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여행을 떠나본다. 여름 휴가를 즐겨본지도 꽤 되었다. 광명시민신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365일 거의 쉬지 못하였다. 그런차에 얻은 기회...
안면도 일대로 한울림공동체가 기행예배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교우들은 그동안 아이를 키우느라 변변한 여행 한번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기행예배에는 많은 교우들이 참석했다.
일기예보도 오랫만에 떠나는 우리를 축복하듯 화창함이라고 예보했다. 하지만 정작 떠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오후에는 그친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우리 한울림 공동체는 비에 징크스가 있다.
17년전 교회를 세우고 첫 여름 수련회를 떠났을 때 일영 계곡에서 큰비를 만나 거의 죽다가 살아난 경험이 있다. 그때 이후 한울림공동체가 수련회나 기행예배를 떠나면 꼭 비가 따라다녔다. 한창 가뭄이 심할 때도 우리가 떠나면 비가 쫓아왔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수련회를 떠나자'는 농담도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 운산면 가야산 계곡에 자리한 서산삼존마애불상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서해대교 끝자락에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 집결했다. 6대의 차량에 분승한 일행은 먼저 서산마애석불로 향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여래입상과 보살입상, 반가사유상으로 구성된 삼존불상이다. .어느덧 비는 예고대로 잦아들고 우리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 운산면 가야산 계곡에 자리한 삼존불을 마주했다.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고 한다.
▲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여래본존 불상의 얼굴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 마애석불 석축을 따라 작은 돌탑들이 쌓여 있다. 계곡을 배경으로 한장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어르신 한분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분을 통해 삼존불에 얽힌 몇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삼존불은 굳이 보호각을 설치 하지 않아도 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암벽의 경사면이 밑으로 8도 정도 기울어 있어 자연적으로 들이치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400년 전에 그런 것 까지 고려하여 석불을 세웠다는 것이 놀랄만한 일이다.
석불을 세길때는 가장 높은 부분부터 새겨나간다고한다. 예를 들어 코부터 조각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제대로된 조각을 하게 된다. 한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신비로운 조각불이 만들어졌다니 놀랍기만하다. 단순한 기술이 아닌 신심이 만들어 낸 걸작이라 하겠다.
서산마애불은 아침, 점심, 저녁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다른 위치에 새겨져 있다. 비취는 빛의 각도에 따라 석불의 표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서도 그 표정이 달라진다고 하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개심사 안양루 앞의 인공 연못. 속세와 정토를 가르는 상징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개심사를 향한다. 개심사는 서산 인터체인지에서 해미방면으로 가다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서산 소목장 초지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개심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큰저수지가 있어 그 저수지를 끼고 돌아야 한다. 들어가는 입구가 초지와 저수지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개심사를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수많은 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은 숲길과 작은 또랑을 가로질러 휘돌아간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계단을 타고 개울이 만들어져 있다.
한참을 오르자 드디어 개심사의 풍광이 눈에 든다. 인공으로 파놓은 연못에는 연잎이 둥둥 떠있다. 연못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개심사 가람배치가 한눈에 들어 온다.
▲ 보물 제143호인 개심사 대웅보전의 고색창연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개심사의 강당인 안양루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해탈문(解脫門)으로 들어서면 오똑한 5층석탑 뒤로 보물 제143호 개심사 대웅보전이 안방마님처럼 좌정하고 있다. 단아하다.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좌우보다 전후가 조금 길다. 맞배지붕은 펼친 책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되었다. 본래 이름은 개원사(開元寺)였는데, 고려 충정왕 때 처응대사가 중건하면서 개심사로 불렸다. 개심사를 한바퀴 돌자 신기하게도 온 우주를 향해 마음문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안면송이라 불리는 금강송. 안면도 전역에 빽빽히 분포하고 있다.
어느덧 날은 화창히 개었고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 우리를 반겨준다. 사하촌 어귀에서 적당히 배를 채우고 갈길을 재촉한다.
안면도로 향하는 길은 해미읍성을 가로질러 홍성으로 향하다가 40번도로를 타고 서산 A,B지구 방조제를 따라가는 길이다.
간월도의 아련한 풍광을 뒤로하고 드디어 안면도에 닿는다. 안면도에 들어서는 순간 솔내음이 진하게 풍겨온다. 안면도는 안면송이라 불리는 금강송으로 빽빽히 둘러쌓여있다. 어디를 가나 멋들어지게 뻣은 안면송을 만나게 된다. 해변가에도 어김없이 솔밭이 있다.
여장을 푼곳은 꽃지 해변의 롯데캐슬이다. 꽃지해변가에 위치해 바다의 풍광을 실내에서도 만끽할 수 있다. 어느덧 해는 기울고 바다의 풍광은 가벼운 산책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 아침 바닷가에서 움직이는 작은 생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다음날 맑은 햇살에 놀라 눈을 뜬 시간은 아침 6시. 전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한사람 한사람 눈을 부비며 일어난다. 아침 산책이 제안되었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바닷가로 걸음을 옮긴다.
물은 이미 가득 들어와 있었고 철썩거리는 파도 냄새가 코 앞에서 진동한다. 아이들은 벌써 물장난 삼매경에 빠졌다. 소라와 고동을 잡느라 정신이 없다. 어른들도 철지난 바닷가의 한가함을 마음껏 즐긴다.
▲ 한국정원 아산원에 있는 양백당(陽白堂)에 앉아서 잠시 휴식
식사를 마치고 예배를 드린후 이번에는 지척거리인 수목원을 찾는다. 역시 안면송으로 둘러쌓인 수목원의 나무향기가 만만치 않다. 안면송은 경복궁을 지을때 가져다 쓸 정도록 재질이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장승고개에 올라서니 수목원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목원에는 아산원이란 전통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 습지식물원에 조성되어 있는 연못, 연꽃들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한다.
정원을 지나 연꽃이 핀 작은 못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꽃길을 걸어본다. 사진도 몇장 찍어보고...
▲ 꽃길 사이에 서서 가을을 만끽한다.
꽃밭 한켠에는 목화도 심어져 있다. 목화열매가 벌어져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목화솜이다. 아이들이 목화솜을 보고 신기해 한다. 목화솜을 보고 신기해 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
▲ 수목원 정상부에 세워져있는 안면정.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제는 안명정을 향한 등산길만 남아있다. 좀 가파르지만 그리 험한 길은 아니다. 안면정에 올라서면 사방이 확트인다. 서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수목원의 정경도 또렷이 들어 온다. 산들 산들 가을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안면정을 내려서서는 그냥 능선길로 하산이다. 오솔길 가에 무리져 피어 있는 야생화들의 자태가 이름답다. 능선 끝자락에는 이은상 시비가 서있다. '나무의 마음’이란 시가 커다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 숨 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 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만/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
시를 읽다보면 자연을 마구 대한 송구함에 고개가 떨어진다.
▲ 꽃지해변의 낙조. 할매바위 할배바위 사이로 해가 잦아들고 있다.
저녁무렵의 꽃지해변은 정말 아름답다.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사이로 솟아오르는 달빛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붉은 빛이 감도는 푸른빛 하늘이 길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렇게 안면도의 밤은 깊어간다. 냄비속에 지글거리며 익는 대하의 고소한 냄새와 함께...
2004. 9. 21 이승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