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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사랑만으로는 안 된다 하는가] 도서출판 세림, 1998
* 14년 전(1997), 혼자 잠들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을 때 일어났던 한 여인과의 사랑이 깨지면서 몸부림치는 40대 후반일 때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당시 독신의 기간이 길어지자 홀로 살고 싶지 않아서 하이텔 통신에서 30세 이상의 솔로 모임 회원으로 올리기 시작한 글들이 출판사 눈에 뜨이어 출판까지 하였습니다.
1부 <사랑은 불꽃처럼>은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부 <사랑을 위하여>는 사랑과 결혼, 가정과 국가, 정신건강과 일에서의 갈등입니다.
■ 저자의 말
사랑을 위하여
죽어도 살아도 할 일은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젊은 여러분들이 할 일은 더더욱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쉽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은 하늘의 축복과 우리의 겸손이 함께하여야 오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올 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꿈을 꾸십시오.
죽어도 살아도 할 일은 사랑이었습니다.
젊은 날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항상 공허함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 공허함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으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무리들보다는 그래도 훨씬 사람다운 모습을 많이 보여줄 것입니다. 사랑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그 공허함이 너무 커서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이상한 형태의 왜곡된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혼생활에서나 일터에서나 일상생활에서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결단코 포기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가 당당히 그런 사랑으로 승리하는 삶을 후배들에게,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터인데 어느덧 사십 중반에 와서도 헤매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할 일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안에서만이 편안함과 휴식, 보람과 감동,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느낄 수 없었던 상황들은 모두 외로움의 한 변형으로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남성에게 건강한 독신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작심을 하고서도 독신이라는 삶이 길어질수록 왜곡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사랑을 꿈꾸는 삶을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이미 기혼자인 분들도 배우자와 함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작업에 동참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랑은 상당부분 두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코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조물주를 알고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사랑을 꿈꾸는 삶이 일터의 현장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는가는 이 책의 2부에서 군데군데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2부는 첫 수필집이었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에서 못 다한 이야기와 단상들입니다. 여기에는 사랑과 결혼, 가정과 국가, 정신건강과 일에서의 갈등이 나타나 있습니다. 독자들의 충고와 성의 있는 질문에는 성실한 답을 올리겠습니다. 그러고도 못 다한 얘기가 있다면 또다시 출판할 꿈을 꾸겠습니다.
무인년(1998) 정초 서초동에서
권영탁
1 부
사랑은 불꽃처럼
웃고 있는 님의 맑은 눈에
기쁨의 전율이 전해져 옵니다.
희디흰 님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연신 행복에 겨워합니다.
님은 나의 마음을 다 가져갔습니다.
님은 나의 온몸을 다 가져갔습니다.
님은 나의 눈길도 다 가져갔습니다.
님은 지상에 눈부신 빛을
마구 뿌려대는 천사였습니다.
사랑은 불꽃처럼 1
李晟美(가명) 귀하
생일 축하하오.
하고픈 말들이 있으나 좋은 날 기분을 흐려 놓을까봐 다음으로 미루겠소.
이 세상에 밝고(晟) 아름다운(美) 모습을 뽐내며 나이에 그런 연륜이 쌓이길 바라오. 나는 밝은 성미 씨에게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소.
큰오빠가 한 가지만 충고하고 싶소. 스스로 ‘코끼리 다리’, ‘고릴라’라는 표현은 하지 마시길 비오. 착시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에 인간은 전 인생을 걸며 살고 있는 듯한데 굳이 자신의 추한 속성을 자꾸 드러낼 이유는 없는 듯하오. 누가 자기의 모습에서 완전함을 느끼겠소.
한때 天使라 명명했던 한 여인이 있었소. 그녀는 부득불 자신이 천사가 아니라 했소. 나는 어떻게 하든 천사 형상을 입히고 싶었소. 아무리 아름다운 詩들이 바쳐져도 스스로 천사가 아니라고 했던 여인은 결국 천사가 아니었소.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추한 모습을 곧 드러내기 마련이라오. 육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정신도 곧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한계인 듯하오.
‘1004’의 삐삐를 보내는 성미 씨가 마냥 천사이면 더욱 좋겠소. 가능하다면 아름다움만을 느끼며 우리 만남에 하늘의 축복을 기원하고 싶소.
하늘의 사자, 天使야!
생일 축하하오!
하늘의 메시지를 들려주오.
1996. 12. 29. 오전 7:40
權寧琢 드림
* * *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전 직원을 상대로 정신건강 강좌를 하고 난 후 뜻하지 않은 강연료를 받게 되어, 의사들은 빠지고 젊은 직원들에게 뒤풀이 겸 저녁을 사주었다. 좌중을 웃겨가며 결혼 상대자로 피해야할 유형을 얘기하고 있는데 선약이 있다며 식사도 하기 전에 먼저 일어서는 키가 큰 멋쟁이 아가씨의 긴 맥시코트 자락이 내 눈길을 끌었다.
며칠 후 원장인 친구에게 먼저 그녀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직접 전화를 했었다. 접수창구에 앉은 그녀는 반갑게 대해 주었고, 결국 12월 22일 일요일 오후 두시 대학로 난다랑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앉자마자 자기는 결혼에 실패한 적이 있는 이혼녀라는 설명을 장황하게 하기 시작했다. 질문을 했던 것도 아닌데 그런 설명을 하는 그녀를 보고는 그만하라 하며 나는 웃었다. 서울을 벗어나 오랜만에 경춘 가도를 달리며 내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었고, 아름다운 북한강의 저녁놀을 맞으며 의암호에서 송어 회를 먹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부터 사흘 후까지도 그녀는 내내 ‘이승연’처럼 키가 크고 마른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며 핸드폰을 열심히 누르고 있었다.
생일 축하 메시지 이후 다시는 스스로를 코끼리 다리, 고릴라로 비하시키지 않겠다며 자신의 표현을 정정하는 태도는 나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여인의 부드러운 순종을 느끼며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상대방의 의사를 다시 생각해보고 자신이 틀렸다면 태도를 바꿀 줄 아는 여인으로 다가왔었다.
네 번째 만남 이던 12월 29일. 함께 나온 제일 친한 후배를 집에 데려다주고 스위스그랜드 호텔의 커피숍에 마주 앉아서 위의 생일 메시지를 전해 주며, 나는 성미로 충분하니 이제 더 이상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아무 말 없이 눈길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는 성미가 공연히 측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가는 팔목의 기다란 손가락이 어느새 나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아! 이 느낌! 이 따스함은 얼마만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2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베푸는 하늘의 사자에게
참으로 오랜 시간들이 흘렀다.
20세의 첫사랑 이후 12년 만에 두 번째 사랑, 그 이후 12년 만에 나는 또다시 날아다니는 꿈길에 들어서 있다. 꿈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영원을 이어가야 한다.
첫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45일 만에 깨어지고 나서야 목숨보다 더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 시절 3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죽음과 처절한 혈투를 벌인 기분이었다. 다행히 살아남기는 했으나 사랑하는 여인도 하나 없는 삶이란 사막 그 자체였다. 졸업, 군의관 시절, 결혼, 의사 생활의 바쁜 나날은 아들딸이 태어나게 했고 전문의가 되게 했으나 일상생활일 뿐 그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전문의 첫해인 84년 12월, 실습을 나왔던 졸업반 학생과 두 번째 사랑이 시작되면서 기쁨과 편안함은 잠깐이고, 6개월간 고민에 싸여 지내야 했다. 돌도 안 된 아들까지 떠맡아 기를 수 있다는 엄청난 사랑을 받아 챙기지 못했던 나는 이 사회에 길들여진 영락없는 바보였다. 사랑은 결코 시시한 존재가 아니며 감옥에 가야하는 걸 두려워했던 것도 아니지만 세상의 잣대를 과감히 떨쳐버릴 용기가 없었던 쪼다쯤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자. 변명 같은 할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후 12년, 삶은 더욱 황폐화되어 간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최근 7년간 독신 생활이 이어졌다. 아무리 순결해지고 싶어도 안 되는 독신! 아무리 큰 감동과 은혜가 하는 일에서 느껴져도 나의 삶이 결코 살찌워지지 않는 독신! 모든 것이 헛것이라는 사실만 느꼈을 뿐이다. 강연할 때나 토론할 때마다 사랑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정작 자신은 7년이 지나도록 혼자 지내는 우스운 아이러니를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지쳐갈 즈음, 치과 치료를 받느라 3개월 남짓 멀리서만 보다가 1996년 12월 22일부터 시작된 만남은 내게 20세의 첫사랑을 연상시키도록 해주었다. 그래, 수필집에다 12년마다 사랑이 찾아오는 주기성이 나에게 있다면 1996년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12월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올해도 역시 혼자 망년회에 가야 하는구나 하며 얼마나 홀망(홀로 허망)해 했었던가. 그런데 드디어 그녀가 천사의 형상을 하고 조용히 하늘에서 내 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꿈이 아니다. 손을 만져도 옆에 있고, 가슴을 만져도 옆에 있다. 따스한 입술이 맑고 밝은 웃음을 띠운 채 그대로 곁에 있다. 아아, 얼마나 그리워하던 꿈이었나!
하나님께 “삼세판입니다! 한 번만 더 주십시오!”하고 얼마나 많이 매달렸던가!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두려워 말자.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차라리 진실에 눈을 감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린도전서 13:7~8)
1997.1.2. 오후 11:17
사랑은 불꽃처럼 3
하나님께로 난 자는 사랑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이미 하나님께로 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수십 번을 부인하고
하나님 곁을 떠나도
우리가 사랑할 때까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눈이 부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아기도, 철부지 소년도, 하나님도 보입니다.
하늘엔 별이 땅에는 새생명이 태동합니다.
새날이 밝아옴에 어둠이 사라져갑니다.
정축년의 시작도 어김없이 당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났으나 간간이 어둠에 묻혔을 뿐입니다.
당신은 온누리에 복을 뿌리고 계십니다.
1997.1.4.
사랑은 불꽃처럼 4
님은 확실히 곁에 있었습니다.
님은 떠난 것이 아니랍니다.
교회에서, 차 안에서, 롯데에서,
삐삐에도, 전화선에도, 나의 귓전에도
님의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님은 나의 잠자리에도 어느 샌가 들어와 있습니다.
내 가슴에 파묻힌 님을 쓰다듬다가
문득 실체가 아님에 서러워졌습니다.
아직 님은 님의 방에 머물러 있습니다.
확신이 어디 있나요?
이미 나의 마음은 님의 것이 되고 말았는데요.
기다리고 망설일 것이 없다 했으나
님은 못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는 더 보여드릴 것이 없을 만큼 발가벗고 다가갔는데
떨고 있는 님을 꼬옥 안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냥 안겨 있는 님은 천사였습니다.
님에게 더 다가갈 방법이 없네요.
내가 하늘의 사자가 되든가
님이 사람이 되는 수밖에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1997.1.13. 오전 2:50
사랑은 불꽃처럼 5
님의 희열과 기쁨이 느껴집니다.
님의 입맞춤과 사랑이 전해져 옵니다.
잠자리에서나 일터에서나
님은 항시 밝은 웃음으로 서 있습니다.
님을 쳐다보는 눈길은
연신 웃고만 있습니다.
님은 나의 기쁨입니다.
천사의 형상을 벗어던지고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온 님은
태초 이브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님을 사랑하는 눈길은
연신 웃고만 있습니다.
님은 또 다른 나의 형상입니다.
눈부신 님의 가슴과 가녀린 발목은
님의 애절한 매달림은
밤새 나를 흥분케 했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님은 현란한 빛을 뿌릴 뿐입니다.
웃고 있는 님의 맑은 눈에
기쁨의 전율이 전해져 옵니다.
희디흰 님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연신 행복에 겨워합니다.
님은 나의 마음을 다 가져갔습니다.
님은 나의 온몸을 다 가져갔습니다.
님은 나의 눈길도 다 가져갔습니다.
님은 지상에 눈부신 빛을
마구 뿌려대는 천사였습니다.
1997.1.20.
사랑은 불꽃처럼 6
그대 울음에
이토록 마음 졸이고
마음 앓아야 했다.
서늘한 가슴으로
더욱 휑해진 잠자리엔
말라비틀어진
주검의 모습이 짙게 드리운다.
그대 없음에
시리고 서러워했다.
어디서 또 울음을 터뜨리며
사라져버린 그대 생각에
차라리 내가 산화하여
허공을 떠돌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출근길 겨울 안개의 미립자가 되어
그대 숨결에 함께 있으리……
이대로는 존재코 싶지 않으이
그대
어딜 또 헤매일 건가?
그냥 오오.
그냥 오오.
살아 숨쉬는 날까지
그대 눈엔
맑은 웃음만 있게 하리.
1997.1.21. 오전 7:00
사랑은 불꽃처럼 7
그리움
오늘 하루
山寺에 올라간 님인데
자다가 깨어나
이리 허둥인다.
오랜만에
적막에 싸인 숲속에서
동생과 회포를 풀고 있을 터인데
연신
좇아가고픈 맘에
전화벨 소리만 기다린다.
