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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의 3대 장애 비판
정 진 명
1. 머리말
국궁은 잠자는 거인이다. 한 번 잠에서 깨어나면 거대한 몸집으로 온 세상을 울릴 것이다.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멀리쏘기든 정확성이든 세계 최고이다. 이제 그 거인이 잠에서 깨어 막 기지개켜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깨어나는 이 거인에게 과연 어떤 옷을 입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거인은 알몸뚱이다. 그래서 옷을 입혀야 한다. 어떤 옷을 입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거인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옷은 옷의 임자인 입는 사람에게 편해야 할 일이다. 입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막연히 그러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마구 만들어놓으면 그 옷은 거인의 몸을 조이고 비틀어서 애써 입혀놓은 옷이 마침내는 활동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활동을 도와주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꼭 필요치 않은 옷을 입혀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거인에게 불행이다.
지금 국궁계에는 그런 위험에 도처에 놓여있다. 발에는 족쇄를 채우고 손에는 수갑을 채워서 차라리 그냥 두느니 만도 못한 일들이 수도 없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거인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고꾸라질 것이다. 그런 위험 앞에서 거인은 겨우 눈을 비비며 일어날 동작을 하고 있다.
따라서 거인이 거대한 발걸음을 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은 일이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에 거인의 행보에 장애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치워주는 것이 그의 혜택을 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국궁계에는 이런 장애가 산처럼 쌓여있다. 안 하느니 만도 못한 일로 국궁의 장래를 그르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국궁의 앞날을 좌우할 큰 문제는 세 가지이다. 정간, 궁도,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거인의 몸에 악성 종양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시급히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 정간 비판
마빡에 도끼 자국 선명한 망령 하나가 활터를 배회한다. 정간이라는 망령이……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것을 귀신이라고 한다.
귀신 중에서도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망령이라고 한다.
정간은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귀신이다.
게다가 정간은 국궁의 장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므로 망령이다.
정간은 국궁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장애물이다.
실체도 없으면서 마치 실체가 있는 양 행세하기 때문이다.
정간은 유래도 출처도 알 수 없는 물건이다.
게다가 거기에 대고 인사를 하는 이유조차도 불분명하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
그것이 망령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간은 말 그대로 망령이다. 정간이 과연 어디에서 생겼으며,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아무도 분명한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 것이다. 이런 이상한 관행에 대해 최근 들어 몇몇 연구가 나왔고, 결론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구사들에게 인사하던 관행이 젊은 사람들을 길들이려는 권위주의 형태로 변형된 것임을 밝혀냈다.
그렇게 밝혀졌으면 그런 정에서 그렇게 인사하면서 저희들끼리 살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부득불 해방 전부터 있던 거라며 억지주장을 펴다가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니까 이제는 애시당초 정간에 있지도 않던 뜻을 여기저기서 넝마주이처럼 주워다 붙여서 견강부회하기 시작했다.
먼저 옥편을 찾아서 <正>자 중에서 뜻이 좋거나 활과 관련이 있는 구절을 끌어오고, 또 <間>자 중에서 유리한 것만을 골라서 끌어다가 해석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정간이 활과 쇠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도 이보다는 더 나은 해석을 할 것이다. 이렇게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분들을 위해서 차라리 다음을 권하고 싶다.
활터 건물 중앙에 <똥>자를 크게 목판으로 새겨서 붙이자. 똥이라는 글자야말로 활의 본질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활은 만작 시에 ᄃ자로 휘므로 <똥>의 <ᄄ>은 활이 두 개가 펼쳐진 형국이며, 그것은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마음의 활과 몸의 활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쌍디귿이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ㅗ>의 <ㅡ>는 곧은 화살 모양이다. 여기에 점을 더한 것은 활과 화살이 각기 다르지만 서로 결합해야 비로소 활쏘기가 됨을 뜻한다. 그래서 <ㅗ>가 된 것이다. 밑의 <ᄋ>은 과녁의 둥근 부분을 뜻한다. 따라서 <똥>은 활과 화살과 과녁이 하나로 혼연일체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활에 관한 한 가장 심오한 철학을 담은 글이 <똥>이므로 이 글자를 널판에 크게 새겨서 활터 건물의 한 복판에 붙이고 매일 같이 정중하게 배례를 올리자. 그것이 활터의 기강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똥! 얼마나 좋은 말인가? 심오한 철학과 오묘한 활의 원리를 담고 있는 똥에게 매일 배례를 하자.
이런 해석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러니 근원도 모르고 자구에 매달려서 좋은 뜻을 갖다 누더기처럼 붙이는 것은 아는 체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계기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이 조금이라도 덜 망신을 당하는 길이다. 한 번 지껄인 말은 곁에서 듣는 사람 몇의 기억으로 끝나지만, 글쓰기는 영원히 자료로 남는 법이다.
