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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를 활용한 도시의 공간계획 4.
-비보를 활용한 공간계획-
풍수의 목적은 생기 가득한 장소를 구하는 것이나, 그러한 조건을 갖춘 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적인 땅을 풍수적 최적의 땅으로 바꾸어 주는 기법이 필요한데 이를 풍수에서는 비보라고 한다. 비보는 크게 협의의 비보법과 압승법(壓勝法)으로 구성되는데, 비보는 보(補), 보허(補虛), 배보(培補)라고도 하며, 압승은 염승(厭勝)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비보는 지리환경의 부족한 조건을 더하는 원리이고 압승은 지리환경의 과(過)한 여건을 빼고 누르는 원리이다. 또한 풍수 비보는 기능상으로 용맥비보, 장풍비보, 득수비보, 형국비보, 흉상차폐, 화기방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최원석, 2002).
녹색도시의 개념은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가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함에 따라 각종 에너지와 자원을 저감하여 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녹지와 그린네트워크 등을 확충하여 탄소 흡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풍수논리와 비교하면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방법이 압승에, 그리고 탄소 흡수를 높이는 방법이 비보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각종 계획 요소들은 산업화에 따른 화석 연료의 사용을 억제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는 분야와 관련이 깊어 풍수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에서 거리가 멀다. 따라서 풍수논리와 관련성이 많은 것은 탄소 흡수를 높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탄소중립도시 조성을 위한 각종 계획 요소들을 탄소 억제와 탄소 흡수로 분류한 대표적인 연구에 반영운 등(2008)이 있다. 반영운 등(2008)은 한국 상황에 적합한 탄소 중립도시 계획요소 27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중 풍수 비보와 성격이 동일한 탄소흡수 계획요소 15개를 정리하면 <표 5>와 같다. 그리고 이를 풍수 비보의 기능상 종류에 따라 분류하여 4개 요소로 정리하면 <표 6>과 같다.
용맥 비보를 활용한 공간계획
(생태통로-Wildlife passage)
생태통로(생태 이동통로,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도로 및 철도 등에 의하여 단절된 생태계의 연결 및 야생동물의 이동을 위한 인공구조물로서, 야생동물이 노면을 거치지 않고 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조성하며 일반적으로 육교형(overpass)과 터널형(underpass)으로 구분된다. 생태통로는 그 목적이 생태계의 연결과 야생동물의 이동에 있지만, 풍수의 관점에서 단절된 용맥을 이어주는 비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풍수에서는 땅의 생기가 산줄기를 따라 흐른다고 보기 때문에, 도시 개발 또한 자연지형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도시 개발 과정에는 도로 개설 등으로 산줄기를 훼손해야 하는 경우가 불가피하다.
터널형 생태통로는 포유류와 더불어 양서․파충류 이동이 목적이기 때문에 통상 도로 하부 수로와 연결하여 조성된다. 반면 육교형 생태통로는 도로에 의해 산줄기가 단절된 곳에 설치됨으로 풍수의 용맥 비보와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생태통로와 풍수적 관련성이 어느 정도 인식되고 있는데, 경관적 연결을 목적으로 하는 생태통로가 그 사례이다.
경관적 연결을 목적으로 하는 생태통로는 공간적 확보가 중요한 구간, 도로에 의한 능선부 절개로 훼손된 경관 또는 풍수적 가치 제고가 필요한 구간에 조성한다. 그래서 경관적 연결을 위한 생태통로는 일반적인 육교형 생태통로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게 조성되며, 주변 지형과의 자연스런 연결을 위해 성토를 많이 한다(환경부, 2010).
한편 도시 개발과정에서 도로를 개설할 경우에는 통상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를 단절하게 된다. 이 지점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풍수에서 과협이라 지칭하며, 계곡 좌우에서 많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따라서 차량 불빛과 소음을 줄이기 위해 통로 양편에 설치하는 차단벽이 강풍에 견딜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한다.