그리움은
서늘한 가슴으로
님의 손길이 다가와
안겨온
숨소리를 듣는다.
산사를 내려올 짐을 꾸리는가?
아직 소곤거리는가?
웃고 있는가?
깊은 잠을 자겠지.
그만 자야 할 텐데
님의 그리운
목소리가 없고나.
1997.1.25. 오전 1:20
사랑은 불꽃처럼 8
하나
마음은 하나
아름다움도 하나
꿈도 하나
집도 하나
님도 하나
하나는 하나
둘도 하나
부모도 하나
해도 하나
달도 하나
영원도 하나
하나님도 하나
모든 것이 하나
1997.1.28. 오전 4:55
사랑은 불꽃처럼 9
사랑의 기쁨
흰 눈 내리는 오후
전화선을 타고 온
길 떠나는
님의 목소리
이른 아침
母子를 감동시키며 울게 한
잠에서 덜 깬
님의 목소리
병원 창밖에 뿌리는 함박눈
사랑하오
사랑하오
이 세상과 모든 피조물을
님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나
福덩이가 굴러와
손바닥에 가슴에
주머니마다
가득가득
멀리 해운대에서 띄워
서초동 우리 집안에 넘쳐나는
님의 목소리
아들과 함께한
님의 목소리는
웃음과 함께
깊은 冬眠의 끝
어둠에 묻힌 아파트 창밖
하얀 길 위에
흰 눈으로 덮여버린 자동차들
이제
꿈틀일 따스한 새생명
천지 창조의 섭리에
묻혀 있는
님의 입김
새로이 다가올 봄날
가물가물
피어오를 아지랑이
새순들마다에
님의 입김
영원에 뿌려둘
님의 숨결
1997.1.31. 자정
사랑은 불꽃처럼 10
사랑의 찬가
사랑하여
詩人이 되었노라
아름다운 언어
아름다운 나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사랑하여 행복하였노라
진실이 영원과 함께한
자유
自由人
불혹을 넘기며
진흙탕에 버려져도
떨칠 수 없었던
美의 찬가
어둠의 말기에
화려화게 피어오르는
生의 환희
사랑하여
아름다움의 정수를 느꼈노라
사랑하여
진리의 끝을 깨달았노라
사랑하여
하나님을 알았노라
사랑하여
진정 행복하였노라
사랑하여
詩人이 되었노라
1997.2.2. 오전 5:30
사랑은 불꽃처럼 11
당신을 위한 기도
사랑하는 님이여
추운 겨울의 깊은 밤
님은 어디서 소식도 없나요?
취하고 싶었나요?
병원으로 달려오지 그랬소.
사랑하는 님이여
님의 고운 얼굴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리다.
자정이 넘어도 잠자리에 들지 못해
떠도는 님의 방황을
어이 잡아 주리오.
사랑하는 님이여
님이 어디에 가 있더라도
곧 좇아가리다.
설령 님이 죽음의 벼랑에 섰더라도
님과 함께 가리다.
사랑하는 님이여
이 어인 일인가요?
그냥 가려오?
가려거든 데려가오.
데려갈 수 없거든
죽여서라도 데려가오.
사랑하는 님이여
어디에 있소?
덩달아 겨울 밤거리를
헤매고 싶소.
함께 미치도록 취하고 싶소.
사랑하는 님이여
사랑하는 님이여
괴로워 마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여운 자손을 허락하실 것이오.
믿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오.
사랑하는 님이여
두 번에 한 번은 틀리는 게
궁합이라오.
한 번 맞추었으면
이번엔 틀릴 차례요.
궁합은 너무 좋은데
자손은 왜 안 생기며
궁합은 좋고 서로 너무 사랑한다는데
눈물 흘릴 일이 왜 생긴다오?
사랑하는 님이여
지난 일을 생각지 마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릴 사랑이 아니오.
님이 괴로워할 일이라면
내가 죽어 없어지이다.
1997.2.12. 오전 1:20
흔들리는 女心
만난 지 50일 동안 거침없이 사랑한 여인에게 먹구름이 끼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뜻밖에도 사주에 그토록 흔들릴 줄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나름대로 작전이라도 세웠을 텐데…….
그녀는 사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4년 전 결혼했다가 1년 만에 이혼하고 친정에 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님은 스물한 살에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하고 2년 터울로 2남2녀를 낳았으나 이십대 후반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평생을 수절하며 사 남매를 엄격하게 키우셨다. 평생 식당을 운영하며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 더욱 엄하게 자녀들을 키워서 그녀의 몸가짐과 생활 태도는 더욱 사랑스럽기만 했었다. 평생 생활전선에서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오신 그녀의 어머님은 5년 전 친구 따라 절에 나가며 불교대학원을 수료하고 개종하셨고, 이후 식당에 딸린 방에 혼자 계시며 묵상을 즐기시고 사주를 중요시 여기셨다. 처음 맏딸의 혼사가 오갈 때 서로 사주가 세어서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며 어머님이 결혼을 반대했으나 그녀가 평생 남편에게 순종하고 굽히며 잘할 수 있다고 우겨서 한 결혼이었다. 그러나 사주대로 되고 말았었다.
그녀는 어머님이 잘 아시고 그녀도 집안일로 여러 차례 간 적이 있는 곳에 나와의 사주를 알아보러 갔었다. 15년 나이 차이가 나는 것도 그녀가 우선 어머님께는 나이를 줄여 12년 차이라고 얘기하겠다고 했었음으로 혼자 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사주를 보았다. 초혼 때도 우기고 시집가더니 어떻게 또 사주가 더 센 사람을 가지고 왔느냐며 서로 궁합은 좋은데 눈물 흘릴 일이 또 생기고 후세까지 없다고 하자 그녀가 울먹이며 병원으로 소식을 전했었다. 이후 이틀째 만나지도 못했고 자정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걸 보아야 했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싶어서 2월 12일 자정이 다된 시각에 집 근처로 가서 불러내었다. 그녀 집으로 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고 연신 기도를 했었다.
“하나님! 저를 살려 주소서!
하나님! 저를 살려 주소서!
하나님! 그녀를 데려가려거든 저를 이대로 죽여주옵소서!
하나님! 그녀를 정녕 데려가야 한다면 이 차와 함께 교통사고로라도 저를 데려가옵소서!
하나님 저를 살려 주소서!
하나님 저를 살려 주소서!“
정말 미친놈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나이 차이가 많고 자식이 둘이나 있는 악조건이라며 그 동안 가까운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반대해 왔으나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말도 못 붙이게 물리쳤었다. 그리고 내가 자문으로 있는 자원봉사단의 대학생들 모임에 일부러 찾아와서도 당당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자기를 그냥 보내줄 수 없느냐며 사정조로 울먹인다. 이미 사주는 어머님께 그대로 보고가 되어졌으니 이젠 자신이 처한 여건에서 탈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맏딸로서 어머님의 입장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이 면사포를 한 번 더 써야 한다는 팔자라면 피하고 싶다고 울먹인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우리 사랑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했다.
스위스그랜드 호텔의 커피숍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가야한다면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라.”고 했다. 그런 내 모습에 그녀가 내 팔을 잡아끌며 일어나 앉으라고 사정을 했다.
일이고 뭐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일 출근을 못할지라도 그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어머님이 성당에 다니던 처녀 시절에 서로 수녀가 되고 신부가 되자고 약속했던, 삼촌이라 부르며 지내는 신부님이 광주에서 가톨릭대학의 학장을 하고 계신다는 걸 들은 적이 있어서 그대로 그분께 내려가려고 했다. 삼촌 신부님께 가서 함께 인생 상담을 하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다.
어딜 가느냐? 아무 준비도 없이 이대로는 못 간다. 그녀가 뛰어내리겠다고 고함을 치며 난리다.
아! 이건 아니다.
여인의 고함 소리!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녀의 고함 소리! 이건 폭력!
만남의 광장에 차를 세웠다. 여인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 스스로를 언어폭력에서 보호해 주어야 했다.
“가야 한다면 가야겠지.
하지만 그 대신 나를 죽이고 가라!
이대로 너를 보내고는 살고 싶지가 않다!“
입을 꼭 다문 채 캄캄한 허공을 응시하는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서글펐다. 손을 맞잡고 침묵이 흐르고 눈물이 흐르고……. 전날 잠도 못 잔 그녀인데 잠시 눈이라도 붙이라고 했다.
잠시 차창에 눈을 감고 기대어 있던 그녀가 정신이 들었는지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다 해서 뽑아 왔다. 커피를 다 마실 즈음 그녀가 마음이 돌아섰는지 다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헤어진다는 얘기를 않겠다고 했다. 운명도 사주도 개척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활짝 웃으며 손도장까지 찍는, 천진스런 어린아이들로 다시 돌아왔었다. 하지만 이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결국 다시는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2월 14일, 일찍 귀가한 나는 마지막을 전화로 통보받아야 했다.
이 몸이 죽어지고!
이 몸이 죽어지고!
편지와 단상들
이성미 귀하
홀로 허망한 이 기분으로 무슨 일인들 생각이나 할 수 있겠소.
마지막을 전화로 통보받아야 했던 오늘 저녁 나는 죽음의 길로 들어선 형국이오.
이건 아니오. 이것은 아니라오.
50여 일간 우리는 구름 위를 날아다니며 지상에 아름다움과 감동을 뿌리며 안착하기를 기원해 왔소. 너무도 사랑했소.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도록 사랑하기는 사십 평생에 처음이었소.
처음으로 부딪힌 시련에 이토록 박살이 날 만남이었다면 그 인연이 원망스럽소.
일찍이 佛家에서 얘기한 緣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오. 부부의 연을 맹세했었소.
배신과 기만에 몸서리치며 사랑하던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소. 이 무엇이오. 그토록 사주가 무섭소? 평생 절에만 다닌 사촌 형수가 본 성미 사주는 보통사람들보다 세어서 오히려 나이든 나 같은 사람이 어울린다고 했다오. 그리고 금년 3,4월이면 장가갈 운이 있어서 둘이 맺어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소. 깨어지려 한다면 러닝을 한 벌씩 가지고 오라고 해서 새 것을 한 벌씩 사다주었다 하오. 토정비결을 만들어낸 이지함의 책을 한 번 보구려.
이 무슨 장난 같은 인간들의 하는 수 없는 굴레요! 사주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성미는 분명 내가 사랑한 여인은 아니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니라는 게 서럽소. 이 무슨 말이오. Hesse가 “神은 나의 속에서 살고 죽고 괴로워한다.”라고 읊었소. “이것으로 나의 목적은 충분하다.”라고 읊었소. 모든 것은 다 같은 것이라 했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소? 아무것도 모른 채 인생이 끝난다오. 그래서 信心이 깊은 기도하는 신앙인들은 모두 하나라오.
돌아가신 누님의 시어머님이 팔순이신데 보살이오. 그분께서 인생을 들여다보시는 혜안에는 존경심이 저절로 배어나왔었소.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에 나오는 경허 스님이 문둥병자인 미친 여인을 껴안고 체온을 전해주려고 함께 잠자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었소. 도저히 나 같은 인간은 근접도 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오. 한 번도 뵙지 못한 성미 어머님의 세파에 시달린 인생에 대한 모습과 거기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사 남매의 모습은 내게 가까이서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었소. 좀 더 자유함과 낭만을 향유하게 해주고 싶었었소. 그만큼 성미를 사랑했었소. 한없이 베푸는 사랑이 오고 있었소. 성미는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여인이었소. 성미가 똑똑하여 사랑에 눈을 감게 하는 작업도 너무 잘하고 있으나 서럽소.
사주가 무슨 이유가 되겠소. 다른 종교가 무슨 변명이 되며, 사춘기의 아이들이 무슨 이유가 되겠소. 금세 뒤돌아서서 스스로 나쁜 마음을 잠시 먹었다고 뉘우치는 딸을……. 후세가 무슨 이유가 되겠소. 정자가 고환에 넘치도록 고여 있을 테니 끄집어내어 인공 수정을 해서라도 틀린 사주는 바꿀 수 있는 거라오. 사랑은 이것이 아니오. 그대 괴로울 일이라면 내가 죽어 없어지이다. 이게 사랑이외다. 이런 사랑의 앞길에 축복이 쏟아지지, 무슨 눈물 흘릴 일이 있겠소! 김소월의 詩가 아니더라도 날 즈려밟고 지나가옵소서. 그대 발바닥을 지탱시키는 땅의 흙이 되리다.
그 동안 성미와의 일들이 너무도 많이 떠올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소. 16일 주일 예배 때 단상에서 성경을 봉독하도록 되어 있으나, 지금 심정으로는 교회도 병원도 가족도 다 팽개치고 잠적하고 싶소. 내가 존재할 곳이 없소. 단지 당신으로만 존재하고 싶었소. 어찌해야 하오. 아이들? 이미 다 컸잖소. 아버지가 없어도 성미처럼 훌륭히 성장하지 않소.
성미!
그대는 어디 가서 이런 사랑을 받으리오!
그대는 어디 가서 이런 사랑을 다시 하리오!
45년 만에 겨우 찾아온 사랑하는 그대를…….