다음으로는, 정간에 대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선가 궁도를 사랑한 대표급 선배님들이 무언가 좋은 뜻으로 <‘궁도계’의 ‘장래’를 위하여> 정간을 달기로 합의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참 눈물겹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한 장소라든지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든지 그들이 한 말이라든지 하는 증거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의 적실성이 살고 그 말이 효력을 발생한다. 정간은 겨우 20년 정도밖에 안 된 물건이니, 그때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의 다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우리가 그렇게 했노라고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나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나설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런 사실이 과거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소설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도 글이라고 발표한 사람도 있으니, 참으로 정간이라는 망령에 대한 그 애정이 눈물겨울 뿐이다. 그 애정으로 활의 장래를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지금쯤 활은 태권도처럼 전세계가 즐기는 스포츠로 성장했을 것이다. 소설을 쓰려면 제대로 된 소설을 써야 할 일이다. 제대로 된 소설을 써도 감동을 줄까말까 한 세상이다.
다음으로, 궁지에 몰린 정간 옹호론자들이 하는 주장 중의 하나가 ‘20년 된 전통도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도끼를 들어 제 발등을 찍는 논리이다. 20년 된 전통도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면 그 전에 5천년을 내려온 전통 역시 지켜야 할 것이다. 5천년 동안 정간이라는 것이 없었던 유구한 전통을 버리고 겨우 20년 된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정간이 모든 활터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굳이 5000년을 버리고 20년을 선택하자는 것은 논리 이전의 무지이다. 무지가 아니라면 궤변이다.
정간은 활을 쏘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력이다. 그 앞에서 저 혼자 마음을 가다듬든 정신을 통일하든 그건 제 맘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어떤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신사참배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정간이라는 현판이 글자로 파여서 활터에 걸려있는 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 들어온 신사들을 향해 고개 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망령이라고 하는 것이다.
걸어놓고서 하는 사람만 하자는 주장 역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정 건물 중앙에 현판으로 내걸린 정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다 치자. 외국인들에게 가랑이를 벌리고서 그 밑으로 들어와서 활을 배우라고 한다면 그런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배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설명을 제대로 해주어도 먹힐까 말까 한 궁색한 논리가 정간이다. 그것을 앞세우고 국궁의 장래를 스스로 자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다면 있다고 분명히 밝혀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간의 의미는 구사들이 신사들을 군기 잡으려는 황당무계한 의도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활터에 올라와서 하는 예절은 '조선의 궁술'에 나오는 <등정례> 하나면 족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간은 국궁의 미래에 관한 문제이다. 국궁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세계인의 스포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있지도 않던 것을 만들어서 활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들에게 굳이 신사참배를 시킬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국궁이 세계로 뻗어 가는데 정간은 장애물이 되면 되었지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간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정간은 우리 활의 앞날을 좌우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3. 궁도 비판
1) 도란 무엇인가?
도는 형이상학의 원리이다. 그 말은 물론 한자에서 온 것이다. 도라는 말이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처음 쓰인 것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이후 이 도라는 말은 동양의 문화권에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사의 법칙을 가리키는 말로 굳었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가 들어오고 성리학이 성립하면서 자연현상과 인사의 배후에 서려있는 어떤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것처럼 막연하고 넓은 범주를 가리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 갖다 붙여도 다 통하는 말로 변질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광범위한 쓰임이 정작 생각의 정밀한 체계를 전개시키는 데는 아주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각의 법칙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성리학자들은 도라는 말을 버리고 이와 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송나라의 장재, 주돈이를 거쳐 정이 정호 두 형제에 와서는 없으면 안 될 중요한 개념으로 정착하고 그 이후의 논의에 가장 중요한 말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벌어진 사칠논쟁과, 그 뒤의 이간과 한원진 사이에서 벌어진 인물성 동이논쟁으로, 어찌 보면 성리학 논쟁의 대단원을 내리는 상황에 이른다. 물론 이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며, 각기 조선 중기와 후기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도라는 말이 가진 심오한 내용에 관한 논쟁이 조선에서 벌어졌다.
2) 도에 대한 태도의 차이
따라서 한국의 철학사에서 도란 우주와 자연과 인사의 비밀을 밝히는 원리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것을 이와 기라는 개념으로 분화시켜서 도 논쟁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따라서 한국에서 '도'란, 철학사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일반인들의 도 관념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도를 닦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도인', '도사'라고 하면,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함은 물론, 세상 만사를 두루 꿰뚫는 능력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러한 문화와 전통의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에서 도란 이 세계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원리이며, 그러한 원리를 밝히는 데 온 삶을 던진 사람을 도인, 도사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원리를 터득하는 것을 득도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도와 도사란, 성리학의 근본 이념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하거나, 아니면 자연의 섭리를 완벽하게 실천하여 인간이 지닌 초능력까지도 발휘할 수 있는 개념이나 그러한 사람을 뜻한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성리학으로 마음을 닦던 선비들이나 산 속에서 목숨을 걸고 면벽대좌 하던 중들, 그리고 역시 산 속에서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던 일군의 사람들을 뜻한다.
