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6일 토요일 두짼날 흐리면서 비가종일왔음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다른팀들이 어젯밤 일찍이 잠을 청하던이만
갈길이 바쁘다고 일찍부산을 떨며,비박장비들을 치우며 거두는 소리가 우리팀을 깨운것이다.
우리의 동료들을 보니 새벽녁에 잠든 나의 자연의 소리가(코골이) 그들을 괴롭힌 모양이다.
고콜이를 화두 삼아 한바탕 웃으대며 아침을 준비한다.
잽싸게 모두들 베낭을 꾸리면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응시하며 하늘을 쳐다본다.
오다 말겠지하면서 말이다.그러나 출발할때쯤 빗방울이 거세어졌다.
조계주회장이 비상용으로 준비해주었던 일회용 비옷을 꺼내어 베낭을 감싸면서 우중산행을 시작했다.식사후 가파른 길을 걷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숨을 헬떡이며 명선봉을 올라챈다.
아침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산행을 시작하여 명선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개스에 가려 주위가 보이지않았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걸음걸이에 탄력이 붙어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선봉에서 연하천산장으로 가는 내림길은,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등산하기에 편리하였지만 계단길은 매우 피곤하게 한다.특히 관절이 좋지않은 사람은 매우 고역스런 곳이다.
옛날 등산로위로 설치한 계단은 등산로가 허물어지고 훼손됨을 방지하기위해 설치했겠지만 그것또한 자연과 어울리지 못한 설치물일 뿐이다.
미끄러운 작은협곡을 벗어나니 연하천 산장이다.
한반도 백두대간중 음기가 세기로 유명한곳이다. 대개 습한곳이면 음기로 통한곳 같다.뱀사골산장도 마찬가지로 음기가 세다고 하는데 남자들이 기가 세다고 하는곳에서 운명을 달리하는 것 보면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듯 하다.
지리산 능선상의 명선봉(1,586m)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연하천산장은 첩첩산중의 고도 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 산장만이 바로 연결되는 하산 또는 등정코스가 없고, 동쪽의 벽소령이나 서쪽의 토끼봉까지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와운 마을로 떨어지는 코스가 있지만, 안내자 없는 단독산행은 절대 금물이다.
후미를 생각하여 기다리기로 하였다.바삐 걷다보니 너무 빨리 도착한것이다.
연하천은 한자로 '烟霞泉'으로 표기하는데, 자연속의 정취어린샘(泉)이란 뜻이다. 연하천산장은 지리산 종주산행에 지친 등산객들의 심신을 고루는 정다운 쉼터다. 항상 맑은옥수가 흐르고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감도는 운치는 최고라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연하천 산장 주위에는 주목나무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등산로 주변에 철조망으로 경계를 해 놓았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음식물 찌꺼기며 인간의 잔재물들이 여기저기 어지러이 널려있는 것은 누구를 탓하랴. 자기것은 자기가 가져가면 뒷사람에게 깨끗함과 산장의 아름다움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을것인데, 자연보호 한답시고 목청 돋구지는 말고, 그냥 내물건 가지고 내려가면 그것이 자연보호인 것을…
오랜만에 관리인을 찾아보기로 했다.인사도 드릴 겸 산장을 들어서니 왠 털보영감이 떡허고 서 계신다..많은 해외 등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노시철씨다.반갑게 당귀차 한잔을 권하면서 손을 맞잡는다. 짧은 시간동안 담소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길을 나선다.
노시철씨 남원에서 거주하며 전북산악구조대 대원이다.
일행이 모두 도착하였다. 일행중 여성한분이 비를 쫄딱맞고 서있다.
꽁지빠진 닭구지 모양 짠해 보인다.다음에 산에 올때는 꼭 만반 준비해서 산에 오게나.
“이곳에서 양치질은 벌금얼마” 표지가 붙은곳으로 치약을 묻힌 치솔을 들고 가는 일행중 한사람을 쳐다보면서 내려가서 닥으면 될것이지 읍조리며 빗방울을 맞으면서 먼저 숲속으로 사라진다.
연하천산장은 행정구역상 전북 남원시이다.