의심하는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꼬마가 아니라오! 천사가 아니라오!
나는 알아요. 사랑은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조물주의 축복으로 쏟아진다는 걸.
성미가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주부터 보아야 한다면 얼마나 우습소? 그런 곳에는 사랑이 오지 않소.
사랑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며 홀망한지 나만큼 깨달은 인간도 흔치 않을 것이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성미야! 그러지마!
성미도 선생님도 살자. 응?
하나님도 부처님도 다 내 맘속에, 꼬마 맘속에 있어. 응?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그 끈기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주지 않던?
꼬마야! 정신 차려! 제정신이 들어야 해!
성미 씨!
제가 알았던 꼬마가 아니라면 가야 합니다.
아니, 제가 알고 있는 꼬마는 확실한데 성미 씨 스스로 아니라 하면 저는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보내드려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성미 씨가 스스로 천진한 꼬마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각이 죽음 이후가 될지라도 저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화로 짜증난다는 표현을 하던 성미 씨는 분명 제가 알았던 꼬마가 아닙니다. 이것이 정을 떼는 방법인지요.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 끊어지는 것이랍니다. 그것은 사랑이 끊어지는 표현입니다.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으나 역시 제가 했던 사랑에는 항상 새생명과 죽음이 함께하지, 시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이 가장 격렬했었고 아무도 꼬마는 아니었습니다.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원하여 하나 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 나이에도 꼬마로 말미암아 처음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너무 늦게 붙여지긴 했지만 꼬마라는 애칭은 참 좋았습니다.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어서 좋아했어요.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구려. 원래 잘 울던 선생님이 꼬마를 몇 번 울리기는 했지만 이제사 선생님이 울고 있네요. 선생님이 더 꼬마가 되고 싶어서 꼬마라는 병명을 붙였는지도 몰라요.
전화선을 타고 ‘보고 싶다’던 꼬마의 예쁜 목소리가 너무 그립구려! 당신의 모든 게…….
꼬마로 돌아오소서!
꼬마로 돌아오소서!
1997.2.15. 오전 3:15
權寧琢
P.S. 이것이 생의 마지막 인사일지라도 항시 그대 곁에 인생의 선배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서로 여유가 있을 수 있다면, 사람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 의원은 항상 열려 있답니다.
* * *
꼬마야!
선생님은 일주일만 너를 생각하다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여느 때 같으면 입원 환자를 보러 성남으로 갔을 시각인 토요일 오후 세시에 집으로 그냥 왔단다. 아무 의욕도 없구나.
한 시간 남짓 누워있자니 어머님은 기도원에 들어가신다고 교회에서 연락이 오고, 재현이가 조금 전에 귀가했구나. 이대로 누워 있다가는 죽을 병이라도 얻을 것 같아서 [모델 ○○]의 발행인에게 삐삐를 쳤더니 금세 연락이 왔단다. 취하고 싶다고 했더니 반기며 잡지사로 나오라 해서 전철을 타고 갔다가 교정을 좀 봐주고 여태껏 안동대의 한문학 교수, [주간 ○○]의 발행인과 떠들다 꼬마를 만난 이래 처음으로 조금은 취해서 귀가했구나.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서른일곱 살의 미스코리아 출신 여인이 [모델 ○○]의 사장님이 되어 있더구나. 나를 무척이나 편하게 해주려는 노력을 하는 순진한 여인이나 꼬마보다 더 날씬하고 더 미인인데도 왠지 여인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여인을 밀어내는 힘이 내게 있기는 한가 보지?
꼬마가 돌아오지 못할 여인이라면 나인들 무슨 힘으로 이 시련을 이겨내겠니? 수시로 울고 있는 선생님을 꼬마는 기억이나 하고 있니?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들리니? 꼬마야!
주위의 무수한 유혹에 우리 꼬마는 꼬마이기를 포기했지!
아들이 잠자지 않고 있다가 애비를 측은한 듯 보더니 조금 전 잠자리에 들었소.
성미가 시집오지 않으려 한다고 했더니 몹시도 섭섭한 표정으로 “왜요?” 한 마디 묻더니 슬픈 표정을 짓고는 곧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소.
아무리 둘러보아도 꼬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할 일들이 없건만 꼬마가 미리 겁을 내고 있다면 이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고, 선생님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소.
너무나 야속하오. 부부의 연을 약속했던 나를 이렇게 내칠 수 있는 것이오? 그건 사람을 죽이는 일이오. 나만이 아니라 아들딸과 어머님까지.
서로 너무 사랑한다고 느꼈기에 나는 살 수가 없다는 기분이오만 당신은 아닌가 보오. 어이 얘기하지도 않았던 장면들을 다 떠올리오? 역시 정을 떼려는 운명의 여신이 장난질을 하나 보오! 지난 7년간 어떤 여인의 부모도 나는 만난 적이 없었소! 어떤 여인도 서로 사랑해 본 적이 없었소. 그건 지난 7년이 아니라 44년 5개월 전 생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함께 하나 된 적이 없었소. 성미도 처음이라는 느낌을 내가 받았소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오! 살아야 할 궁리를 해야 하나,자꾸만 자꾸만 꼬마가 선생님을 더 사랑했던 장면들만 떠오른다오. 나는 어이해야 하오? 도무지 꼬마가 갔다는 실감이 들지 않소.
꼬마의 우려하던 모든 건 허상이었소. 꼬마가 너무 타산적으로 느껴질 뿐이오. 그런 꼬마는 선생님이 사랑할 수가 없는 여인이라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소.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나는 무얼 해야 하니?
무척 지쳐서 이제는 졸립기만 하구나!
교회도 안 가고 싶구나!
영원히 잠들고 싶구나!
꼬마야!
보고 샆다.
꼬마의 천진한 웃음과 거침없는 손길과 안겨옴을 어이 잊으란 말이오!
이대로는 존재할 수가 없구나.
매일 술이라도 있어야 잠들 것 같구나.
꼬마야!
보고 싶어!
1997.2.16. 오전 0:50
* * *
교회에 다녀오자 은진이에게서 전화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었다는구려.
밝은 딸아이의 목소리는 역시 듣기에 좋았소.
“아빠! 전 결혼을 반대한 적이 없어요.
결혼한다니 어리숭한 아빠가 여우같은 여자를 만날까봐 걱정했었는데 결혼 안 할 것 같다니 더 걱정이 되어요.
3월 하순에 나오게 한댔잖아요?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계셨는데 더 이상 혼자인 것 보기 싫어요.
잘 해보세요.
제가 뭘 도울 일이 없겠어요?
제가 나가서 만나 설득해 봐요?
여자아이보다 재현이를 닮은 남자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제가 방학 때마다 열심히 돌봐줄게요.
아빠를 사랑해요.
이제 그만 결혼하셔야 해요.”
1997.2.16. 오후 7:00
* * *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누웠다 앉았다 하다가 TV에서 ‘귀여운 빌리’라는 영화를 봤더니 자정이 또 넘었소. 인간의 감동이 있는 곳에는 여지없이 당신이 떠오르는구려. 당신과 헤어져 귀가하는 길에 졸면서 운전하고, 졸면서 전화기를 떨어뜨려가며 통화하던 시간들이 그립소. 어디든 당신의 흔적이 없는 곳은 없소. 어느 시간이든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이오.
무엇이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돌아보기로 했소. 그리고 이 작업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든 당신이 나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고달픈 인생은 그만 종착점을 맞이하고 싶소. 그만큼 당신이 없는 삶이란 아직 상상이 되지 않소. 어떻게 찾아낸 당신인데……. 40년을 더 기다린 당신인데…….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40년이 넘도록 기다리고 단련받아서 결혼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만들어 내었소. 그중에서도 난 하늘의 사자와 싸워서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고 쟁취하여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야곱을 가장 좋아한다오. 병원일도 그런 일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했었소. 당신을 만나며, 시어머니를 어머니처럼 봉양하며 과부의 운명을 축복으로 바꾸던 룻을 떠올렸소. 나는 보아스가 되는 꿈을 꾸면서…….
우선은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으리다. 염려치 마오. 우스운 방법으로 당신을 돌려놓고 싶지 않소. 우리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느낄 땐 여지없이 떠나리다. 사랑이 아니라고 느낄 땐 당신 못지않게 자기 합리화를 너무 잘하는 속물이라오. 아무 염려를 마오. 당신의 머리카락 하나, 마음의 티끌 하나 다치지 않도록 기원하리다. 내가 얼마나 사랑한 당신인데 그대에게 고통을 주겠소. 짜증스런 고함은 치지 마소서. 그대 나의 여인이 아니 될지라도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영원에다 빛을 뿌리소서…….
먼저 사과부터 하고 싶소. 내가 15년이나 나이가 많다는 것, 내 사주에 더 이상 후세가 없고(아니 믿겨지지만) 눈물 흘리게 만든다는 것, 내가 총각이 아니라 아들딸이 있는 홀아비라는 것, 과부가 된 지 22년이 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것, 남자가 시원하게 큰 집을 차지하고 어머님을 더 큰 집에 따로 모시지 못한 것, 밴댕이 속이 있어서인지 당신보다도 소견머리가 좁은 모습을 보인 점, 등등.
당신이 두려워하고 짜증스럽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오. 당신의 입장을 미리 배려하지 못해서 진실로 미안하오.
사랑하는 여인도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일인들 제대로 해내겠소? 사실 꼬여 있는 병원 일도 당신의 도움이 클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에 조금은 알게 하고 싶었소. 병원을 운영할 그릇이 안 된다고 느낄 땐 언제든지 외래의 의원만 운영할 것이오. 상과대학을 나온 친구나 가족들 모두는 그러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만들어서 당신 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겠소!
어머님 문제는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는 것 같소. 자수성가하고 강하신 어른들은 병으로 눕기 전까지는 따로 거주하는 것이 서로 편하고 그게 진짜 효도하는 거라오. 진료시간에도 흔히 해왔던 말이오. 일시적인 외로움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당신과의 일이 어떻게 끝나든 전세 기간이 만료되면 재현이도 없으니 무조건 따로 있기로 했소. 장가갈 때까지는 아마 병원 5층에 있을 것 같소. 진작 따로 있고 싶어 했다고 하지 않습디까? 어머님이 어떤 로비를 하시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것은 함께 상의할 문제이지 비밀에 부칠 일이 아니오. 결국 어머님께 화를 냈으나 처음에 당신을 찾아간 일은 말하지 않고 참느라 혼났소.
며칠째 나보다 더 죽어가는 듯한 어머님의 모습은 가련해 보이다가도 밉소. 나는 얼마나 큰 불효자요! 이게 자식이오. 원래 부모 자식 사이는 원수지간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어려운 업을 짊어진 사람들은 스스로 편해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소. 내가 나쁜 놈이오? 아무리 마음이 큰 여인을 만나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요.
당신이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밴쿠버로 날아가 은진이를 만나고 오라하고 싶소. 딸아이는 이제 숙녀로 느껴지오. “아빠, 제가 그런 사랑을 하더라도 허락하실 거죠?”하며 묻길래 “우리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빠가 속은 상하겠지만 딸을 믿고 허락할 수밖에 없지.”라고 대답했소. 어떤 여인이 들어오든 아들딸의 문제로 눈물 흘리지 않을 것이오. 그런 확신이 오오. 재현이는 어릴 때부터 너무 착해서 걱정을 했었소.
7년을 혼자 보내며 후세 문제는 내가 진짜 사랑한다면 내가 낳고 싶어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으나 집착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서 막연한 불안감과 섭섭함이 왔었소. 서로 사랑하는데 아이가 없으면 입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집착하는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었소.
그리고 무정자증이나 무난자증이 아니라면 현대 의학으로 아기를 못 낳게 되는 법은 없다오! 다른 사람의 자궁을 빌려서라도 자기 아이를 낳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소! 무슨 사주요! 동국대 교수 한 분이 사주를 다 맞추어놓고 이상하리만치 안 맞는 무리를 조사했더니 모두 기독교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운명은 개척하는 사람의 것이오!
종교도 나는 다 하나라 생각해 왔었소. 신학자들도 이미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 왔고, 꼭 신실한 신앙인이 아닌 엉터리들이 타종교를 들먹이며 종교 전쟁을 준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특히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그러함을 익히 잘 알고 있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소. 당신의 어머님이 信心이 깊은 佛者가 되길 기원하오. 보살의 경지에 이르면 모든 게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소.
내가 다니는 교회에 송구영신 예배부터 나왔던 당신이 결별을 선언하고서야 갈등을 토로함이 조금은 속상했소. 종교마다 각기 다른 도그마가 있음을 설명할 기회도 있었을 터인데 아쉽소. 누나의 49제를 지내던 때 1주마다 나도 불상에 엎드려 절을 했었소. 맘속으로는 웃으며 누나의 명복을 기원했소. 무어가 그리 중요한 거요? 이제는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는 것만 남아 있다오. 당신 어머님의 신앙관이 답답하게 느껴졌었소. 신앙생활은 강요하는 게 아니라오. 당신이 사랑하여 결혼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갈등을 느낀다면 당신 뜻대로 해도 좋소. 당신이 교회에 안 나간다면 나도 안 나갈 수 있소.