이 세 부류 중에서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도의 관념에 가장 부합한 인물들은 성리학자들이다. 나머지 두 부류는 세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까닭에 소설이나 전설 속에 등장할 뿐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접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런 부류는 막연한 상상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도와 도인이란 성리학의 개념과 그것을 조금 확대한 정도의 영역에 그친다. 예를 들여 평양의 화담 서경덕이 신비한 측면을 많이 갖춘 것으로 왕왕 설화에 등장하는데, 화담은 성리학자의 한 분파였다. 그것이 조선 성리학의 정통 노선인 주리론에서 약간 벗어났기 때문에 신비한 인물로 인구에 회자되었을 뿐이다. 이것은 경직화한 주리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심리와 그 대안에 대한 기대심리가 만든 상승효과의 결과이다.
이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도란 인생과 우주의 섭리를 밝히는 원리이며 도인이란 그러한 최상의 형이상학에 생애를 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적어도 도인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거대한 사상을 펴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도란 바로 그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 일본의 도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조선 5백년 동안 성리학의 개념으로 세계를 통치했고 그것이 적용된 나라지만, 일본은 성리학보다 먼저 들어간 선불교의 전통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 나라이다. 따라서 일본의 도는 다분히 이 선불교의 개념과 맞물려있다.
선불교는 개인의 구원을 우선한다. 그 다음에 세상을 구하던가 말던가 한다.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의 수련에서 모든 것의 출발점을 삼는다. 따라서 개인의 득도가 이루어져도 세상으로 만행을 나서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전통과 만나게 되고, 실천 행각 역시 그 사회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일본 선불교의 주종을 이루는 임제종과 조선의 불교인 조계종간의 묘한 차이를 만든다. 임제종과 조계종은 모두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계파이다.
일본은 오랜 세월 동안 칼잡이들이 봉건세계의 지배자 노릇을 한 세계이다. 따라서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무사시대의 전략 전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우주와 자연의 이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거기서 어떤 궁극의 원리를 찾아내려는 조선의 상황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이 왕권과 중앙 권력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관념철학으로 나아갔다면 일본은 자신과 자신의 계파를 지키는 현실철학으로 나아간다. 일본 불교의 대처승 제도와 대물림 관습은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정신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부연되는 법이다. 전국 각지에 칼을 든 무사들이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군웅할거 한 상태에서 하루가 다르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모든 도는 그러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이때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로서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과 그렇지 못한 채 선불교만이 그들의 무상한 삶을 달래주는 유일한 사상으로 존재하던 사회에서는 그 해결 방법이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본 무사들이 검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이 선불교를 통해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한 방향을 강하게 암시한다. 선불교의 깨달음이 개인의 구원이지만, 그 구원이 정신과 몸의 일치를 통한 해탈이라면, 그래서 그 해탈이 현실의 문제를 구원할 한 방법이 된다면 칼의 논리와 선불교 깨달음의 논리는 동일 선상에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때 칼과 화두는 동일한 것이 된다. 그리고 선불교의 수행법에는 이 양자가 만날 수 있는 한 지점이 있다. 정신이 집중된 상태의 무한한 가능성이 그것이다. 일정한 단계에 이른 중들이 이따금 초능력을 체험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유추된 것이 일본의 도이다. 일본의 도는 수련을 통해서 자신을 칼 속에 일치시켜서 상대의 칼이 어느 방향에선 날아들든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경지, 즉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는 선정삼매의 선불교와 다를 것이 없다. 결국 일본의 도는 칼잡이들이 추구한 정신의 경향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의 문제 때문에 조선에서 가장 큰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던 <도>는 선정삼매의 경지에 든 상태와 거기에 이르는 방법상의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도는 자연의 이법이라는 원칙은 조선과 일본에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게 된다. 조선에서 도인이란 세계를 구원할 사상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정신과 사물의 생리에 투철하여 거기에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
4) 예와 도
따라서 일본인들이 강조하는 궁도의 뜻 또한 자명해진다. 궁도인이란 세계를 구원할 만한 사상을 활에서 찾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활이라는 사물의 생리에 투철하여 거기에 통달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검도, 유도, 역도가 성립하고 나아가 이들의 상위개념인 무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가 우주와 인사의 이법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궁도라고 한다면 활을 통해서 우주의 이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상으로 만들어 세상을 구원한다는 뜻이 되니, 어찌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일본의 도가 틀리거나 잘못 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에 대한 인식 태도와 문화의 전통이 달라서 그런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활쏘기를 그저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활을 매개로 혼연일치가 되는 상태를 활쏘기의 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지향하는 방법상의 문제를 궁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절차와 순서가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궁도라고 하지 않는다. 현재의 우리나라식 활쏘기는 일본인의 눈에는 난장판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개념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예(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기술이 극한 상태에 이르러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예술로 표현한다. 축구공이 아주 멋지게 골문을 뚫으면 '예술 같다!'고 감탄한다. 이런 감탄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다 넣는 방식으로 넣으면 박수를 칠지언정 '예술 같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우리가 예술 같다는 표현을 쓰는 장면은 가장 멋진 경우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도'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고자 하는 그 상태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藝)로 인식했고, 그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활쏘기도 사예(射藝)라고 했고, 궁예(弓藝)라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차례(茶禮), 서예(書藝), 무예(武藝)라고 했다. 일본말인 다도(茶道), 서도(書道), 무도(武道)라는 말을 보면 이들의 발상과 우리의 발상이 한 곳에서 정확히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예가 일본의 도인 것이다.