장풍 비보를 활용한 공간계획(바람길)
녹색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자연의 섭리를 활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기후를 활용하는 방법이며, 가장 먼저 활용할 수 있는 기후현상은 바람이다. 풍수라는 의미 자체에서 보듯이, 풍수에서도 바람은 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그러나 전통 풍수에서는 기본적으로 바람을 막는다는 방풍(防風)의 개념이 강했다. 과학기술이 미발달했던 과거에는 여름철의 더위보다 겨울 북풍이 조상들의 생존에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현대 도시는 지구 온난화와 도시 내부의 토양 피복 등의 영향으로 겨울 북풍보다 여름철 열섬현상(heat island effect)에 더욱 민감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 풍수에서의 장풍 개념이 일부 수정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지칭하는 장풍국(藏風局)은‘생기’를 잘 보전한다고 여겨지는 반면 공기의 유통이 원활하지 않아 열섬현상 등의 문제가 가중될 수 있다(천인호, 2011). 따라서 현대 도시에서는 무조건적인 방풍의 개념보다 신선한 바람을 받아들이는 방법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바람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자연 지형과 연계하여 건물의 배치와 높이를 조절함으로써 바람길을 확보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있으며, 바람의 힘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양병이, 2013).
이 중 전자(前者)에서 풍수 비보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바람길 조성과 풍수 비보의 관련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도시 내부 물순환체계와 연계하여 바람길을 계획하는 것이다. 도시 내부의 자연 하천은 차고 신선한 공기의 이동 통로가 된다. 단 하천의 폭과 길이가 각각 50미터, 최소 1km로서 바람길의 설계기준(송영배, 2007)을 만족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녹지체계, 즉 도시 내․외부의 산줄기들과 연계한 바람길을 계획하는 것이다. 도시 내부와 주변 녹지 사이에 충분한 오픈스페이스를 두어 비탈면을 따라 도시 내부까지 차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나 경사지 개발이 불가피할 경우, <그림 5>와 같이 건축물들의 긴 변(또는 축)을 바람길의 진행방향과 평행하게 배치해야 한다.
한편 풍수적 배산임수(背山臨水) 개념에서 보면, <그림 6>의 백호 능선에 기댄 건축물(A구역)들의 방향은 남동향이 적절하고, 청룡 능선에 기댄 건축물(B구역)들의 방향은 남서향이 적절하다. 그런데 A구역의 사례와 같이 바람길 진행방향과 건축물들의 긴 변을 평행하게 배치할 경우 배산임수와 상충할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B구역의 사례처럼 각 건물의 방향은 배산임수를 따르되, 건물군을 점 형태로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고층 및 고밀 개발을 지양하고, 개별 건축물의 간격을 크게 유지하면서 배치한다.
득수 비보를 활용한 공간계획
(물순환체계)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집중되는 강우 특성으로 인해 빗물 관리 및 활용에 있어 안정적인 수량 확보와 빗물이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농경사회에 살았던 조상들이 빗물을 소중히 여겼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을 소중히 여기는 이러한 사고는 풍수 이론에서 물이 생기와 재물로 여겨지고 길지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의 하나로 자리 잡는 데 일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마을의 수구가 닫혀 있지 못해 물이 마을 영역 밖으로 쉽게 빠져나갈 경우 물과 함께 생기와 재물이 빠져나간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과거 조상들은 물이 마을 영역 내에서 최대한 머물 수 있는 자연 조건을 갖춘 곳을 마을의 입지로 선호하였고, 또한 인공적으로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먼저 우리나라 전통마을은 대부분 산과 평지가 만나는 산기슭에 배산임수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점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 산이 훼손되는 것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곳이며, 앞에 들판이 펼쳐져 있어 지표면의 경사가 완만하여 물길의 유속이 느려지는 곳이다. 마을 영역의 지표면 경사가 완만하여 소하천(실개천) 또한 자연적으로 사행(蛇行)하였고, 하천변은 다양한 수변생물이 서식하여 자연생태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지표면이 현대 도시의 그것과 달리 거의 자연지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은 빗물이 마을 영역 내에서 오랜 시간동안 머물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였다.