무엇이 그토록 중요하오? 사랑으로만 멍에를 지리다. 눈만 깜박여도 서로 이해할 사랑으로만 살리다.
밤이 너무 깊었소. 다음날 소식엔 사랑의 불씨가 되살아나 당신과 함께 이웃을 구원하는 꿈을 펼치고 싶소. 나의 당신이여, 이 밤도 편히 자소서.
1997.2.17. 오전 3:35
* * *
이성미 귀하
일주일이 지나도록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가 겨우 제정신이 들었구려.
매일 서너 번씩 울려대던 삐삐가 어제 밤늦게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울렸소. 성미 말고는 어떤 사람도 삐삐를 보내지 않았었소.
너무 기쁜 마음에 연락을 했건만 짜증스런 말투로 전화를 받던 성미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하였소. 어떤 형태든 여인과의 다툼과 짜증은 피하려는 게 몸에 배였소. 우리 사이에서 ‘쉬운 여자’, ‘병원 규정’, ‘확실히 정 떼는……’ 등등 이상한 말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결코 옳은 게 아니라 생각하오. “이 몸이 죽어지고”라는 詩를 쓰자마자 성미의 삐삐가 왔었소. 다행이오. 한 편만 쓰고 말았으니…….
결혼을 축하하오. 진심이오. 믿겨지지 않으나 어리석게도 나는 믿으려 하오.
이젠 맞부딪쳐서 서로의 있어야할 자리를 찾아줌이 도리일 것 같소. 수영 씨, 성미 씨가 취해서 떠드는데 차를 버려두고 나도 함께 끼어서 신세대의 미인들 틈에 있어 보아야 장가가는 데 다시는 실수를 않지요. 여자가 없어서 불쌍하리만치 가련해 보이는 오빠 형편도 봐주고요. 성미는 맥주 두 병에 정신을 못 차리니까 한 병으로 끝내고 대리 운전이나 하세요. 최대한 나는 예의를 갖추리다. 그리고 평생 여동생을 그리워했었는데 의남매 같은 동생으로라도 인간관계가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라오.
지난 2개월 동안 성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 모든 일들에서 온통 감동의 연속이었소. 그래요, 이제는 이런 소리도 그만하리다. 성미가 큰오빠를 대하는 데 부담이 될 소리는 피하리다. 실제로 마주치면 반말로 여동생처럼 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떨지 모르겠소. 불편하면 서로 얘기해서 편한 대로 하리다.
오늘 이 편지가 성미를 개인적으로 부르는 마지막 편지가 되게 노력하리다. 오빠로 대하려면 우선 서로 가식이 없어야 하오. 설령 성미가 나를 밀어내기 위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했더라도 한 번만 눈감아 주리다. 다만 성미가 나로 말미암아 그릇된 판단을 내리지 않기만을 비오. 어떤 상의든 좋은 오빠가 되리다. 어떤 형태로든 부담스런 모습의 오빠로 있고 싶지는 않소. 나의 마지막 배려이자 성미가 오빠에게 할 도리인 것 같소.
오늘 새벽 네시에 깨자마자 나는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했소. 곧 편해지더이다. 아침에 수영을 하고 아홉시도 되기 전에 출근해서 전화를 했었소. 그리고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해졌었소. 성례 씨가 “원장님 목소리가 밝아졌는데 잘 되었어요?”라고 물었소. 오늘 저녁은 평소처럼 밥 한 그릇을 다 비웠소. 그런데 어머님은 아직 자꾸만 가라지시는 것 같소. 사람에게 쉽게 정을 주는 분이 아니시라 무척 힘드신 모양이오. 이 또한 오빠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서 없애드려야 할 일인데……. 성미가 전화 한 통화라도 해서 사죄를 드리면 어떨까? 물론 좋은 방법이 아닐지도 몰라요. 무엇이 최선인지 나도 잘 모르겠소. 무리한 부탁인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상의합시다. 삐삐와 핸드폰은 돌려받았소? 성미 어머님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으나 나중에 반성해 보는 기회도 있었으면 하오.
이상한 것은 내 주변의 모두가 성미를 많이많이 칭찬한다는 것이오.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성미가 훨씬 어른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었소. 성미의 그런 점을 나도 배우고 싶었소. 성미는 이름 그대로 이 세상에 밝음과 아름다움을 베푸는 동생이라오. 우리 인연이 아니더라도 끝까지 그 칭찬을 잊지 말고 누구에게나 베풀어가는 삶을 삽시다.
이제 여동생으로 대하기로 했으니 머리도 어루만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아요. 만일 내가 참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우면 성미에게 곧 상의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리다. 그래도 안 되면 오빠이기를 포기하고 디스코 걸이라도 찾아가야죠. 아무튼 지난 두 달간 하나도 흐트러지는 삶이 없었소. 술집에도 한 번 안 갔소. 44년을 통틀어 이런 기간이 지속된 적이 없었던 것 같소. 이제는 죽는 날까지 순결해 보고 싶었지만 남자는 다 속물인가 보오. 자위행위도 안 하는 기간이 얼마나 갈 지 스스로 염려스럽다오.
결혼하실 분과는 잘되길 비오. 어머님이 비자까지 신청했다니 궁합 사주가 아주 좋았던 모양이구려. 부럽지만 진심으로 축원하리다. 좋은 선물을 준비하고 싶소. 받기만 한다면 티뷰론이라도.
어찌하다 내 꼴이 이리 되었나를 생각하면 눈물이 솟구치지만 다시는 이런 내색을 하지 않으리다. 성미 사주가 세다는데, 그리고 그런 걸 잘 믿는 것 같은데 다시는 실패하는 결혼이 아니길 비오. 나도 사람답게 살려면 장가가야 하니 성미가 진심으로 도와주면 정말 좋겠소. 사람으로 살고 싶소. 말기 왕자암이 치유되다가 갑자기 악화되어 시궁창에 버려졌소.
병원에 자원봉사 오시는 미혼 여성작가 한 분이 결혼에 얽매이는 인간의 삶에 대해 파격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봤으나 건강하게 보이지는 않았소. 없는 자리에서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었소. 오히려 성미의 후배들이 술 담배를 좋아해서 탈이지 더 건강한 모습이오.
혼자 두면 자꾸 엉뚱한 상상이 되는 것 같소. 예전처럼 후배들을 자꾸 불러 모아 떠들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리고 각자 시집장가 보내 줍시다. 나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소. 그리고 덜 매력적인 것에 대해서는 마구마구 지적해 주구려. 장가가려면 고쳐야죠. 사실 대학 때는 양복도 명동과 소공동에서만 해 입었는데 어느새인가 소공동 티켓이 생기면 동생에게 주고 나는 몇 차례 동네의 싸구려 양복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오. 나에겐 서민 기질이 있고, 너무 화려해지면 없는 사람을 위해서 공연히 죄스러워하는 알 수 없는 영웅 심리가 있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그랬는데, 아마 좋은 것은 다 가지고 있어서 그런 여유가 생긴 것인지도 몰라요. 성미가 “장가가고 싶으면 고쳐야 해요.”라고 충고한다면 고칠게요. 혼자만 좋은 데 시집가지 마시고 꼭 신경 좀 써주세요.
아무튼 좋은 인연으로 만났던 우리 기억이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리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들의 삶에 넘쳐나는 영양분이 되게 하리다. 다시는 죽음을 읊지 않으리다. 빠른 시일 안에 장가 못 간 오빠를 대하듯이 연락이 있기를 비오.
아침에 전화하면서 성미에게서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소. 이런 걸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영 씨를 데리고 나와서 같이 떠들어 버려요. 내가 취하지 않으면 후배보다 성미를 먼저 집에 바래다 드릴게요. 편안한 관계로 만들어 버려요. 설혹 성미가 내키지 않더라도 처음으로 나를 좀 도와주길 바라오. 3월 5일 6시 30분 박 원장과 약속이 되어 있는데 그 전에 연락이 있으면 더욱 편할 것 같고, 연락이 없으면 그날 수영 씨를 소개시켜 준다면서라도 병원에서 한번 봅시다. 가능하면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도록 노력하리다.
설혹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성미를 찾아가더라도 내 뜻이 아니오니 오해하지 마소서. 그리고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내가 꼭 하리다. 성미와 함께 지혜를 모아 성미가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며 기원하리다. 열다섯 명의 직원과 세 명의 여의사, 컴퓨터 통신의 아우들 백여 명, 우리 가족들 모두 우려의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소. 죽기를 바라던 미음이면 건강하게 일어설 수 있겠죠.
어제까지를 생각하면 나도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소. 성미는 대단한 사람이오. 몇 차례나 이 오빠를 자유자재로 바꾸고 있어요. 천의 얼굴을 한 건강한 카멜레온이오. 성미나 오빠의 앞길에 다시는 눈물 흘릴 일이 없기를 기원하며 이 밤도 편히 잠드소서.
안녕!
1997.2.21. 새벽 1:10
權寧琢 드림
* * *
성미어머님 전상서
생면부지의 불초자가 문안드림을 용서하옵소서. 보살의 길로 정진하시는 어머님의 명상을 흐트러지게 하여 송구합니다. 정근에 열중하시는 어머님께 누를 끼쳐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소생이 어머님의 허락도 없이 지난 50여 일 성미와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따님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알았고, 여자를 알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인연으로 여겼는지 모릅니다.
성미는 이 세상의 어느 여인보다도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성장하였습니다. 제대로 교육받고 인간사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이 땅의 자랑스런 여인입니다. 어머님께 많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미는 마음이 큰 여인이라 어떤 때는 제가 소인배로 느껴졌었습니다. 실제로 “성미는 큰 여인인데 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까지 했었습니다.
성미를 사랑한 결과는 오늘 죽음을 맞이하는 처절한 심사가 되어 부득불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성미가 밉지 않습니다. 가련한 생각으로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어머님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저는 성미가 원하는 대로 시집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편지도 제가 큰오빠가 되어 축원해 주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만 하루도 못 넘기고 저는 또다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못 자고 못 먹고 울렁이고 설사하고 체중이 줄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아들도 형수도 다들 힘들어하니 저의 집은 초상을 만난 형국입니다. 이러다가 살아남을 수도 있을지 모르나 죽기로 작정하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성미에게는 더 이상 고통을 주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머님께서 저를 아들이나 남동생처럼 생각하시고 이 글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40여 년 인생에 진짜 사랑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저희는 부부가 되기로 약속하고 워커힐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우발적인 철부지의 행동이 아니라 신혼여행을 가듯이 며칠 전부터 준비하여 97년 1월 18일 온밤을 지새우며 맺어진 인연입니다.
이후 두 번 더 서로 사랑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저는 ‘여보’라고 불러도 보았습니다. 한 달이라 하지만 일주일에 네댓 번을 만났으니 남들의 일 년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를 너무 경박하다고 나무라지만 마시고 불같이 타오른 사랑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너무 행복에 겨워 아름다운 詩를 쓰면서 神의 시샘을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집에 와서 어머니를 세 차례 만났고 형님 내외, 동생 내외와 인사도 했습니다. 영원토록 함께하겠노라 하며 조물주를 찬양하였습니다. 성미 어머님의 허락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 죄송하고 무릎 꿇고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2월 9일 일요일 장미바구니를 전해 드리던 날 한복을 입고 저의 집에서 어머니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무엇 하나 거침이 없었습니다. 7년이 넘도록 여자를 내치던 저는 드디어 하늘의 복을 받았다고 감사해 했습니다. 그러나 2월 11일 사주를 보고 울먹이며 전화한 성미의 모습은 그 후 엄청난 시련의 연속이었고 성미에게 “차라리 날 죽이고 가라.”고 했습니다. 성미에게서 밀려난 저는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물고기도 방생하는 불심에 기대어 인간 방생을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어머님! 사주가 무엇이옵니까? 관상만 못한 게 사주이고, 마음만 못한 게 관상입니다. 우리는, 아니, 성미는 마음이 그럴 수가 없는 여인입니다. 어떻게 키웠으면 저럴 수 있나 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던 터라 어머님을 더욱 빨리 뵙고 싶었었습니다. 저희는 마음이 같았습니다. 이보다 더한 사주가 어디 있습니까! 제 인생에 여자가 없다는 사주는 일리가 있습니다.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全 人生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어정거리던 여인을 단호하게 물리쳐온 셈입니다. 덕분에 얼마나 외롭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미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뿌듯한 자부심뿐이었습니다. 나이 40이면 액땜을 다한 셈입니다. 성미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 못난 불초자를 죽이지 마옵소서.
만에 하나 실제로 시름시름 앓다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성미에게 씌워지는 業은 어쩌시려고요? 자전적 수필집을 동봉합니다만 저는 인생을 뜨겁고 처절하게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님을 만나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성미를 사랑합니다. 이번 일로 제 목숨보다 성미를 더 사랑한다는 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저도 한 여인의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인생을 꾸려가고 싶습니다.