우리가 붓글씨를 서예라고 하는 것은 도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도라는 우리말의 쓰임이 붓글씨와는 안 어울리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도는 우주의 이법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붓글씨 같은 작은 재주에 붙이는 것이 아니다. 붓글씨 안에 우주의 이법이 들어있다는 믿음은 추사의 붓글씨에 관한 견해를 보면 잘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도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도라는 말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붓글씨에 붙이는 도가 정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에서 도는 그런 데 붙이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와 도의 차이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이다. 단순히 편해서 쓰고 좋아서 쓰고 할 차이가 아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고, 예라고 한다는 것은 한국인의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의 문화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본에서 수입된 문화라면 도라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 무술이라고는 태껸과 활쏘기 밖에 없었으니, 가라테를 도입하여 태권도라고 하고, 유도를 도입하여 유도라고 하고, 검도를 도입하여 검도라 한들 그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제를 수입한 것도 아닌, 우리의 활쏘기를 하면서 말은 일본말인 궁도라고 한다면 이 말은 그대로 일본의 활쏘기 개념으로 우리 활을 보겠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하려는 의도를 밝힌 다음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자가 갖추어야 할 성실성의 기본항목일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남의 글을 도입해서 우리의 본래 모습에 잘 맞지도 않는 가면을 들씌우려는 의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5) 근대의 활쏘기와 궁도
우리의 활쏘기에 ‘궁도’라는 왜색 짙은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932년의 일이다. 즉 3.1운동으로 민족의식이 한창 고양된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활쏘기는 부활하였고, 1928년에는 황학정 사두 성문영의 주도로 <조선궁술연구회>가 출범하여 각종 ‘궁술대회’를 주관하기에 이른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각지에서 벌어진 대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1932년에 이 모임이 <조선궁도회>로 이름을 바꾼다. 그 전후 사정을 당사자인 성문영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소화 삼 년에 나와 몇몇 동지가 발기하야 조선궁술연구회(朝鮮弓術硏究會)라는 것을 조직하였는데 소화 칠 년에 그 명칭을 변경하야 조선궁도회(朝鮮弓道會)라 하고 매년 춘추로 궁술대회를 열어 궁도를 장려하고 있지요』(조선일보 1938년 1월 1일 대담)
궁술대회와 궁도를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궁도는 <활쏘기>의 개념과 일치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때의 궁도가 지금 말하는 그런 개념의 일본 궁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시대에 활자매체에서 간간이 궁도라는 말이 쓰이지만, 그것은 일본말 궁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 궁사도(弓士道)의 준말로 쓰였다. 이것은 같은 신문의 칼럼에 나오는 설명이고, 글쓴이는 정언산인(正言散人)이다. 물론 이 말이 일본말 '궁도'의 영향임은 분명하다. 일본의 활쏘기를 가리키는 말이 들어와 쓰이자, 그 말의 기원이 우리 쪽에서 흘러나간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 뜻이다. 따라서 '조선궁도회'의 <궁도>는 비록 일본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선택과 의미로 쓴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말의 겉모양은 일본을 닮지만, 그 내용까지 닮을 수는 없다는 강한 자존심이 들어있는 말이다.
또 궁도회로 개칭한 이면에는 당시의 불가피한 사정도 있다. 1932년이면 일본의 지배력이 공고해져서 독립운동이 점차 쇠퇴하던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이 대담이 있던 1938년쯤에 이르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미 일본군국주의는 동아시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스포츠 역시 군국주의 사회체제의 한 부문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고, 그것의 주도권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의 군부에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활쏘기'나 '궁술'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통치 하의 체육단체에 가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1932년의 조선궁도회 개칭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름을 조선궁도회로 바꾼 상태에서 대회 이름은 여전히 '궁술'대회라고 하는 것과, 궁도를 굳이 '궁사도'의 준말로 받아들이려는 일련의 태도는 이 같은 점을 분명히 뒷받침해준다.