총각샘(00:00출발)-명선봉-연하천산장(00:00도착/3km/50분)
벽소령을 향한 길은 만만치가 않다.오르 내리기을 한참동안 해도 하늘은 걷히지 않고 어딘지 분간을 할수 없다.바람에 운무가 휩쓸려 건너편 봉우리를 휘감아 돌아 빠져 나가면서 장관을 연출 한다.썩을놈의 비는 계속 뿌려댄다.뒤에서 헐레벌떡 바싹 쫓아오는 소리에 돌아보니 자판기 사장님이다.샌달을 신고 고생이 많을것이다. 부지런히 잘도 산행을 하신다.
형제봉을 지나치면서 산행의 즐거움을 잊어버린 것 같다.
앞사람 넓떡치 기억나는 산행은 하지않을려고 하지만, 막상 산행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세 넓떡치만 쳐다보고 산행하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할 뿐이다.타이즈 입은 아가씨 방구판은 곡선이 아름답기 그지없구나.아침 옆집에 팀원들중 한여성이 당당하게 딱 달라붙은 타이즈를 입은 것을 보았는데 그여성이 바로 앞에 가고 있었던 것이다.누구를 위해 저라고 건강한 몸을 만들고 있다냐.거~참 방구판 한번 튼튼하게 생겼구먼. 애기도 잘도 낳것다.
하늘이 빵꾸 난나.비는 더욱 거세진다.몸도 식어가고 발도 피곤해진다.
아름다운 경치는 간데없고 지루함만 더하는구나.
숲속을 벗어나니 벽소령 산장이다.
연하천산장(00:00출발-삼각고지-형제봉-벽소령(00:00 도착/6km/2시간)
세상에나 웬사람이 이렇게 모여들었지.변소깐앞에는 두줄로 겁나게 줄서있고 내금새는 코를 찌른다.
그~유명한 벽소명월의 운치는 어디가고 찌렁내만 날리느가.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km의 지리산 종주코스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고도가 가장 낮은 고개로 옛날부터 화개골과 마천골을 연결하였고, 지금은 북쪽의 마천(음정)에서 남쪽의 화개(삼정)를 연결하는 횡단도로이나 차량통행은 되지 않는다.
벽소령산장은 4층의 현대식 건축인 통나무집을 지어 많은 등산객들이 묵어가고 있다.
제일 아랫층은 취사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나머지층은 관리원들의 숙소로 쓰이고 등산객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다.
예약자는 산장을 이용할수 있으며, 예약하지 않으면 음정으로 하산을 종용하는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음정 4시간30분정도 소요)뭐~소방법 위반이라나.
관리는 관리공단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몇가지 과자와 컵라면(개당1,500원)을 주로 팔고 있으며 술은 절대판매하지 않는다.
베낭을 벗어 말뚝에 기대놓고 산장처마 밑에서 비를 피해본다.
자판기아저씨와 영철이가 도착하여 비를 피하러 들어온다.많은 인파로 인하여 휴식도 여의치 못하다.징하게 새끼들 퍼 많이 나 같고 이런 깊은산속 까지 발에 걸리적 거리는가.
간이화장실앞에 서있는 긴줄은 퍼 쌀라고 서있는줄인가.적당히 퍼먹고 다녀야지.
내금새가 진동을 하며 금수강산 망치고 있다.하루빨리 휴대용 변기통을 강제해야 할텐데,
차례가 된 외국인2명이 벤소문짝을 열더니만 고개를 뒤로 저으며 포기하고 만다.
그러면 그렇제 느그들이 조선넘똥냄새 맞고 참는다면 인간이 아니제.
느그들이 6.25때 인민군보다 더무서운 것이 밭에 거름할라고 파놓은 똥통이라 했었지.
거기에 빠진넘은 바로 이냄새지.
영철이에게 컵라면한개를 선사받고 취사장으로 이동하여 몸을 녹여본다.영철이가 미니쇠주병을 꺼내어 한모금씩 나누고 뜨거운 국물을 안주삼아 조금씩 나누어 먹으니 살 것 같다.
얼릉 먹고 안먹은 것 같이 하고 있었다..영철아 고맙다이.윤성이 그리고 몇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면서 비를 맞으며 대책회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악천후로 하산한다면 쇠주에 삼겹살을 실컷 생각하며, 즐거운 기다림으로 서있으니 일정대로 출발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느그들이 포기할넘들이 아니지. 이영감탱이 죽일라고 작정할넘들.
그래 가보자. 오늘 저녁부터 느그들이 술을 주면 내가 먹나봐라.