후손은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무정자나 무난자가 아니라면 후세를 태어나게 할 방법은 충분히 개발되어 있습니다. 12년 만에 사랑을 느낄 만큼 자신의 감정에 철저해지고 싶은 불초자가 어떻게 또 여자를 밀어내겠습니까?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됩니다. 따님이 그런 여인이 아님에도 불행한 일을 겪었듯이 저 또한 수필집을 보면 아시게 되겠지만 모진 사람이 아닙니다.
어머님!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조계사로 오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시주도 듬뿍 하겠습니다. 무슨 방법을 쓰든지 으리으리한 집에서 둘이 살겠습니다. 이 사위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혼수를 안 해주시겠다면 제가 성미에게 일억을 주어서라도 저의 어머니 모르게 혼수를 떵떵거리며 장만해 오게 하겠습니다. 현재 이백여 명의 정신병자를 구제하고 있으나 일도 그만두라 하면 그러겠습니다. 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모르긴 해도 성미 역시 저만큼 힘들어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미를 살려 주십시오. 설혹 이 모든 일들이 미친 소리로 들리시더라도 성미는 그만 나무라십시오. 차라리 저를 두들겨 패십시오. 맞으러 가겠습니다. 성미가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아 있으니, 저에게 못 주더라도 이 일로 따님을 더 나무라지 마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히려 모르는 채 해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미가 마음으로 또 아파할까봐 염려됩니다.
잠든 지 두 시간 삼십 분 만에 “사람 살려!” 외마디 고함을 지르고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습니다. 어머님! 佛家에서의 因緣法이 무엇이옵니까?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조금 공부했던 것들을 다 잊어버렸지만 성미와의 이 인연은 영원을 갈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서도 마음이 서로 그렇습니다. 저를 放生해 주십시오. 성미가 어디로 시집가는 것보다 행복을 느끼며 살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인생을 검토해 보시고도 물리치신다면 물러나겠습니다. 죽더라도 그것은 제 문제입니다만 살아갈 기력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훌륭히 키우셨나요? 따님이 안 나타났으면 여자도 없이 외롭게 살다가 인생을 끝냈을지도 모를 텐데요.
이 불초자를 가엽게 여겨 주십시오. 저를 필요로 하며 에워싼 가족과 환자들까지 모두 어머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시고 방생해 주십시오. 불러다 나무라 주십시오. 제발 성미는 그만 나무라십시오.
거듭 부탁드립니다.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까봐 두렵습니다.
어머님과 없었던 인연이 되더라도 불쌍한 중생들을 너그러이 받아 주옵소서.
경훈이와 선주는 만나 보았는데 좋은 청년들이더군요. 자제분들로 인해서 어머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며칠 내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1997.2.23. 오전 3:35
權寧琢 올림
이 몸이 죽어지고 1
이 몸이 죽어지고 1
없어지이다.
사라지이다.
흔적도 없이
散華하리이다.
누이도 아버지도 아우도 누나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요.
그냥 사라졌어요.
아버지와 누나는
山에서 잠을 자지요.
누이와 아우는
강물 속에
혼이 숨을 쉴 거예요.
물고기와 오대양을
遊泳하는
아니
이 兄을 기다리느라
양수리에서
한강을 타고
내려오지 못하고
아직 저녁노을에
떨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우야
누나야
나두 갈래.
날 데려가 줘.
이제 그만
인간 사회는 싫어.
평생 한 여인을 꿈꾸었는데
사주에 여자가 없대.
내가 완벽을 추구해서
여자를 밀어낸대.
그리고는
날 떠나 버렸어.
그러니까
내 삶에는 진짜 여자가 없었어.
이상해.
그리고 싫어.
영원을 함께하기로 한
여인마저 떠나 버렸어.
아우야!
세상사를 떠나면
거긴
한 여인을 그리워하는 건 없지?
이젠 그런 곳이 좋아.
그립고
못 자고
못 먹고
울렁이고
너무 고통스러워
이거 해본 거야.
취해도
타락해도
마찬가지였었어.
그만할래.
이 몸이 죽어지고
그대 시야에
평생 없어지이다.
사라지이다.
산화하여
그대 숨결에
영원토록 함께하며
허공에 떠돌 입김이 되리이다.
1997.2.19. 오후 10:50
이 몸이 죽어지고 2
죽어도 살아도 형체마저 없으오리다
밤마다 울어야 했다.
님이 계신 곳을 좇아
하이마트로 세운상가로.
어머님이라도 만나서
인간 放生을 부탁하려고.
가릴 것이 무엇이 있다고
님은 철저히도 숨었구나.
결혼 축하메시지는
하루를 못 넘기고
슬픈 부음의 노래가 되었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가
‘죽어도 살아도 형체마저 없으오리다’로.
죽음의 전령사가
하늘의 사자를 이기고
바람 앞의 하늘거리는 불꽃으로
희미한 불씨로.
곧 천지를 암흑으로 만들겠지.
정월 대보름의 달님에게 아뢰어
칠흙 같은 어둠이 오지 못하게 하고 싶으나
살아남고 싶으나
어김없이 삭망은 오리라.
어둠을 준비하는
이 마음은
천지를 다 품어 안으련만
희미한 불씨는
또다시 새생명을 잉태시킨다.
2월의 달님에게
내년의 정월 대보름에게
이 몸이 죽어지고
님의 앞길을 환희 밝혀 드리라고.
1997.2.23.
대보름달이 뜨던 날 밤의 다음 새벽에
이 몸이 죽어지고 3
님그리워
사경이면 어김없이 님을 그립니다.
태어난 시각에
자다가 깨어나 고향으로 옵니다.
近間에 만난 님인데
자지도 않고
님은 고향에 먼저 와 있네요.
대보름이 조금씩 이그러지면서도
님의 발길을 밝히려 하지만
님은 스스로 더 밝은 빛을 뿌립니다.
고향엔 나지막한 산과 들이 있고
철사줄을 대고 빙판을 달리던
호수가 있습니다.
찬바람에 싱그런 공기가 들이켜지지만
어느새
님은 입김만 남겨 두었습니다.
님의 향기가 그리워
제 모습을 잃어 가면서도
연신 님의 창문에 부서지지만
님은 스스로 더 밝은 빛을 뿌립니다.
사라진 님을 안고
님 그리워
몸도 마음도 다 불사르지만
님은 스스로 더 밝은 빛을 뿌립니다.
1997.2.25. 새벽 2:25
이 몸이 죽어지고 4
죽음에 이르는 병
두세 시간이면 눈을 뜨고
식은땀을 흘린다.
‘사람 살려’ 잠꼬대에 놀라서 깨었다.
흉측한 여인이 온몸으로 덤비는데
단호히 물리치던 나는
그 여인의 손아귀에 살이 잡혀서
통증에 못 이기며 몸부림을 쳤다.
야릇한 쾌감으로 나른해지는 육신은
지옥의 늪으로 빨려드는데
발버둥을 치며
님을 부르며
소리를 크게 지르며 깨었다.
정녕 가시오니이까?
지옥의 나락에서 날 건져 주지 않으면
님은 건강하게 살으리이까?
혼자한 천상이 그리 좋소?
못 먹고, 울렁이고, 설사하다가
이 몸이 죽어지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서도
천상이든 지상이든 님을 축원하리이다.
천상이 지상이 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것.
모든 것은 다 같은 것.
모든 것이 하나로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면
내가 처방하던
안정제라도 먹어야 하는데
도무지 먹고 싶은 마음이 없구나.
천상에 남은 님보다
늪에 빠져
이 몸이 죽어지고
내 모습이 더 아름답구나.
1997.2.25. 아침
이 몸이 죽어지고 5
죽으면 죽으리라
아무 연락이 없는
깜깜한 밤의 정막.
무수한 메시지가 들어오던
삐삐까지 잃어버렸다.
님을 잃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는
펜티엄의 잡소리만 남았다.
우수가 지난 하늘은
봄비를 뿌리고 대지를 일깨우나
생명력을 잃은
이 몸은 갈 곳이 없다.
님이 없는 이 세상엔
차라리
이 몸이 죽어지고
님의 蘇生에
밑거름이 되리라.
아아
님은 간 것이 아니라
이 몸에 철저히 배여 있다.
내 가슴에, 차 안에, 방 안에
어디에도
님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
이 몸이 죽어지고
님이 부활한다면
내가 죽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1997.2.26. 오전 2:20
이 몸이 죽어지고 6
이 몸이 죽어지고 6
하루를 천 년같이
님을 기다리나
칠천 년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다.
님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
보름이 넘었으나
보름달이 어느새 하현으로 변해
아직 오경인데도
제 몸을 이리 불살라
대낮처럼 밝힌다.
대보름보다 더 밝은 이 밤은
어쩌자고 또 깨어나는가.
하현도 그믐으로
흔적마저 사라질 때까지
밤을 밝히건만
사람인 이 몸이
어이 살아남으리오.
칠흙 같은 그믐이
마땅하다.
어둠의 끝에
님이 있으리오?
새로운 불씨를 지피리다.
또다시 보름으로 부활해
제 몸을 태워가며
님의 길을 밝히리오?
어디든지
님 곁에 살아 숨쉬리다.
영혼이 소멸할 때까지.
1997.2.27. 새벽 4:25
이 몸이 죽어지고 7
死의 讚美
사랑은 불꽃처럼 피어났다.
다 타버린 장작의 검은 숯덩이가
불씨를 안고서
터지는 소리를 내며 흰 연기를 올린다.
재로 변하여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님의 머리에 앉았다.
님과 같이 잠들고
님과 같이 숨쉬고
님과 같이 뒹군
저 세상은 너무 좋다.
더욱 아름답다.
아무런 상념도 사주도 없다.
이리 편할 수가 없다.
님과 함께라면
저 세상인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님의 아픔을 덜어줄 일이라면
죽어서 재가 되어도 좋다.
죽어서 숨결의 바람이 되어도 좋다.
님이 역겨워할 앙상한 몰골보다는
여유 있는 이 공간이 한없이 넓다.
울지 마라, 님아!
울지 마라, 님아!
사랑만이 죽음을 빛나게 했다.
사랑만이 모든 걸 용서했다.
항상 님 곁에 사랑으로 있는데
울지 마라.
기뻐하며 이 세상의 사랑을 받으라.
이것만이 하늘의 것과 같았다.
안녕.
1997.2.28. 새벽 4:15
마지막 인사
이성미 귀하
용서하고 이해하려 애쓰던 지난 보름 동안 그대의 앞길을 축원하며 염려해 왔건만, 그대는 끝내 나를 무의식중에라도 증오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많이 취해서 성남 원장 방에서 밤을 지새며 그대의 사랑을 한없이 원망했었다. 그대를 내 머리에서 죽이고, 아직도 떠들며 바쁘게 시시덕거리는 그대 모습에 배신감만 왔었다. 그대의 어머님만 어머니인가? 어이 사람이 그런가? 그대를 위해 내가 죽으리라는 기원을 이리 무참히 짓밟는 성미는 도대체 뭔가? 있었던 일들을 고통으로 나누어 가지며 서로의 상처를 아물게 할 참사랑도 있으련만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던 나를 이리도 무참히 짓밟는구나. 그대의 무엇을 보고 ‘내가 죽으리이다’ 했다는 말인가?
아아!
원래의 그대가 아니오! 내가 알았던 그대가 아니오!
지금의 그대라면 45년 평생에 가장 큰 실수를 했단 말이오? 아니오! 원래의 성미가 아니오! 내가 사랑한 성미는 죽었단 말이오? 아니오!
내가 죽어서 그대의 발걸음을 지탱하는 땅의 흙이 되리라고 읊지 않았소! 성미 어머님의 모습에서 참다운 인생을 볼 수 있었소만 그대는 도대체 뭐요?
주변의 선후배는 온통 껍데기들만 포진하고 있소. 성미는 원래 꼬마이나 주변은 껍데기들로만 쌓여 있어서 성미도 모르게 허상에 휩싸여 버렸소. 원래의 성미로 돌아오오. 꼬마로 돌아오오.
이성미 씨
이제 연극은 그만하시오. 나는 죽음이 덮쳐 와도 의연히 맞이할 수 있소. 있지도 않은 결혼 준비는 이제 들먹이지 않아도 되오.
성미 어머님의 삶에서 느껴진 게 너무 많고, 무릎 꿇고 속죄하는 심정이었소. 성미가 성미 어머님께 효도하겠다는 생각도 제대로 하시오. 우리로 말미암아 성미 어머님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오. 가식과 허상에 휩싸인 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오. 나는 그대에게 단순한 것일지라도 거짓으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소. 어떤 감정도 진심이었소. 마음을 달래다 달래다 아니 되면 조용히 죽어 없어지리라 했었소. 도대체 성미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뭐요?
세운상가를 토요일 밤 11시부터 두세 시간 동안 헤매고, 일요일 낮에 다시 가서 식당 이름도 모른 채 물어물어 ○○식당을 찾았소. 성미 어머님을 찾아뵙고 ‘제발 나를 살려 달라’는 말을 했다는 걸 성미에게 전할 기회도 성미는 주지 않소. 도대체 우리의 만남이 이것밖에 아니 되오? 그저 전화 끊기에만 급했었소. 이게 뭐요?