6) 해방 후의 활쏘기
해방 후의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활쏘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 여파는 1950년의 한국전쟁 때문에 지속된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전쟁 중에도 몰래 활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195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다시 활쏘기가 부활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1959년의 중앙일보사 주최 대회였다. 이 대회의 정식 이름은 '제1회 전국 남녀 활쏘기 대회'였다. 해방과 함께 일본말 '궁도'가 말끔히 청산된 것이다. 그리고 전국체전에서도 역시 '활쏘기 대회'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모임의 이름은 '대한궁도협회'로, '조선궁도협회'의 앞글자만 바꾼 형태였다. 모임 이름에서만큼은 일제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후, 그 관행이 우리 활을 일본 활에 예속시키는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문을 즐겨 쓰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지방에서는 여전히 궁술대회라고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면서부터 서서히 궁도대회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이후에는 불과 30년만에 완전히 도인들의 활쏘기 판이 돼버렸다. 궁도라는 말의 마술에 홀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홀림은 한국의 활쏘기 5천년 정신을 한 순간에 일본에 팔아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후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기묘한 침묵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화근으로 남아 미래에 큰 종기로 자라는 법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활이 세계를 향해 뻗어갈수록 <궁도>는 우리 활의 미래를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 화근으로 작용할 것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로 하여 한국의 활쏘기는 아직도 식민지 시대이다.
7) 궁도의 대안, 궁술!
현재 한국의 활쏘기는 일본 활 궁도에 오염되었다. 활쏘기라는 우리 본래의 말은 온깍지궁사회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을뿐더러 일년에 수백 차례 열리는 대회 이름도 궁도로 완전히 대체된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단급 제도까지 가장 천박한 방법으로 도입되어 모두들 등급별 도사가 된 기묘한 자부심이 한량들의 마음을 점령해 버렸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 전부터 쓰여오던 궁술이라는 말도 죽은 말이 돼 버렸다. 언어의 주인이 쓰지 않으면 언어는 죽는다. 활쏘기 일반을 가리키는 말은 아직 활쏘기로 살아있지만, 불과 40년 전까지 수 천 년을 쓰던 활쏘기의 용어인 궁술은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앞으로 다시 활용될 기미도 없다.
궁술이란 말이 이렇게 된 데는 그 말의 적실성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 한자의 주인은 지배층이다. 활쏘기는 만백성의 언어였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의 언어는 한자였다. 그래서 활쏘기라는 말을 쓰지 않고 궁술이라는 말을 선택하여 쓴 것이다. 이 궁술은 활쏘기보다 내포가 적다. 그래서 마치 조금 작은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용도가 생겼다. 우리의 활쏘기는 양생술의 단계까지 발전한 상태이다. 그래서 호흡과 마음의 작용을 잘 통제하면 선가에서 꿈꾼 양생술의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 따라서 이미 사멸한 궁술이라는 말을 '활을 통한 양생술'이라는 뜻으로 쓴다면 완벽하게 제 뜻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양생술과 관련된 활쏘기를 가리키는 개념을 기존의 궁술이라는 말에 덧붙여서 이 자리에서 쓰고자 한다. 궁술은 활쏘기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에 덧붙여 양생술의 일환으로 쓰이는 활쏘기라는 뜻까지 첨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궁도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우리 활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활로 몸과 마음의 주파수를 우주에 맞추어 장생을 꾀하는 양생술이 궁술이다. 활이 스포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라 술로 가는 이 길뿐이다.
4. 민족주의 비판
1) 민족주의의 정체
민족주의는 아주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저것 다 걷어내고 가장 중요한 것을 추리면 '우리민족우월주의'의 준말이다. 세계의 많은 민족 가운데 우리 민족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민족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주욱 나열한다. 그러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우리 민족이 가장 뛰어나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어렵지 않게 반론에 부딪힌다. 어느 민족이든 논리상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리상 아프리카의 민족이 에스키모보다 썰매를 더 잘 탈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뛰어나다는 것은 어떤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것을 말한다. 특정 분야 몇 군데에서 뛰어나다는 것만으로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민족주의가 갖는 논리의 맹점이다.
이렇게 민족주의라는 말은 그 말속에 이미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을 갖고 있는데도 자꾸 그것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렇게 할 때 생기는 이득 때문이다.
출발선의 모순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면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한다. 처음 출발한 각도가 아무리 작아도 한 참 벗어나면 서로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로 갈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우리 민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이 숨어있다.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은 결국 정신을 강조하여 물질을 취하겠다는 음흉한 생각이다. 그래서 자신의 민족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을 강조하고, 그 힘을 강조하는 것은 군비 증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군국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안으로 힘을 비축한 군국주의는 반드시 힘이 약한 바깥 나라를 삼킬 수밖에 없다. 내부의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밖으로 팽창해나간 것을 제국주의라고 한다. 규모만 다를 뿐 민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는 동일한 개념이다.
그러나 군국주의가 반드시 초래하는 제국주의의 폐해는 벌써 반세기 전에 전 세계가 경험했다.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나치즘이 현대 세계에 끼친 악영향은 민족주의를 적당히 이용하면서 군국주의로 발전하여 결국은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든 다음에서 그 엔진이 꺼졌다.
민족주의는 이와 같이 위험하다. 그 논리는 더욱 위험하다.
