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
나 혜 경
딱 하룻밤, 아름다운 외박을 꿈꾸거든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 들어 보라.
절이 여관인 듯 여관이 절인 듯
여관도 절도 다 내 집인 듯도 하여
집도 그립지는 않겠네.
숲으로 난 창이 있는 8호실에 누우면
세속인 듯 승속인 듯
내가 숲을 찾아 온 게 아니라
숲이 나를 찾아와 나도 본래
숲이었음을 깨닫게 해 줄 것만도 같네.
열어놓은 창으론 솔바람이 불어와
내 몸에 숨은 잎들이 일어서기도 하겠고,
월담하듯 별들이 창을 넘는 밤이 오면
나도 마음을 넘어
그 많은 별들과 만리장성을 쌓겠네.
오늘 밤만은 새 사랑으로
견우별도 직녀별을 그리워하지는 않겠네.
오늘 하룻밤만은 과분하게
직녀별의 사랑을 빼앗는 음탕한 여자가 되어
부끄러워도 좋겠네.
꽃삽
꽃삽 한 자루 사다 놓고
일 년에 딱 한 번
땅두릅 캐러 갈 때 써먹는데
분갈이를 하거나 꽃모종을 뜨자던
소박한 소망 하나 이루지 못하고
두릅의 어린 순이나 상하게 하자니
막사는 생
꽃삽이라 부르지를 말아라.
이름답게 살고 싶어 몸부림치다
올 봄
제 손으로 제 허리를 분질러 놓고 말았다.
再活 속에 살다
재활이라는 말, 마음 굳게 먹게 하지요.
토요일이 되면 재활원 아이들은
줄지어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내가 매일 퇴근하여 가는 문 밖 세상을 배워보겠다고
낯선 세상 속에서 손 놓치지 않게
이열 종대로 줄지어 손잡고 갑니다.
내겐 너무 익숙하여 권태로운 일상이
그들의 공부 감이지요.
내가 이제 그만 타고 싶어 하는 시내버스 요금함에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넣고 시내까지 가는 일도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먹는 일도
머리핀을 직접 고르는 일도 그들에겐 재활입니다.
필요 없다고 손을 가로젓지 말아요.
알고 보면 재활이라는 말,
누구에게든 참 필요한 말이지요.
이제부터
내가 마음 굳게 먹고, 곰비임비 익혀야 할 재활은
대수롭지 않게 줄을 이탈하는 일
권태로움을 극복하는 일, 낯설어하는 일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는 마음을
네 쪽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일
재활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지요.
그래도 네게 다 못 간다지요.
출처: 시울림(재능시낭송협회전북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천명(유명희)