벽소 명월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옛날 벌목때 만들어진 임도라 하기도 하고 빨치산 잔당들을 소탕하기위해 만든길이라 하는 넚은길을 따라서 걷는다. 등산로 주위에는 많은 이름모를 야생화가 우리 일행을 반긴다.금방 무너질 것 같은 암반을 뒤로하고, 벼랑끝에 서있는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신기해 하며 걸어가는데,순식간에 그름이 걷힌다. 비가 갠것이다.남쪽 삼정방향에서 북쪽 음정으로 세차게 바람에 실려 비구름이 이동한다.간간이 비구름사이로 언뜻 보이는 건너편 산기슭은 신선들이 노니는듯한 봉우리와, 구름이, 바람과 함께한 경치였다.제법 멀리 하동까지 보인다.
벽소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된 기분이며, 산이 낮고 구름이 주위를 뒤덮고 있어 그런 그낌을 받는다. 벽소령의 유래도 달밤이면 푸른 숲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푸를벽(碧)을, 써서 벽소령이라 한다. 벽소령의 명월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이다. 형정구역은 경남 하동군과 함양군의 경계지역이다.
벽소령이 끝나는 지점에 길 입구는 희미하지만, 좁은입구에 비해 몇 걸음만 숲속으로 들어서면 오솔길이 넓고 분명하게 잘 다져져있다. 산죽이 적당하게 나지막한 키로 밀생하고 있고, 부드러운 길바닥이 마치 양탄자를 밟고 가는 느낌이 든다. 너무 부드러운 길은 경사를 거의 느낄수 없게 하는데, 실제로 이곳 일대가 이상할 정도로 평평하다.
덕평봉이란 이름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며, 지난날엔 덕평 마을이 자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비 샘까지는 완만한 오르내림길이 반복된다. 서울에서 왔다는 아짐씨들과 산행의 즐거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선비샘에 도착하였다.
선비샘은 수량이 매우 풍부하다.덕평봉에서 넘어오는 사람과 넘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식수를 충분히 공급하고 남은량의 옥수가 흐른다.
많은 등산객들이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지나간다.
18년전 나도 이곳에서 한숨 자고 넘어간 기억이 난다.
야영의 흔적과, 쓰레기로 가득 찼던 이곳이 깨끗이 정리되고 샘터가 현재는 서서 물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있었다고 한다.
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게 하여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끔 하였다고 한다. 생전에 갖은 고생과 천대 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실제로 십 여년전 까지만 해도 실현되고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 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로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내~기억으론 앉아서 물을 받은 것 같은데 ……
우리 일행은 세석까지 먹을 식수를 채워 또다시 출발한다.
빗줄기가 간간이 뿌리고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덕평봉(德坪峰1,651m)은 지리산 능선상에 있는 준봉이다. 덕평봉 보다는 선비샘을 종주 산행 코스의 통과 지점으로 이용하고 있을뿐이다.
선비샘은 종주산행의 주요한 지점(지정취사지역)으로 야영장이 있고, 식수가있고, 취사를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도 아래 의신마을을 깃점으로 등산코스를 개발하려는 팀들이 있다.새로운 코스가 개발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일 산행으로 즐거움을 만끽할지 모르지만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황폐화 된다고 생각해 보자 끔직한 일이다.
힘이 들겠지만 종주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보존되었음은 좋겠다.
덕평봉에서 칠선봉은 바위틈으로 곡예를 하듯이 오르내림길이 계속되다가 로프와 잘 만들어진 계단에 의지해서 올라야한다.
과거 이길을 선배한분이 다리에 쥐가나서 베낭을 내가 지고 갔던 기억이 났다.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어찌나 길이 험악하던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길은 결국 나를 쓸어지게 만들었다. 지친몸에 쇠주 한잔은 약이 되지 못하고 더욱 힘들게 했던 그산행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고통을 잊지못해 다시는 찾지 않을거라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나는 다시가고 있다. “처녀가 시집안간다” 와 “산꾼이 다시는 산에 안간다” 쌍벽을 이루는 거짓말이다.
덕평봉을 언제 지나쳤는지 모르겠다.비는 다시 굵어지고 있었고 베낭은 비에 젖어 무거워진다. 구름에 가려 어느봉우리가 정상인지 구분이 안간다. 해발 1,576m의 칠선봉은 작은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 위에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비경의 암봉들은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더 해준다.