우리민족이 뛰어나다는 것이 남의 민족을 공격한다는 것과 상관없는 일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는 것이다. 우리 동네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강으로 가서 바다로 흐른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그 물길이 동네를 벗어나서 산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순소박하게 우리 민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런 생각을 하나로 모아서 논의하고 세력을 만들자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
일단 논리화하면 그것은 흐르는 물과 같은 생리를 갖는다. 그것이 민족주의의 위험성이다. 자기네 동네에서 잔치를 하면서 우리가 최고야 라고 생각하고 떠는 것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것은 자부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이 어떤 논리를 바탕으로 어떤 욕심에 얹혀서 바깥으로 나가면 그것은 틀림없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화로 치닫는다. 요즘 우리 곁에 떠도는 민족주의는 그런 것들이다.
우리 나라는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제국주의의 약탈 대상이었고, 해방과 한국전쟁 뒤에는 군국주의까지 발전한 박정희 정권의 지배 하에 있어서 다른 그 어느 나라나 민족보다 더 혹독한 피해를 본 민족이다. 그런 민족이 이제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다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그들과 동일한 논리로 이웃에 대해 군침을 흘린다면 누가 그것을 옳은 일이라고 용납하겠는가?
2) 민족이 과연 있는가?
민족의 범주부터가 문제다. 민족은 다분히 혈통과 문화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어느 혈통까지 민족으로 삼아야 하는가? 우리 민족의 몸에는 엄청나게 많은 민족의 피가 흐른다. 우리 역사에서 나타났다 사라져간 민족만 해도 터기족, 몽골족, 퉁구스족, 길략족, 아이누족, 거란족, 인도의 드라비다족, 한족, 중국의 한족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혈통이 섞였다. 이중에서 어디까지를 우리 민족의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피로 따지자면 한 민족이란 존재하기 힘들다. 민족은 피의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화의 개념인데, 문화의 어떤 측면이 민족을 구성할 것인가? 언어, 역사, 습성, 종교…… 어느 하나를 따져도 우리를 하나로 묶을 만한 만만한 요소는 없다. 아직 민족이라는 것을 합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논의된 민족주의가 무슨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
따라서 민족주의는 의식 수준이 제 각각인 사람들이 막연한 이웃사촌 감정으로 뭉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 삼겹살 먹자고 모인 모임과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그것은 <주의>나 <주장>의 근거로 작동하기도 힘들다. 주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논리는 반드시 그 근거를 요구한다. 스스로 모순을 함축한 민족주의는 그 근거조차 대지 못한다. 논리가 박약한 상태의 주장은 주의가 아니라 감정이다.
사람이 감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가장 열등한 단계의 문제 해결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폭력으로 끝을 맺는다. 이렇게 감정에 의존하는 것은 논리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에 기대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인류 공동의 선을 이룰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3) 민족주의의 역사와 현실
설령 이러한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역사 이래로 민족주의가 인류의 평화에 기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빌미만 되었을 뿐이다. 유럽에서는 원래 민족이라는 것이 없었다. 다만 중세의 농노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민족이 탄생한 것은 자본의 등장과 함께 한다. 자본은 반드시 시장을 요구하고, 시장이 필요한 부르주아지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팔 곳을 구획 짓기 위하여 정권과 국가를 만들었다. 그 국가를 만드는 기본요인은 지역과 혈통이었다. 영국은 섬이니 이 점이 힘들지 않았고, 독일은 게르만족을 중심으로 나라를 엮었으며, 이탈리아는 반도의 이탈리아 민족을 등에 업었으며, 이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구획이 끝나자 팽창한 자본은 더 이상 물건을 팔아먹지 못하게 되었고, 이웃의 구획을 넘보다가 서로 박 터지게 싸움한 것이 바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건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상식이다. 그리고 세계는 이후 새롭게 변화된 자본주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기본 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일본의 침략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들은 그것을 되찾으려면 이쪽의 힘을 뭉쳐야 했고, 그때 가장 쉽고 반가운 방법으로 이쪽과 저쪽을 구별하는 혈통에 기댄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선언하고 비아인 일본을 타도하기 위하여 아인 조선인이 뭉치자는 주장을 했다. 신채호가 그런 사상의 정점에 섰다. 그리고 그것을 국내에서 문명론으로 밀고간 사람이 최남선을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지식인들이다.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으로 요약했다. 백두산을 근거로 한 우리 민족이 고대의 동북아를 지배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문제해결의 방법이 못 된다는 것을 그들의 행적이 보여준다. 민족주의의 모순을 간파한 신채호는 무정부주의로 곧 돌아서고, 무정부주의도 근본해결책이 아님을 간파한 뒤에 마침내 사회주의로 돌아선다. 사회주의자로 돌아선 무렵에 체포되어 결국은 옥사한다. 이런 까닭에 신채호는 해방 후 민족주의를 주장한 남한과 사회주의를 주장한 양쪽에서 동시에 추앙 받는 인물로 부각된다.
