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태후와 골프 천재소녀 위성미 | 장흥 칼럼 2004/05/04
요즘 장안에서 화제의 여주인공으로 떠오른 인물 중에 '공예태후(恭睿太后)'와 '미셸위(Michelle Wie, 위성미. 魏聖美)'가 있다. 공예태후는 고려 중기 제17대 왕이었던
인종의 비(妃)로, 타고난 강골과 출중한 정치력으로 인종 이후의 파란의 무신정권시
대를 돌파해 가는 풍운의 여걸이었다. 그 공예태후가 '무인시대'라고 하는 TV 역사드라마를 등에 엎고 까맣게 잊혀졌던 역사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맹활약하며 안방극장에서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위성미는 괴력의 장타로 미국 사회에 '미셸 위의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한 재미교포 아마추어 '골프 신동'. 미국 언론들은 그를 제외하고는 여자 골프를
얘기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연일 경쟁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한 14세 소녀 골프선수다.
그 두 사람 모두 전라남도 장흥(長興)을 연고로 하고 있다. 그들이 실제로 태어난 곳은 아닐지라도 그들 부모가 장흥이 고향이거나 본적지로 가지고 있어, 장흥은 그들 삶의 동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다.
(출생지가 미국 하와이인 위성미와 달리 태후의 출생지는 분명치 않다. '고려사'에서는 그녀의 고향을 정안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정안현이 그녀의 출생지일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당시 임원후는 결혼을 세 번 한다. 초취는 문하시중 윤관의 딸이요, 재취가 문하시중 이위의 딸, 삼취가 참지정사 이식의 딸이었다. 이런 결혼으로 미루어 임원후의 생가는 정안현이었을지라도 아버지의 조정 출사에 따라 개
경으로 올라와 살면서 아버지의 후광으로 명문대가 여식들을 초취, 재취, 삼취로 맞이하였고 재취인 수주이씨로부터 태후를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어, 태후의 실제 출생지는 개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800여년이라는 세월의 벽을 격하고 있는 '장흥 연고'의 두 여자는 유사점이 많다.
올해 들어 세인들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는 것부터가 그렇고, 그들의 성씨가 장흥을 대표하는 두 장흥 토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의 삶의 배경 또한 매우 유사하다.
태후 조부인 임의(任懿)는 변방의 장흥(당시 정안현)에서 개성으로 출사, 재상 반열에 오르며 단숨에 장흥임씨를 전라도의 대표적인 명문귀족으로 만들어버린다. 그의 이러한 기반 구축이 아들 3형제 모두에게 입신의 길을 열어주고, 세 아들 중 임원후의 딸인 임씨가 인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국모 자리에 오르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위성미 조부 위상규(魏祥奎·77)씨도 장흥에서 서울로 유학,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공군항공사, 서울대우주공학과 교수, 한국 최초의 항공공학박사, 한국항공우주학회 초대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국내 항공우주 분야 개척에 크게 기여하며 위씨 가문의 명예를 크게 빛낸다.
특히 위 박사의 이와 같은 첨단학문에 대한 욕구와 자식들에 강한 교육열은 2남1녀 모두 박사학위의 학자(교수)로 키워내는 동기가 되며, 특히 두 자식을 선진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그 중 위병욱씨의 딸 위성미가 미국 여자 골프계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동인을 만들어 준다.
두 여자의 남성적인 강성의 이미지도 유사하다. 태후는 무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허수아비로 전락해갔던 왕실정치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여인이었다. 무신들의 위협에 의연히 대처하고 아들 의종을 폐위한 뒤 죽음에 이르게 한 이의방과도 타협과 대립을 반복하며 왕실의 법통을 이어간, 실로 뛰어난 정치력(승부력)을 가진 여걸이 공예태후였다.
위성미도 체격조건이나 위력적이며 힘이 넘쳐나는 장쾌한 장타 등 그녀가 풍겨주는 이미지는 남성적이다. 게다가 경기 중에 보여주는 강인한 정신력, 두둑한 배짱, 끈질긴 승부욕 등은 그녀가 강한 골프 선수로서 천부적인 재능까지 겸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여자의 '성(性) 대결' 구도가 세인들에게 화제를 더욱 부채질하고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드라마 상에서이긴 하지만, 태후가 당대의 영웅 호걸들이라 할 수 있는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경대승 등 거친 남성들과 첨예하게 대결하는 긴장구도 자체 '무인시대'를 '뜨게' 만들고 세인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위성미도 '성' 대결에 관심이 많다. 그녀의 목표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따라잡는 것이며, 아직 여성이 참가한 적이 없는 최고 권위의 골프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대회에서의 우승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오는 8, 9월에는 남자들의 골프대회인 캐나다 투어와 네이션와이드 투어에 나가 남자 프로들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위성미의 유명세는 남자들과의 '성(性)' 대결에서 더욱 증폭되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 여자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임씨 태후는 8백여 년 전 일국의 국모가 된 국가적인 인물이었지만, 8백여 년 후의 위성미는 이제 14세의 어린 소녀로 그 성가가 확실하게 굳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지금도 골프 천재로 '세계 스포츠계 거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견이지배적이긴 하지만, 중도에 골프를 그만둘 수도 있는 변수는 있는 것이다.
태후는 국모가 된 축복의 하나로 고향 정안현에 '지장흥부사(知長興府使. '장흥부') 라는 승격을 얻어내 고향 사람들에게 헌사했다. 장흥이라는 지명은 그때 비로소 이 땅에서 생겨나게 된 것이다. 위성미는 무엇을 헌사할 수 있을까. 최근 장흥군민은 위성미를 위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전달했으며, 프로 전향 이전까지 그녀를 돕기 위한 후원회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위성미가 골프를 게속하고 프로로 전향한 후에 더욱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한다면, 그녀의 그러한 명예자체만으로도 장흥군은 적지않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위성미 고향(원적지)에 '미셀 위 기념관'이라도 만들 수 있을 터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세계 앞에 장흥군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위성미가 장흥에 헌사한 소중한 축복의 은사의 하나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