성미에게 내가 형편없는 인간으로 비춰지더라도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며 돌려놓고 싶어서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소. 그대가 영영 간다면 다시는 이런 사랑이 찾아올 수 없을 것이오. 아마 성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예감이 오오.
부부의 인연은 이렇게 팽개치는 것이 아니오. 배신에 몸서리쳐질 때는 그대에게 진짜 강간당한 기분이었소. 그대가 쓰는 폭력은 도무지 내가 알 던 당신이 아니오. 설령 가야만 하더라도 면전에서 진정한 사과의 말 한마디가 없소. 이게 뭐요? 우리 꼬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오. 우리 헤어져도 진정한 인간으로 남읍시다.
당신을 만난 이래 지금까지 온전히 당신만을 생각하며 살았소. 인천 땅이 팔려서 일주일 안에 목돈을 쥐게 되었소. 팔렸다고 하지 않고 그대만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고 싶소. 죽음의 길로 들어서 있다 싶은데 무엇인들 못하겠소. 죽음에 이르는 이 병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있으나 스스로 때 묻고 싶지가 않소. 지금이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하니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소. 나머지 시간들은 인간의 삶이 아니오. 단지 생활일 뿐이오.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소.
나는 그토록 사랑한 당신을 잊을 수가 없소.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었소. 그러니 선생님이 추하게 보이더라도 무의식 속에서라도 증오의 화신이 되게 하지는 마시오.
죽겠다는 마음에는 살고 싶다는 심리가 다분히 숨어 있소. 그러나 이제는 싫소. 나를 살릴 사람은 그대밖에 없소. 나의 어머니를 살릴 사람도 그대밖에 없소. 그대가 아니라면 모든 게 싫소.
삐삐를 쳐요. 아무도 치지 않는 삐삐로 연락을 주어요.
삐삐만 보다가 그만 살 수 있다면 그만 살래요.
015-8321-8727
1997.3.1. 병원서 잠을 잔 이른 아침에
권영탁 드림
* * *
성미어머님 전상서
3월 1일 화창한 봄날의 연휴가 시작되었으나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기분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누구를 그토록 무섭게 저주한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원장실에서 퇴근도 하지 않고 밤새 취해서 성미의 태도를 혼자 나무랐습니다. 용서하옵소서. 저희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머님까지 괴롭혀 드려서 진정으로 죄송합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아니고는 성미 마음을 돌려놓을 수가 없다는 판단 때문에 자꾸 어머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거듭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성미가 이제 아무리 거짓을 말해도 이미 성미의 마음을 읽어버린 저는 그러는 성미가 측은해 보일 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를 같이 살아도 부부의 연을 끊을 수 없을 터인데, 저희는 1월 18일 이후 25일간 사실상의 부부 관계에 있었습니다. 44년 6개월을 살아오는 동안 지상에서의 행복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서로 좋아하여 차 안에서 보여준 이런저런 애교의 모습을 영영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제 주변의 어느 하나에도 성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머님!
이미 권영탁이는 죽었습니다. 자존심도 부도 명예도 성미로 말미암아 하나도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있어서라도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달래 봤으나, 이러다가 잠이 깨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묘한 기분이 점점 더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어머님! 살고 싶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저뿐 아니라 제 자식들, 제 어머니까지 살려 주십시오. 성미까지도 살려 주십시오. 결코 성미가 쉬운 결정을 내리는 막된 따님이 아닙니다. 어머님께서 성미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어머님!
저희는 어머님께서 우려하시는 그 어떤 것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수필집에 있는 대로 한 번은 어느 목사님이 17년이나 차이가 나는 딸을 주시겠다며 만나게 해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인생을 모르셨겠습니까? [정신분열병을 이겨낸 사람들]을 보시고 제 마음을 읽으신 분이었습니다. 나이 차이는 오히려 서로 센 사주를 잘 융화시켜 이 세상에 빛이 나는 일들을 만들어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님! 제 마음을 보고 성미를 주십시오. 결단코 실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잘못하는 일이 있거든 언제라도 불러다 야단치시면 곧 시정토록 할 것입니다. 성미가 마음이 큰 아이라 먼저 어머님을 실망시킬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우들은 제가 맏아들처럼 아버지처럼 그늘이 되어 어머님이 안 계시더라도 친동생처럼 거느리겠습니다. 이제 제 아우는 하나밖에 없습니다만 아우가 넷으로 늘어났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성미가 화려한 것을 좋아하여 농담으로 “벤츠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벤츠를 원하여도 사주겠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이제는 실제로 현찰을 쥐고 원하는 것을 해주고 보겠습니다. 이러다가 그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마당에 성미를 위해서 제가 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나는 말로 사 남매의 아파트 장만으로 현금이 모자라 어머님께서 어려워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불쾌해 하지만 않으신다면 일이억 원은 하시라도 돕겠습니다. 제 재산은 전부 병원의 환자를 위해서 병원 일에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죽어가는 마당에 사랑하는 성미를 위한 일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일주일 후면 8억 원을 현찰로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그 돈도 제게는 성미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님! 제가 가진 것들로 이 세상을 빛나게 하도록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저를 가엾게 보시고 물리치지 마옵소서.
어머님!
불쑥 찾아가 또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말씀도 드리고 싶으나 어머님의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 저는 송구스럽고 이렇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오늘 토요일 밤이면 아이들이 있는 ○○동으로 가실 터이니 그 사이에 이 글을 살짝 밀어 넣고 그냥 가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불러주시면 모든 것은 희열과 환희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저를, 저의 가족을 살려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찾아뵌 후에 성미를 그리워하는 詩를 동봉합니다. 못난 이 자식도 아들이라 생각하고 가엾게 받아 주십시오. 아무쪼록 건강을 잃지 마시고 세상을 크게 보아 허락해 주시길 진심으로 학수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간혹 문안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도 건강이 유지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李氏 집안의 좋은 權서방으로 맏사위가 되도록 도와 주시길 기도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1997.3.1. 화창한 아침에
권영탁 올림
* * *
당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은 죽도록 사랑할 여인이었소. 당신이 어떠한 변신을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을 사랑하오.
큰소리를 낼 상황에서는 마주치지 맙시다. 죽는 날까지 그런 건 안 하기로 한 지 오래되었소. 여인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과 편안함만을 느껴도 시간이 모자라오.
당신이 그런 여인이 아니라 하여도 나는 내가 알았던 성미를 사랑하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기억을 굳이 허물어뜨릴 필요는 없소. 내버려두시오. 죽어도 살아도 그것은 하늘이 하는 것이오. 당신의 業이 아닐 수 있소. 다만 내 잘못과 내 허물을 책망할 뿐이오.
나 혼자 끝까지 앓아서 당신에게 진정으로 미안하오. 아직도 나는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당신만을 생각하며 당신만을 사랑하고 있소. 그러니 제발 폭력은 쓰지 마시오. 언어폭력은 그 어느 폭력보다 무섭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소. 비록 선생님의 인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분하다 할지라도 불쌍히 여기고 마시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은 비난하지 않아도 더 큰 비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소. 나는 나를 흐트러지게 하고 싶지 않소. 순수한 이 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당신은 모르오. 내버려두시오. 지가 사람인데 얼마나 가겠소. 조용히 제풀에 가도록, 마음껏 당신을 찬양하도록 내버려두시오. 더 이상 당신에게 무슨 피해가 있겠소?
온전히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오. 재현이도, 은진이도, 어머니도, 형수도…….
좋은 봄을 맞이하구려! 안녕!
1997.3.2.
이성미 귀하
더 이상 이상한 방법으로 나를 분노케 마시오. 그대가 무릎 꿇고 사죄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소. ‘혼인 빙자 간음죄’로 여자도 감옥에 갇힐 수 있음을 알아 두시오. 내가 병신 같은 남자로 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소. 이미 7년 넘게 혼자 사는 병신이오. 이 세상에 유래가 없는 웃음거리가 될지라도 상관없소. 오히려 여자의 폭력에 대해 응징하는 용기에 찬사를 보낼 사람도 있을 것이오.
보름이 넘도록 死境을 헤매며 그대를 그리워하고, 이 생명이 다해도 차라리 순결함이 더 좋다는 생각이었소만 그대는 끝내 나를 분노케 했소. 배신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면전에서 나에게 분명한 말로 설명해야 하오. 갑자기 싫어졌다는 말로는 아니 되오. 그토록 사랑한 사람에게서 돌아서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내가 납득하도록 하시오. 나와 나의 가족을 죽이고 있는 그대를 향해 무서운 살의를 느끼고 있소. 당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라오. 곧 연락을 주시오. 이대로는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소. 이대로는 용서할 수가 없소. 제발 그대의 앞길을 축원할 수 있도록 하시오.
이 순간도 그대를 데려오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큰지 당신은 모를 거요. 사랑과 새생명과 죽음은 모두 하나요. 제대로 처신하길 진심으로 바라오. 나도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소. 이런 짓은 왕애기도 꼬마도 아니오. 그대가 얘기한 사랑스런 꼬마가 되시오.
그대가 해운대에서 부낸 짧은 글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여다보고 있소. 도대체 무엇이오? 내가 알아야겠소! 큰소리를 내지 마시오! 큰소리도 낸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낼 일이지 그대가 아니오. 더 이상 피하지 마시오! 더 이상 분노케 마시오!
이렇게 힘든 것들의 연속이어도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은 변함이 없소.
1997.3.5. 새벽 5:50
권영탁
왕애기와 꼬마
나는 왕애기
너는 꼬마.
너와 나는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는 좋아했지요.
왕애기와 꼬마는
어린이였지요.
왕애기와 꼬마는
둘 다 천진했어요.
서로 존중하며 그리워했지요.
꼬마는
왕애기의 말을 잘 들었고요.
왕애기도
꼬마의 말을 귀담아듣고 감탄했지요.
왕이 뭐야?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지요.
꼬마는
순종하는 천사였지요.
왕애기가 틀리지 않았다면
꼬마가 따랐고요.
꼬마가 틀리지 않았다면
왕애기가 따랐지요.
한 번도 다툼이 없었어요.
건건이 복을 받으며
지상에 감동을 마구 뿌렸어요.
천국을 만들었지요.
왕애기와 꼬마가
어린이가 된 것은 두려웠던가 봐요.
알 수 없어요.
왕애기는
밤마다 그리워하며 울고 있고
꼬마는 3주가 지나도록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꼬마가 보고 싶어요.
꼬마가 영영 사라지면
왕애기는 성장이 멈춰질 거예요.
갑자기 꼬마는
혼자 어른이 되었나 봐요.
1997.3.7. 오전 3:50
李晟美 貴下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어지러이 거닐다가 별로 원치 않았던 여유로움으로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에는 전투적이고 긴박한 생명력이 요구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나 이를 편암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리들에게는 미숙하고 철부지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님 세 분께서 번갈아 전화를 하셨지만 저는 아무런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원해 왔었던 마가복음 14장 36절의 말씀은 피하고 싶었던 人間事였습니다. 수필집의 서두에도 인용을 했었지요. 세상사의 일로 저의 생명을 요구하고 있을 때마다 튀어나온 기도였고 가능하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랐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지금도 하는 일에서조차 이런 기도의 연속선상에 있으니 이 무슨 운명인지,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이런 길에 들어서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는 너무나 외로워서 그만 감내하고 싶은 일이라 당신과의 사랑으로 더욱 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새벽 한시 이십분. 제가 태어난 시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당신이 명명한 ‘왕애기’로 남을 것입니다.
당신과의 일은 참으로 오래 기다린 하늘의 축복이었습니다. 이제야 첫사랑을 했다는 느낌이 왔으니 이상한 일이지요. 당신이 잊기 위해서 소요될 시간이 족히 3년이 넘을 것이라는 예감이 옵니다. 주변에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또 하늘나라로 가고 당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이 홀로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까지……. 또다시 불행을 태동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은 환희와 새생명에서 죽음으로, 죽음은 미움과 증오로, 증오는 순수와 순결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이 세상에 머물게 합니다. 사실은 머물고 싶지가 않으나 조물주는 이런 생각에 이르는 인간을 더 오래 살게 할 것이라는 예감이 와요. 축복이 아니라 욕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당신보다 제가 더 오래 살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잘못된 것들을 정리하고 3주 만에 교회에 나가려고 합니다. 당신을 죽도록 사랑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네요. 정말 모르겠어요. 단지 제 주변에서 심각하게 일어났던 일은 항상 그 끝이 모두 목숨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조차 않는 것을 스스로 예수라도 된 양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꼴을 보여 주고야 말아요. 진리와 정의와 순수와 순결의 끝이 죽음과 연결이 되어 있다면 이는 이상한 일이지 않아요? 결국 인간은 그렇게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타협하라는 암시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생존할 수 없는데도 그런 것을 꿈꾸고, 그런 교육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을 철저히 바보로 만들고, 외롭게 만들고,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하게 해버리고 있어요. 참으로 알 수 없는 인간의 일입니다.
