野談89 1942. 3
76. 星岩의 길 朝光 1944.8-12
77. 宋첨지 白民2 1946.1
78. 釋放 民聲3 1946. 3
79. 學兵手帖 太陽1 1946. 3
80. 反逆者 白民5 1946.10
81. 亡國日記 白民7 1947. 2
82. 續 亡國日記 白民13 1948. 3
83. 주춧돌 平和日報 1948.7.6-7.11
84. 김덕수 大潮 1948. 8
85. 還家 서울신문 1948.8.9-8.13
86. 서라벌 단행본 1948.
87. 乙支文德 太陽新聞 1948.10-1949.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