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미니코 수도회의 역사
1215. 1월-4월. 성 도미니코는 툴루즈에서 첫 형제들의 공동체를 설립하고, 1216년 오순절 무렵에 수도회 설립을 위한 회의를 가졌다.
1216년 12월 22일에 교황 호노리오 3세가 수도회를 인가하였으며, 1217년 1월 21일에는“설교자들”칭호를 교황의 칙서로서 인가하여, 교회의 최고 당국자 밖에서는 최초로 설교 직무를 수행하게 된 수도공동체가 되었다. 이는 1217년 성모승천 대축일에 도미니코 성인이 공동체의 형제들을 세상을 향해 파견함으로써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 교회 신앙의 기틀을 강화하기 계기가 되었다.
1219년 11월, 비테르보(Viterbo)에서 교황청에 의한 탁발 수도회로서의 칙서를 얻고, 1220년 2월 11일에 수도회의 총장(대스승; GeneralMaster)의 직무를 인가하는 칙서를 얻게 된다. 1221년 3월-4월에 교황 호노리오 3세가 도미니코회에 기증한 로마의 성녀 사비나 대성당은 오늘날, 도미니코 수도회의 총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16세기 이후의 도미니코 수도회는 공동체 안에서의 성숙을 통해 해외 선교와 사회적 정의를 위한 새로운 발걸음이 재촉되었다. 남미와 아시아를 위해 수도회 내에 선교 관구(로사리오 관구 1587년)를 설립 하게 되었으며, 이는‘로사리오 신심회’를 설립하여 묵주 기도를 교회내에 신심 활동의 한 부분으로 정착시켜 오늘날 교회 내의 레지오 활동을 비롯하여 성모님께 묵주 기도를 전파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도미니코회의 16세기 이후는 수도회 내에 새로운 인물들이 교회와 사회의 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명에로 부르심을 받았다. 로사리오 관구 소속 도미니칸 선교사들은 1611년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성토마스 대학교(UST)를 설립하여 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현대식 교육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재속 3회원이었던 리마의 성녀 로사(1586-1617)와 빗자루 수사로 널리 알려진 마르틴 데 포레스(1579-1639) 이 밖에도 중국과 일본, 베트남에서 도미니칸 선교사들은 그 지역 선교를 위해 순교의 씨앗을 뿌렸으며, 오늘날 아시아와 남미에서의 교회의 중요한 신앙의 뿌리를 이루게 하였다.
2. 도미니칸 영성과 활동
도미니코회의 영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창설자 성 도미니코 성인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설교’이다. 설교 직무의 첫 목적은 영혼 구원이다. 피조물들에게(마르코, 16,15) 진리(하느님의 말씀)를 전파함으로써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하느님의 구원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과 자녀의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보시니 참 좋았다(창세기 1,31)”라는 태초의 그 순수한 원의를 인간으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도미니코회의 모토 중에 하나가‘관상하라 그리고 관상한 것을 전하라’이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이시다(요한, 18,37). 그 진리는 어둠 속에서도 드러나시며 고난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는다. 관상은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과 나를 굳건하게 맺게 하며, 나약한 본성을 가진 설교자들에게도 힘을 얻게 하여 군중 속에서도 진리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도미니칸들에게 있어서 설교는 하느님과의 영적 유대를 통해서 얻은 기쁨과 축복을 세상 안에서 선포하는 것이며, 표징으로 스스로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느님의 것은 모두 거룩한 것이고, 도미니칸들은 그 거룩한 것을 체험하고 얻은 것들을 피조물들에게 전할 사명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그래서 설교는 영혼 구원을 우선적인 사명으로 삼으며, 영혼구원을 이끌 그 어떠한 개인의 달란트나 소질은 설교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림, 조각, 문학, 음악, 교육, 자선, 운동 등으로 사람들에게 설명(설교)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진리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매우 합당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도미니칸들의 부르심은 바로 군중들에게,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갖추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합당한 조건을 갖추도록 식별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봉헌된 자신의 것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예수님의 공적 생활을 모델로 응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한국에서의 도미니칸 양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한국 공동체의 양성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적 연대를 형성한다. 도미니칸으로서 한국 공동체에 입회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은 먼저 한국에 있는 가톨릭 신학교(서울 신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고졸자는 수능성적으로, 대학교 2년 이상의 수료자(전문대, 혹은 교육부가 인정하는 대학 2년 이상을 마친자)는 편입시험에 합격하여 한다. 형제들은 최소 6개월 이상의 성소 모임을 통해서 자신의 성소를 식별하고, 수도 공동체도 성소자의 지원과 조건들이 설교 성소직분에 알맞을지 식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지원자들은 이러한 성소식별의 기간을 거쳐 입회를 하게 되면 적어도 1년-2년 이상의 철학 혹은 신학 과정을 배우며 수도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는 청원기를 보내게 된다.
한국에서 청원기를 마친 형제들은 홍콩의 관구 본부나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최소 1년 동안의 수련을 받게 된다. 형제들은 수련기를 갖기 전에 방학이나 휴식기를 통해서 공동체가 마련한 어학(영어 혹은 스페인어)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홍콩에서의 수련기를 보내게 될 형제들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지원자들과 함께 국제 공동체 생활을 이루어 각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하느님 안에서 모든 자녀들은 한 가족으로 태어났음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일치와 통합의 공동체를 익히게 함이다.
수련을 마친 형제들은 하느님께 자신을 자유롭게 봉헌할 것임을 서약하게 되며, 첫 서원(단순서원)을 발하며, 서원을 발한 수사들은 상황에 따라 한국, 마카오, 필리핀 등지에서 사제 수품에 필요한 학업을 계속 수행하게 된다. 입회 시기로부터 6년-8년의 학업을 마친 수사들은 장엄서원(종신서원)과 더불어 부제품, 사제품이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이어지며, 사제품을 받은 수사들은 상황에 따라 외국이나 국내에서 전문직 수행을 위해 학업을 계속 수행하게 되는데, 이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봉헌한 우리 자신을 합당한 도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4. 한국 도미니칸의 현황
도미니코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90년 5월에 서울 대교구의 초청으로 홍콩에 관구 본부를 둔‘로사리오 관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재 한국에서의 도미니칸 활동은 먼저 신학생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신학생들은 서울(서울 신학교), 홍콩(수련소), 안산(사목 실습), 필리핀(UST), 로마(안젤리쿰)에서 사제 양성에 필요한 학업과 수품 후의 활동에 필요한 전문 과정을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의 도미니칸들은 현재 20여명의 회원들이 서울 공동체(수도원, 신학원, 본당 사목 협력, 도미니칸 평신도(재속 3회), 신심회 지도 등)와 안산 공동체(본당 사목협력, 피정지도, 신앙 강좌, 신심회 지도 등)에서 도미니칸 양성과 평신도 양성을 통해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5. 성소 문의 및 연락처
성소 담당 : 배수판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 신부
02-945-8431 성소자 카페 : 도미니칸들의 공원, cafe.daum.net/Dominicani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