사춘기 때 이미 저의 생존은 철저한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신앙도 철저한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사랑도 철저한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저란 인간은 이미 하늘의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우스운 밑바닥이 어느새 하늘에 닿아 있더라고요. 당신은 이미 저를 다 파악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처음 보름 이상 죽음에 이를 때는 그래도 사람다워 보여서 좋았습니다. 대변을 하루 열 번 이상 본다는 신경증 증상을 처음 경험해 봤습니다. 죽을 바에야 당신 어머님의 신앙심에 매달려보고 싶어서 있었던 얘기를 다하고 당신을 어떻게 하든 다시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부부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 말대로 뻔뻔하고 형편없는 짓거리에 불과합니다. 이미 우리가 부부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든가 봅니다. 여러 사람들을 괴롭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일들은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모두가 다 가짜였어요. 저 혼자만 또 ‘왕애기’로 남아 있었어요. 당신은 어디서 그런 애칭을 찾아서 붙여 주었나요? 당신은 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배신에 몸서리가 쳐지는 순간에조차 당신을 데려오기만 하면 그러지 않을 여인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설령 제가 그렇지도 않은 당신을 그토록 미화시켜 놓는 우를 저질렀더라도 당신은 이 세상을 알고 있고 감동과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마구 뿌려댈 여인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 떠나고, 모두가 아니라 하여도 저는 당신이 어떤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기지도 않는 ‘혼인 빙자 간음죄’를 생각했고 제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도 당신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당신이 어떻게 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판사 친구가 법리적인 모순은 없으나 현행 법률이 여자(혼인을 빙자하여 부녀를 농락……)만 걸 수 있는 불평등 법률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즉 헌법의 평등권을 무시한 잘못된 법률이라는 헌법 소원을 내어야 남자도 여자를 ‘혼빙간’으로 고소할 수 있는, 한 번 더 웃기는 절차가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남자에게는 순결이 필요 없다는 양 잘못된 법률이라 권영탁이 같은 피해 당사자가 내어야 하는 헌법소원 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결을 지키고 싶어 하는 권영탁이답다는 묘한 뉘앙스만 제 주위에 맴돌 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거듭 사과드릴 일들만 남았습니다. 당신이 어설프게 우리 관계를 노출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항상 저는 솔직하게 사실만을 얘기하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제 인생이 노출되어도 겁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치 제가 칼이라도 들고 있다가 당신을 위협이라도 할 양 미친놈을 만들어 버리면, 저는 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설명을 아니 할 수가 없게 되어요. 저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도 제가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심정적으로 짐작하고 있고, 바보 같은 놈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부분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박 원장과 아무리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다고는 하나, 의예과 시절부터 보아온 친구이고 군대 시절 일 년이나 같은 병원에 근무했던 친구입니다. 기왕 몰랐던 박 원장에게 저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뻔했습니다.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를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으면 얼마든지 지나가는 가벼운 이야기로 끝낼 수도 있었지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제가 다치는 것은 하나도 겁나지 않습니다. 기왕에 아는 사람들은 저도 방법이 없더라고요. 여자들조차 하나같이 당신에게 분노를 표시하고 있어요. 더욱이 제가 실제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걸 가까이서 본 성례 씨, 병원의 사회사업가와 간호사들, 식당아줌마까지.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느니 그만 살고 싶어 했으나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네요. 이제 쉬고 싶어요. 의사가 모두 네 명이라 조금은 편한 맘으로 어디 한두 달 가서 바다만 바라보며 당신을 그리고 싶어요. 그냥 멍하니 있어 보고 싶어요.
재현이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6일 수술장까지 갔다가 제가 전화로 잊고 말하지 못했던 전구 증상을 얘기하는 바람에 전신마취 직전에 서울대학교병원 비뇨기과로 옮겨져, 삼 일간 약을 먹더니 아무렇지도 않아졌어요. 어머니가 서울대병원 정형외과에서 손가락 수술로 11일 입원, 13일 수술, 17일 퇴원이래요. 비뇨기과 친구에게 정관복원 수술을 받기로 약속한 날짜에 연락도 없이 오지 않았다며 야단만 맞았지요. 화장실을 열심히 다녔더니 대장 항문과에서는 삼 일간 입원해서 악화된 치질 수술을 받으라고 해요.
신나는 일은 이제 없어요. 지저분한 일만 남았어요. 은진이는 학교를 둘러보려고 토요일 보스톤으로 갔다온대요. 재현이가 곧 밴쿠버로 나간다니까 갈등이 좀 있나봐요. 병원에 새로온 간호사가 23세로 167cm이고 늘씬해요. 아무리 원장이라지만 우스운 원장이 될 수야 없지요. 정말로 제가 있을 곳이 마땅치가 않아요. 눈길을 줄 곳도 마땅치가 않아요.
다들 넋두리이고요, 당신은 보란 듯이 잘살아야 해요. 당신을 정말 사랑했어요. 문득문득 가슴이 서늘해질 만큼 사랑했어요. 새벽 네시가 넘어가도 눈물만 어려요.
꼬마야! 잘 돼야 해!
언제든지 꼬마로 남고 싶으면 돌아와요. 괜찮아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와도 괜찮아요. 당신을 다시 꼬마로 만들 수 있어요. 이리 외롭게 45년을 살아온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당신으로 말미암아 삶을 달리하기로 했어요. 11일 인천 땅으로 백만 불을 손에 쥐게 되면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뿌리고 살래요. 집도 병원도 필요 없어요. 당신을 생각하며, 밝고(晟)도 아름다운(美) 것들을 만들어 이 세상에 마구 뿌리며 살고 있을래요. 당신을 괴롭히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일상으로 돌아와 살고 있잖아요. 설혹 여인의 살내음이 그리워 다른 여인을 품에 안게 되더라도 그건 당신을 그리워했기 때문일 거예요.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거예요. 그리고 사랑하는 저의 아들딸에게는 이런 것으로 고통을 주지 않을 거예요. 사랑은 무조건 한없는 축복으로 돌려줄 거예요.
당신이 어디에 가 있든지 편지라도 보낼 수 있는 주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부담스럽다는 것은 어떤 것이든 다시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절대 사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기로 해요. 당신이 결혼하다 하더라도 축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러다가 저도 다시 사랑이 생기는 행운이 온다면 기쁜 맘으로 소식을 전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을 사랑한 만큼 당신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을 거예요. 제발 저의 글이나 진심에 대해서 회의적인 말만 하지 말아요. 12년 만에 온 세 번째 사랑이라는 말은 제가 억지로 붙인 게 정말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 동안의 고통과 詩도 없었을 거예요. 어느 여인에게도 이토록 많은 글과 詩를 남겨 보지 않았어요. 어느 여인에게도 붉은 장미를 그토록 자주 보낸 적이 없었어요. 12년 만이 아니라 45년 만에 온 첫사랑이었어요. 그토록 사랑하여 한 몸이 되어 본 적이 없었어요. 제가 한 어떠한 불찰도 당신을 데려오고 싶어 한 철부지 행동이었으니 그만 용서하기를 바랄게요.
당신을 밤새 그리워하며 부르다가 부르다가 죽어도 그게 더 좋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제 당신이 떠나가니 잘 가서 행복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남자는 다 철부지고 껍데기 같아요. 벌은 아름다움을 보고 다가가기만 했지, 선택도 당신이 했고 보내는 사람도 당신이잖아요. 그냥 슬퍼요. 스스로 때를 묻히며 몇 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어요.
잘 가요.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라도 전화를 주세요. 허공에다 자꾸 꽃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우리 식구들, 염려 말아요. 제가 죽지 않으면 아무도 피해 입지 않을 거예요.
우리 사랑에 이토록 애통해하는 만큼 당신은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모친으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사주니, 신앙이니, 결혼이니, 자식이니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길 진심으로 기도해요. 더 성숙한 인간으로 당신은 다시 태어날 거예요. 제가 알았던 사랑하는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배가 고파요. 이제 그만 잘래요.
‘왕애기’가 꼬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어요.
안녕.
1997.3.9. 오전 5:10
權寧琢 드림
왕애기의 명령
꼬마는 왕애기의 명령을 들어라!
꼬마가 건강해지고 싶다면 탈출하라!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이라도 탈출하라! 부모와의 인연은 부모를 떠남으로 완성되는 것! 꼬마가 인생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살고 싶으면 공항에서라도 왕애기에게로 돌아오라! 모든 것을 다 용서할 수 있다!
왕애기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백만 불도 꼬마의 몫이다! 마음껏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베풀어라! 왕애기의 모든 것이 꼬마의 것이다! 왕애기의 아들딸까지도 꼬마의 아들딸이다!
육 개월 아니, 삼 개월만 왕애기 곁에 와 있으면 꼬마는 임신이 확인될 것이고 더 이상 꼬마나 부모형제에게 주는 고통은 없다! 이번 고통도 꼬마의 회의에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임신이 확인될 때까지 우리의 관계를 어느 누구에게든지 비밀에 부칠 수도 있다!
꼬마와 꼬마 모친과의 緣은 자칫 꼬마를 마흔이 넘도록 혼자 있게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은 선택의 피조물! 모든 것은 꼬마에게 달렸다!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오라! 자유, 자유인으로 돌아오라!
왕애기가 왕애기 모친을 잠시 떠나 있겠다는 것도 모친과의 건강한 緣을 유지하고자 함이다! 나이에 대한 꼬마 모친의 생각은 이기적인 모친의 틀이다! 맏사위의 나이가 무슨 동생들의 혼인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인가! 벗어나라! 모든 거짓에서 꼬마로 돌아오라!
꼬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얼마 가지 않아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꼬마 모친이 가장 바라는 것은 꼬마의 행복이다!
왕애기가 알고 있는 꼬마는 분명히 건강한 자유인이었다! 꼬마가 왕애기를 아는 것만큼 왕애기도 꼬마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애써 큰소리가 날 상황을 피해온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상처를 입을까봐!
해운대에서 보냈던 편지처럼 떨어져 있어 더 보고 싶다던 꼬마로 돌아오라! 왕애기가 꼬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아는가!
꼬마를 못 본 지 넉 주가 다되어 온다!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그립다! 꼬마가 옷고름을 풀어헤치며 눈부신 가슴을 드러내던 기억에 왕애기 그랜저의 옆자리가 한없이 서늘하다!
설령 그냥 출국하더라도 꼬마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구나! 설령 그냥 출국하더라도 3년, 12년 혼자 있게 된다면 그때라도 돌아오라!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돌아오라!
설령 그냥 출국하더라도 다시는 모친의 테두리에 갇히지 마시라! 후회하기 전에 자유하시라!
설령 그냥 출국하더라도 꼬마의 소식을 듣고 싶구나! 짧은 소식이라도 주시구려!
오오! 슬픈 안녕이구려! 제발 돌아오소서!
1997.3.10. 새벽 3:50
권영탁 드림
부활절 메시지
제가 사랑했었던 이성미님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음이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린도전서 15:20~21)
제가 사랑했었던 성미님은 3월 10일 밤늦은 시각 ○○동 50-8의 201호 문 앞에서 저에게 장송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정신없는 상태로 귀가하며 완전히 멍청이가 된 것도 잠시……. 그래요. 없어져버린 성미님을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왕애기의 명령>을 들고 찾아갔다가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들려온, 거실에서 남동생과 나누는 얘기는 제가 알았던 이성미님이 아니었습니다. 출국하기 전 한 달 만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급한 마음으로 찾아갔던 저는 제가 알았던 이성미님은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만 왕애기로 남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 이후 곧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자신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었습니다. 어떤 경로로든 이렇게 되리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고, 성미님만을 그리워하며 순수와 순결에 이 목숨이 그대로 묻히기를 기원했었습니다. 성미님의 무엇을 알고 있다고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는지 스스로 한심할 뿐이었습니다. 예견한 대로 89세 된 백모께서 13일 노환으로 운명하셨습니다. 또다시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할머니처럼 절 아껴주시던 백모님이 저 세상으로 가신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 편지를 개봉하는 분이 아우이든 어머님이든 읽으셨거든 본인에게도 전달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목숨 다 바쳐서 사랑해도 아까울 것이 없을 줄 알았던 성미님은 저를 향해 ‘그놈’, 동생은 ‘미친놈’하는 소리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뿌리가 너무 다르고 다른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인가 봅니다. 성미님을 만나는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44년 7개월을 살아오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이제야 아스라이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을 뿐이나 무엇 하나 정리된 것이 없고 제가 알았던 이성미님은 이 지상에는 없다는 사실만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건 하찮은 인간들이 벌여놓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부활절 예배를 드리며 죽어버린 성미님의 영혼을 위로하고 성미님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음을 깨우치고 싶었나 봅니다.
저는 죽어버린 성미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죽어버린 성미님을 위해서는 찬양할 아무런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설혹 詩集이 나오더라도 제가 알았던 ‘꼬마’라는 애칭을 가진 성미님이지, 이 지상에 있는 성미님이 아니오니 상관치 마시옵소서. 그런 막말을 들어도 웃으며 성미님을 용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죽어버린 성미님의 부활을 축원하고픈 갈망은 가슴이 저리도록 여전하나 이러고도 인간의 감정이 예전처럼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성미님의 어머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 같군요. 어머님도 佛家의 業을 소중히 여기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격식과 틀 속에 갇혀서 살고 있습니다만 저는 우리 인연이 이런 결과는 아니었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차피 부활하지도 못할 여인이었다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할 일이나 무엇 하나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조물주의 형상대로 빚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여서 神의 경지에 이르도록 사랑했었다는 기억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잘못을 했기에 15년, 17년이나 어린 아우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군요. 오로지 하늘을 향하여 잘못이 있거든 무조건 용서해 달라는 기원을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무슨 연유이건 성미님이 원하는 세계에도 무한한 하늘의 뜻이 있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그래요, 저는 죽기도 잘하지만 대신 부활하기도 잘해요!