덕평봉도 지나고 칠선봉으로가다 뒤돌와본 뒷모습은. 짙은 안개로 인하여 조망이 잘보이지 않는다.
잠시 시야가 걷히고 발아래 운무가 춤을 추며 산허리를 감아돈다.
비스켓을 깨물고 물한모금 축이며 숨을 죽이고, 위치를 확인하나 도저히 감이 잡히지않는다.남쪽방향으로 덕평봉과 칠선봉사이 길게 뻗은 계곡은 작은새골이며,칠선봉과 영신봉사이의 계곡은 큰새골이다.
큰새골 코스는 안내자 없이는 산행이 어려운 코스다.
권환,윤성,승옥,그리고 나, 4명이서 몇 년전 초겨울에 얼마나 즐겁게 등반을 하였는지, 두고두고 회자 하면서 큰새골 코스를 자랑하고 있다.특히 영신봉 아래 무당바위 넓은터에서 막영준비를 하다 노고단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조화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비에 무당들이 기를 쓰고 기를 받을려고 하는모양이다.
달걀모양 큰 돌덩이가 수북히 쌓여있는 제단앞에 텐트를 설치하고 서너번의 술잔이 돌아갈 즈음 귀신얘기는 항상해도 재미있는 이야기거리, 들었던 귀신얘기는 죄다 얘기하였다.
밤은 깊어가고 전부 잠들었는데 오짐은 마려운데 텐트밖으로 나가지는못하고 오짐보터지기전 새벽녁에 동지들과 오짐싸러 간~얘기…….
영신봉(靈神峰)1,652m 대성동계곡에서 출발하여 철골 다리를 건너가면 세석산장으로 올라가고 철다리 건너기전 왼쪽으로 올라가면 새개골로 올라간다.어느쪽이던 영신봉을 만나게 되어 있다.
큰새골 코스는 지도에 없기 때문에 안내자 없으면 등반이 힘들다.그만큼 길을 찾기가 힘들며 지형을 보고 대충 계속 올라야 한다.중간에 제법 큰폭포 여러 개의 작은소로 어우러져 지루함은 없다.길을 잃을 염려로 긴장감은 계속되며, 계곡 마지막에서 오른쪽 안부로 올라서야 한다. 40분정도 오르면 무당터(야영지)에 한시간정도 오르면 영신봉이다.
밤이 무서운 남자,여자는 영신봉에 앉아 기를 받으면 변강쇠와 옹녀가 된다는말은 내가했다.
칠선봉을 벗어나 영신봉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은 죽여주는 계단이다.
젖먹던힘까지 다해 오르는 나에게 장대비가 얼굴을 때린다..
허기도 함께 밀려온다.영신봉이 다온 것 같은데 왜이리 멀지.
판기아저씨와 권환이, 영철이, 윤성이는 먼저 앞서보낸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무밑에 잠시멈춰 비를 맞은채로 간식을 꺼낸다.
먹어야 산다.한참동안 줏어먹고나니 조금 살 것 같다.
벽소령산장에서 영철이가 사준 컵라면 아니었으면 진즉 퍼졌을 것이다.나이는 밥이 힘이여.
어렵게 고개를 깔딱깔딱 채고나니 영신봉옆을 지나고 있다.
등산로는 상당히 패여있다. 비구름사이로 멀리 세석산장이 보인다.”세석산장 0.6Km” 이정표에 힘을 얻어 발걸음을 빨리해보지만 천근만근이다.
산장건물의 많은 인파를 보며,취사장에 들어서니 아~이고메 발디딜틈이 없네.한쪽으로 베낭을 벗어놓고 안쪽에 삐집고 들어간 권환이를 확인하고, 윤성이가 코펠을 힘겹게 꺼냈다.비를 쫄딱맞어 무지피곤한 모습이다. 너는 좀 쉬거라. 코펠과 수통몇개를 들고 샘을 향하였다.
금새 불을 피고 라면이 끓기 시작 하였다.영철이가 힘겹게 가져온 쇠주뚜껑이 열리고 먼저도착한 우리가 식사를 하였다.적은량이지만 몇배의 잔이돌고 몸에 온기도 돈다.
금방 또 라면을 끓인다.그동안 갈고 닦은 권환이 솜씨가 대단하다.