이와 더불어 풍수 비보 목적으로 물이 마을 영역 내에 최대한 머물 수 있는 인공적인 노력도 있었는데, 수구에 조성된 유수지와 숲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구에 유수지를 조성한 것은 갈수기에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마을 영역 내의 모든 물이 이곳에 모였다가 천천히 빠져나가도록 하는 풍수적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유수지 둑에는 주로 숲이 조성되었는데, 이는 둑의 유실을 방지하고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구막이 숲이 외부의 바람을 막아줌으로써 마을 영역 내의 수증기 증발을 억제하여 습도를 유지하는 역할도 하였다.
현대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 농업 증대, 물 다량 소비적 생활방식을 수반한 급속한 인구증가로 인해 세계적인 물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70~80년대부터 빗물 관리 시설의 설치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우리나라 또한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물순환의 왜곡으로 인해 하천 건천화, 열섬현상과 같은 도시 환경적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환경부, 2007).
그래서 최근에는 저탄소 녹색도시 조성을 위한 도시계획수립지침(국토해양부, 2009)에서 도시 내에서의 물․자원의 순환구조와 빗물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또한 환경부에서는 빗물이용시설의 설계 및 운영관리 지침 등을 발표하면서 실질적인 물순환이 가능한 빗물관리를 유도하고 있다(이태구․한영해, 2010).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도시의 물 부족 및 물순환체계의 왜곡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분산형 빗물관리가 강조되어 왔다. 분산형 빗물관리는 지붕, 도로 및 기타 불투수 지표면에 내린 강우를 이수․치수․환경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이용․관리하는 기술로서, 기존의 중앙집중식 물 관리 체계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저류 및 활용, 침투 그리고 증발산을 통해 도시 배수기능 이외에 환경 친화적이고 생태적인 도시 물 순환을 유도하는 기술이다(이상호․김영민, 2008, 18).
현대의 분산형 빗물관리는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풍수적 물관리체계와 기본 개념이 동일하다. 양쪽 모두 빗물이 영역 내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순환능력(cycle capacity)의 개념으로도 설명이 된다. 순환능력이란 자연이 물의 순환과정을 반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적인 물 순환에서 재충전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데(한무영, 2003), 분산형 빗물관리와 풍수적 물관리체계는 자연적인 물순환이 재충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산형 빗물관리가 풍수적 물관리체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분산형 빗물관리가 기존 도시에서 빗물의 효율적 이용․관리를 위한 개념인 반면, 풍수적 물관리체계는 도시의 입지선정에서부터 출발한다. 간룡법, 장풍법, 득수법과 같은 풍수적 법칙에 따라 선정된 입지는 건강한 물순환체계를 위한 자연적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러한 입지는 인공적 환경 조성에 소요되는 각종 에너지를 줄일 수 있어 현대 도시가 추구하는 저탄소 녹색도시 조성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또한 분산형 빗물관리가 빗물이용시설의 도입에 중점을 둔 이․치수 목적에 국한된 반면, 풍수적 물관리체계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자연 상태의 지표면, 자연적으로 사행하고 건전한 식생을 유지하는 하천, 수구에 조성된 유수지와 숲 등의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이고 통합된 체계를 유지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빗물과 관련된 법률로는 수도법, 국토계획법 하위법령인 도시계획시설의 결정․구조물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도시공원 내 저류시설의 설치운영지침, 자연재해대책법 등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법률들은 대부분 용수확보를 위한 빗물이용기술, 침수피해 방지를 위한 빗물유출 저감 기술에 편중되어 있으며, 이수․치수, 환경보호 및 물순환 건전화를 포함하는 통합 법령 및 기술지침의 부재로 빗물관리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상호․김영민, 2008, 20~22).
따라서 앞으로의 물관리의 방향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생태계 복원개념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통합적인 빗물관리를 도모할 수 있도록 법의 개선과 제도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개념으로 이루어졌던 풍수적 물관리체계가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