제가 왜 다시는 3월 10일 이후 성미님 앞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나를 이해하시길 바라오. 무조건 속 시원하게 잘되었다며 이해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사망은 결국 성미님이 불러옴으로 이리 빨리 편안해졌어요. 스스로 이러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기원했었죠! 다만 ‘1004’니 ‘꼬마’니 하는 애칭들은 다 거두고 싶어요! 제가 사랑했었던 성미 것이에요! 이 지상에 살아남은 성미님은 ‘안젤라’라는 영세명도 어울리지 않아요!
그런 일이 있기 전에는 성미님이 소식도 없이 출국하더라도 두세 달 후 출입국 관리국에서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어 당신이 가장 외로워할 때에 백만 불을 양 주머니에 넣고서 당신 앞에 나타나려 했었어요! 이제 주머니에 들어 있지만 쓸 곳이 없어요. 혼자 꿈을 꾸고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자신인지 몰라요. 저는 원래 어리숭하기도 하고 영악한 것 같으면서도 잘 속아요! 그리고 속아주어요! 성미님이 국내에 있든 국외에 있든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간호사를 시켜서 성미님의 후배라 하고 성미님의 소재를 파악한 적이 없으니 집으로 오는 전화에다 대고 무조건 ‘출국했다’고 거짓을 말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초인종을 누를 수조차 없었던 십여 분 동안 들고 있던 장미 한 송이를 내버리며 들었던 얘기들이었어요! 엿들을 의도는 더더욱 없었사오니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성미님의 여러 모습을 떠올리며 이해하려 노력했었습니다. 부활절의 좋은 메시지가 당신을 정리하게 해서 서두에 인용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형편없는 짓을 일삼는 하찮은 존재들이에요. 제 자신도 마찬가지이며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성미님 스스로 자중자애하는 삶을 사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그리고 몇 차례 지적을 했습니다만 모친으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깨우치십시오. 이것은 아우들도 마찬가지로 느껴졌어요!
새삼 딸아이의 편지가 옆에 있습니다.
“외로워하던 아빠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만든 언니가 글쎄 꿈에 나타난 거 있죠. 시간은 4월 초순이었는데 그 언니를 아빠가 다시 만나는 꿈을 꾸었어요. 저는 보지도 못했는데 이상해요. 진짜 뻥 아니에요. 한동안 아빠가 결혼한다고 그랬을 때 잠시 복잡한 생각을 했다가 곧 뉘우치고, 아빠의 결혼을 정말 기뻐했었는데 일이 꼬여서 정말 안됐어요. 편지로나마 위로해 드리지요. Okay?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8년이나 혼자 지내신 아빠가 불쌍하기도 하고 안되어 보이기도 하고……. The love never ends forever! 파이팅. 아빠! 여기서 기도해 드릴게요! 건강하시고, 병원일도 열심히 하시고 사람도 열심히 찾아보세요! 제가 지켜봐 드릴게요, 이 작은 소망 찬 두 눈으로……. I love you, dad!”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면 당신에 대한 기대가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맨정신으로 당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건 확실해요. 제가 아주 힘들어할 때 재현이가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 있습니다. “성미 누나는 그렇게 그만둘 거라면 몰랐던 것만 못하잖아!”
저와의 인연이 성미님의 앞길에 쌓여지는 커다란 장애의 業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어요. 저는 애당초 업이니, 사주니, 궁합이니, 부모니, 자식이니 다들 관심 밖의 일이었어요. 사랑으로만 살고자 했고 거기에 모든 답이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신과 환자를 보기 전에 이미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미님도 그런 여인으로 제가 착각을 했었나 봅니다. 저는 아직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성미님과의 인간관계는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옵니다. 열심히 사시고 좋은 일 생기길 진심으로 빕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귀여운 아기를 생산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형편없는 상소리보다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겨두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성미님이 부르지 않으면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인연이오니 내내 편안하소서.
안녕!
1997.4.1. 오전 3:15
권영탁
한 여인을 찾아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 4:18~19)
사랑하는 善男善女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회의와 두려움이 연속된다면 이미 사랑할 자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모든 진실된 사랑은 첫사랑입니다. 깨어진 사랑과 깨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설픈 착각으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녀의 상황을 이해해 주어도 깨어진 사랑에는 진실성이 결여되기 마련입니다. 그 어떠한 연유로도 사랑이 깨어져서는 아니 됩니다.
45년 인생에 진실한 사랑으로 한 여인과 함께 축복받은 가정을 이끌어가지 못한 절름발이의 모습입니다. 혼자 살아가는 삶은 자칫하면 왜곡된 인생행로를 보여주기 쉽습니다. 혼자는 너무 외롭고 너무 어렵습니다. 혼자는 무의식에 잠재된 성욕과 폭력을 감당해내기 어렵습니다. 혼자는 여인의 아름다운 가슴과 살내음이 너무 그립습니다. 혼자는 자기 일에서 커다란 은혜와 감동이 있어도 평생 건강하게 이루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한 여인을 사랑하여 재혼해야 한다는 생각은 8년 가까운 세월을 혼자 잠들게 했으나 이제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낍니다. 12년이나 기다려서 다시 사랑한 여인을 떠나보내고 나니 이제는 아무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이런 사랑을 물리치고 얼마나 더 참된 삶을 이어가겠다고 저를 외면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버림받은 삶을 이어가고 있음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혼자 살게 됨으로써 성장하는 아들딸을 힘들게 한 죄, 부모형제까지 힘들게 한 죄, 아무리 깨끗한 순결의 삶과 신앙생활을 동경해도 스스로 허물어지는 가련한 인생, 사십 평생 의사로서의 보람과 감동도 함께 나눌 여인이 없음으로 인한 설움에 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인생을 그토록 피하고 싶었지만, 사랑은 조물주의 축복과 인간의 겸손이 어우러져야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오전 근무만 하며 일을 후배에게 맡기고 스스로 태업중입니다만 갈 곳이 없습니다. 여유로움을 가져보려 하지만 사랑하는 한 여인이 없다는 사실은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 나이에 스킨스쿠버를 배우며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해 보았지만 한 여인도 없는 삶이기에 황량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아름다움에 너무 많은 예찬을 벌인 벌을 더 받아야 합니까? 당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으셨나요?
제게 남은 인생이 그렇게 길지는 않을 듯한 이제, 그 삶을 함께할 사랑하는 한 여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리고 단련 받아야 합니까? 아직 멀었습니까? 이제 그만 돌려주소서. 이제 그만 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한 여인을 사랑하다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인생이 44년 9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니 모든 게 허물어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직도 멀었다면 더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게는 마시옵소서. 한 남자로 살고 싶습니다.
한 남자로, 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한 여인이 항시 곁에 있는 삶입니다. 한 여인을 찾는 삶이 너무 깁니다만 혼자서는 어떻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축복을 기다릴 뿐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1997.5.
에필로그
몇 가지 질문과 부탁 말씀
이루지 못한 슬픈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춘기부터 시작된 이성을 향한 기대와 그리움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9년의 결혼생활도 해봤고 그 후 8년 동안 지긋지긋한 독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 생활 17년째를 보내는, 45년 살아온 처절한 인생입니다.
크게 보았을 때 남녀의 근원적인 차이점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남성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능동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이 조금 더 있다는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즉 어떤 형태로든 성적 충동의 계기가 있어야 남성 성기가 발기되는 능동성이 요구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고 정신적인 면도 그 정도쯤 능동적입니다. 여성은 굳이 신체 구조적으로 비교하자면 다분히 수동성이 있고 정신적인 면도 그 정도쯤 수동적입니다.
흔히 성적인 문제는 남자가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폭력이 동반된 범죄를 제외하면 결정권은 여성에게 더 많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전개되었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각 개인의 성격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으나 대체로 본 차이점입니다. 토론보다는 제 생각을 얘기하고 다른 견해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견해가 다르더라도 인신공격성 질문이나 표현은 애써 피할 예정이오니 양해하시고 너그러이 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편지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혼인빙자 간음죄는 분명히 남녀간의 불평등 법률입니다.
그 법률이 존재하는 한 누군가 헌법소원을 내어서 고쳐야할 법입니다. 그런 법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점을 제쳐 두면 그렇습니다.
사건의 전개를 보시면 처음엔 그녀를 데려오고 싶어서 제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더라도 목적이 분명하고 좋으니 잘못된 법을 고칠 겸 그리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에게 강간당했다는 배반감이 앞설 때는 실제로 감옥으로 보내고 싶어서 해보고 싶었으나 목적이 좋지 않아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2.솔직히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인간관계가 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무한한 축복과 환희, 새생명이란 제 생각이 무참히 짓밟힌 느낌입니다. 특히 오늘날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받은 교육과 자녀들에 대한 교육은 항상 같았을 텐데, 서로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을 향한 막된 표현이 가능한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헤어져야 했던 뚜렷한 이유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나 그로 인해서 이렇게 빨리 감정이 정리되는 자신의 꼴이 얼마나 싫은지…….
3.모친의 연세가 예순아홉이신데 대단히 건강하십니다.
현재도 소나타를 몰고 생생 달릴 정도로 신세대 할머니이나 무척 외로워하세요. 이번 일을 겪으며 장가가는 데에 잡음이 없으려면 혼자 따로 있어야함을 알았어요.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있기를 원하니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큰 불효인가요? 병원에서 상담할 때는 경제력이 있으면 당연히 따로 살라고 합니다.
22년 전 과부가 되셨고 주변을 많이 의식하십니다. 형님과 아우는 모친과 같이 살려고 하지를 않고 모친도 그렇습니다. 강하신 모친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래요.
16년 모셔온 모친 곁을 저도 떠나 있고 싶어졌어요! 모친도 말로는 제가 새장가 들면 따로 살 것이라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라요. 이번에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만일 같이 살다가 나중에 여자 생겼다고 따로 분가하자는 얘기를 꺼낸다면 새로이 나타날 여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아요.
딸은 밴쿠버에 나간 지 2년이고, 아들은 금년 5월에 나갔습니다. 현재는 모친과 일하는 아주머님이 함께 있습니다. 저는 의사가 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했으며 모친과 부딪힐 일도 별로 없었어요.
이 문제는 여성분들이 많은 답을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4.부탁 말씀
장가가야 하는데 재주가 없어요. 혼자는 못살겠고 죽을 맛이에요! 왕자암 말기 증세가 있어서 다 죽어가요.
아무리 착시현상이더라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요. 유치하지만 좋아하는 유형이 있어요. 165~171cm, 55kg 이하, 35세 이하 – 저는 175cm, 62kg, 45세입니다.
이쯤이면 저보고 돌았다고 하는데 억지로는 아무것도 안 되니 방법이 없어요. 너무 야단치지 마시고 도와주세요. 냄새나는 독신을 빨리 면하고 싶어요.
만 40세가 지난 93년에 출판한 자전적 수필집이 있어요. 현재 서점엔 없는 책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예요. 부분적으로 독후감을 보내면 성의껏 답을 보낼게요!
자랑 같은 얘기는 [정신분열병을 이겨낸 사람들]이란 책이 또 있어요. 1991년 초판이고, 큰 서점의 건강코너에 있어요. 없으면 종로서적이 총판을 맡았음으로 종로서적에 연락하면 틀림없이 있어요. 환자들에게는 빛과 같은 책입니다. 오십 명의 정신분열병 환자들의 이야기죠. 1995년 9월 ‘도서출판 건생’에서 3판을 내었어요.
많은 호응을 기대하면서 깊은 밤 편히 주무시옵소서.
독자들의 앞길에도 사랑하는 연인의 그림을 모두 그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 부
사랑을 위하여
첫댓글 선생님 이글을 오늘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너무나 공감이 가고 선생님이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사랑을 해보신 분이서아마도 더욱 환우들을 생각하는 부분이 남다른것 같습니다.아주 오래전일이었을텐데 지금은 아주 핸복하게 사랑하는 여인과 살고 있음이 눈에 선하네요. 저역시 남녀간에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생애를 통해서 느꼈지요. 이이들에게도 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기슴아프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참 순수한 분이구나, 열정이 대단하시다는걸 느낍니다. 그 순수와 열정이 있어서 스스로 고령이라고 하시는 연세에도 환자들을 뜨겁게 보살피는군요.
가슴 절절이 느껴지는 사랑에 슬프고 마음 아프지만 그 뜨거웠던 사랑을, 열정을, 환우들에게 쏟아 붓는 지금이 저는 참으로 고맙게 느껴집니다. 많은 환우들이, 또 제 아들이 원장님으로 인하여 나을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니까요.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지금 시대는 68세면 고령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