후미는 어디쯤 왔을까 계주와 전사차림의 아가씨걱정도 잠시, 일행이 도착하였다.
권환이 손놀림이 바빠진다.늦게 도착한 것 뿐이지 힘들게 보이진 않는다.다행이다.
지금의 취사장은 예전에 산장이다.이산장도 손때가 묻은곳인데 새건물이 들어서 취사장으로 전락했지만 산꾼들의 쉼터였다.
세석평전은 신라때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이용되었고,
6.25때에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된 슬픈역사의 현장 이기도 하다.
세석평전의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고 아름다운 이유는 자녀를 갖지 못한 연진 여인의 넋이 깃들어 있는 전설과 세석평전 음양수에도 슬픈전설이 담겨져 있다.아득한 옛날 지리산에 제일 먼제 들어온 호야와 연진은 대성 계곡에서 한 쌍의 원앙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자녀를 갖지 못했다. 어느날 남편이 산열매를 따러 간 사이 곰이 연진 여인에게 세석 고원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아들, 딸을 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연진 여인은 곧장 음양수로 달려가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 사이 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랑이가 이를 지리산 산신령에게 고해 바쳤다. 지리산 산신령은 크게 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게 했다. 또 음양수 샘물을 훔쳐 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이 내려 평생토록 평전의 돌 밭에서 외로이 철쭉을 가꾸게 하였다.
연진 여인은 슬픔에 젖에 흘러 내리는 눈물과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 까지나 꽃밭을 가꾸었다. 철쭉꽃잎마다 여인의 슬픈 넋이 서려있어 가련하게 피고 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 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으며,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바로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지고 있다.
행정구역은 경남 하동군과 함양군이다.
비는 세차게 뿌리고 더 이상 산행은 힘들다고 판단되어 한신계곡을 지나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결정 하였다.역시 회장과 동지들은 앞을 내다본 결정이었다.
이대로 촛대봉,연화봉,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황봉,중봉,하봉,치밭목산장까지 강행한다면 우리일행중 분명히 탈영병이 생겼을 것이다.
참 잘했다.늦었지만 훌륭한 결정이었다.너희들의 결정은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다.
벽소령에서 하산을 결정했다면 지금쯤 쇠주에 흥겨워 하고 있을 것을. 그래도 잘했다!
징~한넘들아.
조계주 회장 만세!!!!
아쉽기도 하였지만 천황봉등반은 다음을 기약하고,꾸역꾸역 짐을 챙겨 빗방울이 잠시 멈춘사이 한신계곡으로 접어든다.
멀리 촛대봉이 얼굴을 내밀며 오늘도 빌고있을 연진여인의 울음소리가 바람결에 스쳐 지나간다.
어린애를 동반한 가족이 어렵게 내려가고 있다.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얘들이 잘도 내려가고 있다.옆에서는 근심스런 얼굴로 바라보고있는 아빠 됨직한분이 쳐다보고 있다.
한신은 이순신 장군 동생이라고 우리일행중 한사람이 그랬다.
가만히 생각해보닌까 그것도 맞는소리같다. 저~친구들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그럼 이한신인가.
한신계곡(韓信溪谷)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 있는 계곡.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 한신이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한신장군과 얽힌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이 계곡은 중간에서 한신주곡과 한신지곡으로 크게 두 갈래 지는데. 세석평전으로 곧장 이어진 계곡이 한신주곡(우리가 내려가는길), 장터목으로 이어진 계곡이 한신지곡이다. 이중 장터목쪽의 한신지곡은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며 지금도 입산금지다.
언제인가 겨울에 장터목에서 관리인 모르게 한신지곡으로 하산한 기억이난다.
시계도 없어 몇시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내려왔는데 아직 주곡과 지곡이 만나는 지점이 나오지 않는다.
권환,윤성,영철,동신대 강사,그리고 나,줄기차게 내려간다.
어느새 철다리 두개를 지나고 건폭을 지나고 있다.지도에는 나와있지 않는다.겨울에만 생기는 빙폭이다.한동안 이곳에서 젊음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막영했던 장소를 보니 을씨년 스럽다.전주개척산악회를 처음알게 되었던 장소 이기도 하고 유달산악회가 이곳에서 처음 빙벽을 하게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그때 뒈지게 뚜드러맞은 악우들은 지금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철다리가 조금위쪽으로 나무다리로 바뀌어 있다.