최남선이나 이광수 같은 국내의 민족주의 계열은 한 마디로 참혹하다. 1930년대까지 민족주의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워지자 모두 친일에 나서 젊은 남자들은 군대에 출전시키고 여자들은 정신대에 동원시킨다. 해방 때까지 민족주의자로 남아 투쟁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대종교 신도들은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으로 국내에서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백두산 근처의 깊은 산 속으로 근거지를 옮겨 민족의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눈물겨운 행군을 벌인다. 이들의 피나는 민족 사랑은 국내에 남은 민족주의의 망령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 들어선 공산주의 정권에 대립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족주의가 성립한다. 한국전쟁과 더불어 남한은 공산주의가 궤멸 당하는 바람에 민족주의의 승리로 끝나지만, 이미 한쪽이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민족주의는 굳이 강조할 것도 없는 싱거운 물건이 돼버린다. 그래서 박정희가 병영국가를 건설한 1970년대까지 민족주의는 반공주의와 결합한 단순소박한 형태로 유지된다.
그러다가 이 민족주의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이다. 광주를 총칼로 도륙한 전두환 일파는 정권을 잡은 뒤 국민화합을 기치로 잔치마당을 벌였는데, 그때 조용하던 민족주의 세력에게 손을 내밀고 적극 후원했다. 여의도에서 열린 <국풍 '81>이 그 잔치였다. 이후 민족주의는 정권의 후원을 받으면서 부도덕한 정권의 정통성을 광고하기 위한 나팔수가 된다.
이상을 보면 민족주의는 늘 음흉한 정권에게 이용당하는 가장 중요한 메뉴이다.
그리고 1980년대 들면 이 민족주의를 이용하려 드는 것이 정치권에 머물지 않고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 왜곡작업을 서슴치 않는다. 있지도 않았던 역사책을 만들어 유포하고, 유치원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력으로, 기인들이 산 속에서 나타나서 단군 때의 수련 비법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조된 역사책은 특히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많이 나타났다. 그런 책 가운데 가장 뜨겁게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은 규원사화, 환단고기, 부도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려면 좀 정확히 해야 할 것을 책 곳곳에 요즘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말들을 남겨둠으로써 스스로 후대인의 조작임을 드러내고 말았으니, 거짓은 어디에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지적에 대해 모르는 척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말만을 골라서 계속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로 쓴 것이 역사의 사실로 둔갑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속겠지만, 아는 사람은 그런 말장난에 속을 리가 없을뿐더러 그런 거짓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하거나 무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 굳이 무슨 '주의'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도 못 된다는 것을 잘 알 필요가 있다.
4) 활터의 민족주의를 경계한다.
활은 1929년에 <조선의 궁술>로 정리된 후로 거의 70여 년 동안 이론화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활에 관한 책이 몇 권 나오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글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 같은 문자화에 힘입어 활이 그 동안의 미지를 걷어내고 이론화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꺼려하거나 경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자화하고 그것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아주 우려할 만한 것은 활쏘기를 우리민족우월주의의 증거자료로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우리 활의 장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우월주의는 규모만 다를 뿐 일본의 파시즘이나 독일의 나치즘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활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 민족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여 그러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그들만 못한 다른 민족을 침략해도 된다는 논리로 활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식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활쏘기가 조명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민족이 워낙 우월한 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의 활보다 우리 활이 훨씬 더 성능이 좋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활만 놓고 본다면 이건 그럴 듯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편협한 민족주의 논리에는 금방 반론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중국의 창, 일본의 칼이 유명한데 그것이 민족성 때문이냐 하는 물음에는 동일한 논리로 답하기가 궁색한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일본의 칼도 우리나라에서 전해준 것이고, 중국도 옛날에는 동이가 다스렸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삼척동자도 다 웃고 넘어질 이 말에 어이없게도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이 민족주의자들이다. 달나라에 우주선이 도착하는 광경이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중계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우리가 쏘아보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이런 궁색한 이론 갖고 무슨 얘기가 되겠는가?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증거는 많이 있다. 세계에서 아무도 만들지 못한 것을 만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우리 민족이 흉내내지 못한 것들도 세계에는 많다. 만약에 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쓴다면, 우리가 만들지 못한 다른 민족의 자료들은 모두가 우리의 열등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둔갑한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모순이다.
활은 분명히 다른 민족의 것보다 우수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쓰여서는 안 된다. 우리의 화살촉이 다른 민족의 가슴을 향하는 순간 그들의 총과 대포와 미사일과 핵폭탄은 우리를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5) 활터의 어설픈 민족주의 논리
앞서 보았듯이 민족주의는 아무리 냉정한 시각으로 주장을 해도 스스로 모순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런 냉정함조차도 잃은 글들이 국궁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편전이 단군 때 쓰던 것이라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허황한 주장은 민족주의 여부를 떠나서 그 사실의 허황함만으로도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딛고 있는 민족주의에게도 일체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편전은 고려 때 생긴 것임을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은 그것이 정확할 때 유용한 것이다. 잘못된 지식은 자신의 무지를 탓하기 전에 이미 남의 건전한 지식을 흔듦으로써 평화로운 세계를 파괴하는 악마의 혀가 된다. 게다가 이런 무지한 지식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자료로 활용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사탄의 마음일 것이다. 사람에게 귀가 둘인데 입은 하나인 것은 다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지식으로도 비밀을 밝히기 어려운 것이 활인데, 잘못된 지식으로 접근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그런 짓을 서슴지 않고 그릇된 지식을 유포시키는 사람은 반드시 무언가 불손한 의도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의도는 개인의 성취를 이루게 할 수는 있지만 궁극에 가서는 활터 전체를 자멸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6) 활의 세계화와 민족주의
활은 현재 모습 그대로 훌륭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나간다. 완벽하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우리의 활쏘기가 세계인 모두 즐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때를 만나면 온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무한한 가능성에 가장 큰 족쇄와 암초가 되는 것이 민족주의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렇다. 예를 들어 검도가 일본의 우월한 민족성에서 나온 스포츠라면 누가 검도를 배울 것이며, 태극권이 중국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무술이라고 주장한다면 중국인 외에 누가 그 무술을 배울 것인가?
활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 활이 한민족의 우수성과 우월성을 입증하는 스포츠이니 한 번 배워보라고 한다면 이 세계 어느 민족이 배울 것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활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 이미 1928년에 스포츠로 정착했고, 현재도 스포츠이다. 그리고 앞으로 여건만 좋아지면 지구촌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세계의 스포츠로 성장할 것이다. 여기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이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활에 도입한다면 우리 활은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악용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민족을 배제한 채 우리 민족의 소유물로 만족해야 한다. 우리 활이 세계로 뻗어가는 것을 스스로 막는 것이다. 이것이 민족주의가 우리 활에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우리 활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민족주의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활은 그 자체로 완벽한 그림이다. 거기에다가 굳이 민족주의라는 부실한 물감으로 개칠할 필요가 없다.
5. 맺음말
전통 활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우리나라 밖에 없는 활쏘기의 장래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오랜 세월 동안 활을 갈고 닦아서 우리에게 전해준 조상들에 대한 예의이자 보답이다. 따라서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서 거기에 안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떻게 하면 세계인이 즐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 방향으로 국궁을 이끌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에 안주하려고 하는 태도는 국궁의 장래를 망치는 길이다. 현재는 현재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장래의 장애로 작용한다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복덕방의 화투 놀이로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활쏘기가 되려면 지금의 활터 풍속에는 고쳐야 할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정간, 궁도 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 글은 그러한 고민으로 정리한 것이다. 국궁의 현재를 문제삼는 것은 장래를 위한 것이다. 장래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문제가 풀린다. 현재에 안주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분들의 몫이겠지만, 국궁은 분명 그들의 소유물만은 아니다. 먼 장래를 내대보고 국궁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 또한 활터의 주인이다. 활터에는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의 종착점은 어떻게 하면 국궁의 장래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만이 침체된 국궁을 일으켜 거대한 거인으로 깨어난 활을 세계인의 공동 유산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몇 달간 머릿속에서 뱅뱅돌던 의문이 풀리네요.
자기 합리화 같이 너무 일방적인것 같군요~~~합장!
일본 의 도(道) 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일본에서 역시 근대이전엔 쓰지 않았던 말입니다...
도 라는 말대신 짓쥬(술) 또는 ~류 라는 말을 썼었죠...가노지고로 가 강도관을 건립하면서 처음으로 유술(쥬짓수) 이라는
이름을 유도(쥬도) 로 바꿔서 쓰기 시작했고...요즘말로 대박을 터트렸죠....그이후에 일본궁술 도 궁도(규도) 로 이름을 바꾸었고 검술 역시 검도 로 이름을 바꿔불렀는데 유도 가 1882년 이었고 제기억으론 검도 가 가장늦게 1920년대 초반부터 검도 로 이름을 바꾸었던것 같습니다...
즉 어떤 사상이나 뜻을 내포한것은 아니고 근대에 그냥 유행을 따라한것이지요...^^;
그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 그대로 유입된
것이 지금으로 이어진것이구요....
그명칭을 지금도 고집하고 있는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몰라서 그러는것인지....알고도 1900년대 초반 일본무술가 들 처럼 뒤에 길도(道) 가 멋져보여서 따라하는건지.....
좋은 말씀입니다. 언어는 정신이니, 언어에서부터 전통을 찾아야합니다.
조선왕조실록편에 활쏘기를 궁도라 칭한내용이 확인되었는데 일제잔재라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합장!
국궁문화연구회 김기훈 교수에 의하면 조선왕조실록에 활쏘기를 사예나 사술, 궁예나 궁술로 언급한 것이 186회이고 궁도라는 표현은 단지 2회 나옵니다. 그리고 그 궁도라는 말도 활쏘기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활쏘기하는 법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