온몸으로 흔들어대며 뒤로 따라오는 여자회원들을 놀려주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머리에 백발이 무성하구나.
비는 멈추었다.
느티나무집에 도착하여 주인 아짐씨의 배려로 평상을 두개 맞대어 천막을 두른방(?)을 잡았다. 6만원 이란다.할수 있나 여기도 한철장사 하여 일년먹고 살것인데 방잡으러 헤메는것보단 낱다.짐을 풀고 얼릉 목욕까지 끝내고 일행을 기다린다.
한참후에 한사람씩 도착하여 모두도착 하였다.주인 아짐에게 닭 세마리를 목욕을 끝낼시간에 맞추어 내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자리를 잡으니 제법 그럴싸하다.안주로 꽁치통조림에 묵은김치를 넣어, 아껴먹을 걱정하지않아도 될 쇠주를 그윽히 한잔씩 따르고 안전산행을 도와준 지리산 산신에게 기도하고 하늘높이 잔을들어 건배와 함께 숨을 들이킨다.
이박삼일치 먹을것 지고 오니라고 얼마나 힘들었는가.어~이 젊은이들 고생했네.내 술한잔 받으소. 다음에는 나도 짐 많이 지고 올 터이니 산행에 꼭 끼워주소들.
샌달신고 고생한 판기아저씨 큰베낭메고 거기다 술 많이 담아오시오. 자!한잔,
묵묵히 산행하신 철물점 사장 한잔,
의외로 체력이 대단한 동신대 컴퓨터 강사님한잔,
아무 생각없이 따라와서 끄니때마다 남자들이 해준밥 한번도 안빼먹고 다먹은 철녀,
업지면 허리살 다보이는 아가씨 한잔, 내가 꼭 신용불량자에게 중매 스리다.
출발할때부터 짐을 몽창진 총무겸 조계주회장 한잔,
화엄사부터 출발하여 팀원들 간담을 서늘케한 권환이 한잔,
화엄사부터 권환이 따라 오니라고 혼났는데 노고산장에서 계주짐을 재분배할 때 무거운 고기만 총각샘까지 지고온 윤성이 한잔,
우리의 막뚱이! 산행중 취사하다 걸리면, 얼굴 잘생긴넘이 영창가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밀어준 영철이, 내가 준다는 베낭에 먹을 것 사정없이 지고 만나세. 가득히 쇠주한잔 받게나.
시간은 무르익고 지리산의 밤은 흘러가고 취기는 더하는구나.
구례의 한 미모의 여인이 비록 집안 살림은 가난하나, 부녀자로서의 도리가 극진하여, 어떤왕이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듣고 내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여인은 “지리산가” 를 지어 죽음을 맹세하고, 청을 거절한 아름다운 지리산의 여인의 전설을 생각하면서,
어~이세! 영철이 술한잔 따르게나.
만원만, 준비해서 자네 따라가면 해결되는가? 꼭 약속 지키소.
모두들 잠들어 떨어진밤 으슥있다 눈을 떳다.내혼자 반대편으로 잤는데,윤성이가 같은 방향으로 자고 있다.그런데 잠자리도 뺏끼고 칼잠을 자고 있다.
사연을 들어본즉 “쿠~웅”소리가 났는데 일어나 가보니 맨 끄트머리에 자고 있던 영철이가 바닥으로 침낭째 떨어졌는데 침낭속에서 그대로 자고 있더란다. 그옆에서 코골며자고 있던 학생들도 그소리에 놀라 더욱 조용해지고,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서 낑낑 거리며 있는힘을 다했지만 실패하고 증거를 만들기 위해 00 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00 이 하는말 “냅~둬버려”하고 자더란다.
그래서 혼자 죽을힘을 다해 올려놨는데, 비어있는 00 이 자리로 가서 벌러덩 누워 버려,
비키라는 얘기도 못하고 멀거니 있다가, 사람구해주고, 자리뺏끼고, 하는수 없이 끼워서 칼잠으로 자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리산의 추억이 또하나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산행에 즐거운 소잿거리가 될것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백무동계곡의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17일 세짼날 치밭목산장에서 아침을 맞이 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구나
동지들 다음에 산에서 만나세.
2003.8.26. 여취 씀.
첫댓글 ^^ 선배님..언제 같이 산행할 기회가 왔음 좋겠습니다. 산야제때 뵙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